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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설계사ch.3 - 29

머스크메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5 23:42:58
조회 471 추천 15 댓글 4
														


[시리즈] 모음집 정리
· 설계사 괴문서 모음집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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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감사제가 성황리에 종료되고 며칠이 조금 지난 오후. 트레이너는 팀 부실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


트레이너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방금 전 디지털네가 보고를 올렸던 여러 SNS 게시글이 비춰지고 있었다. 맨 위에 올라온 첫 번째 게시글은 우마스타, 우마튜브, 우마스타그램 등 수많은 SNS의 스타인 카렌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 카렌이 적극 강추하는 트레이너에게 선물 할 DIY세트 만들기~! ]


화면 속 해맑게 웃는 카렌이 들어 올린 건 간단한 수제인형, 커스텀 스마트워치, 그리고 수제 바디워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용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선물 할 인형에다가 카메라를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그걸 베개속에 넣고 일주일동안 베고 잔다고? 왜..?"


멍하니 카렌의 영상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의 가면의 이모티콘 한쪽 눈이 일그러졌다. 그 와중 스마트 워치에는 속을 드러내더니 안에 GPS를 심는 영상에는 고개가 슬며시 옆으로 기울어졌다.


"...이건 불법아냐?"


뿐만 일까 이번에는 수제 바디워시랍시고 자신의 땀을 모으는 내용에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일전에, 자신의 담당들이 마킹하겠답시고 땀을 모아서 만든 바디워시 아닌가. 하지만 카렌의 게시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레이너에게 부탁하는 꼬리손질법이나 둘이서 같이하기 좋은 요리법 등 죄다 어디서 본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바디워시는 학원에서 금지한 거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담당들의 바디워시가 아직 남아있긴 했지만 전에 이사장과 상의 후 학원에서는 사용을 금지하도록 했는데 SNS의 스타가 이렇게 버젓이 대놓고 제작영상을 올려버리면 그 파급이 어찌될지 생각하는 건 쉬웠다. 물론 저 방법들은 모두 일전에 비너스 담당들이 트레이너에게 독점력을 발휘하다가 생겨난 부산물이었지만 설마 그 출처가 자신의 담당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는 트레이너였다.


"하아..."


축제가 끝났지만 그렇지 않아도 원래 하던 업무에 축제 마무리에 겹쳐 이런 부가적인 일들이 생겨나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여긴 트레센인걸. 하지만 지금 문제는 것보다 다음 게시글이었다.


"푸흡!"


손가락을 넘겨 다음 게시글로 넘긴 트레이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시던 차를 자신도 모르게 뿜어버렸다. 카렌이 올린 게시글이 아니라 여기저기 퍼져있는 게시글을 모아놓은 글이었는데 거기에는 죄다 하나같이 자신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첫 번째는 학생회 메이드 카페에서 브라리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자신의 옆모습. 한쪽 팔에는 재킷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메이드복 브라이언을 상냥하게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에 나오고 있었다.


[ 좀 있다 마중 나올게. 그때까지 힘내. 알았지? ]


[ 응...알겠다. ]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이며 귀를 쓰다듬기 쉽게 착 낮추고 있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는 발그스레한 혈색이 감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 게시글에 올라온 다이아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물풍선을 막아내는 자신의 모습이 올라와있었다.


[ 다이아에겐...절대로 손가락 하나 못 대...! ]


축제의 일부분이라 생각한 방문객들이 여기저기 물풍선을 던져대는 것으로부터 다이아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자신의 모습과 브라이언을 쓰다듬는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SNS에 올라오면서 밑의 댓글창의 반응도 뜨거웠다.


[ 그 브라이언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갭모에 최고다. ] 혹은 [ 저 사람 트레이너임? 정장핏 개쩐다. ] 아니면 다이아를 지키는 장면에서는 [ 와, 저걸 다 막아내네. 개잘막는다. ] 라던가 [ 뒤에 다이아가 앉아있는 구도 장난 아니네. 무슨 드라마 촬영 중이냐? ] 같은 반응들이었다.


혹시나 멀쩡한 반응은 없을까, 스크롤을 더 내려 봤지만 내리면 내릴수록 온통 자신의 관한 이야기 밖에 없었다.


[ 저 사람 담당 학대논란 있던 사람 아님? ]


[ ㄴㄴ 담당 애들 실적 하나하나마다 장난 아닌데, 그게 학대하면 나올 성적이냐 ]


[ 이번에 저 트레이너가 담당하는 팀 애중 한명이 연극 감독 했다고 해서 혹시 자기 트레이너 까발릴려고 하는건가 가봤음. ]


[ 아, 심볼리 시리우스랑, 미스터 시비가 나왔던 거? ]


[ ㅇㅇ 아무튼 그런 거 전혀 아님. 오히려 자기 트레이너처럼 가면 쓴 역할을 치켜세워주던데. ]


[ 아무리 봐도 누가 헛소문 퍼트린 것 같은데 사실은 맥퀸의 이전 트레이너가 학대한 거 아니냐? ]


[ 맨 처음 말 꺼낸 놈 IP보니까 분탕이니까 병먹금해. ]


맥퀸의 연극을 본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갔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도 있었다.


"망할, 이것까지 퍼졌네."


그라스와 페어로 달리며 다른 페어들을 양학하는 2인3각 경기마저 인터넷에 올라와있었다. 이미 댓글창에는 트레이너가 달리는 걸 본 사람들의 댓글이 잔뜩 달리는 중이었다.


[ 이번 트레센 성굽제 레전드 원픽 ]


[ 와씨, 개쩐다 어떻게 우마무스메랑 같이 달리는 거지? 인간 아냐? ]


[ 말이 되냐, 합성이겠지. ]


[ ㄴㄴ 아님 저번에 트레센에서 인간이 우마무스메 추월하는 영상 봤는데 그 사람 같음. ]


특히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우마무스메와 똑같이 달리는 트레이너의 모습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이 있었으니.


[ 님들 이거 봐보셈!! ]


[ 와, 시벌 몸 개쩐다. 트레센 트레이너들은 다 저래? ]


[ 헬스 엄청 조졌나보네. 하긴, 명색이 애들 운동 가리키는 트레이너인데 저런 몸이 아닌게 이상하지. ]


[ 헤으응, 트레센 트레이너 엘리트 찌찌파티... ]


[ 당장 트레센에 취직하러 간다. ]


[ 님, 취직하면 트레이너 만나기 더 힘든 거 아님? 젊은 애들하고 어찌 경쟁하려고? ]


[ 학생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었잖아 ㅠㅠ ]


"하아...그럼 그렇지. 다른 게 죄다 나갔는데, 이게 안 나갈 리가 없지."


그라스와 2인3각 페어를 달리고 나서 너무 더워 옷을 들어 올려 적나라하게 몸을 드러낸 장면까지, 아주 그냥 감사제때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진 모든 일이 죄다 올라가 있었다. 보고서 밑에는 디지털 트레이너가 쓴 [ 이거 괜찮은 겁니까? ]라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글귀를 본 트레이너는 다시 이마를 잡았다. 지끈거리는 와중에 문득 보상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라스의 허벅..무릎배게는 좋았지..."


이사장 야요이에게 설교를 받았지만 그라스는 약속대로 아무도 없는 부실에서 무릎배게를 해주었다. 답답한 가면을 벗고 부드러우면서도 따듯하게 감싸오는 그라스의 허벅지 위에서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차분해지는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잠깐의 수면을 취하는 휴식은 정말로 최고였었다. 차분히 안정되어서 정말로 마음에 들었기에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다시 하고 싶었지만 우선 눈앞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야했다.


'집중하자 집중...제길, 아무리 그래도 이건 수습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는데.'


좋기만 하던 그때와 달리 지금, 감사제가 끝난 다음날에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만 제외하면 적어도 무사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이런 난제가 일어나니 골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아..."


이제 스마트폰 화면에는 올라온 카렌이 팀 비너스 부실 근처, 특수트랙 훈련장에서 파쿠르 연습을 하며 자신의 트레이너에게 (일부러) 안기는 모습이 촬영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냥 우연? 아니면...도대체 이런걸 누가 알려준 거야?"


이상하리만큼 하나같이 어디서 본 것 같다거나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상한 일에 트레이너는 이제는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뇌에 빠졌다. 그 때 문득 부실 밖에서 들려오는 이질감에 트레이너의 히토미미가 쫑긋거렸다.


"...?"


트레센 외각에 자리잡고 있는 부실이라 분명 조용했어야 할 텐데, 요상하리만큼 주변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조깅같이 운동하려는 사람들이 많겠거니 생각해도 한참이나 소리가 계속되자 결국 트레이너는 궁금증을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뭔 소란이.."


부실을 열고 나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보니 저 멀리 특수트랙 훈련장에 사람들이 몰려있는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학생들과 트레이너가 몰려 특수트랙에서 훈련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문이 퍼진 건지 트레이닝복을 입은 트레센 학생들은 물론이고 신입 트레이너부터 베테랑 트레이너들까지 특수트랙에 찾아와 트레이닝 중이었다.


"어어, 트레이너님 잡아..꺄악!"


"괜찮아?"


"네, 히히."


가장 먼저 본 파쿠르 트랙에서 라인마다 떨어지는 담당들을 트레이너가 껴안아들며 받아내고 있었다. 달리다 못해 걷기보다 느린 수준으로 미숙한 실력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


다른 쪽에서는 평행봉 앞에서 담당의 자세를 잡아주는 트레이너들이 보였다.


"트레이너님! 이렇게 하면 될까요?"


"아니... 조금 더 다리를 기울여야.."


꽤 가까이 밀착해 담당의 자세를 교정해주는 트레이너나 아까 파쿠르 트랙처럼 평행봉 위에서 왕복 셔틀런을 하는 담당이 떨어지는 받아주는 트레이너들을 보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그들 사이를 걸어갔다.


"우리는 아직 이런거 안 해도 된다고!!"


"에이, 그래도 몸 움직이면 좋잖아요. 언제는 땡땡이만 친다고 뭐라하더니."


평소 땡땡이를 자주 치던 학생들마저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걸 보며 한 중간쯤 걸어왔을까, 그제서야 트레이너는 대충 여기에 모인 인원들의 인과를 깨달았다.


"아니, 설마 카렌이 올린 SNS로 이렇게 몰렸다고?!"


다시 한 번 훈련장에서 뛰는 무리들을 자세히 보니 학생들이 억지로 자신의 트레이너를 끌고 온게 분명했다.



풍덩-!


한쪽에서 떨어진 담당을 받아든 트레이너가 불만에 투덜거리는걸 보던 와중 다른쪽에서 커다란 물소리가 들려 비너스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렸다.


"안 됍니da-! 엘, 더는 못 하겠습니da-!"


낯익은 목소리까지 들려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반대편에 자신이 아는 얼굴 여럿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


"어어, 우와아악!!"


풍덩-!


"이이이, 이걸 어어, 어떻게 지지지 지나가라고!"


"테이오씨! 밧줄에서 손을 놓고 가야해요!"


"소소손 놓으면 떨어진...아앗!"


풍덩!


"어어어어, 테이오 선배, 그렇게 흔들어대면, 꺄악!"


풍덩!


많이 들어본 목소리들이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란에 가까이 가보자 자신의 담당들은 물론이고 엘부터 시작해서, 보트카, 테이오나 키타산, 심지어 그 에어샤커나 파인모션 외에도 그녀들의 트레이너 등 알고 있는 얼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방금 전, 쇠사슬에 일렬로 묶여있는 드럼통들을 물에 띄우고 그 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는 균형 밸런싱 트레이닝 코스에서 떨어져 온몸이 쫄딱 젖은 엘과 보드카 테이오가 막 나오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부축하는 트레이너들도 못마땅한 얼굴을 자신의 담당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정말 이게 사람이..아니, 우마무스메 트레이닝으로 적합한 거 맞아?"


"그러니까 말씀 드렸잖아요, 엘 트레이너님. 이거는 충분한 연습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 코스라고요."


"...누가 기어코 가자고, 가자고 끌어당겨서 말이지."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라스의 시선을 애써 자신의 담당으로 돌리는 엘 트레이너는 멋쩍게 대꾸했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흠뻑 젖은 엘은 두 손을 치켜들고 그라스에게 외치고 있었다.


"엘, 인정 못 합니da! 다음은 그라스가 올라가보세yo!"


못 믿겠다는 엘의 말에 편승해 자신들이 먼저 호기심에 도전했다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보드카도 옆에서 같이 소리쳤다.


"맞아! 스칼렛이 이런 걸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어!"


"뭐-라고~?"


발끈한 보드카의 말에 다스카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맨날 단것만 먹어대는 맥퀸이 올라갔다간 바로 가라앉을게 분명하잖아! 허세부린..읍!"


"단것만 먹어대지는 않았사와요!"


흠뻑 젖은 테이오가 삐쭉 내민 입으로 맥퀸을 바라보자 흠칫한 맥퀸이 발끈하면서 부정했다. 그리고 그런 맥퀸을 향해 테이오 트레이너가 자신의 담당에게 담요로 입을 막으면서 고개를 꾸벅였다.


"미안해, 미안해, 내 담당이 또 실언을...아무튼 미안하다!"


억지로 입을 막아 화가난 테이오와 트레이너를 뒤로하고 방금, 보드카가 말한 걸 도저히 듣고만 넘길 수 없는 다스카는 말을 꺼낸 장본인을 톡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한번 보여주겠어! 맥퀸씨, 그라스씨, 가죠! 다이아짱, 가자!"


"어머, 그럴까요?"


"좋아요! 키타짱, 잘 봐!"


그라스와 맥퀸이 같이 찬동하면서 다이아도 활짝 웃으면서 시작위치에 올라섰다.


"잘 보라구!"


"이렇게 하는 거예요."


넷의 내딛은 발이 드럼통에 올라가는 순간, 다른 이들과 달리 드럼통은 흔들림 하나 없이 수면에 일렁이는 파동을 만들어내며 부드럽게 잠겼다. 방금 전 보드카나 엘의 덜덜 떨리는 발과 함께 요동치던 드럼통과는 천지차이였다.


"어?!"


"what?!"


눈앞에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걸 봤다는 듯이 보드카와 엘의 입이 떡 벌어지고 옆에 있던 테이오와 키타산도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셋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보는 시선에도 그녀들은 능숙하게 조금의 떨림도 없이 전부 똑같은 타이밍에 맞춰 다음 드럼통에 발을 옮기면서 슥 눌렀다. 이번에도 똑같이 드럼통은 천천히 내려가며 그녀들의 몸을 지탱했고 다시 떠오르는 순간 위를 거니는 발은 이미 드럼통을 떠나고 없었다.


"아니 무슨 균형감각이..."


"저게 진짜 되는 거였다고?"


기인열전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트레이너들마저 벙찐 얼굴로 비너스 팀원들이 술술 드럼통 장애물을 즈려밟고 가는 걸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안전줄도 잡지 않고 맥퀸과 그라스는 한발, 한발 마치 등교하듯이 다소곳이 두 손을 내리 모으고 발을 내딛었고 다스카와 다이아는 익숙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균형을 잡고 드럼통 징검다리를 건넜다.


"어때? 이제 알겠어?"


마침내 장애물을 다 건넌 다스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드카에게 씩 웃으면서 말하자 보드카는 더듬거리는 입을 열면서 장애물 트랙과 다스카를 번갈아보았다.


"하, 하지만, 하지만...어떻게 한 거야?"


그녀의 대답은 뒤에서 다가온 그라스가 대신 답해주었다.


"물체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죠. 그걸 거스르거나 억지로 제어하려하면 할수록 더 흔들리게 되요. 통제하려 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 이걸로 몸의 완벽한 균형 밸런스를 깨우칠 수 있답니다."


"제어..? 통제..?"


그라스가 말한 걸 이해 못한 테이오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기울이자 맥퀸이 미소 지으면서 한마디 덧붙여줬다.


"흔들림이 두려워 밧줄에 의지하려 하면 균형이 다 흐트러지니까, 몸의 밸런스를 먼저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균형..? 어떻게..?"


눈앞에서 보고도 설명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지 테이오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광경을 비너스 트레이너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때, 다이아가 그를 알아채고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아! 트레이너님!!"


"어..다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다이아 덕에 순식간에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뭘하고 있는 건지 물어보자 그라스가 먼저 대답했다.


"오늘 특수트랙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어쩌다가 저희가 평소 하던 트레이닝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선배, 애들에게 도대체 뭘 시키고 다닌 거야?"


키타산 트레이너도 덧붙자 옆에 있던 다른 트레이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아니, 난 그냥 트레이닝을...것보다 지금껏 애들 트레이닝 할 때는 아무도 거들떠도 안보더니, 설마 SNS하나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렸어?"


"SNS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맥퀸이나 그라스에 말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카렌이 올린 특수트랙 훈련 브이로그!"


SNS에서 카렌이 파쿠르 트랙을 돌면서 트레이너와 꽁냥거리는 영상을 올렸으니 그걸보고 사람들이 몰린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옆에서 다스카(장본인)는 시치미를 떼며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렌짱이 올린 SNS는 잘 모르겠는데, 누가 우리가 훈련하는 걸 촬영한 영상 말하는 거면 그게 원인일껄? 여기 보드카도 그거 보고 왔거든."


"저도 그 영상 봤습니da!"


"나도 맥퀸이 여기서 하는 거 보고 왔어!"


"앗, 저도 오빠랑 같이.."


보드카도, 엘도, 테이오도, 키타산도 똑같이 증언하자 그래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트레이너는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트랙을 가리켰다.


"그렇다고 이렇게나 몰려?"


"글쎄요? 유행이라는게 원래 잘 모르는 거잖아요. 저쪽 보실래요? 마침 브라이언 선배님께서 자율 트레이닝 중이셨거든요. 학생회 부회장님뿐만 아니라 루돌프 회장님도 방문하셔서 관심사가 쏠린 것일지도 모르고요."


트레이너의 말에 이번엔 그라스가 손가락을 들어올려 다른 쪽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브라이언이 막 파쿠르 트랙의 중반지점을 뛰어다니고 있었고 밑에서 루돌프가 자신의 트레이너와 같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에어그루브는 어깨를 떨구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그녀들 근처에 눈을 반짝거리는 파인모션이 자신의 트레이너와 SP대장과 함께 서있었다. 그걸 본 비너스 트레이너가 뭐라 미처 말하기도 전에 다스카가 몸을 풀더니 방긋 웃으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마침 잘됐다. 다이아, 몸이 근질거리는데 오랜만에 파쿠르 트랙 병주 뛰러갈래?"


"좋아요!"


"저도 같이 하겠사와요~!"


우르르 파쿠르 트랙에 몰려가니 마침 브라이언의 완주가 끝났고, 브라이언은 다스카의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네, 도대체 담당들에게 무슨 훈련을 시킨 건가?"


지금까지 브라이언의 트레이닝을 지켜보던 루돌프 트레이너가 방금 전 키타산 트레이너가 말한 것과 똑같이 속삭이자 비너스 트레이너는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트레이닝 한 것뿐인데요..독특한 트레이닝은 굳이 이런 것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다들 이런 반응이죠?"


"지금 저걸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루돌프 트레이너가 가리킨 곳에는 이제 막 비너스 팀원들이 다른 학생들에 끼어 파쿠르 트랙 병주를 시작하고 있었다. 높다란 벽을 척척 뛰어 넘어간다던지, 슬라이딩으로 장애물을 피해가거나 몸을 퉁겨 올리면서 순식간에 장애물을 주파해 나갔고, 심지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모습에 밑에 구경하던 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이아짱, 발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 같아!"


"우와아아!! 멋지잖아!! 엄-청 멋지다고!! 트레이너!! 나도 저거 할 수 있어?!"


꼭 주먹을 쥐고 감탄하는 키타산이나 옆에 있는 자신의 트레이너를 손바닥으로 파닥거리며 두들기는 보드카는 흥분에 휩싸여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의욕이 과해서 다칠 것 같으니까 넌 금지야."


"아, 왜!"


멋짐을 추구하는 보드카에게 있어서 그 말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던 테이오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트.."


"너도 금지다. 테이오."


"엥! 나는 왜!"


하지만 순간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테이오 트레이너에게서 나온 말은 금지선언이었다.


"너, 3관도 진짜 아슬아슬했던 거 알지? 다리 관리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장애물 뛰다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떡하려고! 암튼 안 돼!"


"에에-! 말도 안 돼!"


"정 뛰고 싶으면 적어도 다리부터 완전하게 튼튼해지고서 와!"


못마땅한 표정으로 뺨을 잔뜩 부풀리면서 보드카와 똑같이 방방 뛰는 테이오 옆에는 루돌프와 에어그루브가 유심히 달리는 비너스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한두 차례 해본 게 아니야. 호흡마저 안정화 되어있군. 도대체 얼마나 연습해야지 저런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지?"


"회장님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 트랙을 이용한 트레이닝의 의의는 반사신경과 동체시력 향상에 있을 텐데요. 회장님 정도라면 가뿐하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고 반응은 할 수 있어도 몸이 따라가지 못 할 거야. 수없이도 연습해온 브라이언과 달리 난 이런 건 처음이다. 할 수는 있어도 저런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 과연..!"


다른 쪽에서는 루돌프와 에어그루브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 속닥이고 있었다. 못 한다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과거 트레이닝을 피하던 브라이언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더니, 아직 더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신한 루돌프의 가슴속에서 호승심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엘이 마스크 넘어 반짝이는 눈빛을 저 멀리 구름다리 장애물을 훌쩍훌쩍 잡으면서 몸을 날리는 그라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라스, 무슨 마치 원숭이..읍읍!"


다만 옆에서 엘의 말에 뜨끔한 엘 트레이너가 재빨리 그라스와 담당을 번갈아 보다가 엘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야! 너 그 말 그라스 앞에서 했다간 진짜 큰일나니까 절대로 말하지 마라."


"으읍!"


"아악! 그렇다고 손은 왜 물어재끼는 거야!"


오늘도 정신없는 광경의 뒷편, 비너스 트레이너 옆에서 흥미로운 얼굴로 트랙을 보던 파인모션 트레이너는 슬쩍, 친구의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고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뭔 애들을 특수부대원으로 만들어놨냐?"


"적어도 쌈박질은 안 가르쳤다고.."


재미난 걸 발견해 씨익 올라가는 미소에 트레이너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던 파인모션 트레이너는 이번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담당이자 동생 옆에 있던 SP대장을 바라보았다.


"대장, 너도 함 뛰고 와봐."


"제가요?"


갑자기 자신을 가리킨 상관의 말에 SP대장의 눈이 선글라스 너머 보일정도로 휘둥그래 졌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대장도 오빠한테 훈련받은 적 있다고 했었지! 그럼 대장도 저거 할 수 있는 거야? 그런거야?! 보여줘! 보여줘보여줘!"


임무를 위해 옆자리를 지켜야 하건만, 대놓고 옆에서 말을 꺼냈으니 파인모션이 기대감이 넘치는 얼굴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왔다.


"하아...알겠습니다."


거절할게 분명하니 파인모션을 이용하는 왕자를 짜증나는 표정으로 바라본 SP대장은 이어피스에 무전을 날리고 정장을 벗어 내려놓았다.


"실례지만 한번만 같이 뛰려고 합니다. 괜찮습니까?"


그리고 다음 한 바퀴를 준비하는 비너스 팀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병주를 부탁했다. 비너스 팀원들도 처음에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자신만만한 대장의 표정에 질수 없다며 수락했고 다시 두 번째 파쿠르 병주가 시작됐다.


"오...꽤 하잖아?"


"누가 가르쳤는데."


파쿠르를 하는 비너스 팀원들의 실력도 월등했지만 역시 현역으로 군에 재직중인 SP대장의 실력을 따라가긴 힘들 것이라 자부하던 파인모션 트레이너였지만 아슬아슬하게 따라붙기 시작하자 박수를 치자 트레이너는 조금 자신감이 생긴 목소리로 가면을 슥슥 긁었다.


"저...비너스 트레이너님?"


"응?"


그렇게 담당들과 SP대장의 병주를 보던 와중 트레이너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중등부 정도 되어 보이는 모브 우마무스메가 얼굴을 붉힌 채 서있었다.


"부탁드릴게 있는데요...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떤 부탁에 따라 갈리겠지만 일단 들어볼게. 무슨 일이니?"


우선 들어보겠다는 트레이너의 말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꼼지락 거리면서 수줍게 말을 꺼냈다.


"저...저도 특수트랙 훈련을 하고 싶은데 자세라던지, 요령을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야.."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생각한 트레이너는 그녀에게 조언을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입을 열자마자 뒤에 들려온 목소리에 말은 바로 끊기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응? 브라이언?"


브라이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병주를 끝낸 브라이언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벌써 병주를 마치고 왔을 줄은 몰랐기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직도 거칠게 몰아쉬는 브라이언의 땀을 닦아주었다.


"뭐야, 벌서 끝났어?? 아까까지만 해도 분병 SP대장하고 같이.."


저 멀리 뒤를 힐끗 보니 막 골인 지점에 들어온 비너스 팀원들이 우루루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고 SP대장은 조금 넋이 나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브라이언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을 꺼냈다.


"끝났다. 아무튼 병주가 끝나서 우리는 트레이너에게 피드백을 받아야하니까, 실례하겠다."


"아...그렇죠..."


아쉬워하는 학생의 말투에 그래도 도와 달라 했으니 트레이너는 브라이언이 자신의 손목을 잡아끄는 와중에도 간단한 조언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없으니 우선 간단하게라도.."


"빨리 와라!"


"으왓?! 갑자기 왜 그래?"


하지만 갑자기 자신의 손을 휙 잡아끈 브라이언에 말을 꺼내기는커녕 넘어질 뻔해 휘청거려 의문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보내도 돌아온 건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서둘러라."


"??"


영문을 모르겠는 브라이언에 태도에 가까이 다가온 다른 담당들에게 하소연 해봤지만 담당들의 태도도 어딘가 수상했다.


"트레이너님! 병주 중인데 한눈을 파시면 어떡하와요?!"


"한눈 안 팔았어!! 잠깐.."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거 잘 알잖아! 믿을 수 없어! 우리 트레이너라면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발끈하는 맥퀸이나 다스카에 얘들이 갑자기 왜이래 싶던 그때 누군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 트레이너의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칫,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얘들아, 나 알잖아. 너희들에 트레이닝에 한눈을 팔 리가 없다는 거..믿어줘..."


담당들에 반응이 계속되자 자신도 모르게 불신을 심어준 걸까 트레이너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이아가 트레이너의 팔을 잡아끌면서 방긋 웃는 미소로 우선 그를 안심시켰다.


"에잉~ 알죠~ 저희는 트레이너님 믿고 있다고요~"


"그..치?"


다이아의 미소에 조금은 안심되는 트레이너였지만 그 이후로도 석연치 않은 점은 점점 불어만 갔다.


"실례합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여기 앉아도 될 까요~?"


다음 날, 카페테리아에서 홀로 식사를 하던 도중 맞은편에 발랄한 우마무스메가 싱긋 웃으면서 합석을 부탁했다. 주변에 자리가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으니 승낙을 하려던 그때, 같이 앉으려던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긴 제 자리와요?"


"힛?"


언제 다가온 건지 맥퀸이 차가운 미소와 함께 식판을 들고 서있었다.


"어? 맥퀸, 아까 친구들하고 나중에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


"다들 트레이너님들이 불러서 파토났어요~"


식당에 오기 전 다른 친구들하고 먼저 먹는다고 말했던 맥퀸이 지금 여기서 나타났지만 납득되는 말에 트레이너는 다시 식은 땀?을 흘리는 우마무스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구나. 음, 아무래도 다른 자리에 앉아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해."


"아, 네, 네에. 실례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하는 우마무스메를 맥퀸은 잠시 동안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 찾았다."


"? 읏..!"


복도를 거닐던 도중 반대쪽에서 사나운 인상의 우마무스메 학생이 이쪽을 보더니 대뜸 벽으로 밀쳤다.


"너, 이야기는 들었어. 팀 비너스의 트레이너라지?"


"...그렇긴 한데 지금 무슨 짓이지?"


우선 어떻게 나올까 한번 지켜보기로 하고 모브 우마무스메가 원하는 대로 벽에 몰려주자 순순히 그녀는 원하는 걸 그대로 털어놨다.


"날 네 팀에 넣어. 네가 가르쳐주면 나도 중상에 도전할 수 있을 테니까."


"미안한데 아직 새로운 팀원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그리고 이런 식의 대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뚜렷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모브 우마무스메는 도발적인 미소와 혀로 낼름 입술을 핥으며 트레이너의 몸에 손을 올렸다.


"상관없어. 널 내 걸로 만들면 되니까."


전형적인 협박식 스카우트. 나름 위협을 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미 과거에 미노루 때 이런 건 수없이도 겪어온 트레이너에게 있어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방법대로 그녀를 물리치려던 그때..


"지금 제 트레이너님에게 무슨 짓이죠?"


한없이 차갑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와 옆을 바라보니 그라스가 이마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있었다. 별거 아니라며 그라스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날이 잔뜩 서려있었다.


"이미 담당을 맡고 있는 트레이너님에게, 그것도 바로 제 면전 앞에서 스카웃 제의라니. 이거 싸우자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요?"


"아, 아니..그런 의미는...윽...쯧!"


가늘게 뜬 눈이 웃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오라가 피어오르자 모브 우마무스메스는 주춤거리더니 한번 혀를 차고는 도망치듯이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그라스가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를 한동안 지그시 응시하는 동안 트레이너는 옷깃을 털었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트레이너님 주위로 날아드..다가와서 해를 끼치게 놔두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참, 트레이너님. 다음 수업이 있어서 그런데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같이? 혹시 학급 선생님이 부르시는 거니?"


설마 담당 트레이너 호출인걸까 싶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뇨...함께 가주실수 없으신가요?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


방금 전의 오싹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면서도 와락 품에 안기는 그라스의 부탁을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고 같이 교실로 걸어갔다. 다만 그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슬쩍 팔짱을 끼며 다른 주위 학급생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그라스의 눈빛을...


이 밖에도 늘 어딜가나 담당들은 트레이너 뒤를 따라다니거나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다이아..? 아까부터 왜 그래..?"


"크르릉..."


아예 다이아는 팀원들이 트레이닝 중일 때 트레이너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주위로 다가오는 학생들을 심하게 경계하고 다녔다.


"다이아, 난 괜찮다니까. 가서 같이 트레이닝 하고 와도 돼."


"아뇨! 전 선배님들 대신 트레이너님을 지켜야 하니까요! 저는 모두가 돌아오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요!"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다이아는 콧김까지 내뿜어가면서 트레이너에게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지킨다고..? 아니, 지킬게 뭐가 있다고..알았어. 그럼 여기서 스트레칭이라도 해보자. 그건 괜찮지?"


"그건 물론이죠! 히히~"


겨우 둘이서 같이 할 수 있는 트레이닝으로 달래자 다이아의 얼굴이 풀어졌지만 트레이너는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 가까운 곳에 아는 얼굴이 있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다이아네 메이드님!"


비록 사토노의 VR홍보는 끝나긴 했지만 홍보 외에 트레이닝 자문을 위해 트레센에 남아있던 메이드장..아니, 다이아의 메이드로 강등된 그녀가 아직 담당 트레이너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 교관을 맡아 트레이닝을 봐주고 있었다.


"네? 앗..저, 저저 하, 할일이 있어서, 죄, 죄죄, 죄송합니다아!!"


하지만 메이드는 트레이너를 보더니 대뜸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순식간에 도망쳤다.


"엥?! 교관님 어디가요?!"


"그, 급한 일이 생겨서요! 일러준 대로 하면 되니까 잘 하고 계세요!"


트레이닝을 받던 모브 우마무스메들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금세 평정을 찾고 다시 자율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당황한건 트레이너뿐이었다.


"어? 어디가세요?!"


다이아와의 친분도 있고 나름 실력도 있으니 적어도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처럼 트레센을 지키기 위해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언제나 메이드는 트레이너의 가면을 보기만 해도 늘 이런 식으로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때 다이아가 내린 근신처분이라던지, 아니면 나랑 접촉 금지가 아직까지도 있는 건가?'


솔직히 메이드 말고도 다이아의 경호원 요르카가 마주칠 때마다 무슨 짐승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과 다이아의 관계가 모조리 들통이 나버렸는데...


"아, 트레이너님! 한눈팔지 말라니까요!! 트레이닝 중이잖아요!"


"어? 아, 아냐! 자, 다음은 이렇게..."


그 외에도 조금이라도 메이드에게 다가가려하면 다이아의 눈썹이 날카롭게 세워지니 우선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라며 트레이너는 다이아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그것 말고도 께름칙한 느낌은 계속 되었다.


"998..999...1000..응?"


심야시간, 인적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트레센 체력단련실에서 면티만 걸치고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을 때였다. 종종 트레센을 지키는 입장으로서 무력을 써야할 때가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몸 관리에 있어서 절대로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낮에 트레이닝을 할 수 없으니 학원 수위에게 미리 말해두고 가끔 타즈나와 체력을 단련했다.


"하아, 또 왔나."


하지만 타즈나가 없는 날이면 늦은 심야시간마다 체력단련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곤 했다. 실내를 훔쳐보는 느낌이라던지, 조금 들뜬 것 같은 말소리나 또 어느 날은 찰칵거리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나가보면 밖에는 아무도 없으니, 안 그래도 가뜩이나 경계심이 피어오르는데 혼자 있는 날마다 이러니 슬슬 체력단련하는 장소를 바꿀까, 아니면 디지털네에게 의뢰할까 고민하던 와중 트레이너의 귀에 제대로 된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당장....두 번 다시...사감에게..."


"!!"


이번엔 확실히 있다! 학생이라면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만약 학생이 아니라면 제대로 여길 찾아오는 이유를 캐물어내겠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너는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체단실을 나갔다. 그러나 이미 늦었나, 밖에는 이미 도망쳤는지 아무도 없었다.


"쯧, 이번에도 놓쳤나...! 거기 누구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모퉁이에 꺾인 부분에 인기척이 느껴진 트레이너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어둠을 향해 목소리를 날렸다. 그리고 쭈뼛거리면서 모습을 나타낸 건...


"스칼렛?!"


"헤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하는 이모티콘이 가면에 그려지자 다스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트레이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설마 매일 밤마다 네가 온 거였어?"


"아, 아니 그런건 아니구...잠이 안와서 사감님께 말씀드리고 그냥 야밤에 산책 중이었거든. 그러다 어쩌다 여길 보게 됐는데, 열심히 하는구나...싶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는 다스카의 모습에 트레이너도 경계심을 풀고 늘 하던 대로 다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런가...오늘은 아닌가보구나."


"오늘? 잠깐만, 아까 매일 밤이라는 말도 그렇고 설마 항상 여기서 트레이닝한 거야?"


"그렇지..? 왜?"


"아, 아니야. 헤헤... 그럼, 같이 기숙사 데려다줘!"


밤도 늦었으니 이만 오늘 운동은 여기서 마치고 다스카를 기숙사에 대려다 주는 트레이너는 옆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는 걸 듣지 못했다. '이것들이 매일 밤마다 왔다고?'라며 중얼거리며 손톱을 씹는 다스카를...




그렇게 며칠 뒤.

"..."


이제는 익숙하다면 익숙해진 트레센 근처 구교사 건물에 모인 5명의 우마무스메들이 [ 트레이너 보호대책 위원회 ] 라고 쓰여있는 현수막(그라스 작품) 아래 모여 있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된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무도 말없이 그저 조용히 둘러앉아만 있었다. 그러던 와중 먼저 입을 땐 건 다스카, 다이와 스칼렛 이었다.


"어째서..."


그중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는 다스카의 손에 올려져 있는 티타임용 찻잔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다스카의 외침에 덩달아 같이 출렁거렸다.


"왜 이렇게 된건데!"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말에 동의하는 듯 다른 회의 참석자의 표정 모두 어둡기만 했다. 감사제에서의 트레이너의 평판 올리기 작전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보면서 경멸하는 표정이나 수근거리는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고, 남아있는 괴롭힘이나 부정적인 기사도 깨끗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때문에 처음, 감사제가 끝난 직후에 담당들은 모두 크게 만족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 걸 예상한 게 아니었는데...!"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브라이언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 파인모션의 경호원이 강하긴 해도 못이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음? 으음?! ]


그날, 트레이너의 앞에서 파쿠르를 뛰던 브라이언은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별로 면식도 없는 중등부 한 우마무스메가 감히 자신의 트레이너 앞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꼬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본 순간 온몸의 피가 끓어올라 순식간에 파쿠르 트랙을 완주해버린 브라이언은 그대로 트레이너에게 몸을 날렸다. 뒤따르던 다른 팀원들도 그녀의 목적을 눈치 채고 트랙이 끝나자마자 트레이너에게서 여우?를 떼어놓기 위해 우르르 내려갔다.


[ ...? ]


홀로 남겨진 SP대장이 순간적으로 믿지 못할 피지컬을 보인 팀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도 그녀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트레이너에게 달려갔다. 안 그래도 트레이너의 옆자리는 만석인데 더 이상의 경쟁자가 생겨나는 건 모두 절대로 싫었다.


"오늘은 5명이나 트레이너님에게 찝쩍댔어요! 가면 갈수록 늘기만 하지, 줄어들 생각이 없는데 이거 어떻게 해요?!"


하루종일 트레이너 곁에 붙어있었는데도 대놓고 그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하거나 들이대는 학생들에게 분노한 다이아가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상기하며 귀를 바들바들 떨었다. 눈치 빠르게 트레이너의 곁을 지켰지만 옆에 담당이 있음에도 아직 트레이너가 없는 학생들이 담당계약을 하기 위해 트레이너에게 은근히 대쉬하거나 주변에 서성거리는 꼴은 상당히 짜증나는 광경이었다.


"5명뿐인가요? 당장 어젯밤에 부실 근처에서 기웃거리거나 오늘 아침만 해도 트레이너님의 뒤를 밟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말이죠."


옆에서 한마디 하는 그라스도 평소와 같이 사근거리는 미소였지만 목소리의 온도는 한없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다이아가 경계를 하면서 다가오지도 못하게 막고 있으니 이제는 아예 트레이너가 혼자 있는 틈을 노려 감히 협박을 해대며 스카우트를 하려 하거나,


"게다가 이것들이 경고를 그렇게 해줬는데도 계속 들이대고 있다고요!! 이제는 밤마다 트레이너가 운동하는 걸 몰래 찍어 가는데, 이거 진짜 어떻게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밤에 트레이너가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도촬하고, 비너스 부실 근처를 기웃거리는 무리들을 수차례 적발해 내쫓은 다스카 역시 이를 갈면서 주먹 쥔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트레이너를 위해 그의 악소문을 해결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효과가 너무 과했다. 트레이너의 가치를 깨달은 학생들이 점점 꼬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몰래 그의 몸을 훔쳐보고 혼자일 때를 노리는 학생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곤란하네요...이러다 트레이너님의 약점을 알게 되면 큰일인데요."


난감한 표정의 타즈나 역시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의 성격상 도움을 구하는 학생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내버려둘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일이 터지기 전에 이렇게 모두를 모아 다시 위원회을 열게 되었다.


"타즈나씨는 전에 이런 일 없었나요?"


"물론 저도 연승을 하게 되면서 다른 학생들이 트레이너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었죠."


혹여 좋은 방법이 없을까 물어본 다스카의 말에 타즈나는 옛 일을 떠올리며 입가에 손을 올렸다.


"그때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트레이너님이나 제 룸메이트가 상대해주기는 했는데...아, 확실한 게 하나 있었네요."


"! 그게 뭐지요?"


해결책이 있었다는 말에 맥퀸도, 다이아도, 브라이언도, 물어본 다스카도 귀를 쫑긋 세우며 타즈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에 타즈나는 싱긋 웃으면서 당당하게 대답을 꺼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실력으로 닥치게 만들어줬죠."


전에, 잇세이가 자신과 트레이너에게 꼬이는 학생들을 물리치면서 내뱉었던 말을 그대로 따온 타즈나의 말에 모두들 생각에 잠겼다.


"실력으로 말이죠..."


"그렇군, 루돌프 녀석처럼 감히 쉽게 접할 수 없게 만드는 건가."


고민하는 그라스와 방향성을 잡은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거리면 타즈나의 조언을 지금 상황에 맞게 짜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들 또 다시 생겨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문득 의아한 점을 발견한 타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데 맥퀸양은 어디있나요?"


"아- 맥퀸씨는 지금 본가에 가있어요. 가문에서 불렀다고..? 하시던데요. 어제 급하게 내려가게 됐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뜨끔!


다스카의 대답에 순간 다이아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런 다이아를 못 본 그라스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가문의 호출이라니...급하게 간 거라면 상당히 중요한 일이겠죠? 무슨 일로 부른 걸까요?"


"그, 글쎄요오..?"


상당히 찔리는 것이 있는 듯 다이아의 귀가 꼬리가 어깨와 덩달아 치솟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해 다이아는 대충 얼버무리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참, 자리를 비우는 것 하니까 생각난 건데, 저 며칠 뒤에 팀 카노푸스의 탄호이저양과 같이 근처 식당에 약속 잡아서 저녁에 늦게 들어오게 됐어요."


"탄호이저씨가요? 무슨 일인가요?"


"전에 탄호이저양에게 신세진 게 있어서요. 마침 감사제 때 얻었던 식당 쿠폰도 써야하고, 사실 트레이너님과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여러분하고도 같이 가고 싶으니 다음에 다같이 가죠."


싱긋 웃으면서 팀원들과 대화하는 그라스에게 뒤돌은 다이아는 아무도 모르게 두 손을 모르고 기도하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해요, 맥퀸 선배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다이아가 자신의 불똥이 맥퀸에게 튀고 있다는 걸 예상하고 있던 그 시각, 메지로 본가.


"...."


가문의 업무실에서 메지로가의 당주, 메지로 아사마의 옆에서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메지로가의 메이드장이 무언가를 낭독중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니 사토노에서는 이 일로 다시 한번 추후 자세한 의논을 바라는 바이며, 마지막으로 본 귀하의 자녀 교육에 참고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다 읽어갈 즈음 목소리가 점점 떨려가는 메이드장 옆에서 아사마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고, 그 앞 죄인처럼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메지로 맥퀸이 꾹 다문 입과 함께 잔뜩 새하얘진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00b8da2ff7dd788b6d8ec3b013df6475287b538bc89e3656f400d812f7c5804118f481fe73aeef4ea8

잔뜩 겁을 먹은 맥퀸에게 사토노가의 서신을 다 읽은 메이드장의 분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맥퀸 아..가..씨이이이...?!"


"죄, 죄송해요오!"


점점 톤이 높아지는 맥퀸을 지금껏 키워온 메이드장의 목소리에 맥퀸은 귀를 한껏 낮추고 몸을 움츠린 상태로 고개를 꾸벅이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외쳤다.


"이런 망신이 어디 있어요! 다른 데도 아니고 사토노가에서 아가씨의 이런 치부를 전하게 되다니!! 설마 저번 꼬리관리도 트레이너님을 유혹하려고 그런 건가요?! 메지로가의 영애로서 어찌 이런 파렴치한..!"


"아, 아니에요! 그건 그냥.."


"조용히 하세요!"


"히잉..."


아사마 대신 잔뜩 화를 내며 훈계하는 메이드장의 노호에 맥퀸의 어깨는 점점 쭈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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