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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부잣집 얀데레 아가씨 다이아 담당하는 무림고수 또레나 -85-

무림또레시리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5.10 09:37:08
조회 2469 추천 44 댓글 33
														

[시리즈] 무림고수 또레나 시리-즈
· 무림고수 또레나 시리-즈 모음

트레이너 기숙사의 방보다 몇백 배는 비싸고 좋은 객실에서 몸을 씻은 또레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니야."


옆에 놓인 핸드폰을 켜 보니 업무 관련 메시지 몇 개가 와 있을 뿐 사적인 연락은 없었다. 짠 얼굴로 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에 도로 올려놓고 충전 중이던 태블릿을 꺼내 내일 사용할 자료를 점검한 또레나는 다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잠이나 일찍 잘까."


그렇게 생각하고 불을 끄려 리모콘을 잡았으나 객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룸서비스입니다. 주문하신 것들 바로 올려보냈습니다.


"주문요? 전 한 게 없는데...?"


-지금 머무시는 객실 명의로 음료와 간식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아니 잠깐... 설마...? 일단 알겠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주문한 것은 다이아였다. 객실 카드키를 하나 가져갔던 다이아는 그걸 이용해 또레나의 명의로 주문을 넣었던 것이다. 잠시 후 기척 두 개가 들리더니 하나가 사라졌다. 직후 객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삐리릿 철컥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잠옷 차림의 다이아가 카트를 달칵거리며 침실로 들어왔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네... 네가 술담배 주문하면 내가 못 막으리란 걸 잘 알았으니까 만약 할 거면 나한테 얘기나 해 줘라."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그래서 제 몫은 알로에 주스로 시켰다구요. 여기 주스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이브닝 드레스에 코튼 재질의 숏 가디건, 샌들 슬리퍼까지. 다이아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호텔이나 펜션의 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러한 복장이었다.


"그런 건 또 언제 샀대?"


다이아는 카트에서 와인병 하나를 집어들고 히힛 하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면서 물음을 던졌다.


"어때요? 저 잘 어울려요?"


굳이 평가하자면 몸매는 성인 여성과 크게 다를 것 없었으나 얼굴이 너무 어렸다. 87-54-84의 어마어마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한들 중학생은 어쩔 수 없는 중학생인 것이다.


"열 살, 아니 일곱 살만 더 먹었어도 딱이겠는데."


누차 말하지만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우둔한 아이가 아니었다. 한참 돌려 말했으나 안 어울린다는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하여 약간 삐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너무해요!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녀의 마음을 이다지도 몰라주시다니!"


"언제는 여자는 항상 소녀라며?"


"그건 그렇지만 소녀는 언제나 레이디를 꿈꾸는 법이라구요!"


소녀는 언제나 레이디를, 레이디는 항상 소녀를 꿈꾸는 무한의 순환에 기가 찬 또레나는 허 하고 웃었다.


"난죽경없같은 헛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일찍 주무시죠 영 레이디? 내일 아침 일찍 본가 가야 한다며?"


"그건 맞는데 잠이 안 와서요."


와인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카트 아랫칸에서 잔 두 개를 꺼낸 다이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또레나를 올려보았다.


"한 잔 어울려 주시겠어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다이아의 필살기였다. 우마 앤 더 시티 등의 청불 미제 드라마와 성인 인증이 필요한 우마튜브로 열심히 남심을 공부한 다이아는 이게 남자들한테 기가 막히게 잘 먹힌다는 것을 알고 오늘 그에게 시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을 쓰기에는 다이아의 얼굴이 너무 어렸다. 이대리나 타즈나, 하다못해 루돌프 정도만 됐어도 두근거렸을지도 몰랐지만 지금 그 기술을 쓰는 본인과는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꼬맹이가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는...'


다이아는 진심으로 시전하는 것이었으나 또레나에게는 그저 어른 흉내에 불과했던 것, 전제를 간과한 다이아의 패착이었다.




'어라... 왜 반응이 없지?'


얼굴은 태연했으나 다이아의 속은 당혹감과 초조함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거면 100% 먹힌다고 했는데...? 설마 우마튜브가 거짓말을 한 건가?'


순간적으로 그 총명한 머리를 굴려가며 여러가지 요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설마... 가슴팍을 좀 더 열었어야 했나...?'


청불 드라마에 나오던 서양 여자들은 하나같이 가슴골이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여우짓을 시전했던 것을 떠올린 다이아였다. 그러나 그것을 따라하기엔 많이 부끄러웠다.


여전히 미동 하나 없는 눈 앞의 타겟이었다. 그러던 중 또레나는 풋 하고 웃으며 다이아에게 말을 걸었다.


"푸하하핫, 아하하하하!"


"뭐... 뭐에요...? 왜 웃으시는 거에요?"


"너 청불 영화 보고 따라하는 거지 지금?"


"엑."


순식간에 자신의 행동을 간파당한 다이아의 당혹감이 표정과 목소리로 새어나왔다. 또레나는 그런 다이아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더니 핸드볼 공을 잡듯이 다이아의 머리를 꽉 쥐었다.


"꺄아아앙! 아파요! 아파요오오--!"


"이 꼬맹이가 어디서 뭘 보고 이러는지는 몰라도 그런 게 통할 것 같으냐? 으이? 이 발랑 까진 중삐리가 지금 담당 트레이너 앞에서 말이야!"


"아파요! 아파요---! 잘못했어요! 그만해 주세요--!"


사과를 하니 고통이 멈추고 손이 떨어졌다. 꽉 쥐어진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고통을 줄이는 다이아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부터는 딱밤이야."


"히이잉..."


고통이 가시자 분노와 짜증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또레나가 슬슬 서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저도 방법이 있지요!'


플랜 a가 실패했으면 플랜 b를 쓸 차례다. 다이아는 다시 카트로 눈을 돌리고 와인병을 집어 라벨을 뜯었다.


"으으... 술이라도 한 잔 따라드릴게요..."


라벨을 뜯고 카트 위에 있던 와인따개를 집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라... 이거 어떻게 따는 거더라?'


사토노 다이어몬드는 코르크를 딸 줄 몰랐다. 항상 사교 파티에 가면 와인을 접할 수 있었기에 와인 자체는 굉장히 익숙했으나 본인의 손으로 따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씩 가족식사 때에 아버지께 따라 드리긴 했으나 코르크 뚜껑은 항상 주변에서 따 주었던 것이다.


'왜 바늘부분이 나선모양이지...? 어디 걸칠 만한 데가...'


그리고 또레나는 한 손에 따개를, 한 손에 병을 집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담당마를 보며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와인 딸 줄 모르지?"


"...! 아니 그게... 그게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다이아를 보며 픽 웃은 또레나는 다이아의 손에서 병과 따개를 가져다가 본인이 뚜껑을 땄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포도향과 오크통 향이 조화를 이루며 방에 가득 피어올랐다. 병에서 퍼져나온 향을 만끽한 또레나는 자기 잔에 와인을 따르고 카트에 실려 있던 주스를 다이아의 잔에 따라주었다.


"하핫, 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지."


"...!"


또 어린애 취급(맞다)을 당했다. 플랜 b조차 여지없이 개박살난 다이아는 준비한 플랜c로 넘어갔다.




"야경이 참 예쁘네요!"


주스를 한 잔 마신 다이아는 또레나의 옆으로 찰싹 붙었다.


"그러네. 전에도 그랬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었을까."


"달도 참 아름답구요."


하늘을 보니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예쁜 야경을 만드는 불빛의 반짝임은 밤하늘에까지 그 빛을 뿌리고 있어 별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엥? 달은 없는데? 오늘 구름 많댔어."


달을 찾는 데에 실패한 또레나가 다이아를 돌아보며 말하자 다이아는 짠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그의 팔에 툭 툭 부딪혔다.


"아프다 욘석아."


"하여간 낭만이 없어! 그럴 땐 그냥 적당히 맞춰 주시면 되는 거라구요!"


토라진 다이아는 머리를 그의 팔에 기댄 채 귀로 그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려댔다.


"아니 안 보이는 달을 예쁘다 하는데 뭐 어떡하라고."


"달이 구름에 가려진 거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들은 또레나는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올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음... 생각해보니까 네 말이 맞네. 그러네, 구름에 가려졌다 해서 없는 건 아니지."


"??"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지 못한 다이아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입술을 살짝 핥으며 혀에 시동을 건 또레나는 말을 이어갔다.


"본디 만물은 누군가에게 관측됐을 때 그 존재가 정의되는 법이지. 그러나 a라는 무언가가 있다고 할 때 그 a가 관측되지 않아 그 존재가 정의되지 아니해도 a는 거기에 항상 있는 거잖아. 그렇다면 그 a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직 존재의 정의가 잡히지 아니했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는 걸까? 저 밤하늘의 달은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하고 관측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a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인식할 수 있으나 처음에 존재가 정의되지 않은 a는 과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존(獨存)으로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처럼 존재하되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


술이 들어간 또레나의 입에서는 때아닌 철학이 나오고 있었다. 다이아는 그제서야 그의 취미가 명상과 참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관총처럼 터져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다이아는 거리를 벌리고 양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트레이너님! 이 좋은 분위기에서 왜 갑자기 철학을...!"


"존재란 무엇인가? 너도 궁금하지 않아?"


"안 궁금해요!"


어느 새 또레나의 와인병은 다 비워져 있었다. 마지막 잔을 따른 또레나는 귀를 막으면서도 자신의 말을 다 듣고 자신을 노려보기까지 하는 다이아가 우스운지 낄낄거렸다.


"토론을 통한 지능 훈련이라고 여기면 어때? 토론 이거 중요한 거라고 사토노 양?"


"그건 아는데 왜 하필 지금이에욧!"


"너 오늘 하루종일 나 끌고 다녔지?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다. 낮져밤이가 뭔지 보여주마."


그렇게 말하는 또레나는 입술을 한 번 더 핥았다.


좋아하는 남자가 호텔방에서 자신을 마주 본 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핥는다는 것이 여간 뾰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으나 다이아를 사로잡은 감정은 그저 공포뿐이었다.


"그럼 재개해볼까. 존재란..."


"말끼야아아악----!"


공포에 휩싸인 다이아는 소파로 달려가 쿠션을 두 개 집어들고 또레나에게 달려들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또레나는 오른손에 와인잔을 든 채 왼손으로 다이아가 연신 내려쳐대는 쿠션을 막아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 달 하니까 생각났는데 있을 유(有)자에는 달 월(月)자가 들어가잖아.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도 모습을 계속 바꿔가지만 언제나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존재를 생각했다는 뜻이 아닐까?"


"몰라요! 몰라요! 그런 거 안 궁금하다구요!"


진심을 다해 내려치는 쿠션에서는 퍽퍽 소리조차도 나지 않았다. 또레나가 부드럽게 흘려내고 있던 탓이었다. 어느 새 다이아의 숨이 가빠지고 땀이 송골송골 나기 시작했다. 실내의 먼지 농도가 올라가자 인테리어 속에 숨어있던 최고급 공기청정기가 위잉 하며 작동을 시작했다.


"...내가 수학은 잘 못하는데, 서양 철학의 인식론 중 하나인 윌러드 콰인의 술어 논리에 따르면..."


"말끼야아아아악--! 문사철 out! 문사철 out! 사토노는 문사철 안 뽑아욧!"


결국 자신이 먼저 지쳐버린 다이아는 공격을 포기하고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둘둘 말아 뒤집어쓰고 베개로 머리를 덮었다. 누에나방 고치같은 말린 이불 사이로 살짝 나와있는 꼬리를 본 또레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아하하하하핫---! 문사철 안 뽑는 건 사토노 게임즈 뿐이겠지. 근데 요즘은 문과도 코딩 배우는데에?"


"몰라요! 웃지 마세요!"


"우하하하하하---!"


"트레이너님 너무해요오---! 분위기 좋았는데에에---!"


다이아의 플랜 c를 개박살내버린 또레나는 깔깔거리며 옆에 있던 셰리 와인병을 하나 집어들고 뚜껑을 땄다. 방금 전의 와인보다 강한, 진한 포도향이 뚜껑에서 피어올랐다.


"코르타도 셰리네? 승리의 미주로 잘 어울리는군."


"말기야아아아악---!"


이불고치 속의 비명을 안주 삼아 또레나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셰리주의 첫 잔을 따랐다.


이것으로 이 대 이였다.




"다이아아~ 그 누에고치에서 안 나올 거야?"


"안 나와요!"


"삐치지 말고오오~"


"몰라요!"


"달도 예쁜데에~?"


"달 안 떴어요!"


단단히 삐친 다이아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본인은 나름대로 진지한 분노였으나 옆에서 보기엔 어린애의 투정이었기에 또레나는 그저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발랑 까진 망아지 녀석. 오냐 네가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지.'


"에이, 그럼 어쩔 수 없네 다이아가 말벗 안 해주니 나 혼자 마셔야지 뭐."


'흥이다! 그런다고 누가 나갈 줄 알고?'


그러나 또레나는 진짜로 말없이 술을 마시고만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는 술병이 유리잔에 닿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있자 초조해진 것은 다이아 쪽이었다.


'뭐야...? 이쯤 되면 슬슬 위로하러 와 주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달칵 하며 탁자에 술병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불 속의 다이아는 내심 기대를 품었으나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아닌, 뻥 하며 새 술병을 따는 소리였다.


다이아의 기대감과는 다르게 찰랑찰랑 하고 병 안에서 술이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직후 또레나의 혼잣말이 들렸다.


"술이 약한 것밖에 없나. 바 가면 좀 센 게 있으려나."


'어...?'


다이아가 이불을 살짝 들추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이제 열 시 반이 조금 지났을 뿐 이었다. 주말의 호텔 바라면 이제부터 시작일 시간이었다.


'설마... 나이트풀 진짜 가시려고...?'


"왜? 이제 나오려고?"


"!!"


이불을 살짝 들추고 있던 것을 눈치챈 또레나가 한 마디 하자 다이아는 화들짝 놀라며 이불을 다시 내렸다.


"아니거든요?! 아직 안 풀렸어요!"


"나오고 싶어지면 말해~?"


"흥!"


다이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섞여있었으나 또레나에겐 그 불안감이 전해지지 못했다.


'아직 덜 풀렸나...'


새로 딴 와인은 방금 전의 셰리보다는 향도 맛도 약했다. 비싼 와인이었으나 셰리의 향에 묻혀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운 또레나는 딴 술을 버릴 수도 없어 병나발채 원 샷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바 좀 갔다 온다."


"엩..."


주말의 호텔 바. 남자들을 사냥하러 온 여자, 그리고 그런 여자들을 만나러 온 남자들이 한가득한, 남녀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전장. 그런 전장의 한 가운데로 술이 잔뜩 취한 그가 출전하겠다 통보를 날린 것이다.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사락사락 하며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지익 하며 지퍼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소리였다.


'뭐야...? 진짜 가는 거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방 문이 열렸다 닫히며 삐익 철컥 하는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놀란 다이아가 이불을 젖히고 모습을 드러냈으나 그의 기척은 방 안에 없었다. 그가 없어진 게 확인되자 다이아의 짜증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 트레이너님...! 트레이너니임!"


한참 동안 다이아는 사라지고 없는 그를 연신 불러대며 눈 앞의 베개를 집어들고 침대머리에 쾅쾅 내려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저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얼마나...! 제가...!"




그러나 그 분노는 생각보다 빨리 식었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 하루종일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눈이 풀려 그의 지친 얼굴을 떠올리니 다이아는 그저 베개를 내려놓고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직후 자신도 따라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미성년자가 호텔 바에 출입할 수 없다고 하나 이 호텔은 사토노 가의 소유였다. 만약 법률이 자신을 막는다면 평소 쓰지 않으려 했던 오너 일가의 권력을 내세워서라도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다이아도 문을 박차고 나와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빨리..! 빨리이...!"


초조한 다이아는 네 개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눌러놓고 연신 발을 동동거렸다. 그러던 중 뒤쪽의 엘리베이터에서 띵 하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려는 것을 확인한 다이아는 앞도 안 보고 달려 들어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죄송합..."


그러나 상대는 다이아의 말을 끊고 작게 핀잔을 주었다.


"요 녀석아. 그럼 위험하잖아."


익숙한 목소리에 다이아가 부딪힌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양 손에 술병 두 개를 들고 있던 또레나였다.


"트레이너님!"


마치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얼굴을 한 다이아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손에 술병이 있어 양 손을 쓸 수 없던 그는 그저 사토노-베어허그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케흑! 야...! 숨막혀! 힘 좀...!"


"싫어요! 안 놔요! 절대 안 놓을 거라구요!"


"아니...! 나 진짜 숨막혀어어억...!"


이렇게 잡히면 흘려내지도 못한다. 말딸의 근력에 끌어안긴 갈비뼈에선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트끼야아악! 뼈 부러진다고!"


그러나 다이아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뼈의 마찰음이 점점 더 심해졌다. 위험함을 직감한 또레나는 방법이 없었기에 숨을 들이쉬며 몸 구석구석에 기를 흘려보냈다.


몸에 기가 흐르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갈비뼈에서 삐걱이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일단 한 숨 돌린 또레나는 오른손의 술병을 왼손으로 옮겨 한 번에 집어들고는 빈 오른손으로 다이아의 드러난 등에 손가락을 몇 번 찔렀다.


"?!!?!?"


혈자리에 그의 손이 닫자 다이아의 몸이 움찔하며 굳었다. 놀란 얼굴의 다이아를 번쩍 들어올린 그는 닫히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다리를 끼워넣어 힘을 주어 버텼다.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자 한 손엔 술병을, 다른 손에는 다이아를 든 또레나는 누가 볼세라 빠르게 달려 방으로 들어갔다.


'학생한테 내공을 쓰다니... 그것도 다이아한테 쓸 줄은 몰랐는데...'


탁자에 술병을, 침대에 다이아를 내려놓은 또레나는 다시 다이아의 등을 찔러 막힌 기를 풀어주었다. 잠시 몸이 마비됐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다이아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또 달려들어 그를 안고 엉엉 울었다.


"흐아아아앙---! 트레이너님! 죄송해요오오---! 잘못했어요---! 다시는 쇼핑하자고 안 할테니 저 버리지 마세요---!"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리가 아닐 수 없었으나 지금 저 말에 동의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바라마지 않았던 기회를 어쩔 수 없이 놓아주며 그는 다이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아니 내가 너를 왜 버려... 바 갔다온다고 했잖아..."


"혼자 마신다고 하시길래 거기 가시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새 술 가져온거야. 미안해. 설명이 부족했구나."


"저는... 저느은... 쇼핑때문에 질려서 트레이너님이 저 버리시려는 줄 알고..."


"쇼핑이 아무리 싫어도 너를 버리지는 않아... 약속할게. 네가 나를 버릴 때까지 나는 널 버리지..."


"안 버려요!"


움찔한 다이아가 고개를 들고 또레나의 말을 자르며 소리를 질렀다.


"안 버려요! 저도 절대 트레이너님을 버리지 않을 거에요! 맹세해요!"


"그, 그래... 고맙구나...."


손가락으로 다이아의 눈자락을 쓱쓱 문대어 눈물자국을 닦아준 또레나는 웃으며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그가 사과하자 다이아 또한 더 이상 삐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 풀리지는 않았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며 귀여운 얼굴로 좀 더 큰 위로를 요구했다.


"설마 말로만 끝내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어허 씁. 이제 그만 좀 하지?"


"저도 잘못한 게 있긴 하니까아~ 남자답게 위로해주시면 넘어가 드릴게요."


"솔직히 오늘 선빵은 네가..."


다이아는 말없이 팔을 벌렸다. 그 모습을 짜게 바라보던 또레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도향 가득한 한숨이 다이아의 코를 간질였고, 곧바로 또레나는 다이아를 안고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꺄악! 트레이너님!?"




꼭 끌어안고 침대 위에 함께 누운 두 사람. 단 둘만 있는 호텔방. 위로뾰이의 프롤로그나 다를 게 없는 시추에이션에 다이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마? 설마아!'


또레나의 왼손이 뱀처럼 이불 위로 파고들더니 다이아의 옆구리를 감쌌다. 허리께에서 멈춘 왼손은 나무를 타는 뱀처럼 부드럽게 다이아의 잘록한 허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100%야! 이건 뾰이야! 영화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어! 드디어 나도...! 어른의 계단은 나 먼저 올라갈게 키타!'


그의 오른손은 뒷목을 살살 만지고 있었다. 허리와 뒷목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길에 다이아의 심장과 아랫배는 연신 뀽뀽거렸다.


뒷목을 쓰다듬던 손길이 다시 위로 올라오더니 뒤통수를 잡고 힘을 주었다. 머리에 가해지는 힘에 다이아의 얼굴이 그의 턱 아래로 파묻혔다. 맥박 따라 목덜미에서 퍼지는 그의 냄새와 포도주 향의 콘트라스트가 다이아의 코를 미치게 했다.


"사토노 다이아몬드."


낮게 깔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서는 그의 눈가에서처럼 푸른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한 표현이기는 했으나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귀에 때려박는 푸른 목소리에 다이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움찔거렸다.


'아...'


손길, 냄새, 목소리, 향기.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이 다이아의 정신을 잡아서 끌어내리고 있었다. 약간 질척이기 시작한 아랫배 아래의 감각조차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목 아래에 파묻힌 볼에서 그가 숨을 쉬고 있음이 느껴졌다. 자신의 호흡과 박자를 맞춰 가며 머리 뒤를 쓰다듬으며 등줄기를 톡톡 두들기는 가벼운 손길은 편안한 쾌락으로 다이아의 정신을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어...?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순간 다이아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봤던 시청각 자료(청불, 이어폰 필수, 모자이크)가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키스 후 가슴과 엉덩이를 쓰다듬었는데 지금 또레나가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있기는 했으나 엉덩이나 가슴은 절대 아니었다.


순간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생각났다.


'이거.... 애기 재우는 거잖아!'


그제서야 눈치챘으나 너무 늦었다. 대부분의 의식은 그림자의 늪에 빠져들어간지 오래였다.


'트레이너니이이임---!!"


간신히 말의 끝자락을 입 밖으로 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빠져나온 목소리는 너무나 빈약했다.


"오? 이걸 저항하네?"


"저...를.... 속인...!"


"속인 건 아니지. 위로해달라며?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위로는 이것뿐이야."


눈을 뜬 다이아가 바라본 그의 얼굴은 자신을 놀려먹고 있다는 것을 더는 숨기지 않고 있었다. 또레나가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고혹적인 셰리의 포도향을 맡을 때마다 다이아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갔다. 자신의 의식의 말단마저 푸른색 심연에 빠져 든 다이아는 결국 수마(睡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먹고 말...'


천박한 맹세를 결국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다이아는 결국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었다. 다이아가 진짜로 잠든 것을 확인한 또레나는 픽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제대로 베게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준 채 잠든 다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자요. 사토노 다이아몬드."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술병을 집어들고 불을 끄고 방 밖으로 나갔다. 포도향 풀풀 풍기며 복도를 걷는 그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술병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이로서 이 대 삼. 오늘은 또레나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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