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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핫산) 극장판 특전 RTTT 후일담 번역해옴

백정셰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5 20:44:09
조회 1318 추천 23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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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별은 돈다 AFTER "ROAD TO THE TOP"





그 날, 한신 레이스장엔 비가 내렸다.




귀가 먹먹해지는 환성 속에서, 11명의 우마무스메가 일제히 마지막 직선으로 밀어닥친다.

타카라즈카 기념, 잔디 2200미터.

양마장 판정이었던 터프는 무겁게 잠기고, 있는 힘껏 달리는 우마무스메들의 귀와 꼬리에서 빗방울이 튀어 공중에 흩날린다.

『래피드 빌더 선두, 래피드 선두, 밖에서 티엠, 밖에서 티엠ㅡ!』

뭉쳐버린 마군을 크게 우회하여 티엠 오페라 오가 단숨에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 바로 옆에 바짝 따라붙은 건, 밤색의 긴 머리를 나부끼는, 파란 세일러 재킷의 우마무스메ㅡ

그래스 원더. 최강의 '황금세대'의 일원으로, 몇 번이고 부상을 극복하여 그랑프리 3연패의 위업을 이뤄냈다. 작년 말 아리마 기념에서도 전력으로 도전한 오페라오를 제치고 승리를 거머쥔 바 있다.

그런 그녀가, 하지만, 오늘은.

『그래스 원더 역시 닿지 못한다, 그래스 원더 힘들다, 안 닿는다 안 닿는다...!』

이를 악물고 파란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면서도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그 모습이, 천천히 뒤로 밀려난다.

그 기척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오페라오는 그저 정면만을 바라봤다.

몰아치는 비가, 얼굴에서 뺨으로 흘러내린다.

"그 어떤 때라도, 그 어떤 상대라도... 패왕의 길은 단 하나뿐...!!"

크게 뜨인 두 눈에 새빨간 빛이 타오른다.

쿵 하고 땅을 박차는 그 등에서, 비에 젖어 무겁게 처져있던 망토가 소리를 내며 바람을 머금었다.

넘치는 투기를 전신에 두르고, '패왕'이 직선을 달려나간다.

장내가 크게 술렁였다.

『티엠 오페라 오가 여기서 선두로 나왔다! 그리고 메이쇼 도토인가!? 메이쇼 도토가 왔다!』

최종직선에서의 치열한 공방을 이겨낸 오페라오를 뒤쫓는, 또 한 명의 모습.

한 떨기만 새하얀 앞머리가 빗물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채ㅡ 그 아래에서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에는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승리를 향한 집념이 서려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반드시, 따라잡겠어요! 오페라오 씨...!!"

메이쇼 도토가, 오페라오의 옆에 섰다.

클래식 시대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던 동기의, 몰라보게 변한 그 달리기에, 오페라오의 입가가 한 순간 기쁜 듯이 풀렸다.

"따라와보게나, 도토!!"

오페라오가 더욱 가속한다.

질 수 없다고 고개를 들고, 도토가 추격한다.

젖은 잔디를 박차며, 앞으로, 더욱 앞으로. 두 사람이 앞을 다투며 골에 가까워지고ㅡ

『티엠 오페라 오가 1착! 2착은 메이쇼 도토! 2착 메이쇼 도토입니다!』

선두로 골을 빠져나간 오페라오, 그 오페라오에게 목 차이까지 육박한 도토의 모습에, 관객석에서 폭풍 같은 환성이 쏟아진다.

머리카락과 망토를 크게 털어 빗물을 튕겨낸 오페라오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I AM NUMBER ONE이라고 말하는 듯한 티엠 오페라 오! '방패'의 무대에 이어 그랑프리 무대에서도 드높이 이름을 떨치는 건 오페라오입니다!』

차가운 비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환성은 멈출 기미가 없다.

쏟아지는 축복의 목소리를 등지고, 오페라오는 뒤를 돌아본다.

아직 숨을 가다듬지 못한 도토는 떨리는 손을 굳게 쥐고,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세대의 일익 그래스 원더를 물리치고, 패왕의 시대 도래를 선언한 티엠 오페라 오! 드디어 4연승, 올해는 아직 단 한번의 패배도 없습니다! 이 기세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ㅡ그래, 바로 그거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이니.






장마가 지나간 푸른 하늘이, 트레센 학원의 위에 펼쳐져 있다.

밝은 햇빛 아래 녹색이 짙어진 운동장을 어드마이어 베가는 달리고 있었다.

체조복의 등 뒤로 모아 묶은 갈색 머리카락이 풀 냄새를 머금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린다.

'기분 좋네. 한동안 줄곧 실내 트레이닝 뿐이었으니까ㅡ'

계절 탓이라곤 해도 계속 비만 오는 나날은 숨이 막혔다. 오늘은 실컷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느낌 좋아요, 아야베 씨! 페이스 유지하세요!"

밝은 황갈색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는 나리타 탑 로드가 코스 종점에서 크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시선을 향하고, 아야베의 입가가 작게 미소지었다.

경쾌하게 땅을 차는 다리는 아야베의 몸을 원하는 대로 앞으로 옮긴다. 작년의 가을 시즌 그녀를 괴롭히던 왼쪽 다리의 통증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주보다 타임 좋아졌어요! 역시나네요!"

꼭 쥔 스톱워치를 들어올리며 자기 일처럼 탑로드가 웃는다. 잠깐 다리를 멈추고 땀을 훔치는 아야베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훅 다가왔다.

"다음은 저랑 병주해요! 아야베 씨, 괜찮죠!?"

"괜찮은데... 너무 가까워, 거리."

쑥스러움을 감추듯 고개를 돌리며 물러서는 아야베의 반응에, 탑로드가 서둘러 사과하며 목을 움츠린다.

이 퍼스널 스페이스가 영 비좁은 친구가, 쭉 스스로에게 고독을 강요하던 아야베에겐 아직 약간 낯선 것이었다.



작년 클래식을 함께 달려나간 아야베와 탑로드.

왼쪽 다리에 부상을 품어, 킷카상에서 그 기록에 마침표를 찍을 각오를 하던 아야베의 길은, 뜨거운 마음과 자그마한 기적에 의해 이어지게 되었다.

단지ㅡ 아무리 그래도, 바로 다음 시즌 시작부터 레이스에 출주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야베는 이번 분기는 휴양, 재활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시니어급이 되어 새로운 싸움에 도전하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재활에 힘쓰는 나날.

하지만 그것은 예전처럼 고독하지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날이 갠 이 날도, 탑로드 쪽에서 먼저 다가와 서포트를 자처한 것이다.



"아야베 씨, 컨디션 엄청 좋아졌네요. 스피드도 스태미너도 예전에 비해 떨어지지 않고... 다리는 괜찮아요?"

"응. 딱히 이상한 느낌은 없어."

왼쪽 다리를 만지며 확인하는 아야베에게, 탑로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짓는다.

몇 번의 병주를 끝내고, 두 사람은 코스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이지만 7월을 앞둔 잔디밭은 후끈해서, 차가운 스포츠 음료가 목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방금 달리기도 괜찮았고, 작년 이맘때 정도가진 회복한 거 아닐까요?"

"...하지만, '작년의' 나와 비슷한 수준 가지곤 '지금의' 모두 상대론 안 통하잖아."

별 생각 없이 흘린 속내에 탑로드의 귀가 움찔했다.

페트병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밝은 황갈색 머리가 천천히 수그려졌다.

"그렇...죠. 지금의 오페라오쨩이나 도토쨩에겐, 지금 상태로는..."

"굉장했지. 타카라즈카 기념."

아야베는 잔디에 손을 짚고 하늘을 쳐다봤다.

너무나도 새파란 하늘 위에, 눈이 아플 정도로 새하얀 구름이 혼자 내던져진 것처럼 떠 있었다.



그래스 원더에 스페셜 위크, 엘 콘도르 파사ㅡ '황금세대'라 불리는, 1년 위 세대의 활약은, 아야베 세대도 잘 알고 있었다.

동경이기도 하고, 목표기도 했던 그 일익을 오페라오가 거기서 깨뜨렸다. 도토도 2착이었지만, 그래스 원더보다 선착하여 세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페라오는 올해 들어 출주한 모든 레이스에서 이기고 있다. 도토도 이쯤하여 단숨에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간에선 그녀들을 이렇게 표현하는 중이다.

『각성했다』고ㅡ

"저도... 도토쨩과 오페라오쨩에게 질 수 없다고...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노력하고는 있지만요... 결과가."

중얼중얼, 탑로드가 말한다.

고개를 숙인 옆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와 아야베는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채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넓은 초록색 여기저기에 흩어진 우마무스메들이 각자의 달리기를 연마하고 있다.

"이대로는, 저... 응원해주는 분들의 기대에 부응도 못 해주는 것 같아서..."

오페라오와는 대조적으로, 올해 탑로드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출주한 레이스 전부에서 오페라오에게 선착을 허락하고 만 것이다.



달리기 위한 무대에, 아직 오르지 못한 아야베와,

달려도 닿지 못하는 탑로드.



가슴속에 응어리진 숨을 깊게 토해낸 뒤, 아야베는 일어섰다.

무릎을 끌어안은 탑로드가, 의문스럽다는 듯 올려다본다.

"아야베 씨?"

"슬슬 트레이닝으로 돌아가자."

음료수 병을 잔디 위에 내버려둔 채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편 뒤, 아야베는 다시 코스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스타트하여, 점차 속도를 올린다.

다리를 움직일 수록 고동이 빨라진다.

흘러가는 바람에, 호흡을 잇는다.

답답했던 사고가 풀리고 시야에는 초록색 경치만이 가득 펼쳐진다.

'나한테 있는 거라곤... 달리는 것 뿐.'

눈앞에 놓인 길의 길이를 생각하며 멈춰서버릴 것 같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광경이 있다.

아야베에게 찾아오려던 운명을 대신 가지고 떠나간 '그 아이'의 미소.

아야베 자신의 달리기를 계속해달라고 '그 아이'는 바랐다.

'괜찮아. 이제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을게.'

'그 아이'가 곁에 없더라도.

앞서간 라이벌들보다 얼마나 뒤처지더라도.

아야베는 아야베의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달리는 아야베의 옆으로, 편자 소리가 다가오듯이 가까워졌다.

큰 보폭으로, 마치 뛰어오르는 것 같은 달리기. 그 힘찬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밝은 황갈색 머리를 나부끼며, 탑로드가 달리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클래식이 끝난 뒤까지, 계속 아야베의 옆에 있던 올곧은 달리기.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떼어놓지도 않으며, 아야베는 탑로드와 나란히 달렸다.

두 개의 발소리가 어느새 맞춰져 같은 리듬으로 울린다.

땀이 흘러 목덜미를 타고 내린다.

짙은 녹색 바람이 부는 운동장을, 서로 뒤처지지도 앞서지도 않고 그저 달린다.

"ㅡㅡㅡ......."

문득, 희미하게 흘러나온 웃음소리.

탑로드의, 자황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아야베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왜?"

"아ㅡ, 아니, 저기, 그게... 별건 아닌데요ㅡ"

물음을 받은 탑로드가 뺨을 붉게 물들이고,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얼버무리는 듯한 태도가 반대로 신경 쓰인다. 아야베는 눈썹을 가볍게 좁히며 추궁하려고ㅡ



"하ㅡ하 하 하! 어디선가 아름다운 합창이 들려온다 싶더니, 이런! 내 최고의 호적수들이 아닌가!"

"기, 기다려주세요오, 오페라오 씨이이...!!"



저 하늘까지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가 둘,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온다.

"...왔구나."

"오페라오짱! 도토짱! 두 사람 다 트레이닝인가요?"

탄식하는 아야베 옆에서 탑로드가 붙임성 좋은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한다.

"그래, 물론이지 탑로드 씨! 패왕의 길에 휴식이라는 두 글자는 없으니 말야! 이기고 나서도 투구의 끈을 풀지 말지어다, 매일의 끊임없는 단련만이 영광의 무대로 향하는 첫 걸음!"

트레센 학원 지정 체육복 차림새에 언제나의 왕관을 번쩍이는 오페라오는,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탑로드의 손을 잡았다.

"자, 자, 함께 달리지 않겠는가! 이 하늘이 끝나는 곳까지! 나의 호적수들이여!"

"앗, 잠깐ㅡ 오, 오페라오짱!?"

탑로드를 질질 끌며 달리기 시작한 오페라오의 모습을, 아야베는 어깨를 움츠리며 바라보고, 도토는 면목 없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트레이닝을 방해해서..."

"됐어, 방해된 건 아니야."

달리 생각하면 병주 상대가 늘어서 좋다고 느낄 정도로는, 아야베도 그녀들의 패턴엔 익숙해졌다.



초여름 태양 아래를, 4개의 그림자가 달려나간다.

여기까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묵묵히 나아가는 아야베의 모습에, 오페라오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흘린다.

"이 운동장도 나쁘진 않다만, 자네들과는 역시 레이스에서 달리고 싶군. 아야베 씨, 진화를 이룩한 자네와 진심을 다해 겨루는 날이, 나는 너무나도 기대되는걸!"

"...그래."

"패왕은 혼자서는 패왕일 수 없으니. 서로를 드높이는 존재가 있어서야말로 우리들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ㅡ"

그것은, 클래식 때부터 이어진 오페라오의 지론.

라이벌이 있으니까, 강해질 수 있다.

사츠키상, 일본 더비, 킷카상ㅡ 3개의 관을 하나씩 쟁취하며 지나온, 결코 순조롭지 못했던 그녀들의 여정 그 자체였다.

"아야베 씨, 탑로드 씨, 그리고 도토... 자네들이 있기에, 나는 왕의 길을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야."

오페라오의 보랏빛 눈동자가 동기들을 하나씩 바라보더니, 기쁜 듯 가늘어진다.

약간 뒤처진 채 달리던 도토가 숨을 삼키고, 쭈뼛주뼛 시선을 떨군다.

"그, 그렇지 않아요. 그 안에 제가 들어가는 건... 클래식도 안 나갔고, 그레이드가 높은 레이스 경험도 아직 전혀... 결과도 마찬가지ㅡ"

"도토, 그건ㅡ"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그런 달리기를 보여줘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언가를 말하려던 오페라오를 무시하고, 아야베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자신에게 향한 도토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본다.

"넌 충분히 노력했어. 그 결과, 거기 있는 자신가 양반의 등을 아슬아슬한 데까지 따라잡았고. 이제 와서 겸손 떨 게 뭐가 있어?"

"......!"

"맞아요, 도토짱! 타카라즈카 기념, 도토짱도 오페라오짱도 굉장히 굉장했어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탑로드도 돌아본다.

밝게 갠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도토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붙잡았다.

"그러니까 저도 질 수 없어요! 봄 시즌은 끝나버렸지만, 더 더 노력할 거예요! 가을에는 최고의 달리기로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이기고 말 테니까요!"

"탑로드 씨...! 저, 저도...!"

양손을 똑같이 마주 잡고, 도토는 크게 끄덕였다.

내리깔기 일쑤인 소심한 눈동자는 울먹울먹 물기를 머금었지만, 그 밑바닥엔 강한 의지가 빛나고 있다.

"저도, 탑로드 씨와, 아야베 씨와... 오, 오페라 씨, 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라이벌이, 되고, 말겠어요!!"

"네! 같이 열심히 해요!!"

기합 넘치게 번갈아 외치더니, 탑로드와 도토가 맹렬하게 운동장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하 하 하! 이 나를 내버려두고 가려는 건가!?"

밝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그 뒤를 쫓는 오페라오. 아주 잠깐 아야베를 돌아보며, 찡긋 윙크를 날렸다.

그대로 앞서 가는 두 사람과 합류하여 떠들썩하게 달리는 등을 보며ㅡ 아야베는 또 다시, 천천히 탄식한다.

"정말이지... 너희들은 참..."

아야베가 쫓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귀찮다고밖에 느끼지 못하던 그런 그녀들의 태도도, 어느새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있다.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달릴 수 있는 거라고.

그걸 인정하는 건, 아주 조금 석연치 않았지만.



'역시, 지고 싶지 않아. 쟤네들한테는ㅡ'



땅을 박차 달리기 시작한다.

바람을 뒤쫓아 최고 속도로.

앞을 다투는 3명의 등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진다. 그 마군을 피하듯 바깥으로 진로를 정해ㅡ

3명 모두 한꺼번에 제친다.

뒤에 남겨진 3명에게서 일제히 비명이 울린다. 발끈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속도를 올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기다리게 아야베 씨! 먼저 가게 두지 않아!"

"직선 승부는 안 진다구요!"

"저저저저도! 끈기라면 자신이...!"

등 뒤로 밀려드는 발소리.

무덥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계속 달려나가는 아야베의 입가에는, 어느샌가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아야베 군은 휴양을 거치더니 약간 달리기에 변화가 생겼군."

떠들썩하게 앞다투어 달리는 전년도 클래식 그룹을 곁눈질하며, 묵묵히 스트레칭를 하고 있던 맨하탄 카페의 머리 위에서 팔랑팔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동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교복 차림으로, 느슨하게 팔짱을 낀 우마무스메ㅡ 아그네스 타키온이, 아야베 일행의 달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킷카상 즈음의 귀기어린 달리기도 흥미로웠다만... 모티베이션의 변화라도 있었나? 지금의 달리기도, 이건 이것대로 나쁘진 않아."

"...다른 사람 일을 캘 시간이 있으면 당신도 조금은 트레이닝하는 게 어떤가요."

"재활 중인 우마무스메의 심리와 달리기의 변모ㅡ 참고해야 할 테마긴 하지. '플랜 B'의 모델케이스로 삼아 계속해서 관찰해야 할까..."

사소한 빈정거림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단 투로, 타키온은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카페가 등을 돌리자마자 놀리는 듯한 투로 말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지, 카페. 신발끈이 느슨해지려는 것처럼 보이는군. 발톱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게."

"...윽..."

타인 따위 아무래도 좋은 주제에 관찰안만은 날카롭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 같은 새빨간 눈동자가 천천히 카페를 향하더니 들여다본다.

"자네의 달리기에도 크게 기대하고 있네. 열심히 하도록. '친구'에게도 안부 전해다오."

휘적 손을 흔들더니 타키온은 떠나갔다.

지적당한 신발끝을 조절하며, 카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니까, 라며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을 후회했다. 카페의 '친구'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타키온은 묘하게 시비를 걸어온다.

일어서서 등을 편다.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에 시선을 보내니, 저 멀리 우두커니 선 새카만 그림자가 보였다.

카페와 꼭 닮은, 카페에게밖에 보이지 않는 '친구'.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다. 그 표정은 알 수 없다. 타키온으로부터 묘한 관심을 받게 된 걸, '친구'는 불쾌하게 생각할까.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할 겁니다. 이건, 저와 당신만의 승부니까...'

숨을 깊게 들이쉬고, 카페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똑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한참 달린 뒤, 아야베와 탑로드는 가까운 하천 부지를 천천히 돌고 나서야 겨우 기숙사로 돌아왔다.

학생 기숙사 현관에 서자 사감인 후지 키세키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내민다.

"어서 와, 꽤 늦게까지 열심이네. 저녁 식사도 이미 시작했으니까 서두르렴."

"네. 감사합니다."

복도로 오르는 아야베의 동작을, 후지 키세키가 유심히 바라본다. 하늘이 비친 호수 같은 옅은 푸른색 눈동자에 부드러운 미소가 스며들었다.

"상태도 좋아지고 있나 보구나. 잘 됐는걸."

"네. 덕분에, 감을 많이 되찾은 것 같아요."

"굉장하다구요, 아야베 씨! 오늘도 저희를 단숨에 제치고! 굉장히 굉장했어요!"

흥분한 표정으로 보고하는 탑로드를 보며, 후지 키세키가 약간 눈을 가늘게 떴다.

"...부러운데. 같이 겨룰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건, 엄청 힘이 되지."

따스함 속에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눈동자.

그 이유를 묻기 전에ㅡ 아야베의 귀에 엄청나게 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앗! 너, 작년 더비 우마무스메 맞지!!"



후지 키세키의 등 뒤에서 뿅 하고 얼굴을 내민, 척 보기에도 불량한 생김새의 우마무스메.

푹신푹신한 밤색 머리칼을 반만 묶어 올렸으며, 담녹색 눈동자는 흥분으로 빛나고 있다. 아야베에게 훌쩍 다가와 덥석 양손을 잡았다.

"너한텐 한 번 인사해두고 싶었거든, 나! 작년 더비 마지막 직선 스퍼트! 그거 진짜 개쩔었다고! 나도 현장에서 보고 있었는데, 너무 흥분해서 집 가는 전철 깜박하고 내릴 역 지나쳤다니까? 친구들한테 존나 병신 취급 당하고ㅡ"

"포케! 포케 이 녀석, 일단 진정해!"

총알 같은 속도로 수다를 시작한 우마무스메를 수지 키세키가 떼어놓으며 아야베에게 시선으로 가볍게 사과했다.

'포케... 아, 이 사람이 소문으로 듣던ㅡ'

정글 포켓.

프리스타일 레이스 업계에서 트레센 학원으로 넘어왔다는, 이색적인 경력의 우마무스메. 후지 키세키와 같은 트레이너에게 지도받고 있으며, 이번 가을에 데뷔한다고 했었다.

혼이 난 포켓은 금세 풀이 죽어 웅얼웅얼 사죄를 늘어놓았다.

"미, 미안... 내가, 너무, 신나서 그만."

"...됐어, 괜찮아."

"오, 그래?"

머뭇거리다 대답한 아야베를 보고, 주눅들었던 표정이 활짝 펴진다. 다시 악수를 청한 포켓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선언했다.

"나도 반드시 네 뒤를 이을 거야! 내년 더비는 정글 포켓이 딴다! 잘 부탁해!"



후지 키세키에게 복도 안쪽으로 연행당하는 포켓의 모습을, 아야베와 탑로드는 나란히 배웅했다.

"언제나 기운이 넘치죠ㅡ, 포케짱."

"그러고 보니 너랑 같은 방이었지, 쟤."

"네! 솔직하고 노력파에, 엄청 착한 애예요. 정리정돈은 좀 서투른 것 같지만요."

"눈에 선하네."

남을 잘 돌보는 탑로드가 정리정돈을 도와주는 모습을 상상하고, 아야베는 무심코 쿡쿡 웃었다.

'...더비 우마무스메, 인가."

똑바로 향해져온, 동경의 눈빛.

당시엔 정말로 무아지경이라, 자신들의 달리기를 주위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따위 생각도 못 해봤다.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탑로드가 중얼거렸다.

"왠지 신기하네요. 저희 클래식을 보러 왔던 분들이, 다음 클래식에 도전한다니..."

내년, 포켓 세대가 달리는 클래식은 어떤 레이스가 될까.






"그러고 보니, 낮에 그건 뭐였던 거야?"

식당으로 이동해 탑로드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아야베가 무심코 물었다.

오페라오와 도토가 난입하는 바람에 어물쩍 넘어갔지만ㅡ 탑로드가 아야베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미소지은 장면이, 어째선지 가슴에 걸려 있었다.

"그건... 저기."

탑로드의 젓가락이 우뚝 멈췄다.

말을 꺼내기 어렵단 듯한 분위기에, 아야베는 물컵을 들어올리며 덧붙였다.

"대답하기 싫으면 그래도 상관없는데."

"아뇨,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정말로, 기뻐서ㅡ"

"기뻐?"

"아야베 씨랑 같이, 계속 달릴 수 있단 게요."

예의바르게도 일단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탑로드는 고개를 들었다.

노을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는, 자줏빛과 황금빛이 뒤섞인 자황수정 같은 눈동자가,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저, 역시, 아야베 씨의 달리기가 좋아요."

그 고통스럽고 격렬했던 클래식 전선 속에서 몇 번이고 탑로드가 전한 말.

동경이자, 목표라고.

언젠가는 따라잡고 말겠다고.

내가 너의 라이벌이, 되고 말 것이라고ㅡ



아야베는 그저, 그래, 하고 대답했을 뿐,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싱긋 웃으며 끄덕인 탑로드도, 다시 젓가락을 집어든다.

열심히 밥을 입에 밀어넣으면서, 아야베는 자신의 귀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야말로. 네가, 있었으니까.'



쭉 곁에 있었던, 그녀의 달리기.

포기할 줄 모르는, 몇 번이고 일어서서 쫓아오는, 강하고 순수한 그 달리기.

너무 눈부셔서, 눈을 돌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똑바로 달려나가ㅡ 그 날, 어둠 속에서 절망하기 직전이었던 아야베를, 마치 별처럼 이끌어주었다.



계속 품어왔던 감사도, 몰래 숨긴 동경도, 쑥스러움 탓에 말로 표현하진 못한 채.

마주본 탑로드는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닌 것인지, 천진난만한 얼굴로 반찬을 집어먹고는 맛있어요 라며 웃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SNS를 바라보던 카렌짱이, 후암 하고 작게 하품을 흘렸다.

"아야베 씨이~. 카렌, 슬슬 잘게요~. 아, 불은 안 꺼도 괜찮아요..."

"그래? 고마워. 잘 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아야베가 돌아보니, 회색의 짧은 머리를 베개에 푹 파묻은 룸메이트는 졸린 얼굴로 흐늘흐늘 미소짓고 있었다.

"아야베 씨, 오늘 좋은 일 있었나요~?"

"...글쎄. 평소랑 똑같은 하루였지만, 나쁜 하루는 아니었어."

잠깐 생각한 뒤 대답한 아야베를 보고, 카렌이 만족스럽다는 듯 끄덕이고는, 담요를 잡아당겼다.

"일기... 쓸 내용, 많아서... 잘 됐네요."

스르르 감기는 눈동자에, 다시 한 번 잘 자 라고 전한 뒤, 아야베는 다시 책상으로 몸을 돌렸다.

펼쳐져있는 건, 일기장. 하지만 이건, 아야베에게 있어서는 편지 같은 것이었다.

밤하늘 저편, 별과 함께 있는 '그 아이'에게 보내는.



~

오늘은 동기들이랑 거의 하루종일 같이 지냈어. 더워서 피곤했지만 좋은 트레이닝이 된 것 같아.

동기의 활약은 자극이 돼. 초조함이 반, 걔네한테 부끄럽지 않은 동기이고 싶은 마음이 반.

다음에야말로, 내 전력을 다해서 승부하고 싶어.

그게, 내 곁에 있어주는 그녀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내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



언젠가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 같이 실컷 달리고 싶어.

모두와 함께 갈고닦은 내 달리기를 보여줄게ㅡ 후후.

아직 한참 남은 이야기겠지만, 언젠가 꼭.

그때까지, 기대하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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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배갤에 올린건데 혹시 여기도 볼사람있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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