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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구당서 - 울지경덕전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15 18: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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尉遲敬德,朔州善陽人。大業末,從軍於高陽,討捕群賊,以武勇稱,累授朝散大夫。劉武周起,以為偏將,與宋金剛南侵,陷晉、澮二州。敬德深入,至夏縣,應接呂崇茂,襲破永安王孝基,執獨孤懷恩、唐儉等。武德三年,太宗討武周於柏壁,武周令敬德與宋金剛來拒王師於介休金剛戰敗,奔於突厥德收其餘眾,城守介休。

울지경덕尉遲敬德은 삭주朔州 선양善陽 사람이다. 대업大業 말에 고양高陽에서 종군하며 도적의 무리를 토벌하여 사로잡아 무용을 칭찬받음으로서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제수되었다. 유무주劉武周가 봉기하자 편장으로서 송금강과 더불어 남쪽을 침공하여 진晉과 회澮 2개 주를 함락하였다. 울지경덕은 깊숙히 들어가 하현夏縣에 이르러 여숭무呂崇茂와 응접하여, 영안왕永安王 이효기李孝基를 기습해 독고회은獨孤懷恩, 당검唐儉 등을 사로 잡았다. 무덕 3년에 태종太宗이 백벽柏壁에서 유무주를 토벌하자 유무주는 울지경덕과 송금강으로 하여금 와서 개휴에서 태종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송금강은 전투에서 패하여 돌궐突厥로 달아났고 울지경덕은 남은 무리를 수습하여 개휴를 지켰다.

太宗遣任城王道宗、宇文士及往諭之。敬德與尋相舉城來降。太宗大悅,賜以曲宴,引為右一府統軍,從擊王世充於東都。既而尋相與武周下降將皆叛,諸將疑敬德必叛,囚於軍中。行台左僕射屈突通、尚書殷開山咸言:「敬德初歸國家,情志未附。此人勇健非常,縶之又久,既被猜貳,怨望必生。留之恐貽後悔,請即殺之。」太宗曰:「寡人所見,有異於此。敬德若懷翻背之計,豈在尋相之後耶?」遽命釋之,引入臥內,賜以金寶,謂曰:「丈夫以意氣相期,勿以小疑介意。寡人終不聽讒言以害忠良,公宜體之。必應欲去,今以此物相資,表一時共事之情也。」是日,因從獵於榆窠,遇王世充領步騎數萬來戰世充驍將單雄信領騎直趨太宗,敬德躍馬大呼,橫刺雄信墜馬。賊徒稍卻,敬德翼太宗以出賊圍。更率騎兵與世充交戰,數合,其眾大潰,擒偽將陳智略,獲排槊兵六千人。太宗謂敬德曰:「比眾人證公必叛,天誘我意,獨保明之,福善有征,何相報之速也!」 特賜金銀一篋,此後恩眄日隆。

태종이 임성왕任城王 이도종道宗과 우문사급宇文士及을 보내어 울지경덕을 회유하였다. 이에 울지경덕과 심상尋相은 성을 들어 투항했다.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며 우일부통군右一府統軍으로 삼아 동도東都(낙양)에서 왕세충王世充을 공격하는데 따르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상과 유무주 휘하에서 항복한 장수들이 모두 배반하자 제장들은 울지경덕도 반드시 배반할거라 의심하여 군중에 가두었다. 행대좌복야行台左僕射 굴돌통屈突通과 상서尚書 은개산殷開山이 모두 말하길 : 「울지경덕은 처음 나라에 귀순하였지만 마음과 뜻은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의 용맹과 건실함은 범상치 않은데, 잡아 맨 것이 또한 오래되었으니 이미 의심을 품고 원망하는 마음이 반드시 생겼을 것입니다. 지체하다 훗날 과오를 남길까 두려우니, 청컨데 그를 죽이십시오.」 하였다. 이에 태종이 말하길 : 「과인의 소견은 이와 다르오. 울지경덕이 만약 배신할 계획을 품었다면 어찌 심상보다 나중에 하겠소?」 하고는 급히 명하여 그를 풀어주고 침실 안으로 불러들여 금과 보물을 하사하며 일렀다 : 「장부는 뜻과 기개로서 서로 기대는 법이니 조금도 의심하거나 개의치 마시오. 과인은 끝내 참소하는 말을 듣고 충성스럽고 어진 자를 해치지 않을 것이니 공은 마땅히 체득하시오. 반드시 떠나고자 한다면 지금 이 물건들로 도와 한 때나마 같이 일한 뜻을 내보이고 싶소. 이 날, 유과榆窠에서 사냥에 따라 나서는데 왕세충이 보기步騎 수 만명을 이끌고 와서 싸웠다. 왕세충 휘하의 효장驍將 단웅신(선웅신)單雄信이 기병을 거느리고 직접 태종을 추격하였는데, 울지경덕은 말을 달려 크게 외치며 단웅신의 옆을 찔러 떨어뜨렸다. 적군이 차츰 물러서자 울지경덕은 태종을 도와 적의 포위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기병을 통솔하여 왕세충과 교전하여 수 합을 싸워 그의 군사를 크게 무너뜨리고 위장偽將 진지략陳智略을 사로잡고 방패, 창, 병사 6천명을 사로 잡았다. 태종이 울지경덕에게 말했다 : 「많은 사람들은이 공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라 증언하였으나 나 홀로만이 결백한 것을 믿었는데, 선량함이 복을 부른다지만 어찌 이리도 빨리 보답하시오!」 그리고는 특별히 금은 1상자를 하사하고 이후로 은혜가 더해졌다.

敬德善解避槊,每單騎入賊陣,賊槊攢刺,終不能傷,又能奪取賊槊,還以刺之。是日,出入重圍,往返無礙。齊王元吉亦善馬槊,聞而輕之,欲親自試,命去槊刃,以竿相刺。敬德曰:「縱使加刃,終不能傷。請勿除之,敬德槊謹當卻刃。」元吉竟不能中。太宗問曰:「奪槊、避槊,何者難易?」對曰:「奪槊難。」乃命敬德奪元吉槊。元吉執槊躍馬,志在刺之,敬德俄頃三奪其槊。元吉素驍勇,雖相嘆異,甚以為恥。及竇建德營於板渚,太宗將挑戰,先伏李勣、程知節、秦叔寶等兵。太宗持弓矢,敬德執槊,造建德壘下大呼致師。賊眾大驚擾,出兵數千騎,太宗逡巡漸卻,前後射殺數人,敬德所殺亦十數人,遂引賊以入伏內。於是與勣等奮擊,大破之。王世充兄子偽代王琬,使於建德軍中,乘隋煬帝所御驄馬,鎧甲甚鮮,迥出軍前以誇眾。太宗曰:「彼之所乘,真良馬也。」敬德請往取之,乃與高甑生、梁建方三騎直入賊軍,擒琬,引其馬以歸,賊眾無敢當者。又從討劉黑闥於臨洺,黑闥軍來襲李世勣,太宗勒兵掩賊,復以救之。既而黑闥眾至,其軍四合,敬德率壯士犯圍而入,大破賊陣,太宗與江夏王道宗乘之以出。又從破徐圓朗。累有戰功,授秦王府左二副護軍。

울지경덕은 창을 피하는 것을 잘하여 매번 단기로 적진으로 들어갔는데, 적들이 창으로 도려내고 찌르려 해도 결국 해칠 수 없었고, 또한 능히 적의 창을 빼앗아 도리어 적을 찔렀다. 이 날 겹겹의 포위망으로 들어가 나오는데, 갔다가 돌아오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제왕齊王 이원길元吉 또한 마삭馬槊을 잘 다루었는데 이를 듣고는 가벼이 여기며 직접 시험해 보고자 창의 날을 빼고 막대기로 서로 찌르라 명하였다. 울지경덕이 말했다 : 「설령 날을 더하더라도 능히 상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컨데 창날을 빼지 마시고, 저 경덕은 창에서 삼가 날을 떼겠습니다.」 이원길은 끝내 적중시키지 못했다. 태종이 묻길 : 「창을 빼앗는 것과 창을 피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어렵고 쉽소?」 하자 울지경덕이 대답하길 : 「창을 빼앗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였다. 이에 울지경덕에게 이원길의 창을 빼앗게 하였다. 이원길이 창을 잡고 말을 달려오니, 그 뜻이 찌르는데 있었는데, 울지경덕은 잠깐 사이에 그의 창을 3번 빼앗았다. 이원길은 본래 날래고 용맹하여 탄복하며 기이하게 여겼으나 심히 수치스럽게 여겼다. 두건덕竇建德이 판저板渚에 이르러 진영을 세우자 태종은 장차 싸움을 걸며 미리 이적李勣, 정지절程知節, 진숙보秦叔寶 등의 병력을 매복시켰다. 태종은 활과 화살을 쥐고, 울지경덕은 창을 잡고 두건덕의 영루 아래에서 군대가 왔다고 크게 외쳤다. 적군이 크게 놀라 동요하며 병력 수천 기를 내보냈는데 태종은 머뭇거리며 점차 물러나면서 전후로 몇 명을 쏘아 죽였고 울지경덕 또한 10여 명을 죽이니, 마침내 적들이 매복해 있는 곳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이적 등이 분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왕세충의 형의 아들인 대왕代王 왕완王琬이 사신으로 두건덕의 군중에 갔는데, 수양제隋煬帝의 총마驄馬를 탔으며 갑옷이 매우 선명하게 빛나서 홀로 군영 앞으로 나와 군사들에게 이를 자랑하였다. 태종이 말하길 : 「저 자가 타고 있는 말이 참으로 좋구나.」 하자 울지경덕이 청하여 가서 빼앗게 해달라 하니, 이내 고증생高甑生, 양건방梁建方과 3명이서 적진으로 들어가 왕완을 사로잡고 그의 말을 빼앗아 돌아오는데 적들이 감히 당해내질 못하였다. 또한 종군하여 유흑달劉黑闥을 임명臨洺에서 토벌하였는데, 유흑달의 군사가 이세적李世勣을 내습하니 태종이 병력을 정돈하여 적을 엄습해 구원하였다. 이윽고 유흑달의 군대가 이르렀는데, 그의 군사가 사면을 포위하자 울지경덕이 장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넘어 들어와 적진을 대파하고 태종과 강하왕江夏王 이도종을 탈출시켰다. 또 종군하여 서원랑徐圓朗을 격파했다. 여러 전공이 있어 진왕부의 좌이부호군左二副護軍에 제수되었다.

隱太子、巢剌王元吉將謀害太宗,密緻書以招敬德曰:「願迂長者之眷,敦布衣之交,幸副所望也。」仍贈以金銀器物一車。敬德辭曰:「敬德起自幽賤,逢遇隋亡,天下土崩,竄身無所,久淪逆地,罪不容誅。實荷秦王惠以生命,今又隸名籓邸,唯當以身報恩。於殿下無功,不敢謬當重賜。若私許殿下,便是二心,徇利忘忠,殿下亦何所用?」建成怒,是後遂絕。敬德尋以啟聞,太宗曰:「公之素心,郁如山嶽,積金至斗,知公情不可移。送來但取,寧須慮也。若不然,恐公身不安。且知彼陰計,足為良策。」元吉等深忌敬德,令壯士往刺之。敬德知其計,乃重門洞開,安臥不動,賊頻至其庭,終不敢入元吉乃譖敬德於高祖,下詔獄訊驗,將殺之,太宗固諫得釋。

은태자隱太子와 소랄왕巢剌王 이원길이 장차 태종을 모해하기 위해 은밀히 서신을 보내어 울지경덕에게 말하길 : 「원컨데 멀리서 어르신의 보살핌을 받으며 포의의 교분에 힘쓰고자 하니 바라는 바를 나눈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하고는 이어 금은으로 된 기물 한 수레를 보냈다. 울지경덕이 사양하며 말했다 : 「저 경덕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으로서 수나라가 망하고 천하가 토붕와해될 때 스스로 일어나 몸을 숨기는 것 없이 오랫동안 반역의 땅에 빠져 그 죄가 주살되도 용납되지 못합니다. 실로 진왕秦王께서 은혜로서 목숨을 살려주시고 지금 또한 번저에 이름이 속해 있으니 마땅히 이 몸은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전하께는 공을 세운 것이 없으니, 감히 속여 무거운 하사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사사로이 전하와 약속한다면 이는 곧 두 마음을 품은 것이며 이익을 좇아 충성을 잊은 것이니 전하께서도 또한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에 이건성建成은 노하여 이후 마침내 절교하였다. 울지경덕이 이윽고 여쭈어 묻자 태종이 말하길 : 「공은 평소에 마음이 산악과 같이 울창하여 금이 쌓여서 북두칠성에 이른다 해도 공의 뜻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소. 보내온 것을 취한다 해도 어찌 모름지기 우려가 되겠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공의 신변이 안전하지 않을까 두렵소. 또한 저들의 은밀한 계략을 알고 있으니 좋은 계책을 세우기 충분하오.」 하였다. 이원길 등이 울지경덕을 매우 꺼려하여 장사를 시켜 가서 찌르게 하였다. 울지경덕은 그 계획을 알고는 중문을 열어놓고 편안히 누워 움직이지 않았는데, 적이 빈번히 그의 정원에 왔지만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이원길이 이에 고조高祖에게 울지경덕을 참소하자 조서를 내려 하옥하고는 심문하여 장차 죽이려 하였는데, 태종이 거듭 간하여 석방될 수 있었다.

會突厥侵擾烏城,建成舉元吉為將,密謀請太宗同送於昆明池,將加屠害。敬德聞其謀,與長孫無忌遽啟太宗曰:「大王若不速正之,則恐被其所害,社稷危矣。」太宗嘆曰:「今二宮離阻骨肉,滅棄君親,危亡之機,共所知委。寡人雖深被猜忌,禍在須臾,然同氣之情,終所未忍。欲待其先起,然後以義討之,公意以為何如?」敬德曰:「人情畏死,眾人以死奉王,此天授也。若天與不取,反受其咎。雖存仁愛之小情,忘社稷之大計,禍至而不恐,將亡而自安,失人臣臨難不避之節,乏先賢大義滅親之事,非所聞也。以臣愚誠,請先誅之。王若不從,敬德言請奔逃亡命,不能交手受戮。且因敗成功,明賢之高見;轉禍為福,智士之先機。敬德今若逃亡,無忌亦欲同去。」太宗猶豫未決,無忌曰:「王今不從敬德之言,必知敬德等非王所有。事今敗矣,其若之何?」太宗曰:「寡人所言,未可全棄,公更圖之。」敬德曰:「王今處事有疑,非智;臨難不決,非勇。王縱不從敬德言,請自決計,其如家國何?其如身命何?且在外勇士八百餘人,今悉入宮,控弦被甲,事勢已就,王何得辭!」敬德又與侯君集日夜進勸,然後計定。

때마침 돌궐이 오성烏城을 침공하여 어지럽히자 이건성은 이원길을 장수로 추천하였는데 청하여 태종을 곤명지昆明池에서 전송하게 하여 장차 죽이려는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 울지경덕이 그 모략을 듣고는 장손무기와 함께 급히 태종에게 여쭈었다 : 「대왕께서 만약 신속히 이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곧 해를 당하여 사직이 위태로워질까 두렵습니다.」 이에 태종이 탄식하길 : 「지금 이궁二宮은 골육을 떨어뜨려 막고 임금과 어버이를 죽여 없애려 하니 위망의 기미가 같이 쌓인 것을 알 수 있소. 과인은 비록 저들이 매우 시기하여 잠깐 재앙이 있었으나 동기의 정 때문에 차마 어찌할 수 없었소. 저들이 먼저 일어나기를 기다린 연후에 의로서 토벌하려 하는데 공들의 뜻은 어떠하오?」 하니, 울지경덕이 말했다 : 「사람의 마음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죽음으로서 왕을 받드니 이는 하늘이 내린 것입니다. 만약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됩니다. 비록 인애의 작은 정이 있어도 사직의 대계를 잃어 그 화가 이르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장차 망하는데도 스스로 안전하다 여기며 신하人臣를 잃고 환난에 임하여 절개를 피하지 못했다거나 선현이 모자라는데 대의멸친의 일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정성으로 청컨데 먼저 그들을 베십시오. 왕께서 만일 제 말을 좇지 않으신다면, 청컨데 저 경덕이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여 손이 엇갈려 죽임을 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또한 패배로 인한 성공은 현명한 사람의 고견 때문이고 화가 바뀌어 복이 되는 것은 지혜로운 선비가 기미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저 경덕이 만약 도망간다면 장손무기 또한 같이 갈 것입니다.」 그래도 태종이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장손무기가 말하길 : 「왕께서 지금 울지경덕의 말을 좇지 않으신다면 필시 울지경덕 등은 왕을 위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일이 지금 실패하려 하는데 장차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였다. 태종이 말했다 : 「과인이 말한 바는 전부를 버린 바가 아니니 공들은 다시 도모하시오.」 울지경덕이 말했다 : 「왕께서 지금 일을 처리하는데 의심하시니 이는 지智가 아니며 환난에 임하여 결단을 내리시지 못하니 이는 용勇이 아닙니다. 왕께서 설령 이 경덕의 말을 좇지 않으시고 스스로 청하여 계책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 집안과 나라를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 몸과 목숨을 어찌 하시겠습니까? 또한 바깥에 용사 800여 명이 있는데, 지금 모두 입궁하여 갑옷을 입고 시위를 당기고 있어 사세가 이미 진척되고 있는데 왕께선 어찌 사양하려 하십니까!」 울지경덕이 또한 후군집侯君集과 함께 밤낮으로 나아가 권한 연후에야 계책이 정해졌다.

時房玄齡、杜如晦皆被高祖斥出秦府,不得復入。太宗令長孫無忌密召之,玄齡等報曰:「有敕不許更事王,今若私謁,必至誅滅,不敢奉命。」太宗大怒,謂敬德曰:「玄齡、如晦豈背我耶?」取所佩刀授敬德曰:「公且往,觀其無來心,可並斬其首持來也。」敬德又與無忌喻曰:「王已決計剋日平賊,公宜即入籌之。我等四人不宜群行在道。」於是玄齡、如晦著道士服隨無忌入,敬德別道亦至。

이때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는 모두 고조에게 진부에서 척출되어 다시 들어오지 못했다. 태종이 장손무기로 하여금 은밀히 그들을 부르니, 방현령 등이 보고하기를 : 「칙명이 있어 다시는 왕을 섬기지 말라하였는데. 지금 만약 사사로이 알현한다면 반드시 주멸될 것이니,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크게 노하여 울지경덕에게 일렀다 : 「방현령과 두여회가 어찌 나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는 차고있던 칼을 울지경덕에게 주며 말했다 : 「공이 또 가서 그들이 올 마음이 없어 보이면 모두 참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지고 와도 좋소.」 울지경덕이 또 장손무기와 깨우치며 말하길 : 「왕께서 이미 계책과 날을 정하고 적을 평정하려 하니 공께선 마땅히 곧 들어가십시오. 우리 4명은 의당 무리지어 갈 수 없습니다.」 이에 방현령과 두여회는 도사 옷을 입고 장손무기를 따라 들어왔으며, 울지경덕은 다른 길로 또한 도착했다.

六月四日,建成既死,敬德領七十騎躡踵繼至,元吉走馬東奔,左右射之墜馬。太宗所乘馬又逸於林下,橫被所繣,墜不能興。元吉遽來奪弓,垂欲相扼,敬德躍馬叱之,於是步走,欲歸武德殿,敬德奔逐射殺之。其宮府諸將薛萬徹、謝叔方、馮立等率兵大至,屯於玄武門,殺屯營將軍。敬德持建成、元吉首以示之,宮府兵遂散。是時,高祖泛舟於海池。太宗命敬德侍衛高祖。敬德擐甲持矛,直至高祖所。高祖大驚,問曰:「今日作亂是誰?卿來此何也?」對曰:「秦王以太子、齊王作亂,舉兵誅之,恐陛下驚動,遣臣來宿衛。」高祖意乃安。南衙、北門兵馬及二宮左右猶相拒戰,敬德奏請降手敕,令諸軍兵並受秦王處分,於是內外遂定。高祖勞敬德曰:「卿於國有安社稷之功。」賜珍物甚眾。太宗升春宮,授太子左衛率。時議者以建成等左右百餘人,併合從坐籍沒,唯敬德執之不聽,曰:「為罪者二凶,今已誅訖,若更及支黨,非取安之策。」由是獲免。及論功,敬德與長孫無忌為第一,各賜絹萬匹;齊王府財幣器物,封其全邸,盡賜敬德。

6월 4일, 이건성은 이미 죽고 울지경덕은 70기를 거느리고 뒤쫓아 도달하였는데 이원길이 말을 달려 동쪽으로 달아나니, 좌우에서 활을 쏴 말에서 떨어뜨렸다. 태종이 탄 말을 숲 아래에서 놓쳤는데, 걸려서 떨쳐 일어날 수 없었다. 이원길이 갑자기 와서는 활을 빼앗아 늘어뜨리고는 목을 졸랐는데, 울지경덕이 말을 타고 달려와 꾸짖자 이원길은 걸어서 달아나 무덕전武德殿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울지경덕이 쫓아가 활을 쏴 죽였다. 그때 궁부에는 설만철薛萬徹, 사숙방, 풍맆馮立 등이 거느리는 병력이 많았는데 현무문玄武門에 주둔하면서 둔영의 장군을 죽였다. 울지경덕이 이건성과 이원길의 머리를 가지고 가 보여주자 궁부의 병사들이 마침내 흩어졌다. 이떄 고조는 해지海池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태종은 울지경덕에게 명하여 고조를 시위하게 하였다. 울지경덕은 갑옷을 입고 창을 쥐고는 곧바로 고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고조가 크게 놀라며 묻기를 : 「오늘의 작란은 누구의 짓이냐? 경은 어찌하여 왔는가?」 하자 울지경덕이 답하길 : 「진왕이 태자와 제왕이 작란하자 병사를 일으켜 주살하였는데, 폐하를 놀래켜 움직이게할까 두려워 신을 보내 숙위하게 하였습니다.」 하니 고조가 이내 안심하였다. 남아南衙와 북문北門의 병마 및 이궁의 좌우가 여전히 서로 막고 싸우고 있다며 울지경덕이 수칙을 내려줄 것을 주청하여 여러 군사들로 하여금 함께 진왕의 처분을 받게 하자 내외가 마침내 안정되었다. 고조가 울지경덕을 위로하며 말하길 : 「경에게는 나라의 사직을 안정시킨 공이 있다.」 하며 진귀한 보물을 많이 하사하였다. 태종이 춘궁春宮에 오르자 태자좌위솔太子左衛率에 제수되었다. 이때 의논하는 자들이 이건성 등의 좌우 100여 명을 모아서 연좌해 전몰하려 하였으나 오직 울지경덕만이 듣지 않고 말하길 : 「죄가 있는 자는 흉악한 두 사람이고 지금은 이미 주살되었는데 만약 곁가지의 무리들에게까지 더욱 죄가 미친다면 이는 안정을 꾀하는 계책이 아닙니다. 」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면되었다. 공을 논하니, 울지경덕과 장손무기가 제일이었으므로 각각 비단 1만 필과 제왕부의 재물과 기물을 하사받았고 그들이 집에 온전히 봉해놓은 것은 모두 울지경덕에게 하사되었다.

貞觀元年,拜右武候大將軍,賜爵吳國公,與長孫無忌、房玄齡、杜如晦四人並食實封千三百戶。會突厥來入寇,授涇州道行軍總管以擊之。賊至涇陽,敬德輕騎與之挑戰,殺其名將,賊遂敗。敬德好訐直,負其功,每見無忌、玄齡、如晦等短長,必面折廷辯,由是與執政不平。三年,出為襄州都督。八年,累遷同州刺史。嘗侍宴慶善宮,時有班在其上者,敬德怒曰:「汝有何功,合坐我上?」任城王道宗次其下,因解喻之。敬德勃然,拳毆道宗目,幾至眇。太宗不懌而罷,謂敬德曰:「朕覽漢史,見高祖功臣獲全者少,意常尤之。及居大位以來,常欲保全功臣,令子孫無絕。然卿居官輒犯憲法,方知韓、彭夷戮,非漢祖之愆。國家大事,唯賞與罰,非分之恩,不可數行,勉自修飭,無貽後悔也。」十一年,封建功臣為代襲刺史,冊拜敬德宣州刺史,改封鄂國公。後歷鄜、夏二州都督。十七年,抗表乞骸骨,授開府儀同三司,令朝朔望。尋與長孫無忌等二十四人圖形於凌煙閣。

정관 원년에 우무후대장군右武候大將軍에 배수되었고 오국공吳國公의 작위를 하사받았으며 장손무기, 방현령, 두여회와 함께 4명 모두 식실봉이 1300호였다. 때마침 돌궐이 침입하자 경주도행군총관涇州道行軍總管에 제수되어 영격하였다. 적이 경양涇陽에 이르자 울지경덕은 경기병으로 싸움을 걸어 그들의 명장을 죽이자 적이 마침내 패하였다. 울지경덕은 남의 단점을 지적하길 좋아하며 자기 공을 자부하였는데, 매번 장손무기, 방현령, 두여회 등의 단점과 장점을 보고는 반드시 면전에서 꾸짖고 조정에서 변론하였기에 이 때문에 그들과 정무를 맡는 것을 불평하였다. 정관 3년에 양주도독襄州都督으로 나갔다. 정관 8년, 동주자사同州刺史로 누천되었다. 일찍이 경선궁慶善宮에서 배석하였는데, 이때 반열에서 그보다 위에 사람이 앉자 울지경덕이 노하여 말했다 : 「너는 어떤 공을 세웠기에 나보다 상석에 합석해 앉는 것이냐?」 임성왕任城王 이도종이 그 다음 아래였는데 이를 타일렀다. 울지경덕은 이에 노하여 주먹으로 이도종의 눈을 때려 거의 실명하기에 이르렀다. 태종은 이를 좋아하지 안항 연회를 파하고는 울지경덕에게 이르길 : 「짐이 한나라의 역사를 보면서 고조가 공신들을 잡아 온전한 자가 드물었던 것을 보고 속으로 항상 허물이라 여겼소. 제위에 머물은 이래 항상 공신들을 보전하면서 자손들이 끊이지 않도록 명하였소. 그러나 경이 관직이 있으면서 번번히 국법을 어기니 한신과 팽월이 죽임을 당한 것은 한 고조의 허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소. 국가의 대사는 상과 벌 뿐이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은혜는 자주 행해서는 안되니 부지런히 스스로를 닦고 삼가하여 후회를 남기지 마시오.」 하였다. 정관 11년, 공신들을 봉건하여 자사를 대습하게 하였는데 울지경덕을 선주자사宣州刺史에 책배하고 악국공鄂國公으로 고쳐 봉하였다. 후에 부鄜, 하夏 2개 주의 도독을 지냈다. 정관 17년, 표를 올려 해골骸骨할 것을 빌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제수하여 보름과 초하루 때만 조회하도록 명하였다. 이윽고 장손무기 등과 함께 능연각에 24명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及太宗將征高麗,敬德奏言:「車駕若自往遼左,皇太子又在定州,東西二京,府庫所在,雖有鎮守,終是空虛。遼東路遙,恐有玄感之變。且邊隅小國,不足親勞萬乘,伏請委之良將,自可應時摧滅。」太宗不納,令以本官行太常卿,為左一馬軍總管,從破高麗於駐蹕山。軍還,依舊致仕。敬德末年篤信仙方,飛煉金石,服食雲母粉,穿築池台,崇飾羅綺,嘗奏清商樂以自奉養,不與外人交通,凡十六年。顯慶三年,高宗以敬德功,追贈其父為幽州都督。其年薨,年七十四。高宗為之舉哀,廢朝三日,令京官五品以上及朝集使赴宅哭,冊贈司徒、并州都督,謚曰忠武,賜東園秘器,陪葬於昭陵。子寶琳嗣,官至衛尉卿。

태종이 장차 고려高麗를 정벌하려할 떄 울지경덕이 아뢰기를 : 「거가車駕가 몸소 요좌遼左로 간다면 황태자는 또한 정주定州에 있게 되는데, 동서의 두 도읍은 부고府庫가 있는 곳으로 비록 진수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공허하게 될 것입니다. 요동의 길은 머니 양현감楊玄感의 변란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또한 변우의 소국은 만승萬乘을 친히 수고롭게 하기에는 족하지 않으니, 엎드려 청컨데 양장良將에게 맡긴다면 때가 되면 절로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태종은 받아들이지 않고 명하여 본관행태상경本官行太常卿, 좌일마군총관左左一馬軍總管으로 삼으니, 종군하여 주필산駐蹕山에서 고려를 크게 격파했다. 군사가 돌아오자 예전처럼 치사하였다. 울지경덕은 말년에 신선의 방술을 독실히 믿으며 금석을 연마하고 운모雲母를 복식하며 구멍을 뚫고 연못을 만들며 돈대를 쌓아 비단을 둘러 단장하는 것을 숭상하였는데, 일찍이 청상악清商樂을 연주하며 스스로를 봉양하고 바깥 사람들과 교유하며 통하지 않은 것이 무릇 16년이었다. 현경 3년에 고종高宗이 울지경덕의 공으로 그의 아비를 유주도독幽州都督에 추증하였다. 그 해에 훙薨하니, 74세였다. 고종은 거애舉哀하며 3일간 조회를 패하고 경관의 5품 이상 및 조집사朝集使로 하여금 그의 저택으로 가서 곡하게 하였으며, 사도司徒, 병주도독并州都督으로 책증하고 시호를 충무忠武라 하였으며 동쪽 동산의 비기를 하사하고 소릉昭陵에 배장하였다. 아들 울지보림尉遲寶琳이 후사를 이어 관직이 위위경衛尉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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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갤 보니까 울지경덕 이야기 하길래 올려봄. 일단 기록을 보면 딴건 몰라도 성격이 제법 좆같았음을 알 수 있음. 


당연하지만 울지경덕=을지문덕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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