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사역마 23 1화

 간달브가 주인을 죽임으로써 허무의 힘은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허무의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이토가 지구로 돌아갈 방법도 사라졌다.

 사이토는 지구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루이즈에게 청혼한다.

 루이즈와 행복한 결혼식을 맞이한 사이토.

 그러나 단 한 명이 건널 수 있는 "월드 도어"가 담긴 매직 아이템을 비토리오가 건네 오고, 사이토는 새로운 가능성을 손에 쥐고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과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한 번 지구로 돌아가면 루이즈와 이쪽 세계 사람들과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결정을 미룰 수도 없다. 허무의 힘이 사라진 순간부터 매직 아이템에 갇힌 허무의 마법도 빠른 속도로 흩어져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괴로워하는 사이토를 본 루이즈는 사이토를 보내주기로 마음먹고, 사이토를 설득한다.

 사이토는 결국 지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사이토가 지구에 돌아가기로 결심한 후 마지막 추억으로 삼기 위한 루이즈와의 평생 잊을 수 없는 첫날밤은 끝나가고...지구로 돌아가는 날이 밝아왔다.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의 아우스트리 광장에는 지구로 귀환하는 사이토를 배웅하기 위해 마법학원 학생들을 비롯하여 학원 선생님들과 오스만 학원장, 앙리에타까지 모두 모였다.

 사이토는 낯익은 얼굴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루이즈에게 처음 소환 당했을 때에도 이렇게 둘러싸인 채 주목받았었지...

 벌써 일 년 반이나 된 예전 일이 뇌리에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봄, 느닷없이 이세계에 소환당해 처음 보는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첫키스를 빼앗겼던 그 날을...

 그 당시엔 몰랐다. 이 세계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정겨운 사람들과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이가 생기게 될 줄은.

 루이즈의 심한 취급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영문 모를 곳에 떨어졌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하루 빨리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지구로 돌아갈 길이 생겼음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이들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목숨보다,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루이즈를 두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지 모른다.

 길고 길었던 지난 일 년 반 동안의 일을, 이쪽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을, 루이즈와 키스를 나누었던 그 모든 기억들을 지구에 가서도 소중한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루이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허무가 사라지고 지구로 돌아갈 길이 막히기 전까지 사이토는 줄곧 생각해왔다. 언젠가 지구로 돌아갈 때가 왔을 때, 나는 루이즈와 헤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비토리오가 보내준 "월드 도어" 마법이 담긴 마지막 허무 아이템, 시조의 원경.

 그것을 받고 나서 사이토의 뇌리에 스친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콜베르 선생님이 고쳐준 노트북에 우연히 연결된 인터넷으로 열어본 어머니의 메일.

 하루에도 몇 통 씩 자신을 걱정하는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사이토가 사라진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떠올랐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지구에는 돌아갈 수 없을 지 모른다. 영원히 부모님과는 만나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부모님은 평생을 나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살아갈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평생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루이즈가 시조의 원경에 떠오른 허무의 룬을 읊자 사이토가 처음 소환되었을 때 나타났던 것과 같은, 사람이 통과할 만한 크기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사이토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이걸 통과하면 루이즈와, 그리고 모두와 작별이다.

 이세계에서의 모험도, 가장 사랑하는 주인님도, 모든 것은 추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

 사이토는 마음을 다잡고 게이트로 몸을 옮겼다.

 게이트의 빛이 몸을 삼켜 간다.

 "잠깐!"

 "응?"

 게이트 안으로 반쯤 들어간 사이토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루이즈의 다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이즈......?"

 "역시 나도 데려가!"

 루이즈가 사이토를 향해 달려갔다.

 "너, 너, 이 '게이트'는 한 명밖에......"

 그때, 사이토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트너, 한 명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하마. 아가씨를 데려가도록 해.'

 뭐, 뭐지? 이 목소린 뭐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수밖에!

"이리 와. 루이즈!" 

"사이토!"

사이토는 두 팔을 벌려 루이즈의 몸을 끌어안았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모습은 깨끗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