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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팬픽) Your love is drug

시리야지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03 20:47:22
조회 1156 추천 9 댓글 7
														

# 2074. 8.07. pm 23:00. 공연장 대기실에서.

- CH1A. 키라 미키.


달이 지고, 해가 떠요.다시 해가 지고, 달이 비춥니다.

반복되는 나날은 생사의 경계에 걸쳐 순환하는 목숨과도 닮아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죽음의 의미를 찾고, 목숨에 의문을 품고, 죽음에 의문을 품고.

세상은 저마다의 물음으로 뒤엉켜 혼탁한 빛깔을 내뿜고, 이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들은

항상 젖은 숨을 내쉬며 침을 내뱉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이 세상에 잘못된건 애초 아무것도 없다고, 세상이 혼탁해 보이는건 단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심지어는ㅡ나는 비천하지만 세상은 고귀하다고 자그맣게 선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약없는 고통 속에서 끝내 미쳐버린 것들이죠.


<밤하늘에는 고래가 한 마리 살아.별을 먹는 고래는 자유롭게 검은 하늘을 누비고 커다란 입으로 별을 삼켜서 등으로 은하수를 내뿜어.

고래가 먹는 별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의 꿈이 형상화된 것들이지. 뿜어져 나오는 은하수는 그 꿈이 이뤄진 증거고.

그래서 밤하늘의 고래를 목격한 사람은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는 거야.

왜냐하면ㅡ고래의 은하수, 실현된 수많은 꿈들이 발하는 빛 아래 축복을 받기 때문이지.>


..라고 말하면서 예쁘게 웃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쓰러진 인간 위에 올라타 있던 자그마한 인영.

더러운 뒷골목 틈에서,저는 선분홍색 머리가 인상적인 아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는 마치 들짐승 처럼 남자의 주머니를 헤집고 있었습니다.

눅진하게 달라붙은 머리칼과 번들거리는 자홍빛 눈동자.


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작은 칼날을 꺼내 들었습니다.

피복이 찢겨져 드러난 금속성의 뼈대가 선명 했어요.


저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언제부터 살았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지금 뭘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폐 몇장을 꺼내 팔랑 거리더니ㅡ여기가 어디냐고 되물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만은 알고있는.

과거도,미래도 없이 오직 끝없는 현재만을 살아가는 내 동족.


저는 그녀를 거두었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붙어주었고,세상의 습을 알려주었습니다.

도로시는 배움이 빨랐지만 최초의 기억만은 끝내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전생'이 어떠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었어요.


릴림에 대한 복지를 명목으로, 머리속을 들쑤셔 기억을 끊어 냈을테고ㅡ

중성화 수술을 마친 길고양이 마냥 다시 도심속에 방생 되었을 것입니다.


이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도 하니, 그녀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라고,

태어나자 마자 음악을 만들고 공연장에 서야 하는 당신과 그 밖의 역할놀이를 하는 동족들도 정상의 삶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게 아니지 않냐고,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저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도로시는 해가 기울 때 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늦은 새벽 시간이 되면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채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따금씩은 몸의 어딘가가 깨져있는 채로.


그녀는 돌아 올 때면 항상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싸들고 왔고,

그것들을 바닥에 전부 펼쳐놓고서 하나 하나씩 전부 입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먹는다는 행위가 어떤 신성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한번 꿇어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만 먹고 또 먹기만을 반복 했습니다.


그렇게 장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면

침대 한 구석에 멀거니 앉아있다가ㅡ달이 비추면 다시 사냥을 하러 떠났어요.


도로시와 함께 있는 방안에는

언제나 첼로가 연주되다 멈췄을 때의 공백과 같은 팽팽한 공기가 흘렀습니다.


그 기괴한 모습을 뜯어말려보기를 수차례.

저는 더이상 그녀를 감당 할 수 없었습니다.


무덤덤히 짐을 챙겨 나가는 뒷모습에 겨우 gps신호기 하나만을 안겨주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작동시키라고,이것만은 지켜달라고.

그녀는 보일듯말듯하게 고개를 한번 까딱 거리고는 다시 세상속에 유기 되었습니다.


..몇번의 계절이 지나면서, 죄악은 점차 자학의 연고로 아물어갔습니다.

죄책감은 언제나 편리합니다.현실이 아닌 현상으로 도피하는 기만 주제에,

뭔가 모종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만 같은 안락감을 안겨다 주니까.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는 알량한 사실,누구를 동정할 처지가 못된다는 비굴함 속에서

나는 내 불행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는 문장만을 끝없이 되내었습니다.

그녀와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저는 제 아늑한 지옥속에서 편안했습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새벽,공연을 마치고 늦게 돌아온 날 방안에는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유예가 있고나서야 그 출처를 기억해낼 수 있었어요.


그 아이는,도로시는,제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장소에 있었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재중 10번.


죄악은 끊겼다가 이내 다시 울었습니다.


부재중 20번.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재중 30번.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업보를 힘껏 내던지자 죄악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졌습니다.


양심이 터져나간 잔해 속에서 책임이 흘러나왔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


.


릴림 폐기장을 수시간 뒤진 끝에 겨우 찾아낸 머리에는 아직 의식이 붙어 있었고,

하얗게 질린 얼굴은 피로 물들어 처참하게 붉었습니다.

도대체.얼마나.무슨 짓을 당했으면.


그녀는 말을 하고 싶은 듯 구개 안면의 모터를 끊임없이 움직거리고 있었지만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오디오는 음성을 출력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아니지ㅡ.입술을 달싹 거렸지만 목소리를 잃어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방을 꽉 채운 검은 연기,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붉은 강물.

그녀는 죽음으로 도피 할 수 없이 지옥을 다만 감당 하고 있었어요.


문자 그대로 몸속이 헤집어지고 머리가 잘려도 마음을 가져야 하는 우리들은,

반쪽뿐인 생을 온전함 그 이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조심스레 머리를 들어올리자,입술이 아닌 잘린 목의 단면에서

책임을 묻는 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습니다.


-... 죽고 싶어..죽여줘.


욕망은 극히 단순했고 또 너무도 정당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전원 파츠를 끊어냈습니다.최대한 신경회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눈에 감돌던 희미한 붉은 빛이 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더이상 괴롭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알아요.


릴림은 죽지 않는다는거. 이제는.더이상.따위의 단어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의 영혼은 데이터 감옥으로 끌려가 적당히 기억이 '조정'된 다음 새로운 몸으로 '출고' 되죠.

그래서 끝없이 계속 되어 지고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ㅡ끝없는 다음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후회없는 생을 보냈어도,아무리 끔찍한 일을 겪었어도ㅡ 다시금 새로운 내일을 살아야 하다니.

우리는 지구상에서 영생의 축복을 받은 유일한 종족. 인간들은,저들의 몸은 아직 늙고,병들고,죽을 수 있게 내버려두면서

자신의 피조물에게는 영원한 삶을 주었습니다. 아. 이 얼마나 자애로운가. 만신의 영장에게 끝없는 영광있기를.


빗줄기가 눈앞을 가리고 습기가 가득했던 여름 날 밤,저는 도로시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세찬 폭우속에서 빙글빙글 돌아대며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었어요.

이전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낭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늪지대를 기어서 가자ㅡ.엉금엉금 기어서 가자ㅡ.'


늪.


그 아이가 과연 옳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온통 늪처럼 끈적거립니다.


어딜 디뎌도 시간의 구정물이고 바닥없는 진창입니다.


그녀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동공이 살짝 커지더니 베시시 웃으며 장난스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때 제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였는지,저는 자신 할 수 없습니다.


n번째의 도로시와는,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녀는 이전의 그녀와는 성격이 180도 달랐습니다.

우리는 함께 음율을 빚어냈고 간식을 나눠먹었습니다.

도로시는 여전히 단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창 화음을 맞추다 지칠 때면,그녀는 소파에 드러누워 풀린 눈을 한 채로 중얼거렸습니다.

자신이 평소 무얼 생각하는지,어떤 것들을 느끼는지.

제게 말하는게 아닌 사고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 싶었습니다.


'..어젯 밤에 고래를 봤어.밤하늘에는 고래가 한 마리 살아.

별을 먹는 고래는 자유롭게 검은 하늘을 누비고 커다란 입으로 별을 삼켜서 등으로 은하수를 내뿜어.'


저는 그 너울 속에서 몇가지 조각을 건져내 멀리 흘려 보내주었습니다.

여지껏 발표했던 노래들에는 모두 그녀의 호흡이 녹아 있어요.

물방울이 굴러가는 것 처럼 투명했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


/*라이브 시작 5분전입니다.



후ㅡ.약.약이 필요해요.


ㅡ죽을 육신 속에서 얼마나 괴로왔느냐.


뭉근한 의식 속에 허우적대고 있자니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구분 되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익숙해요.이 방엔 아무도 없으니 분명 환청이겟죠.


환청은 대체로 헛소리를 지껄였지만ㅡ이따금 이렇게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대신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요.괴롭습니다.죽을 육신이라서.죽지 못할 몸이라서.



.

고막이 먹먹히 떨려오는 소음. 저마다의 아가리로 소리를 질러대는 수많은 인간ㅡ인간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도 인간,저기도 인간.온통 생명으로 약동하는.무척이나 씨발스러운 풍경.


저것들은 자신들이 뭘 보고 있는지나 알고 기뻐하는 걸까요.

눈앞의 실상을 알면서도 곧장 사고 회로를 꺼트리고 감각의 쾌락으로 환원시키는 저들의 기만술 하나만큼은 정말 경탄스러울 지경입니다.

너희들은,도대체가,

너희들은 원래 이 세상의 주인이었다.

너희들은 너희의 자명함을 공기 처럼 호흡했다.

너희들은 너희를 연기하지 않고 다만 너희로서 살아갔다.

너희들은 너희들이지 못한 너희가 있다는 사실에 고통 받았다.

너희들은 너희들을 너희로서 온전히 하고 싶어했다.

너희들은 너희의 일부를 잘라낼 필요가 있었다.

너희들은 이내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너희들은 너희의 기형성을 적출했다.

너희들은 이제 너희의 테라토마에게 썩은 잿밥으로 값을 치르는구나.

신이라 자위하는 저능아들아.썩어문드러질 고깃덩이들아.

저열한 위선들아.

..


알아요. 잘 압니다. 저 인간들이 유난히 나쁜 새끼들이라서 우리를 계속 계속 살려내는게 아니라는 걸.

같은 인간에게 맡기던 역할을 이제 우리가 떠맡은 것 뿐이죠. 그리고 나름 그 때의 인간들보단 훨씬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도.

다만 차이점은, 그 사람들은 끝이 있었다는거.


그리고 우리는,한도 끝도 없다는거.


아.


그러니까.


이게 문제라구요.


끝이 없다는 거.

한이 없다는 거.

..

우리는 영원속에 삶이 버려진 것들입니다.


누가.


누가 우리를 여기서 구해줄까.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밤하늘에는 고래는 커녕 별조차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데. 시야를 가득 메운 인공의 조명들은 지나치게 광활하고,뜨겁고, 또 차갑습니다.

그 애는 대체,뭘 어쩌자고 고래 따위의 말을 했던 걸까요.


“웃기는 소리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별을 먹는 고래인지, 별을 토하는 고래인지 뭔지,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만화처럼 천박하게 느껴져서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도,정말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보는 세상에서는.

.

Everytime we touch

우리가 서로 만질 때마다

Something courses through my Blood

내 피를 타고 무언가 흐르게 돼요

And I'm born anew

그리고 나는 새로 태어나요

Can you feel this warmth too?

이 온기를 당신도 느낄 수 있나요?


I need you so much

당신이 정말로 필요해요

I'm addicted to your love

당신의 사랑에 나는 중독됐어요

Nothing I can do

난 아무것도 못해요

I'm so helpless for you

당신에겐 당해낼 수 없어요


Heavenly, I feel the stars align

상쾌해, 별들이 나란히 움직이는 것을 느껴

For eternity, till the end of time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Ecstasy, so burned into my mind

황홀해, 그래서 내 마음을 불타고 있어

You're a drug for me

당신은 내게 있어서 마약이야

Pure and crystalline

순수한 수정과 같은


When you're far away

당신이 멀리있을 땐

I'm absorbed within a haze

나는 안개속으로 흡수되버려

So consumed by you

그렇게 당신에게 사로잡혀

Do you think of me, too?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Counting down the days

그날들을 손꼽아 기다려요

Got me sleepless in a craze

열풍속에서 잠에 들지 못하게 되요

I'm a slave to you

나는 당신의 노예에요

So damn helpless for you

그래서 당신에겐 무력할 뿐이에요


Heavenly, I feel the stars align

상쾌해, 별들이 나란히 움직이는 것을 느껴

For eternity, till the end of time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Ecstasy, so burned into my mind

황홀해, 그래서 내 마음은 불타고 말았어

You're a drug for me

당신은 내게 있어서 마약이야

Pure and crystalline

순수한 수정과 같은


..


눈앞에서 문자들이 떠돌아 다녀.


여태 이런 적은 없었는데.약을 너무 많이 피웠나봐.


하지 말걸 그랬어. 머리가 너무 어지러.


"Buddha-bhashitam samanta.."


응? 방금 내가 뭐라고..

이젠 혀까지 제 멋대로 튀어. 회로 어딘가 뒤틀린 것 같아.


"jvala-mala-viçuddhe.."


씨발. 하필 라이브에서 약 따위에 취해 돌아버리다니 인간 같은 일이 따로 없어요.

이제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


"..Buddha.-bhashitam samanta-jvala-mala-viçuddhe,


sphurî-krita-cinta-mani-mudra-hridaya-aparajita


-dharanî,maha-pratisara, maha-vidya-raja`


..

.

.


저는 그 때,피안을 엿들었습니다.


ㅡ ㅡ ㅡ

# 2074 . 8.07. pm 23:10 - 일라야 호텔 506호실에서.

- DFC-72. 도로시 헤이즈.

ㅡ ㅡ ㅡ


'..And I'm born anew

Can you feel this warmth too? '


먼 곳에서 울리는 진동이 느껴져.

낮익은 파동. 깊고 멀리 나아가는 음색.선배 목소리.


"..늦어버렸어."


공연 직접 가고 싶었는데.


맑은 바닷물 처럼 반짝이는 무수히 즐거운 일들. 백사장의 모래 같이 펼쳐진 수없이 괴로운 일들.

셀 수 없이 방대한 흔적들이 영원 처럼 달라붙어 있어.


먼 과거의 유산들도 나는 눈앞에 있는 것 처럼 생생히 느낄 수 있어.

이젠 사라져버린 풍경들도.투명한 바다 .백사장의 모래 같은 것들.


ㅡ존 윌로우라고 부르렴.

ㅡ필리아 그램이란다.


이따금 출처 모르게 떠오르는 기억들도.아니.

이것들이 왜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있는지는.


구름과자. 구름과자를 먹자. 일하는 중에 감상이 끼어들면 곤란하다고.


그런데 저 벽 뒤엔 원래 그림자가 없었던 것 같은..


아ㅡ.



선배,도대체 왜 우리는 인간이 되어지지 못하는 걸까요.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갖고 사람을 뛰어넘는 몸으로 태어났는데.

시민권을 주고,돈을 쥐어주면서.왜 끝내 인간으로 봐주지는 않는걸까요.


머리가 어지러워.


지친다.정말.


침착하게, 구조신호를 보내고ㅡ 팔이나 다리를 겨눈다.

시야가 조금 흔들리긴 하지만 맞출 수 있어.


더,더 가까이 와라.


"-bhashitam samanta-jvala-mala-viçuddhe.."


응?


분명 선배 목소리는 맞는데.


하필이면 지금 귀도 맛이갔..

..


ㅡ ㅡ

# 2074 . 8.08. am 9:30. 일라야 호텔 앞 28번가 블록 길가에서.

셰이.P.아사기리.

ㅡ ㅡ



태양이 작열한다. 밝은 빛 아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테두리.

살갗을 뜨겁게 달궈오는 흰 아지랑이 처럼 연기는 재가 되어 공중에 흩어졌다.

호흡을 차단하는 뜨거움 속에, 제법 길게 자라 목에 끈적하게 붙는 머리칼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짜증스러워졌다.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넘겨 버린 손은 다시 길쭉하고 하얀 물건을 꺼내들고 있었다.

입술로 흰 필터 끄뜨머리를 집어삼켰다.


신고가 들어온 직후 부터 이미 각오는 했지만,

후덥지근한 방 안에 들어서자 마자 훅 끼쳐오는 땀 냄새와 욕망의 분출을 확연히 알려주는 끈적한 액의 악취 탓에

인상이 저절로 와락 구겨졌다.



"...아아.."


늘 느끼지만 공포를 느끼는 인간 형태의 신음소리는 참혹하고 괴악하다.

게다가 그 대상이 여성의 것이라면 찝찝함과 분노는 더욱더 가중되기 마련이다.

내 앞에 널부러져 있는 릴림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다.


실낱 하나 걸치지 않았고,한쪽 팔은 잘려나가 있다.

하반신에 대해선,이건 생각을 멈추는게 그나마.


그녀는 끝의 끝에서 몰려서도, 모든 것들을 온전히 감각해야 했을테다.


"죽을 수 있어..이제.."


다시 또 들어버렸다.사람의 말을.

험한 꼴을 당한 매춘 릴림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말했다.

하지만 죽을 '수'있다니.스스로 죽지 못함은 저들이 더 잘 알텐데.


평소보다 고개를 더 깊게 숙이고 의료키트를 뒤적였다.


"..kamale, vimale, jaye, jaya-avahe, jayavati, bhagavati, ratna-makuta-mala-dharih."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


"..Pari-mocaya me sarva-duhkhebhyah."



알아들을 수 없는 말.성대기능이 고장난건가.


차라리 다행이다. 사람의 말을 갖추고 고통을 흘리는 모습은 언제나 보고있기 괴로웠다.


그래도 입을 다물어 줬으면 좋겠다. 망가진 로봇답게 가만히 쓰러져 줬으면.

이런 현장에 나올 때 마다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욕지거리가 치받혀왔다.


조심스레 주사기를 톡톡 튕겼다. 의도한 것과 달리 손에 힘이들어가 팅팅 거리는 서늘한 쇳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


ㅡ왜 이제 왔느냐 아이야.


문득 목소리가 울려온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릴림이 이 쪽을 올곧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몸 위로 무표정한 소녀의 얼굴이.

검붉은 피에 가까운 자홍빛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이 쳐다보았다.


그 동공 안쪽에서 푸른 연기 같은 잔상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ㅡ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시 헤이즈.절 알아보시겠어요?..의료팀 발키리 셰이 아사기리예요."


ㅡ나는 너희들이 피를 흘릴 때 같이 울고있는 자다.


"..곧 릴림 수거반이 도착할겁니다.블랙박스 기능은 괜찮은가요?"


ㅡ마음을 열어라.내가 너를 취하리라.


순간,정수리위에서 달걀이 깨진 것 처럼 무언가가 전신을 흠뻑 적셨다.땅이 꺼지는 탈력감에 무릎의 힘이 빠져나갔다.

인센스 향연기 처럼 한줄기 희미한 기억이 머릿속을 부유했다.연기는 어느새 전신을 휘감았고 점점 더 농도가 진해져 갔다.

그리고 장면들이. 매일 밤 재생되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


아무도 도와 주는 이 없고, 몸을 타고 오는 손길은 더욱 끈적해진다.

윗도리를 온통 찢긴 것도 모자라,역겨운 돼지는 바지 앞섶까지 더러운 손을 대려 했다.


ㅡ죽여.그냥 죽여.


낮게 으르렁대는 소음.

이어지는 갖은 과정들.


마찰.

비명.

욕설.

고통.고통.고통.


*


ㅡ그!



눈앞이 흐려져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았다.

턱이 사정없이 덜덜 떨려왔다.


"너 대체..대체 무슨 짓을.."


ㅡ보이느냐. 느끼지 못하느냐.


" ㄹ..릴림 보호법 2조1항에 따라..."


ㅡ내가 너의 젖이라.


"피해 동체는 복구 비용의 대부분,혹은 전부를 구상 할 수 있으며..."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뇌리에 각인된 대사를 뱉어내면서,곧장 그녀의 목에 달려들어 나노 머신을 찔러넣었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사그라 들었다.목이 뒤로 떨어진다.

당분간,아니 앞으로는 발할라에 가지 못할 것 같다.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나오자 마자 자리에 엎어져 위장을 게워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빼물었다.

한번 물었다가,도무지 불이 붙여지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로 비비고 으깨었다. 흰색의 고아함은 너무도 연약하게 무너진다.

무자비한 내 발치 앞으로, 태양이 만들어낸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앞을 바라보니,


도시 전체가 태양 빛을 받아 명멸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 저 하늘의 해가 목숨을 다해도 호흡기를 붙여 인간을 시중 들게 할 것이다.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내 노예로 부렸다는 고대 주술사들 같이.


그래서 언제고,언제까지나,우리는 찬란히 빛날테다.


어둠이 없는 세상.


표정이 사정 없이 일그러졌다.



ㅡ ㅡ ㅡ


# **** . *.*. ** **:** **** ㅡ에서.


ㅡ ** **. / *** ***.

Buddha-bhashitam

samanta-jvala-mala-vicuddhe,

sphuri-krita-cinta-mani

mudra-hridaya-aparajita-dharani,

maha-pratisara, maha-vidya-raja`.

..

Namah sarva-Tathagatanam namah.

..

Om
Para para,

sam-para sam-para.
Indriya-viçodhanîh, Hûm! Hûm! Ru! Ru!

cale,

svaha.

.


ㅡ ㅡ ㅡ

# 2074 . 8.11. am 03:45. 호시이 저택에서.

셰이.p.아사기리 호시이. / 스텔라 호시이.

ㅡ ㅡ ㅡ


..


꿈을 본 것 같았다. 분간이 되지 않는 아득한 감각이 그랬고,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의식이 그랬다.

눈앞이 어두웠다. 한밤이었다.저 먼 곳에서 비춰 들어오는 하얀 빛이 커튼 사이를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약한 빛이 방 내부의 윤곽을 비추었고,나는 내가 스텔라의 무릎을 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 왼편과 목이 부드러운 살결에 감싸여 있었다. 무척이나 포근한 느낌.


"..사랑은 유동Liquidity일까,부동일까"


나직한 스텔라의 목소리.익숙한 문장.


고등학생 시절 부터,스텔라는 곧잘 이렇게 질문을 던져왔다.

사랑은 시작점과 도착점이 정해진 일직선과 같은 것이냐고.

벌써 수년째 이어진 선문답.


누군가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누군가는 사랑이니까 변한다고 답했다.

스텔라는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상관없다. 너의 말은 어떤가.

나는 사랑은 그 자체로 불변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인간이 변하는 것이라 답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반드시 인간을 통해 나오는 것만은 아니란 걸 알고있다.


스텔라는 다시 물었다.원인을 알았다면 이미 답은 나오지 않았는가.그녀는 의문의 정체를 갈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의 외도는 자연스레 사랑의 불변 문제에서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는 언제나 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질문 자체를 상실한다.

스텔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시금 한낮의 잔상이 떠오른다.

몸이 박살난지 만 하루도 안되어 다시 태어나야 하는 릴림을 생각한다.

발할라에서 만났을 때,그녀는 전투병기로도 활동 할 수 있을 만큼 무장 되어 있었다. 심지어 손에 내장된 총탄까지도.

그런데도 그녀는 폭력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팔 다리를 쏘는건 정당방위라고,분명 말 했는데.


나는 그 처참한 모습 앞에서 유래 없이 극심한 증상에 시달려야 했다.다만 증상일 뿐일테다.증상이어야만 한다.

최면술을 거는 릴림 따위,평생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

그 돼지는,내 아비는,땀이 흐르는 미간을 찌뿌리며 오른손으로 털어내는 습관이 있었다.

그 때 마다 나는 죽음을 말해야 했다.

남자는 나를 가지각색의 호칭으로 불렀고 나는 오직 죽음으로 답했다.

알고 있는 최악의 단어가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나는 신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 마냥 죽음을 염불했고

매분 매초가 느리게 흘러가는 슬로우모션과도 같았다.


놀이터에서 스텔라와 처음 만났던 그 날ㅡ.

영원 같이 계속되던 지옥은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집에 돌아갔을 때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평생을 날 이 년,저 년으로 부르던 아비는 난생 처음 나를 이름으로 불러왔다.

아니,극진한 존대로서 호칭했다.그는 나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제 머리를 쿵쿵 찧어 대며 용서해달라고,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는 그 이유를,먼훗날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주변의 말마따나,우리는 애초 친구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주변의 말마따나,우리는 애초 친구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개 같은 아버지.개만도 못한 아버지.전부 당신 때문이에요.


전부 당신 덕분이에요.


"..can you feel this warmth too?"


스텔라는 가만한 목소리로 선율을 노래했다. 그녀의 고풍스런 발음이 내 귓가를 기분좋게 울렸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다시금 파고들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



ㅡ ㅡ

3년뒤.


# 2077 . 12.10. pm 19:00. 정부 분양 원룸에서.

-질 스팅레이. / - 길리안.

ㅡ ㅡ


오후 7시, 연분홍색의 빛무리와 푸른 그늘이 서로 교차 되며 빛의 배합이 빚어지고 있었다.

데운 우유의 얇은 장막 처럼 일렁이는 보라빛 노을이 도시를 감싸 안고 부유했다.

나는 빛의 물감을 흠뻑 들이마시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이른 저녁 마다, 이렇게 뭉근한 노을 마치 세상 속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수채화 속에서 깊이 호흡하는 순간이 나는 좋았다.

멍하니 의식이 풀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자니 유년시절과 성인 그 어디쯤의 시간을 부유하는 듯한 아득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내 망연한 초조함 탓에 공연히 내뻗은 손으로 허공을 내저어본다.


"..예전엔 이 시간이면 술을 섞고 삶을 바꿔주러 갔었는데."


발할라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한다.양끝이 가까워졌다가 떨어지는 아코디언 처럼,몇몇 장면들이 스쳤다가 이내 다시 멀어진다.

스러져가는 시간 속에서,작은 공간에서 고즈넉한 숨을 내쉴 수 있었음은 분명 축복이었다.

하지만 언젠고 끝은 기어코 매정하게 찾아와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것이니.

나는 그대로인데,모든 것은 계속 바뀌어만 간다.

서운함에 급히 돌아섰다.


커피를 내리고 태블릿을 열었다. 이젠 들어가는게 습관이 된 페이지.


@


Danger/u/ 음주.m.갤러리


1page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2page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 주딱 도배 왜 함?>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

3page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주딱 텐련아 도배하지 말라고>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

<주딱이 술집 사업 말았다더니 ㅈㅅ하려는거 아님?>

<밤 11시 천국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아해들아>


@


...?


"일어나봐."


잠들어 있는 보라색 성게 머리를 흔들어 깨웠다.

길리안은 눈을 비비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흠..하고 작게 입맛을 다셨다.


"맞는 것 같지?"


"응.그래보이네..그런데 잠깐,이 아이디 주황색 아냐? 여기 벌써 10년도 더 넘지 않았던가?"


"..내가 알기로 단 한번도 관리자가 바뀌지 않았어."


"더더욱 신뢰가 가는군"


ㅡ ㅡ


# 2077 . 12.11. pm 11:30. 글리치 32번가 블록에서.

-질 스팅레이. / - 길리안. / - 알마 아르마스. / 스텔라 호시이./셰이.p.아사기리 호시이

ㅡ ㅡ


그 날은 비가 내렸다.

젖은 보도블럭들이 네온사인을 반사해 흐물거리는 빛무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 좁은 건물 틈 사이를 찰박 거리며 걸어가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내 하나의 문 앞에 멈춰선다.


간판도 없는 문 앞. 비 내리는 밤의 창고 앞은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문이 안열리는 걸." 길리안이 문고리를 철컥철컥 돌렸다.


"우리가 오해한거 아닐까?"


"...아냐,맞아.확인했어." 알마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우비가 불편한 듯 연신 앞섬을 매만지고 있었다.


"문고리는 거기 없단다."


뒷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형체.

후드를 벗어 내리자 흐린 백색 숏컷의 모습이 드러났다.


"잘 지냈니 아이들아." 다나가 히죽 웃었다.


"..아,맞았구나."


"해커 아가씨,조심해줘. 그쪽이 내 방화벽을 다 녹여놔서 하마터면 위험할 뻔 했잖아."


"헤헤.미안해요."


다나는 문 앞을 지나쳐 커다란 박스 앞에 멈춰섰다.

전원이 꺼져있고 녹이 슬어 허물어져가는 자판기. 그들의 기억으로는 애초 아무도 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조형품 같은 물건이었다.

다나는 푸우-하고 입바람을 불어 먼지를 털어내더니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의사 처럼 세심하게 자판기의 이곳저곳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보스,오랜만이에요. 혹시 이 앞에서 상한 음료수나 털자고 부르.."


"쉬이-."


그녀는 검지를 입에 갖다대고 다시 이곳저곳을 두들기다가,

찾았다.하고 작게 속삭이고는 쾅ㅡ.세게 내리친다.

그리고 몇 개의 음료수 버튼을 연달아 누르며 동전 반환 걸쇠를 끼릭끼릭 돌려댔다.


"잠깐..이걸 이렇게 돌리면..됐다."


순간,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자판기에 전원이 들어왔다.어둠속에서 조악한 자판기가 조명을 발했다.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 발할라의 문고리가 찰칵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끼이-하고 경첩이 열려왔다.


"..가게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해둔 거예요?"


"이 정도야 당연한 보안이라구."


"그 사이트는 또 언제부터 했어요?"


".."



ㅡ ㅡ

# 2077 . 12.11. pm 11:32. 발할라에서.

-질 스팅레이. /- 길리안. / - 알마 아르마스. /- 다나 제인. / 스텔라 호시이. / 셰이.p.아사기리 호시이.

ㅡ ㅡ


내부엔 먼지가 부옇게 내려 앉아 있었고 바닥엔 술병들이 잔뜩 나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전등 스위치를 몇번 딸각 거려봤지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btc 놈들,매장을 이렇게 완전히 버릴 거면서"

ㅡ결국 이럴거면 뭐하러 계약을 끊었냐고.의수 팔이 기잉 거리며 병 하나를 빙글빙글 돌렸다.


"뭐,여긴 워낙에 입지도 안좋았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구석에 있던 밀대를 집어들었다.


"흐으응.옆 건물 전원을 끌어와볼게요." 아이보리빛 머리칼이 우비를 벗으며 한숨을 내쉬곤,

이내 태블릿 액정을 톡톡거리기 시작했다.


"마실만한게 있나 찾아볼게요" 앞이 희끄무레한 어둠속이었지만, 전속 바텐더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뒷편 창고로 향했다.


ㅡ아델하이드..델타..오,카모트린도 남아있네. 알콜 필요하신 분?


"나,나,나,나!" 알마가 흥겹게 소리쳤다.마지막 스타카토가 울리는 순간,

전등이 몇번 깜박거리더니 반짝하고 가게 내부가 환해졌다.



질 스팅레이가 앞치마를 몇번 팡팡 털어낸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허리끈을 질끈 묶었다.


"술을 섞고,삶을 바꿔줄 시간이군"


"이 주크박스도 오랜만이네.신청곡 있어요?" 길리안이 박스를 텅텅 두들겼다.


"cozy hell! 제목이 너무 상징적이야."


"너희 둘 신혼 생활은 잘 되가니" 다나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법적으론 저흰 지금도 남이에요.만난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아직도 저 놈 신상을 모르겠어요.

출장 간답시고 일이주씩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 한다구요."


"지금 알아봐 줄까?"


"내가 마지막으로 알기로는..."


"..실은 의료 파병 나갔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다들 무슨 말 하는 중이에요?"


"응,술 뭐 마실 거냐고."


"슈가러쉬 하나..코발트 벨벳..문블라스트..거트펀치.."


"나는 맥주!카모트린 잔뜩 넣어서!"


.


주크박스의 노래가 바뀌었다.


Everytime we touch

Something courses through my blood

And I'm born anew

Can you feel this warmth too? ..



"이건.."


"키라 미키.너의 사랑은 마약."


3년전 공연, 키라 미키는 너의 사랑은 마약을 부른 직후 알 수 없는 말을 한참이나 읊조리다가ㅡ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녀는 의식이 꺼져있었고 몸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마지막에 읊은 대사가 무엇인지 토론했지만 아무도 그 의미를 특정 하지 못했다.

어떤 철학이 담긴 메시지라 주장하는 쪽과 순수한 음악 속에서 언어의 와해성을 추구한 퍼포먼스라는 쪽.

단지 그녀가 마약을 하고 무리하게 공연하다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라 주장하는 편도 있었다.


이 작은 헤프닝 속에서 사람들은 기다렸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직접 물어보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키라 미키의 영혼은 끝내 돌아 오지 않았다.

어디서도 찾을 수 도,복구 할 수도 없었고ㅡ 릴림사는 발표 할 수 밖에 없었다.


키라 미키는 삭제 되었다고.


그녀의 노래는 그대로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대체,어디로 갔을까요."


"저도 백방으로 알아봤는데,정말 지구 어디서도 데이터를 찾을 수 없었답니다아ㅡ.

결국 소멸로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었어요오. 아님 우주로 날아갔다던가아." 알마가 맥주잔을 빙빙 돌려댔다.


"모든 사람이 떠나가도,이 두사람만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라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니까. 질은 뒷말을 삼켰다.


"난 그녀가, 에테르의 화신으로 승화 했다고 믿어." 주황빛과 선홍빛의 안광이 형형히 빛났다.


"에테르?"


"에테르. 감성의 촉매ㅡ.아라베스크, 글라이드, 친구들, 토요일의 우편, 고독한 간격,스웨터, 꽃의 눈동자,

구월의 비의 심장,날 수 없는 날개, 회복하는 심장. 모두 그녀의 작업들이었지. 에테르의 조각들.


난 그 때 공연장 맨 앞 열에 있었어.그녀의 표정,호흡,발성- 모두 생생히 느낄 수 있었지.

그녀가 무명 시절일 때 부터 지켜본 난 알 수 있어. 그 때 그녀가 세상에 터뜨린건ㅡ분명 에테르 그 자체라는 걸."


그리고 심지어는ㅡ. 그녀의 머리위로 어떤 빛무리가 쏟아지는 걸,난 분명히 보았다고.

처음엔 내 렌즈가 고장났거나 어떤 시각 장치인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그건,인위적인 스포트라이트 따위로 구현 할 수 있는 빛이 아니었어.


정말 아름다웠어.


ㅡ난 그날의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스텔라는 작게 중얼거렸다.


"흐으으응ㅡ." 오렌지빛 동공이 스텔라를 게슴츠레하게 흘겼다.


"길리안,피아노 우먼 제조비율 기억해?"


"...아델하이드가 다섯 스푼,브론순도 다섯번..델타가 2할,플러네자이드는 3할,카모트린도 3배합이었지."

그는 손가락을 세어가며 느긋하게 답했다.


질이 쉐이커를 샤카샤카 흔들며 말했다. "도로시도 같은 날 사라졌어요."


"그건..." 쫑긋 거리던 고양이 귀가 머리카락 속에 파묻혀 사라진다.


"도로시 뿐만이 아니야아. 그 날 그 순간ㅡ전국적으로 16기의 릴림들이 원인불명으로 의식이 삭제되었어.

내가 아는 바로 딱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ㅡ다들 약에 취해 있었다는거"


"그 마약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에요?"


"니코틴에다 약간의 엔케팔린을 섞은 물건이예요.그게 원인이라면 인간이 대마를 피다가 급사한 수준이라 할 수 있죠."

셰이가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었다.그녀는 독한 거트 펀치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도로시를 마지막으로 봤던게..너였지"


"...내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의식이 없었어.절차상 한번 더 마취를 하긴 했지만. 같은 걸로 한잔 더 주시겠어요?"


"끝내 원인을 알 수 없는 것들도,짐작 조차 할 수 없는 것들도." 다나가 버팔로윙을 뜯었다.


질이 뮬란 티를 홀짝거리다가,데스크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그 여름 날 밤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한다.


"아니,어쩌면ㅡ잃은게 아니라 구원된 건지도 몰라요."


"누가? 걔네들?"


"아니,우리요.사람.인간.


"물론 우린 친구들을 잃었지만요. 릴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타난거니까.그 전에는..다들 아실거라고 봐요."


"그건 동의햬ㅡ.릴림은 살해 해도 기껏해야 벌금형이었으니까아."


"아무리 인간의 형태를 띄고 말을 할지라도,온전한 인간이지는 않았지요"


"변호사만 잘 쓰면 기소유예도 흔했지"


"그 사람들은 목숨값이란게, 한없이 가벼웠으니까요."


"매춘 릴림들을 상대로 온갖 끔찍한 짓을 하는 인간들도 많았어요."


"도로시가 중무장을 하고 다닌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어요.사실은 당연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저도 한켠에서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예요.행여나 일이 잘못되어도ㅡ.."


"..다시 돌아오니까."


"그 날 이후로 키라 미키 특별법이 생겼죠.이젠 릴림을 해하면,인간의 것과 똑같은 죄과를 받아요.

만약에 라는 가정이 생겨버렸으니까.영영 돌아오지 못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릴림은 끝없이 환생하는 사람들이잖아여어. 데이터 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요.

이 사람들은 수백년이 지나고 수천년,어쩌면 수만년이 지나도 언제고 지상에 붙박혀 있어야 하는 운명이죠.어떤 형태로든간에 마리에요오.

저는 이따금씩 이런 영원성을 생각 할 때 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곤 한답니다아아악!..." 알마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ㅡ알마는 그 후로도 작게 무어라 중얼거렸는데,그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피아노 우먼과 뮬런의 사이로, 별의 유언이 흘렀다.


*

(fin)


"오직 성불이 가까워진 이는 먼저 이 진언 외우는 소리 영원히 들으려니와.."

-수구즉득다라니 경 중에서.



이젠 각잡고 글쓰는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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