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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모타리온: 창백한 왕 - 10장 (1)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1.18 15:26:07
조회 352 추천 18 댓글 5
														


스테방은 홀로그램 테이블 위의 선들이 교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들이 한 이야기는 토사랏의 통신으로 확인되었다. 새벽이 밝아온다. 승리의 날이 밝아온다.


다른 고위 감사관도 테이블 주위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채, 이 곳에 서있었다. 갈라스파의 통치자들은 테이블만 바라보고, 지휘소로 돌격하는 침략군들과 결사단의 프로타코스 포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밤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심장박동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매 순간을 세었다. 침략군이 오고 있다는건 알지만 이 위험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두려움과 희망의 극단 사이로 내던져져 영혼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왔다.” 스테방은 만족스러운 듯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토사랏이 왔어. 우린 여전히 버티고 있고.”


“곧 전쟁의 끝의 소리를 듣겠군요.” 우발리아트가 말했다.


“어디를 먼저 치게 될까?” 레스타반이 물었다.


“모든 곳이지. 그걸 위한 무기도 있고.” 우발리아트가 답했다.


스테방은 수천 발의 주포가 동시에 발사되는 참사를 상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탑 하층부로의 포격은 불가피합니다. 그곳에 적군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죠.” 우발리아트가 말했다.


스테방은 얼굴을 찡그렸다. 최고위 감사관을 안심시키던 지휘 본부 바깥의 침묵은 서서히 걱정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진작에 여기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적들에게 한 짓이 놈들의 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알고 있어. 증원군은 이미 도착했어야 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벨타프가 물었다.


“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 왜 우리한테 오려고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거지?” 지금쯤이면 적군이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는, 고동치면서도 먹먹한 허무의 소음이 들려와야 되건만,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그의 걱정은 전염성이 있었다. 덧없고도 소중한 승리의 촛불이 꺼졌다.


“어디에 있는 건가?” 그가 물었다.


레스타반은 각자의 작업장에 있던 교환원들을 돌아보았다. “왜 수색을 안하는거야?” 레스타반이 따져 들었다. 스테방은 교환원들이 노력하고 있는 걸 알지만, 레스타반은 계속 요구했다. “렌즈 좀 보여달라고!”


홀로그램 테이블 위를 떠다니는 화면에는 프로타코스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감시 카메라가 찍은 일련의 영상들이 표시되었다. 대부분 영상은 지휘본부 내부, 환기 시설과 긴급 탈출로지만 너무 좁아 한 사람만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두 개의 뒤틀린 복도를 보여줬다.


스테방은 교환원들도 자신의 생명이 달렸기에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는 걸 알면서도, 레스타반의 강요가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눈으로 적을 보는 것이 두려워 숨을 죽이고 그 영상들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침략군들은 100미터가 넘는 단단한 락크리트 더미를 넘어 순간이동할 수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수직 통로와 탈출구는 텅 비어 있었다. 스테방은 다시 숨을 쉬었지만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적들은 어디 있는거지?” 스테방만큼이나 불안하던 우발리아트가 물었다. “만약 적들이 그걸 뚫고 들어오려는 게 아니라면 뭘 하고 있는거지?”


불쾌한 깨달음에 충격 받은 스테방이 끙끙댔다. “바깥이다.”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놈들은 밖에 있어.”


“바깥엔 작동하는 렌즈가 없어요.” 우발리아트가 말했다.


“포탑 위에 있는 것들은 빼고 말이지.” 스테방은 포탑을 조종하는 작업대들을 올려다보았다. 교환원들의 화면에는 포탑이 돌아가면서 보이는 텅 빈 화면만 비추고 있었다. “대포를 돌릴 수 있는 만큼 돌려봐라. 모든 대포를 벽을 따라 조준해.” 그가 명령했다.


교환원들은 복종하자 시야가 바뀌었다. 또 다른 영상들이 주 전술 화면에 나타났다. 대포의 각도 한계로 인한 좁은 시야각은 답답할 정도로 단편적인 정보였다.


“저기다!” 우발리아트가 소리치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환원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돌려봐.”


교환원이 이를 따르자 적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10명의 적군들이 외벽을 기어올라 지휘 본부 벙커 꼭대기까지 오르려 했다.


“이렇게 적다고? 다른 병사는 어디에 있는거지?” 우발리아트가 말했다.


자신의 머리 위로 락크리트 방패가 얼마나 얇은지 생각하던 스테방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그런건 상관없어!” 그가 소리쳤다. 상관 있다 해도, 매우 심각한 일이지만 그가 지금 본 것은 위험 뿐이었다. 맞서 싸워야하는 위험 말이다. “쏴라! 벽에서 쏴 버려. 모든 포탑을 발포해, 발사!




테르수스는 정상에 반쯤 왔다고 추정했다. 분대는 하나의 큰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서로 20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위, 아래, 그리고 옆으로, 대포들은 데스 가드를 망각한 채 앞뒤로 회전할 뿐이니 군단병들은 빠르게 올라갔다. 유독성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부식된 락크리트 벽을 주먹으로 때리며 발로 차 부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세라마이트 주먹이나 부츠로 한 대만 때려도 벽에 구멍이 생겨 잡을 곳은 충분히 많았다. 바람이 테르수스를 벽에서 떨어트려 수백 미터 아래로 내던지고 싶은듯 맹렬히 불어 닥쳤다. 하지만 너무 약하다. 그의 파워아머는 바람 따위가 움직이기에는 굉장히 무거우니 말이다.


그러자 포탑들이 벽을 향해 포를 조준했다.


“우릴 찾고 있다.” 테르수스가 분대원들에게 경고했다. “곧 있으면 들킬거야. 다들 준비해.” 그는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서둘러 올라갔다. 이제 이곳에 안전이란 없다. 전투 대장은 뛰어올라, 제일 높은 곳에 닿았을 때 벽에 손을 박고 간신히 매달렸다. 그리고 나서 대각선으로 다시, 테르수스는 포탑이 발사되기 전 두 번 정도 뛸 수 있었다.


포탄이 몰아치며 벽에 부딪혔다. 예리한 각도로 발사되어 벽을 거의 스치듯, 어색한 궤적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포탄은 여전히 벽에는 맞으니. 폭발로 벽이 뒤흔들리자 락크리트가 부숴져 나가 격렬한 먼지 폭풍이 일고, 벽 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려왔다.


테르수스의 머리 위 몇 미터에서 또 다른 포탄이 터졌다. 그는 파편이 무너지는 동안 벽에 몸을 붙이고 버텼다. 전투 대장은 먼지에 싸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건 자신의 몸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뛰어오를 때 주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 그는 똑바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먼지 구름을 뚫고 뛰었다.


테르수스 오른편의 아쿠스는 운이 좋지는 않았는지 뛰어오르는 도중 포탄에 맞아 산산이 찢겨나갔다. 테르수스의 자동 감각기에 있던 아쿠스의 룬이 붉게 깜빡였다가 사라졌다. 잠시 후 레반과 버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려나 봅니다.” 가로가 복스를 보냈다.


“자네 눈엔 그래보이나?” 테르수스도 똑같이 벽에 붙은 벌레가 된 무력한 느낌 속에서 신랄한 농담을 내뱉듯 대답했다. 싸울 사람이 없으니 보복도 있을 수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계속 움직이는 것뿐이니, 테르수스는 벌레처럼 움직였다.


그는 치명적인 타격을 피하기 위해 예측 불가능한 헛발질과 패턴 없이 뛰어가보았다. 할 수 있다면 먼지구름 속으로도 들어가보았다. 짧고 약하지만 일종의 엄호가 되었다.


테르수스가 먼지 구름에서 나오자, 갑자기 부는 돌풍에 벽 주위의 공기가 잠시 맑아졌다. 여러 방향에서 대포가 테르수스를 향해 발사되었고, 파멸의 궤적이 날아들어왔다. 근처에서 포탄이 터져 파편이 그의 투구를 때려 울렸다. 전투 대장은 파편이 어깨에 튀자 뛰어올라 포탄을 맞아 파인 벽구멍을 움켜쥐었다. 그는 틈새를 꽉 쥐고 있다가 다시 몸을 끌어올렸다. 지금은 사방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축복이었지만, 가까이에서 폭격이 일어나니 이때만 축복이라 부를 수 있겠지. 폭발에 벽이 크게 쪼개질 듯 흔들렸다. 마치 테르수스가 떨어져 죽길 바라듯 떨려왔다.


정상에 가까워져 가지만 폭격 아래에선 너무나 멀어보였다. 영원토록 끝없는 벽을 신들의 일격이 산산이 부수고 있다. 포탑의 덜컹거리는 굉음에 모든 소리가 묻혀 다른 전투 형제들과 통신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으니.


간단한 임무다. 계속 기어오르고, 올라 마지막엔 결사단의 죽음이 되는 것.


또 다른 룬이 꺼져가더니, 연이어 다른 룬도 사라졌다. 토라바스와 제복이 떠나버려도 포탄은 계속 날아온다. 테르수스와 다른 형제들이 죽기 전이나, 그가 침묵시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소음과 먼지 폭풍 헤쳐 나가면서 뛰어올라 붙잡고, 앞뒤로 움직이며 또 뛰어오르길 반복했다. 혼자 남는다 해도 계속 올라가야 한다. 테르수스가 죽는다 해도 다른 한명이라도 해야 되는 임무일지니. 딱 한명. 그것이 필요한 전부다.


단 한명이라도 살아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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