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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모험가X힐러 백합 올리고 도망감

HA!데모크라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9.13 00:48:00
조회 3961 추천 36 댓글 13
														

모르는 사람과 파티를 짠다는 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에요. 준비부터 사냥하고 전리품 분배까지 하나도 제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다니까요. 대굴대굴대굴하고 시원스럽게 굴러가는 파티 어디 없을까요. 그러니까 포션은 다 자기 돈으로 사고, 전리품도 잘 양보해주고, 치유랑 축복도 잘 내려주는 그런 천사 같은 파티원 어디 없냔 말이에요.

왜 저는 항상 길드에 갈 때마다 헐떡거리면서 피투성이가 된 앞치마를 두르고 다니는 오크 성직자나(그게 성직자면 저는 수녀원장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요)토끼를 산 채로 잡아먹고 있는 트롤 주술사(트롤들은 산 것 밖에 먹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지만, 제발!)밖에 만날 수 없는 건데요? 저도 제대로 된 치유사를 파티원으로 가지고 싶다고요. 예쁘고 솜씨 좋고 욕심도 없는 그런 천사는 왜 제 앞에 나타나 주지 않는 건데요?

-라고 물었더니, 길드의 카운터 언니는 시원스럽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왜냐면 네 녀석이 방패도 제대로 못 다루는 초보 검사에다가 실적도 형편없고 거기에 욕심은 드럽게 많기 때문이지.”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요. 하기야 솜씨 좋은 치유사는 솜씨 좋은 검사한테 붙는 것이 상식이겠죠. 하지만 억울한 건 어쩔 수 없는 거 에요. 왜 세상은 저처럼 나약하고 연약하고 불행한 초보 검사한테 이리도 매정한 거죠? 저도 날로 먹는 쉬운 모험가 인생을 살고 싶단 말이에요.


“언니, 언니, 언니! 그러지 말고 좀 착하고 예쁘고 귀여운 치유사 한 명만 소개시켜 줘요오오-.”


그러자 카운터 언니는 실실거리면서 명부를 꺼내와 뒤적거리다가, 제 눈앞에 누군가의 프로필을 쫙 내밀었어요. 거기에 있는 건 초록피부, 무수한 뿔, 식칼만한 송곳니로 완전 무장하고 있는…. 공룡이네요. 공룡이었어요. 엄청 무섭게 생겼네요. 저렇게 생긴 모험가가 파티에 들어오면 저는 잠도 제대로 못잘 거 에요. 잡아먹힐까봐. 카운터 언니는 양피지에 쓰인 프로필을 흔들어대며 인적…아니 룡적사항을 줄줄이 늘어대기 시작했어요.


“아, 여기 있다. 검사 한명 구하고 있다는데 리자드맨 프리스티스야. 경력 200년차의 베테랑 치유사라는데 관심 있어?”


“싫어요! 절대 싫어!”


“와, 실적 좀 봐! 20인 동시부활에 성공한 프리스티스래. 이거 내가 알기론 대륙에서도 몇 명 없는 기록일걸? 40년 전에 드래곤도 잡은 적 있다는데? 넌 도룡뇽이나 잡아 본 적 있냐?”


“비늘 있는 거 무서워서 건드리지도 못하는데….”


“너 모험가 맞긴 하니?”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자 카운터 언니가 양피지를 돌돌 말아 제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해요. 시원스런 인상의 미인이고 넉살좋은 성격에 초보자들도 잘 상대해주는 언니지만 이번에는 정말 좋게 봐 줄 수가 없네요.


“예쁜 사람 아니면 싫단 말이에요.”


“어머 어머, 나는 그럼 좋겠구나? 대환영이겠구나!”


“언니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 에요?”


“이 미모에서 나온단다, 요것아. 나랑 파티 맺을래, 그럼?”


듣자하니 농담이겠지만, 카운터에 앉아있는 언니는 저래 뵈도 꽤 유명한 모험가였다는 모양이에요. 경력이 100년이 넘는 다크엘프니까 당연한 거려나. 몇 년 전에 한쪽 다리를 잃은 후로는 이렇게 저같은 초보 모험가들 상담이나 해주는 파티메이커로 전직했지만요.


“도대체 왜 그렇게 예쁜 거, 예쁜 거 노래를 부르니? 모험가들은 예뻐봤자 거기서 거기야. 조금만 같이 여행하면 볼 장 다 보는 거라고. 냄새나지, 머리는 떡지지, 생리 때 되면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나 하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으악!”


카운터 언니가 손을 뻗어 이마를 딱 튕겼어요. 엄청나게 아팠습니다. 역시 전직 모험가에요. 이건 뇌가 흔들렸어요. 두개골에 금이 갔을 겁니다. 골드 포션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 비늘달린 프리스티스 아가씨 한번 만나봐. 이 아가씨도 생긴 것 때문에 파티원이 잘 모이질 않나봐. 실력도 좋고 성격도 좋은데 뭐가 문제니?”


“리자드맨이잖아요. 공룡이잖아요. 무섭잖아요! 저 정도면 어디 몬스터보다 훨씬 강하게 생겼네! 프리스티스 맞아요? 어떻게 봐도 버서커인데!”


“생긴 것만 그렇지 리자드맨들은 꽤 신사적인 친구들인데. 너희 인간들이 아직 원숭이일 무렵부터 도시를 세우고 마법 공부하던 종족이란 말이야.”


“하지만 식인이 문화라는 소문도 있고.”


“그거 헛소문.”


“피를 마신다는 걸 즐긴다는 소문도 있고.”


“뱀파이어냐? 파충류가 왜 피를 마셔. 통째로 삼키면 삼켰지.”


“결정적으로 못생겼잖아요….”


“너 가끔 진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거 아니?”


어쨌든 카운터 언니는 반 강제적으로 저한테 계약서를 들이밀었고, 저는 울상이 되어서 끝까지 거부하다 결국 머리를 몇 번 쥐어박힌 뒤에야 사인을 했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번 모험에서 소득을 얻지 못하면 당장 방 빼야 할 신세라구요. 트롤이든 리자드맨이든 따라가서 전리품을 얻는 수밖에. 딱 한 번이에요. 한 번만 파티 맺고 그 다음엔 바로 계약 깨야지. 예쁘고 착하고 욕심 없는 다른 치유사를 찾아갈 거예요.


****


“계세요오오오-?”


모험가들 사이엔 처음 파티를 맺게 된 사람들끼리는 계약한 당일엔 반드시 술자리를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안 그러면 액이 낀다나 어쨌다나, 저는 그 풍습이 남자 모험가들이 여자 모험가들을 자연스럽게 주무를 수 있게 하는 핑계 아닌가 항상 의심하지만, 어쨌든 남들이 다 하니까 저도 하고 있어요. 액은 무서우니까.

저와 파티를 맺은 공룡 프리스티스 아가씨는 ‘황금 돌고래 여관’ 2층에 묵고 있다나 봐요. 꽤나 비싼 여관이에요. 역시 중견 여행자는 다르나 봐요. 장바구니에 육포 몇 조각과 싸구려 맥주를 담아온 저로서는 진짜 주눅 들 정도에요.

이것도 다 시련이겠지요. 저는 리자드맨, 아니 리자드우먼이 묵고 있는 문을 통통 두들겼습니다. 


“…들어오세요.”


조금 낮고 이질적인 악센트를 가진 목소리가 문 사이로 들려오자, 저는 쭈뼛거리면서 그 안으로 들어갔어요. 억지웃음, 세팅 완료. 억지인사, 세팅 완료. 억지악수, 세팅 완료. 최대한 빨리 술자리 끝내고 돌아가야지.

그리고 벽난로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초록빛의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


억지웃음, 억지인사, 억지악수, 머릿속에 생각해놨던 모든 절차가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렸어요.


예뻤으니까.


무지무지 에뻤거든요.


중요하니까 세 번 말할게요. 그 리자드맨 언니는 정말 정말 예뻤어요.


“처음 뵙네요, 후배님. 틀란스텍의 가호가 그대와 함께하길.”


틀란스텍은 리자드맨이 섬기는 공룡신이라던가 뭐라던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여름인데도 피어있는 벽난로의 장작들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신비스런 빛깔의 피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어요. 하늘색과 연두색이 절묘하게 섞인 피부는 파충류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게 빛납니다. 저 지금 굉장히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어요. 저는 왜 포유류인데도 피부가 이 모양일까요? 불공평하네요. 불공평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차분한 두 눈은 동공이 살짝 세로로 찢어져 있다는 걸 빼면 무척 온화하게 보였고, 그 아래는 작은 코와 살짝 다물린 입술이. 인간으로 치면 스물여섯 쯤 되보이는 대단한 미인이었어요. 귀 대신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것이 양 얼굴 옆에 돋아나 있었고 옅은 자주색 머리칼이 그 뒤로 흐르고 있었어요.

나긋나긋한 몸매는 길쭉길쭉, 매끈매끈, 늘씬늘씬. 가슴은 살짝 작은 것도 같지만 파충류니까요, 뭐.

아무튼 그 프리스티스 언니는 엄청나게 예뻤답니다. 도대체 이력서에 그려져 있던 그 공룡은 뭐죠? 도대체 어떤 화가를 고용했길래 그런 식으로 그린 겁니까? 무엇보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당신 왜 알몸입니까?


저는 입을 해 벌리고 멍청하고 한 10초 정도 위의 바보같은 감상을 늘어놓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등을 휙 돌려 벽을 바라보고 외쳤습니다. 


“으아, 죄송, 죄송, 죄송해요!”


“뭐가요?”


목소리도 예뻐! 아니, 그게 아니고. 


“그…옷을 벗고 계신 줄 몰라서요! 죄송해요!”


“들어오라고 한 건 난데….”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계속 등을 돌리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고 있자니, 뒤 쪽에서 알았다는 기색이 느껴졌어요. 프리스티스 언니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 후배님은 인간이라고 하셨죠. 죄송한 건 저네요. 인간들은 몸을 가리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하지요.”


“으, 응, 그래요. 옷을 안 입고 계셔서 좀 놀랐어요.”


“금방 입을게요. 미안해요, 아가씨. 우리는 변온동물이다보니 옷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되질 않아요. 그래서 밤에 정신을 차리려면 이렇게 벗고 벽난로 앞에 있어야 하지요.”


“네! 영광…, 아니 유감이에요! 정말 슬프네요!”


“별로 슬프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내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 저는 머리를 세게 한방 때렸어요. 눈앞에 별이 돌아다니네요. 세상에, 동성 프리스티스의 알몸을 보고 흥분한 여검사라니 정말 쓰레기에요. 당장 감옥에 집어넣어도 할 말이 없어요. 성직자의 알몸을 보고 흥분하다니 불경죄라구요. 벼락 맞아 죽어도 변호사를 부를 수가 없어요.


등 뒤에서 사락 사락,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요. 가느다란 팔다리가 얇은 천들을 통과하는 그 소리는 묘하게 섹시했습니다.


“다 입었어요, 후배님. 이제 등 돌려도 좋아요.”


고장난 태엽인형처럼 삐꺽거리면서 얼굴을 돌리니, 와오, 신비로운 미녀가 제 눈앞에 강림해 있었답니다. 알몸도 좋지…아니, 뭐, 괜찮았지만, 성직자 로브도 엄청나게 잘 어울리네요. 옷에 보온기능이 없어서 그런지 꽤 노출이 많은 편이어서, 로브라기보단 드레스처럼도 보이네요.

얼굴을 갸웃, 하는 이국적인 미인이 약간의 호기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여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후배님.”


저는 얼굴이 빨개진 것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애쓰면서 손에 든 광주리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선배님! 고기! 고기에요! 고기 좋아하시죠?” 


“아아, 고기…? 고마워요, 후배님. 파티를 맺는 날의 대접이었나요?”


“네? 아, 맞아요, 대접. 대접 맞아요.”


“아까부터 자주 되물으시는데 혹시 귀가 안 좋으신가요? 치료라도….”


“아뇨 아뇨 아뇨! 귀 완전 멀쩡해요!”


고개를 붕붕 저으며 손을 흔드니, 프리스티스 언니를 살포시 웃네요. 우와. 엄청 예쁘다. 또 입이 멍청하게 열리는 걸 막으려고 손을 들어올려 입을 막았어요. 리자드맨이란 종족은 정말 이상하네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인간이 먹는 음식은 잘 몰라서, 이것저것 사놓긴 했지만 같이 먹어요.”


저는 방금 만든 싸구려좀비처럼 뻣뻣이 걸어서 그녀가 안내한 식탁으로 향해요. 식탁 너머에서 황금빛을 띠는 눈이 차분하게 저를 처다보니 심장이 촐싹거리며 뛰기 시작하네요.


“인간이랑 파티를 맺어본 건 처음이에요. 그동안은 주로 장생종들과 맺었거든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으어, 생긴 것만 훔쳐보다가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저렇게 예쁜 사람이 틀린 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일단 동의하고 봐야겠어요.


“지당…? 어디가요…?”


틀렸나봐-!


“아뇨! 말이 헛나왔어요!”


“그래요…. 아무튼, 이렇게 성실해 보이는 후배님을 만나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틀란스텍의 가호시겠지요. 요 사이는 통 파티원을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유를 알 수가 없네요.”


“어, 선배님이 파티를 구하지 못하셨다고요…?”


“아마 용모 때문이 아닌 가 싶어요. 저는 리자드맨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따스한 피의 자매 분에겐 혐오스러울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럴리가! 저런 미인이! 저런 소리를 하다니! 나는 그럼 나가 죽어야 하는 거 아닐 까요! 저는 경악해서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쾅, 두들기며 일어나고 말아요. 탁자가 삐꺽, 제 손가락 뼈도 삐꺽, 엄청나게 아팠지만 아드레날린으로 무시합니다.


“아니에요-! 선배, 엄청 예쁘거든요! 진짜 예뻐서 놀랐거든요!”


프리스티스 언니는 한순간 놀라 눈을 조금 좁혔다가, 이내 당황과 걱정이 섞인 얼굴로 절 올려다봐요.


“후배님…? 손, 괜찮아요?”


내가 미쳤지. 그냥 죽을래요.


“괘, 괜찮아요….”


부어오르는 손바닥을 부여잡고 비실거리며 자리에 앉자,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몇 년 간 너무 바쁜 나머지 허물을 벗지 못하였기에.”


“허물요…?”


“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에요, 후배님. 허물을 벗지 못하면 저희 종족은 꽤 원시적인 풍모로 변하거든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피가 따스한 분들은 꽤 싫어하시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어젯밤에 허물을 벗었답니다.”


그거 허물이었냐! 이력서의 초상화의 정체가 짐작이 되었다. 허물을 벗지 않아서 그렇게 보였던 거고, 본래는 이렇게 생겼던 거였나. 이거 사기잖아!


그럼, 나 엄청나게 운 좋은 거 아니야?


아아, 어쩌지, 입이 찢어지고 있어요. 드디어 찾았어요. 예쁘고 착하고 욕심 없는 치유사를 드디어 파티에 들였어요. 피부가 신비스런 초록빛이긴 하지만 그게 뭐 어때요, 저렇게 미인인데. 


“손, 다치신 거 같아요. 이리 줘 보실래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프리스티스 언니는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오더니, 모양 예쁜 손으로 제 건틀릿을 들어올려 벗겼어요. 그녀의 손에서 신비스런 빛이 나더니, 이내 제 손바닥을 쓰다듬어요. 그 서늘한 체온이 너무 감미로워 저는 눈을 감고 숨을 삼키고 말아요. 어쩌지, 엄청 변태 같다. 이윽고 욱신거리는 손바닥이 순식간에 평온해져요.


“이제 아프진 않은가요, 후배님?”


가까운 거리에서 제 손을 쥐고, 리자드맨 프리스티스가 신비로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물어와요. 너무 가슴이 두근거려, 숨쉬기도 힘들 것 같아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네요.


“죽을 거 같아요-.”


“어머? 치유가 들질 않았나…?”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으…. 내, 내일부터 잘 부탁드려요.”


이국에서 온 성직자는 빙긋 웃고는 저에게 대답해줬어요.


“잘 부탁해요, 후배님.”









힐러가 사람이라곤 안 그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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