중세의 고결하고 용맹한 기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기사문학의 정수, <파르치팔>

(중세 독일의 볼프람 폰 에센바흐가 쓴 궁정 대서사시, 아서 왕 전설의 독일 버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용사는 그들의 참혹한 처지를 듣고 기사가 흔히 그러하듯

오늘이라도 보수를 받고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데

얼마를 낼 생각이냐고 물었다."

주인공 파르치팔의 아버지이자 앙주 공의 차남, 가흐무렛의 모험담 1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뜨내기 출신도 아니고, 공가의 피를 이은 고귀한 기사 가흐무렛이 사악한 무리 때문에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보수를 받고 봉사하겠다' 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한 것이다. 

더구니 이런 일은 '기사가 흔히 그러하듯'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흔한 이야기였다.

봉건시대의 기사가 아르바이트로 용병기사가 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가 영주에게 봉사하는 길은 당연히 군역인데, 영주와 기사 간의 일반적인 봉신계약에 따르면

기사가 자비로 군역을 이행하는 기간은 연간 40일이고, 원정지도 따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 황제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로마 원정을 제외하면, 독일 이외의 지역에 출진할 의무는 없다.

또한 독일 국내라 해도 oo강변까지다, 말을 타고 하루 왕복하는 거리까지다. oo주의 경계 안까지만이다 식으로 구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 지역을 넘는 출진 요청에는 당연히 특별수당이 따랐으니,

기사가 군주을 위한 군역 이외에 아르바이트로 용병기사 일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갑옷, 투구, 검, 창, 방패, 말까지 모든 장비를 완벽히 갖춘 기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150헥타르(약 45만 평)의 땅에서 나오는 수입이 필요하던 시절,

돈에 쪼들리기 싫은 기사라면 다중계약을 맺고 열심히 아르바이트에 매진해야 했던 것이다.

12세기의 독일 기사 중에는, 황제를 제외하고 무려 44명의 주군과 계약했다는 것을

화려한 경력으로 여겨 자랑거리로 삼던 기사까지 있었다고 한다.

- "용병, 2000년의 역사"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