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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 끝나지 않은 역할모바일에서 작성

NANND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1 15: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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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물건들의 말로란 대개 그런 것이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져 이곳저곳 발에 치이다, 종국엔 생기 하나 없는 시선으로 밤 천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한없이 차갑고, 한없이 어두운 하늘이었을 테지. 고장 난 마음으로 어찌 세상을 똑바로 보겠느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 별빛 하나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별은 항상 존재했다. 신은 항상 네 곁에 있었다.
나는 너를 위한 신이니, 그대는 보라. 그리고 나의 말을 듣고, 전하라.”




"사토노?"
니시다 사토노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잠깐 꿈을 꾼 듯했다. 어두운 밤, 찬 흙바닥. 눈언저리가 따끔했다. 갈비뼈 안쪽에서부터 쿵, 쿵, 쿵, 사정없이 심장이 뛰었다. 뭘 하고 있었지? 사토노는 얼른 주위를 돌아보았다.
숨을 가득 메우는 음습하고 눅눅한 공기엔 비릿한 향도 더해 있다. 눈에 한가득 차는 나무들과 허리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풀들은 짙게도 색을 낸다. 그 명도 낮은 어둔 풍경에 시간조차 가늠할 수 없다. 전에도 와본 적이 있었다. 마법의 숲, 사토노는 겨우 기억해냈다.

“뭐하냐니깐?”
사토노는 팔뚝 언저리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저만치에서 보고 있던 마이가 어느새 뒤로 다가와 대나무로 팔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사선으로 베어낸 대나무는 꽤 날카롭다.  찔린 상처에서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사토노는 상처를 문지르며 웃었다.

“정말~ 촐랑대지 말라구 마이.”
“네가 대답을 안 해주니깐~ 스승님이 인형사에게 찾아가라고 했던 거 기억나지?”
“응, 물론이야.”
“저 너머야 사토노. 마녀의 숲의 마녀의 집이야!”
“마법의 숲, 이지만. 아무래도 좋지!”

마이는 이미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사토노는 미소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팔뚝이 도드라지게 따끔거렸다. 사람을 그런 걸로 찌르다니, 사토노는 조금 어색한 미소로 뒤를 따라갔다.

마법의 숲 어딘가엔 마녀가 사는 집이 있다. 그래서 숲이 더욱 위험한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얘기하지만, 그 마녀가 누구인지, 심지어 조금 전 자신의 가게에 다녀온 손님이 마녀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마녀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 적어도 그들에게 위협적인 짓만 안 한다면야. 그런건 상식이었다. 그러나 미치광이들은 사고의 차원이 다르다. 어디까지가 위협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이는 처음에 문을 몇 번 두드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안에서 대답이 없자, 곧바로 문고리를 몇 번이고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망설임이나 걱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인형사를 만나라. 스승님께선 그러라 말씀하셨다. 둔탁하게 소리가 퍼진다. 하지만 좀처럼 진전이 안 됐다. 사토노가 이를 지켜보다 말했다.

“그쪽보다 창문이 훨씬 잘 깨지지 않아?”
“오, 맞아 사토노.”

이미 문고리는 너덜너덜해졌지만 둘은 현관을 떠나 옆의 커다란 창문으로 향했다. 안쪽이 흐릿한 연약한 창문. 마이는 대나무를 거꾸로 쥐고 금방이라도 던져버릴 듯이 손을 뒤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진 몇 번의 도움닫기. 힘껏 팔을 휘두르자 곧바로 쐑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대나무는 마이의 손을 떠나갔다. 바로 그 찰나, 창문이 벌컥 열렸다. 거대한 방패가 나타났다. 죽창은 속수무책으로 방패에 꽂혔다. 그 묵직한 쇳소리가 들리고, 이를 매개로 잠시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마이와 사토노는 방패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항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건 스승님이 알려주시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 방패 뒤로 금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공격당하는 집의 주인이자 숲의 마녀. 마이가 대나무를 어떻게 회수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사토노가 앨리스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당신이 인형사?”
“……내가 왜 그런 신한테 부탁했던 걸까….”

앨리스는 머리 한쪽이 지끈하고 아파져 옴과 동시에, 비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금 이상한 녀석들이지만, 네 실험을 하는 데에는 충분할 거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신의 기준이었다. 일반적인 것과는 사고의 차원이 다르다.

앨리스는 한숨을 크게 내뱉은 후, 퉁명스럽게 말했다.

“문은 너희가 부숴버려서 안 열리니깐. 창문으로 들어오든지 해.”

그러곤 안으로 슥 들어가버렸다. 사토노와 마이는 한동안 서로 바라보더니, 곧 해맑게 웃으며 창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마치 장애물 달리기를 하듯 창틀을 넘곤 빙글 돌아 방 안으로 착지했다. 10점 만점이다. 서로에게 그렇게 부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형 하나가 대나무가 꽂힌 방패 옆에 대충 널브러져 있었다. 마이는 대나무를 보자마자 내꺼! 하며 달려들었다. 사토노는 이를 빤히 쳐다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그 낯빛이 어둡다.

“그래서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야?”
“……너희 둘, 생명력과 정신력을 이끌어내는 정도의 능력, 맞지?”
“스승님의 능력이지만~”
마이가 대화를 엿듣고 있었나보다. 그녀는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앨리스와 사토노도 이를 흘끔 쳐다봤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다.

“뭐 좋아~ 스승님께서도 부탁이 있으면 적당히 들어주시라고 하셨으니깐.”
“그럼 저쪽의 상하이 인형에 그 능력을 사용해주겠어? 생명력과 정신력을 갖춘 인형. 즉, 완전자율인형을 보고 싶거든. 위험하다 싶으면 그쪽에서 다시 빼앗으면 되잖아?”
“음… 어떡할까 마이.”
“글쎄…! 어떡하지 사토노…!”

한동안 대나무와 씨름을 하고 있던 마이는 말을 내뱉자마자 이를 뽑아냈다. 그렇게 손에 돌아온 대나무. 이제 양하와 조릿대가 있으니 재료는 다 준비된 것이라, 경을 읊고 춤을 추며 마타라 신의 힘을 내리게 하는 것만이 남았다. 스승님이 인형사를 도우라 명했다. 고민은 할지언정,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다.

“좋아! 준비됐어 마이?”
“언제나 준비됐지 사토노!”

“모든 공포의 피난처를 베푸시는 임께 귀의하여, 푸른 빛을 띤 그 마음을 노래하니”
“아름답고 견줄 수 없는 그 마음과, 윤회를 청정케 하는 그 마음을 말하니.”
“위대한 깨달음의 존재 이시어 수호하고 수호하소서!”

자그마한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어라.
이를 위한 무용과 진언은 실로 낯선 것이라, 타인의 눈에는 광인의 춤사위로밖에 안 보였다. 미친 듯이 팔을 휘적거렸다. 다리는 다 쓰러져가는 듯했다. 초점 잃은 동공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하다.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단언컨대, 절대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절로 뒷걸음질쳐졌다. 한발, 두발, 아무런 마력을 넣고 있지 않음에도 서서히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경이로움을 벗어난 기이함이라, 분위기에 압도되어 앨리스는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미치광이의 춤이다.
정신이 온전한 이는 이해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 시선을 피할 수가 없는 데다 하나의 경외감까지 들고 마는 것은, 그런 무용이 갖고 있는 신앙과 신념이 아니겠는가.
인형이 움직인다. 비신의 마력을 빚어 움직인다.

혼을 쏙 빼놓는 춤이었다.
그런 격렬함을 선보인 마이와 사토노는 무생물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앨리스에겐 익숙한 모습이었다. 마력의 실이 끊긴 인형들은 대부분 저렇게,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곧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졌다.

“끝난…거야?”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지. 분명 수 초에 불과했던 시간이었을 테지만, 앨리스에겐 그 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도 의식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 무렵, 사토노와 마이는 자신들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급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한바탕의 과격한 춤사위이었으니 저렇게 숨을 몰아쉬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 두 발을 꼿꼿이 땅에 딛고, 동그랗고 파란 눈을 껌뻑이는 인형. 방금까지 자신이 조종하던 인형이 서 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상하이……”

인형은 별다른 말은 안 하고 있었다. 완전 자율인형. 언젠가 이런 인형을 앨리스는 만난 적이 있었다. 은방울이 가득 피어난 꽃밭에 사는 요괴, 츠쿠모가미. 한을 품은 물건은 위험한 요괴가 되지만 이런 경우엔 어떻게 될지. 앨리스는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좋~아, 끝이야 인형사.”
“이번에도 정말 크레이지 했는걸~”

마이와 사토노는 서로 방방 뛰며 하이파이브를 해대고 있었다. 인형은 조금 걸어 다니다가 붕 하고 두둥실 떠올라 책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를 흔들고, 팔로 얼굴을 문질러보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앨리스는 한동안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토노는 인형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생한 너희에게 보답이라 하기에도 뭐하지만, 식사라도 하고 갈래?”
“춤춘 뒤의 식사는 최고지. 그치 사토노?”
“응? 아, 그럼! 최고야 마이!”

앨리스는 피식하고 웃곤, 두 댄서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휴식이라도 하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둘은 방에 놓여있는 수많은 인형에게 흥미를 느꼈고, 이를 만져보고 돌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 있으니, 상하이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 쪼끄마한 몸에 자기보다 큰 접시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었지만, 둘은 그 접시에 담긴 애피타이저에 눈길이 더 갔다. 크래커 사이에 조금 두텁게 잘린 치즈가 들어있는 간단한 전채요리였다. 배고픈 이의 입맛을 돋우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입 안에 넣자 찾아오는 약간의 짭조름함과 고소한 향내는 절로 둘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했다. 묵묵히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인형의 뒷모습을 보니, 사토노는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아가 형성되어도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마이가 자신의 몫까지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남의 것을 먹곤 해맑게 웃는 저 얼굴을 보라. 사토노는 마이의 머리를 통,하고 때렸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조금의 대기 시간 후, 다시 상하이가 들어왔다. 손을 휘적휘적하는 걸 보니 식사가 다 차려졌으니 오라는 듯했다.

마녀가 대접해주는 식사를 끝마치고, 마이와 사토노는 식후의 여유도 없이 금세 돌아가려 했다. 이후의 일정은 딱히 없는 둘이었지만, 농땡이를 피운다는 것은 그들의 명령에 없었다. '적당히 일이 끝나면 돌아오거라’, 스승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이는 몇 번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 인형은 어디로 갔어?”
“상하이? 걔라면 우선 아까 너희가 있던 방을 정리해달라고 했었는데…….”
“마이, 또 그렇게 뒷문을 이용할 셈이야? 뭐, 편하긴 하지만~”

앨리스는 난해한 둘의 대화를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봤다. 마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곧 사토노도 또 오겠다는 전언만을 남기곤 이를 뒤따라버리니, 앨리스의 곁엔 식후를 위한 티백만이 남아 쓴맛을 우려냈다.

사토노가 방 안에 들어갔을 땐 이미 마이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불 꺼진 방 안 커튼 너머로 희미한 저녁 놀이 들어오는 가운데, 이쪽을 등지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형 하나가 있었다. 그림자 진 그 등엔 문 하나가 활짝 열려 있었고, 그곳에선 숨길 수 없는 음산한 마력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인형은 바깥을 보던 중이었을까. 아니면 마이가 저곳에 가져다 둔 것일까. 사토노는 조금 복잡한 머리로 뒷문으로 들어갔다. 나무 긁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니, 인형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문의 먼지를 치우며, 커튼의 틈 사이에 놓인 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마법의 숲은 다음 날이 되어도 여전히 음습하고 짙은 장소였다.
나무든 버섯이든 갑자기 움직여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다. 사토노는 또다시 이 숲을 홀리듯 찾아와 앨리스의 집으로 향했다. 사유는 인형에 대한 감시. 폭주하면 되돌려놓기 위함이라고 앨리스에게 설명했지만, 스승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그저 뜻 모르게 자신이 인형에게 이끌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토노는 멍하니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손에 들린 자그마한 먼지떨이로 다른 인형들의 티끌들을 털어내는 인형. 하지만 분명 그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바깥의 자유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니시다 양?”
“아, 응. 뭐야?”
“그렇게나 저 인형에 관심이 가는 건가 싶어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말썽도 안 피웠거든.”
“그래도 뭔가 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가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할 때가 있어. 별로 방해는 안 되어서 괜찮았지만.”
사토노는 ‘헤, 그런가.’라고 시답잖게 답하곤 다시 인형을 쳐다보았다. 자유의사를 가진 인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자신의 의지를 밝혔을 것이다.
다만, 인형은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 헌신의 역사가 담겨있는 탓에, 바로 눈앞에 있는 것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문만 열어도 바깥이다. 하지만 분수란 것이 자신을 이곳에 뿌리박게 했을 것이다.

사토노는 뜻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꼼지락거리는 것은 그런 생각은 상상조차 안 했을지 모르고, 전부 자신이 이입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토노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느꼈던 그 오랜 감정이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언제인지도 모를, 한없이 춥고 한없이 어두웠던 그날에 떼어낸 인간의 자유 의지. 이제는 사라졌을 텐데, 알 수가 없었다.

앨리스가 눈치를 채기 전에 닦아내려는 사토노였지만, 앨리스는 자리에 없었다. 달큰한 향이 새어오는 걸 보니, 쿠키라도 만들어진 듯 했다. 사토노는 조심스레 눈두덩이를 닦았드.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하이를 찾아왔다.


사토노는 평소처럼 앨리스의 집 문에 노크했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마땅한 예의다. 그렇게 얌전히 주인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전과는 달리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앨리스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타났다. 앨리스는 조금 당황하는 사토노의 팔목 부근을 붙잡았다.

“상하이가 사라졌어. 지금부터 찾으러 갈 건데, 같이 가줄래?”
얼떨결에 사토노는 응, 이라고 답했다.

기어코 인형이 문을 열고 말았나 보다. 자신의 본분을 다 내려놓고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나가보면 스스로에 대한 무언가를 알 수 있을지, 자신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를 시험하러 떠났나보다. 사토노는 이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차라리 나에게 발견되어라.
둘은 갈라져서 찾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수많은 인형을 넓게 풀어 나아가기 시작했고, 사토노는 비신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방향을 따라갔다. 그러나 이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숲에서 손바닥만 한 인형을 찾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숲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진녹색만이 더해져 갔고 그늘지고 눅눅한 땅은 걷는 걸 지치게 했다. 가는 길마다 가로막는 사람 키만 한 풀떼기들은 어련할까.

그러다 한눈에 이목을 끄는 장소가 사토노에게 나타났다. 텅 빈 장소에 그루터기와 꽃들만이 있어, 햇빛을 한데 모아 받고 있었고, 빛나는 나무 밑동을 주위로 피어난 하얀 꽃들에선 옅은 향 내음까지 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그루터기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이 찾던 상하이가 아닌가.
짙은 녹색만이 가득한 곳에서 이질적으로 빛나는 장소는,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과시하는 것만 같았다. 분명한 성역, 그러나 짐승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섬뜩함. 사토노의 발걸음은 긴장감에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사토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풀의 비명 소리가 발끝으로 전해져오는 것도 같았다. 자신을 등지고 앉은 저 인형. 기껏 찾은 자유일 텐데, 아무렇게나 돌아다니지도, 날뛰지도 않는다. 마치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는 것이다.

“너라도….”

사토노의 말은 주변의 꽃내음에 묻혀 옅어져 버리고 말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상하이가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붙잡으려는 그때, 상하이의 등 뒤에서 문이 튀어나와 재빠르게 사토노를 먹어치웠다. 그곳엔 적막만이 남았다. 기괴하게 닫히는 문소리 외엔, 어느 것도 들려오지 않는 적막만이 남았다.


항상 보았던 풍경. 수없이 많은 문들과 조금 어둡고 방향 감각도 알기 어려운 후호의 나라.
문이 열고 닫히는 나무 긁는 소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곳. 그러나 누군가 말을 하면 거대한 울림이 되어 심장까지 뒤흔드는 장소다.

“사토노, 나의 제자야. 어찌하여 눈물을 머금고 있느냐.”

사토노는 극구 부인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그러나 몸에 서린 공포심이 눈을 통해 흐르고 있었으니, 스승의 명을 저버린 제자의 마음이자 되살아난 인간 정신의 혼란스러움이었다. 사토노는 주저앉았다.

“아니에요 스승님. 아니에요…….”
“아끼는 제자야. 너의 마음을 내가 아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너를 위한 신이니, 뒤를 돌아보거라.”

사토노는 계속해서 아니라고만 하며 중얼거렸다. 식은땀이 흐르는 등 뒤로 서서히 비신의 마력이 가까워져 간다. 한때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이었으니, 그대로 힘을 맞이하면 될 일이었다. 인간성을 잃고 광인이 되어, 비신의 힘을 춤추는 인형이 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반발심이 있었으니, 인간의 자유의지이자 얽매이지 않는 마음. 그 고결함이 사토노의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토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나갔다.

그러나 미약한 발버둥이다. 어디에도 사토노를 위한 열린 문 같은 것은 없다. 점점 가빠져 오는 숨과 힘이 풀려오는 다리는 얼마나 연약한 의지인가. 그렇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사토노의 팔을 잡는 것이 있었다.

“사토노, 뭐해.”

자주 들어왔던 목소리, 줄곧 함께 했던 목소리, 그리고 나를 붙잡는 목소리. 가쁜 숨에 니시다 사토노는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야는 눈물로 젖어 흐릿했고 가슴은 미친 듯이 뛰며 아려왔지만, 마이의 눈엔 스승에게서 도망가는 녀석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뭐하냐니깐.”

사토노의 팔이 질끈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마이는 무자비하게 사토노의 팔을 쥐고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이의 두 눈은 그 어떤 인간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마르고 유리알 같은, 퍽이나 고운 눈이다. 사토노는 도망갈 수 없었다. 이 후호의 나라, 이 신의 손바닥 위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도망가고 싶은지, 사토노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두 눈을 질끈 감은 사토노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토노, 내 소중한 제자야. 네가 어긋나면 고쳐야 하는 게 내 역할이다.”

등의 문이 열리고, 재구성된다. 아직, 사토노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마법의 숲.

마녀가 산다고 전해지는 음침한 숲이다. 하지만 이런 숲에도 가끔 밝게 태양이 비출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엔 마녀들이 모여 다과회를 열기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엔 으레 피크닉을 가기 마련이다.
앨리스의 집 앞마당에 탁자와 의자가 깔렸다. 탁자 위로 손수 만든 쿠키들과 홍차도 있으니, 외관도 향도 그 달콤한 분위기에 양껏 취해있었다. 마리사도 역시 거들먹거리며 찾아와, 눈앞에 놓인 성찬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다과회에 초대된 유일한 손님이다.

“오, 무슨 일로 이렇게 차린 거야?”
“가끔은 여유도 내보는 거지. 차는 우러나려면 아직 조금 남았어.”
“그럼 고맙다구~”

마리사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쿠키를 베어 물었다. 지독히 단 향에 생강의 아릿한 맛까지 나는 쿠키다. 무지막지하게 차가 당긴다고, 마리사는 생각했다. 마리사의 좀 얼굴이 찡그려져 있었는지, 곧 인형 하나가 쪼르르 날아와 잔을 채워주었다. 차가 최적의 상태가 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앨리스는 타이밍을 잘 맞추나 안 맞추나 마리사에게 비슷할 거라 여겼다.
앨리스가 꼬던 다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비신한테 부탁해서 완전 자율인형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뭐, 뭐? 부탁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녀석한테….”
하마터면 입안에 머금은 차를 몽땅 내뿜을 뻔한 마리사다.

“뭐 그래도 나름 잘 해줬으니까. 아무튼, 인형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별로 다를 것도 없기도 하고, 도망도 가더라고.”
“그런가, 도망을 택한 건가…. 결국 어떻게 했어? 다시 힘을 뺏었냐?”
“폐기했어. 그런 건 고쳐 쓰는 게 아니잖아?”
“이야, 이거 아주 악덕 점주구만. 어이, 너도 폐기될지도 모른다고~”

마리사는 장난스레 차를 가져다준 인형을 가리키며 웃었다. 앨리스도 역시 옅게 웃어 보인 것은, 조금은 자조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앨리스의 인형들에겐 자폭 기능도 내장되어있다. 인형의 폐기 같은 건 사실, 인형사에겐 우스운 일이리라. 어쩌면 얼마 없는 일상 속 재미일 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넌 그 신한테 뭘 준거야?”
“자기를 본뜬 인형. 꽤 좋아하던데? 제자 것들도 만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오…. 상상도 못했던 취향인걸.”




ㅡㅡㅡㅡㅡㅡㅡ
본래 쓰던 글은 도저히 기한 내에 원하는 퀄리티만큼 못 할 것 같아 예전에 쓴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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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78 그래서 단톡방 떡밥 뭐임 ㅇㅇ(106.101) 03.10 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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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72 신키야 더이상 상갤에 미련갖지말고 니 받아주는 옾챗가서 놀아라 ㅇㅇ(106.101) 03.10 1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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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61 사신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라 ㅇㅇ(128.14) 03.09 166 9
8473660 처음에 lphp가 사신키인줄 알았던 이유가 [3] ㅇㅇ(211.235) 03.09 279 1
8473659 금마가 존나 대단한 새끼인 이유 ㅇㅇ(61.25) 03.09 16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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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56 한동안 잠잠하던 동갤이 챈 떡밥 나오니 다시 활발해졌다라... ㅇㅇ(211.235) 03.09 138 7
8473655 106.101 갤 혼자쓰노 [3] ㅇㅇ(223.38) 03.09 184 7
8473654 구매력 딸리는 보지년들은 말살이 답이다 ㅇㅇ(106.101) 03.09 23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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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52 갤에 나이 쳐먹고 아직도 디시붙잡는 앰생들 너무 많은듯 ㅇㅇ(106.101) 03.09 12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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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3650 갤에 급식들 ㅈㄴ 많아진듯 [4] ㅇㅇ(106.101) 03.09 26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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