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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 변해가는 너앱에서 작성

디에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1 17:04:00
조회 232 추천 11 댓글 6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기억들은 바람보다 더 가볍게 빠져나간다. 텅 빈 병처럼 남겨져 있을 뿐인 사람의 머리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간절함은 한이 되어 바닥 밑에 가려져 있다가 의도하지 않았을 때 떠올라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후지와라노 모코우도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녀는 막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에 당황해 그저 천장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한 줄기 선들이 손에 잡혔다. 머리카락이 손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는 것, 그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기억해낸 사실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던 걸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두 다리로 침대에서 내려올 때도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작은 책상 하나와 여러 도구들이 있었다. 자신의 집을 확인하자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태양빛이 나무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양이 숲의 빛치고는 넓고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이곳이 죽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 자신의 집을 보았다. 적당히 쪼개진 나무토막들이 쌓여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이 집을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있을 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들이 움직여서 여러 가지를 바라보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쩐지 교훈처럼 느껴져 그녀는 작게 웃었다. 교훈을 배워야 하는 자신이 다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 바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길을 헤맬 만도 했지만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기억들이 새로 떠올랐길래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미 이 길을 잘 아는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 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어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듯이 그녀를 보면 시선을 그녀에게서 뗄 수 없었다. 이상한 것을 보면 괜히 그쪽에 정신이 쏠리는 그런 현상이 그날의 마을 사람들에게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한 것은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라는 이름이 적힌 집 앞이었다. 그녀는 이전의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어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렇게 도달한 집의 사람은 분명 자신과 각별한 관계였으리라 짐작했다. 곧 어떤 여자가 나와 그녀를 보았다. 케이네는 그녀를 보더니 '여긴 어쩐 일로?'라고 말했다. 이 반응은 깊은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당황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케이네는 어쩐지 공손한 태도로 순순히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하지만 들어가는 그녀의 옷을 보자 크게 놀라며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코우가 지나오면서 봤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랑 같은 것이었다.


모코우는 자신의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해 가며 마지막엔 그래서 케이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케이네는 어쩐지 탐탁잖은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추궁하자 케이네가 말했다.

"당신이 모코우라는 말인가요? 확실히 그녀의 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이상한 대답에 모코우는 너도 기억 상실이냐고 되물을 뻔했지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식으로 묻기로 했다.

"내가 모코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모코우라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케이네는 그런 방법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코우는 머리를 싸매며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옷에 대한 말이 나왔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더니 웃옷을 벗고 반나체가 되었다.

"내가 가진 건 몸뿐이니 내 몸을 확인해 줘, 그렇다면 내가 모코우라는 걸 알 수 있겠지."

케이네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고 모코우의 몸을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케이네 답다고 모코우는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고 있는 사이 케이네의 관찰은 끝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실을 알 게 되어 평온하기는커녕 아까보다 몇 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큰 기묘함에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이었다. 그 상태로 몇 분이 지나자 케이네는 당분간 어디를 다녀올 테니 너는 이 집에 머물러라고 말했다. 모코우는 찾아온 사람이 집을 맡는 상황이 이상했지만, 케이네가 자신을 너라고 불러준 것을 보아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해 만족하며 다녀오라고 말했다.


다음날 밤이 되자 케이네가 돌아왔다. 그녀는 매우 굳은 표정을 하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코우는 힘들었을 텐데 일단 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케이네는 내심 그 말을 들은 게 다행인지 고맙다고 말하며 모코우가 준비해 놓은 이불 위에 누워 곧바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자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두 사람을 깨웠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서로를 보니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모코우와 함께 있는 것이 예전과 다를 것이 없구나 하고 케이네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모코우의 생활상부터 여러 사건들, 그리고 과거사를 순서대로 모코우 본인에게 말해주었다. 모코우는 이야기를 듣는 도중 대부분 그랬었지란 반응이었다. 아주 잠깐 기억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가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내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거야? 케이네가 존재하기도 전의 일일 텐데."

"네가 직접 말해주었지 않나. 달밤에 술을 퍼마시면서 나한테 수많은 한탄을 늘어놓았지."

"그랬었나? 취할 때의 기억은 어떻게 해도 떠오르지 않아."

"적당히 마셨어야지. 항아리 한 통이 말이 되는 건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모코우는 기억 속의 친우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케이네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코우가 말하는 방식이 어쩐지 좀 다르다고 느꼈다. 쌓여가는 위화감을 견디지 못한 케이네가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어. 마을 일을 도와주러 나가야 하거든."

"케이네가 해야 할 일이라니 어떤 걸까?"

"얼마 전에 홍수가 나서 강 근처의 집들이 큰 피해를 봤어. 다친 사람도 있다고 하니 기꺼이 도와야지."

"저번에도 그것 때문에 나간 거야? 네가 할 일이라면 나도 같이 하는 게 어때? 손이 늘어나면 일이 쉬워지겠지."

모코우의 그 말에 케이네는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결정했다는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좋아. 하지만 일단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좋겠어. 머리를 뒤로해주지 않겠어? 가위를 가져올게."

갑작스러운 제안에 모코우는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케이네의 말대로 긴 머리카락을 뒤로하며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네 나름의 생각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윽고 케이네가 가위를 가져오더니 모코우의 머릿결을 살며시 만지며 자르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잘리는 소리가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소리의 중간에서 케이네가 말했다.

"모코우는 역시 달라졌어.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고, 튕기지도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겠다고 하고, 내 말에 아무런 의문 없이 응해주고. 어쩐지 성숙해진 느낌이야. 모코우도 봉래인이라고 나잇값을 할 때가 된 건가."

모코우는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대답하고 계속 가만히 있었다. 그보다는 졸음이 몰려오는지 가끔 눈을 감고 다시 자기 시작했다. 모코우가 눈을 떴을 때 그 앞에는 거울에 생소한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단순한 단발에 수수한 흰옷을 입은 그 모습은 이전의 모코우보다 더욱 소녀다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케이네 또한 생각 나는 것이 있는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꺼냈다.

"네 어린 시절을 그린 그림이 있었지. 검고 짧은 머리를 한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5녀를 그린 그림. 지금의 너는 그것과 무척 닮아 보여."

모코우는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하듯 한참 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한 듯 거울을 내려놓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미 상당히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케이네는 다른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했다. 지난번과 달리 그들은 모코우를 봐도 특별히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다른 건지 모코우는 궁금해했다. 하지만 일단 당장 일을 해야 했다. 저기에 쌓인 짐들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모코우는 그곳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그리고 봉투째로 물건들을 들어 올렸다. 어려 보이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 짐을 드는 것에 놀라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케이네가 그들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친구라고 설명하니 다들 납득하고 원래의 일로 돌아갔다. 몇 시간이 지나자 관리자처럼 보이는 인간이 휴식 시간이라고 외쳤다. 모코우는 바빠 보이는 케이네를 내버려 두고 구석에 가서 앉았다. 몸을 늘어뜨리려 호흡을 가다듬는 그때 어떤 손이 모코우의 팔을 잡았다. 모코우는 살짝 놀랐지만 그 손의 주인을 보고 평정을 되찾았다. 어떤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얼굴의 반쪽과 팔을 붕대로 감싼 채 누워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찬가지로 다친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은 부상자들을 모아놓는 곳 같았다. 소년은 한동안 모코우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누나는 정말로 건강하구나. 저렇게 많은 물건들을 들고 움직일 수 있다니 대단해."

이상한 말이었지만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판단한 모코우는 그에 응해주기로 했다.

"난 저 케이네 선생처럼 좀 특별한 인간이거든. 그보다 단순히 건강한 것만으로는 저런 무거운 걸 들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굳이 그런 단어를 쓴 이유가 있어?"

소년은 말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난 몸이 허약해서, 그게 너무 싫었어.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없고 더 생생하게 하루를 살 수 없었거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나면 그대로 물러나야 했어. 아프면 그대로 누워야 하고 힘이 드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지. 무력함이 쌓여만 가던 그때 홍수가 터졌어. 사람들은 어서 도망치자고 했지만, 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괴적인 소리가 날 자극했던 것 같아. 난 문에 손을 대고 버텼어. 얼마나 많은 물의 힘이 이 집을 부수려 해도 내 힘으로 막겠다는 망상 같은 환상에 잠겨있었지.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됐어."

"누가 봐도 안되는 일일 텐데, 무모한 짓을 했구나."

"하지만 그 안 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싫잖아. 자신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니, 너무 분해."

"넌 아직 어려. 앞으로도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아. 너의 몸이 낫고, 꾸준히 운동을 한다면 좀 더 멀리 걸어갈 수 있을 거고, 좀 더 무거운 물건도 들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홍수를 막는 댐을 쌓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

"그런 걸까? 이렇게 가만히 있다 보면 모든 게 이대로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착각이야. 네가 진정으로 바란다면 시간이 널 일으켜 주고 움직이게 할 거야.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구할 수 있는 것을 모아봐."

모코우와 소년의 대화가 후반으로 흐르자 해 또한 산을 넘어가 저녁이 되었다. 케이네는 모코우에게로 다가와 갈 때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소년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고 정말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모코우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했다. 그걸 들은 모코우는 씩 웃는 미소를 대답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케이네의 어깨를 잡고 어서 가자고 말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모코우는 바쁜 케이네의 일을 다방면으로 도와주었다. 또한 일이 없어 한가할 때 곤란한 사람을 보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자 어느새 모코우는 마을의 인기인이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녀를 보고 웃으며 친근하게 대했다. 그때 만난 소년도 어느새 회복했는지 모코우에게 찾아와 다시 감사 인사를 했다. 서당의 아이들마저 모코우에게 다가와 편안하게 안겼다. 케이네는 그런 모코우를 보며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의 모코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무녀와 마법사가 마을에 있는 모코우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 모두 모코우를 보고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녀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다른 게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마법사는 진심으로 달라진 그 모습에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마법사를 무녀가 잡아당기더니 할 말이 있다며 끌고 하늘로 다시 날아갔다. 저 녀석들은 여전히 활발하구나라고 모코우는 영야이변 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모코우에게는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약을 파는 토끼가, 자신만 보면 눈을 피하고 급히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토끼는 맡은 일 때문에 자주 마을에 오는 모양인데 어쩐지 내가 신경 쓰이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슨 오해가 있나 싶어 다가가면 더욱 필사적으로 피했다. 어떤 날은 그녀가 막다른 곳에 몰려 갈 곳이 없었다. 어쩐지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모코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본 그녀의 얼굴은 그보다 더욱 심했다. 마치 너를 경멸하고, 너 때문에 불행하게 됐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코우는 할말을 잃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는 사이 토끼는 옆을 지나며 숲속으로 빠져나갔다.


모코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종종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한 적이 없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웬만한 일로는 그 정도의 분노를 받지는 않는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끙끙거리는 모코우를 보고 케이네가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냐고 말했다. 모코우는 그대로 케이네에게 그동안의 일을 말해주었다. 자신은 이 상황을 고치고 그 토끼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말했다. 케이네의 대답은 없었다. 무슨 일인지 케이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코우는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케이네를 보았다. 매우 복잡한 표정이었다. 무슨 진지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봐도 그대로였다.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케이네는 입을 열었다. 그녀가 한 말은 모코우에 대해서도 토끼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영원정으로 가보라. 그 말 하나뿐이었다. 모코우가 이유를 묻자 케이네는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고, 그곳에 가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모코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갔던 곳이 그 영원정이란 곳이야?"

케이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처음엔 나를 나라고 인식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곳을 다녀오고 나서 제대로 예전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곳에 가야겠다고 모코우는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영원정이라니 어떤 곳일까?


영원정은 미혹의 죽림 깊은 곳에 있다고 한다. 그곳까지 향하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분명 모코우가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던 그 길이었다. 그렇다면 영원정 또한 매우 빈번히 갔던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처음에 이쪽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케이네의 집보다도 자주 오고 가던 곳인데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 토끼의 표정부터 모코우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앞에 있는 토끼는 비교적 익숙해 보였다. 죽림을 헤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그 토끼였다. 오랜만이라고 먼저 인사를 걸자 그 토끼는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런 건 가라며 한숨을 쉬고 뭔가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원정으로 가는 거지? 내가 안내해 줄게'라고 말했다. 모코우는 얼떨결에 그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모코우는 아무것이라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코우가 입을 열기 직전에 먼저 그 토끼가 말을 걸었다.

"넌 지금 생활에 만족해?"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는 모코우는 자연스럽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래. 내겐 친구도 있고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어. 매일 여러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지. 만족 안 할 수가 없잖아."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넌 봉래인이잖아. 친구도 이웃들도 지금의 일도 언젠가는 모두 흩어져 사라질 거야. 그렇게 된다면 넌 견딜 수 있어?"

"그때 가면 또 새로운 사람들과 여러 가지 것들이 생길 거야. 어쩌면 돌멩이를 가지고도 놀 수 있겠지.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거야."

"긍정적이네. 예전의 너와는 너무 다른 걸. .... 공주의 노력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건가."

"무슨 말이야? 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항상 내가 전과 다르다고 해. 이제 뭐가 다른 건지 좀 듣고 싶은걸."

"곧 알게 될 거야. 영원정에 있는 에이린과 레이센이 말해주겠지. 아니 레이센은 무리려나."

"그러고 보니 날 자꾸 피하는 토끼가 있던데 혹시 알고 있는 거 있어?"

"그게 레이센이야. 이 길을 걸으면서 기억이 돌아오고 있지? 아직 내 이름도 말하지 않는 것을 보아 이 부근에 대한 기억에 약간 저항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이야기를 들으면 해결되겠지."

"그 말을 들으니 지금 당장 도착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걸."

모코우는 조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걸어갔다.


영원적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고풍스러운 기와로 그 형태를 아름답게 세워놓은 그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어느새 밤이 되어 환하게 뜬 달이 그 고귀함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집 앞에는 토끼가 서있었다. 레이센이었다.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모코우를 보더니 집 뒤쪽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정말로 토끼처럼 보였다. 집을 안내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모코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모코우를 보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야코코로 에이린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무슨 목적으로 찾아오셨나요?"

모코우도 따라 인사하려 했지만, 완전히 남이라는 듯이 대하는 에이린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분명히 아는 사이일 텐데 왜 저런 인사를 할까? 그날 케이네와 만났을 때와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케이네는 정말로 잘 몰라서 그랬지만 에이린은 테위의 말에 따르면 나에게 말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까칠하게 대하는 건가.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면 될 뿐이다.

"난 후지와라노 모코우. 넌 나에 대해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고 있겠지? 거기에 대해서 말해줘. 자세히, 의문점이 남지 않도록 설명해 줘."

에이린은 모코우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의자에 그녀를 앉혀놓았다. 모코우는 어느새 의사에게 상담받는 환자 같은 꼴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에이린은 묘하게 단정적으로 첫마디를 시작했다.

"당신의 몸은 후지와라노 모코우의 몸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몸 전체가 아니라 얼굴이 그렇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카구야 공주님의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모코우의 몸에 카구야님의 얼굴로 이루어지게 되었죠. 엄격하게 말하자면 당신은 모코우 본인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본인을 모코우라고 인식하는 이상, 그게 맞겠죠. 혼은 그대로 있을 테니."

갑작스러운 사실에 모코우는 당황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내용이 쏟아져 온 것이다. 내 얼굴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카구야의 것이라는 것. 카구야. 호라이산 카구야. 난 그녀와 서로 싸웠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도 되는 양 항상 카구야를 찾아가 싸움을 걸었다. 어째서 기억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그 녀석의 얼굴이 어떻게 이 얼굴이 된 거지? 그렇다면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당신은 자신을 모코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겠죠. 하지만 당신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았을 겁니다. 카구야님과 당신을 한 쪽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 당신의 존재에 매우 기묘함을 느꼈겠죠. 당신이 모코우라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습니까? 혹은 당신을 모코우라고 대했었나요?"

아니었다. 케이네조차 이곳 영원정을 다녀오기 전까지 내가 모코우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 이곳에서 이 사실을 들었으리라. 어쩌면 그 무녀도 들었을지 모른다. 케이네의 그 미묘한 표정을 그녀도 지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는 순수하게 내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모코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카구야의 얼굴이 나에게로 온 거지? 그런 능력은 들어본 적이 없어. 무엇보다 나는 봉래인인데 신체의 일부가 변할 리가 없잖아."

"확실히 봉래인의 신체가 영구히 훼손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봉래인이 잠깐 동안 죽을 수는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방식이죠. 카구야님은 그것에 주목했습니다. 당신이 얼굴과 몸이 서로 분리되어 잠시 죽은 순간을 카구야님의 능력으로 무한히 늘렸습니다. 그 순간에 자신의 머리를 떼어내 당신에게 붙였습니다."

"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난 죽은 몸이라는 거야? 하지만 머리를 뗀다면 카구야도 죽잖아.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가.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져야 자신의 머리를 타인에게 넘길 수가 있는가.

"당신은 죽은 몸이긴 하지만, 영원의 능력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큰 피해를 받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살 수 있겠죠. 하지만 더 이상 봉래인은 아닙니다. 당신이 원했던 대로 언젠가는 죽을 수 있겠네요.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입니다만, 개미는 머리를 잘라도 잠시 동안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잔인한 이야기라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인간도 그렇습니다. 카구야님은 그 짧은 순간조차도 영원히 늘려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거겠죠."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냐고, 모코우는 따지려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에이린은 떨고 있었다. 주먹을 무릎 위에 꽉 쥔 채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입 또한 마찬가지로 다문 채 이를 가는 것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카구야님은 항상 당신을 걱정했습니다. 괴로워하는 모코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싸움이 당신의 감정을 흥분상태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항상 당신이 올 때마다 어울려 주었고, 당신이 오지 않을 때는 먼저 다가가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 역부족인 걸 깨닫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겠죠."

할 말이 없었다. 모코우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공주님의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러면 그 희생이 뭐가 되는데!"

버럭 소리치는 에이린의 말에 모코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가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 녀석... 카구야는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있는 관 속에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코우는 일어서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방 안은 마치 장례식을 하는 것처럼 꾸며졌다. 어두운 방을 촛불이 몇 개가 비추고 있었다. 그 사이에 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모코우는 그곳으로 다가가 뚜껑을 들고 관을 열었다. 그곳에는 카구야가 있었다. 정확히는 카구야의 몸과, 모코우의 머리가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숲의 나무뿌리 위에 앉아있을 때였다. 그때 카구야가 찾아오더니 기운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오늘은 안 싸울 거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카구야는 그런 나를 보고 화내거나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더 이상 이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카구야에게 말했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며 카구야의 어깨에 기대 오열했다. 카구야는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을 짓더니 내가 있다고, 서로 변해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죽은 듯이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달이 끝까지 기울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그런 밤에, 카구야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더니 내 목에 대었다. 시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한히 길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땅속에 파묻혀버린 막대기처럼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저주했다. 한 뼘도 달라질 수 없고, 한순간도 봉래인이 아닐 수가 없는 사실을 끊임없이 한탄했다. 그래서 마침내는 죽음을 바랐다. 모든 게 사라지는 변화의 순간을 갈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카구야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녀는 이런 내 처지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에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나는 그저 불쌍한 봉래인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나를 기운 나게 하는 것도, 살아갈 의지를 주는 것도 실패했다. 그 실패가 무척 한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밀려오는 홍수에 자신을 다치게 한 소년처럼, 자해를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명이 반씩 깎였지만 그걸 나에게로 모아 유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너는 이곳에 없다. 호라이산 카구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네가 준 이 새로운 삶에서, 없는 것을 한탄하기 전에 먼저 구하려 노력해보겠다. 이 몸에는 너의 능력이 심어져 있다.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능력을 손에 넣어 너를 되살릴 거다. 그리고... 그리고 언젠가는 너와 다시 만날 것이다. 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하고, 공주의 옷을 입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너를, 어쩐지 좀 까칠해져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새로운 호라이산 카구야를,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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