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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 자가당착적 수필

초핫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1 23:59:33
조회 644 추천 12 댓글 12
														


“앨리스, 바깥세상에는 섬이라는 말이 있대.”


“무슨 소리야, 우리들한테도 섬은 있잖아?”


“그 뜻이 아니야, 바깥세상에는 바다에 커다란 섬이 떠있다나 봐.”


“그렇다고 우리한테 섬이 없는 건 아니래도?”


“우리는 섬이라고 하면 안개의 호수에 위치한 섬을 뜻하잖아. 바깥에는 바다라는 물로 채워진 공간이 있고, 거기에 둥둥 섬들이 떠있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한텐 섬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섬이라는 단어는 그 섬을 지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바깥에는 아마도 섬이 두 개보다 많겠지? 나무나 풀처럼 보통 명사겠지?”


“또 뜬구름 잡는 신소리구나.”


“아니야, 내 말은, 어떤 단어나 개념은 필요에 의해 생겨나고 규정된다는 이야기야. 우리는 바다에 떠있다는 섬을 가리킬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 홍마관이 자리 잡은 그 섬을 섬이라 부르는 게 지당하지.”


“대단한 공상가님의 말씀이 또 시작되었네.”


“그럼 말이야, 결계가 갑자기 붕괴되어서 우리와 바깥이 섞였다고 치자. 너와 나 같은 마법사를 그들은 어떻게 인식할까?”


“글쎄, 나는 그런 논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우리와 바깥은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공간인데, 그 공간을 억지로 섞으려는 시도부터가 비논리적이잖아. 하나의 세계에서 정의되는 단어들은 다른 세계와 적확히 동일할 수 없어. 그러니 바깥에서 마법사를 뭐라고 생각하든 우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소리인거지.”


“그래. 나도 바깥세상과 우리들이 분리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추상적이거나 혹은 구체적인 많은 것들이 서로 다르리라는 생각에는 동의해. 하지만 바깥의 사람들과 안쪽의 우리들은 수천수만 년의 역사를 공유해 왔잖아? 일말의 동질감을 기대해도 안 될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진 건데?”


“우리는 바깥에 간섭할 수도 관측할 수도 없는 존재잖아. 어느 날 갑자기 바깥이 우리를 관측하고 간섭해 온다면, 그때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마리사, 결계 안쪽 사람들이 바깥세상과 함께 포기한 게 뭔지 알아?”


“…… 과학?”


“아니, 시간이야. 우리는 이미 세상이 개벽되어 철마가 들판을 달리고 수정궁이 우뚝 서 있던 시대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던 시대에, 구태적이지만 환상적이고, 경험적 법칙으로 성립되지만 결단코 불가해한 길을, 우리는 택했지. 너는 네가 부리는 마법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 누가 설명해주는 걸 본 적이 있어?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저버린 종족의 후예이고, 바깥의 저들은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민족의 후손이야. 올곧게 일직선으로 전진하는 시간 축에서 자의적으로 벗어난 이상, 우리가 지닌 개념과 정의는 영원히 멈춰있을 테고, 바깥세상의 단어의 정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므로 동일해질 수 없어. 바깥에선 이미 마법이라는 단어가 땅에 뒹굴다 못해 사냥을 당하고 있을 지도 몰라.”


“속 시원히 말해줘서 고마워. 동질감 따위 기대말고, 그냥 옛날이야기에 등장할지도 모를 평범한 마법사라고 해야겠네.”


“그것도 완전히 틀렸지, 너는 마법사도 못 된 인간이잖아. 시간을 저버린 이상 바깥에 대한 호기심도 과거에 대한 미련도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우리들은 더 이상 달라지지 않아.”





스스로 납득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랐다.






“메리,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또 말 돌려서 어물쩍 넘어가지 마. 지각은 지각이야.”


“알았어, 알았다니까. 진짜 갑자기 문득 생각난 얘기라 그래. 그, 저번에 박물지 쓸 때에도 했던 얘긴데 말이야. 우리는 광자의 세계에 살고 있고 저 너머의 요괴들은 초끈의 진동으로 생겨난다는 말.”


“음, 무슨 소리인진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런 얘기를 그때도 했었지.”


“저 너머 세상과 우리 세계를 구분 짓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해. 네가 너머의 세상을 직접 관측했고 나도 그 세상을 함께 관측했으니, 세상의 존재 자체는 아마도 틀림없겠지. 우리 둘 다 미친 게 아니라면.”


“음, 그렇지. 갑자기 우리 동아리의 활동 내용을 처음부터 부정하는 줄 알고 놀랐네.”


“여하튼, 세상이 두 개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는 그 세상을 가르는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해. 내가 내 전공, 그러니까 물리학의 정리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척은 해봤지만, 그 초끈 이론은 사실적으로 검증된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 어려운 이야기를 싹 빼고 이야기하자면, 개연성은 가장 높고 그럴 듯 한데 아직 인류가 이론의 참과 그름을 확인할 단계엔 이르지 못 했어.”


“이과계 과목에도 그런 영역이 남아 있구나.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아는 게 없어.”


“그러니까, 가장 그럴듯한 이론물리학 따윈 내버려두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가장 그럴듯한 논리학적 추론을 해보자고. 넌 저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가르는 어떠한 기준이 존재한다면, 그게 뭐라고 생각해?”


“…… 그걸 즉흥적으로 답하라고?”


“괜찮아, 할 수 있을 거야.”


“으음, 우리가 넘어 다니는 세상은 대개 환상적이지. 우리의 세상과는 다른 별천지의 인과법칙이 적용되고 있을 확률이 지극히 높아. 또, 아직까지 저쪽 세상을 관측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었으니, 이건 비교적 확신하기 힘들지만 세계를 넘나드는 조건은 매우 국소적으로만 발현된다고 할 수 있겠지. 저쪽 세상의 특이사항을 정의했으니 여기서부터 기준 또한 추론해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래, 내가 자기모순에 빠졌던 게, 이 세상의 물리학으로 저 세상을 규정하려고 한 걸 후회한 게 바로 그 부분이야. 물리학에는 환상적이니 알 수 없는 확률론이니 하는 개념이 등장할 수 없어. 애초에 방법론이 틀렸어. 우리의 상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야. 사고방식을 뜯어 고쳐야 해.”


“어…….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우리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식이 극적으로 바뀐 시기가 힌트겠지. 우리의 상식이 아직 우리의 상식이 아니었던 때.”


“뭔 헛소리야, 과학세기로 진입했을 때?”


“확실히 과학세기도 중요한 마일스톤이지만, 인류가 아직 과학이 무언지도 몰랐던 때라면 어때?”


“아, 과학혁명.”


“그래, 그 때 인류는 아직 과학혁명을 일으킬만한 시기적 제반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해서, 구습을 지키고 세상을 과학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논증하고자 했지. 신학이라던가, 주자학이라던가, 이쪽은 내가 이과라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랬잖아?”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아마도 그 시대의 인류는 번개가 왜 치는 지도 몰랐을 거야. 번개의 신이 노해서 쳤다거나, 그런 허무맹랑하고 비과학적인 믿음에 집착했겠지. 집착도 아니다, 그게 당연한 받아들임이었겠지. 다시 말해 상식이었을 거란 말이야.”


“저쪽 세상은 아직 그러한 상식에 지배받고 있다?”


“상당히 논리적이지 않아? 뭐, 이것도 증명은 절대 불가능하고, 여러 과학적 사실이 뒷받침하는 초끈 이론에 비하면 초라한 추론이지만.”


“그렇다면 우리 세상과 저쪽 세상을 나눈 기준은, 우리는 과거를 버렸고, 저들은 과거에 산다는 이야기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과거를 거의 깨끗이 잊어가잖아. 자연 발화하는 소녀나 벚꽃이 만개한 저승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과학적으로 논파당할 거야.”


“재미있네. 과거의 상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관측하는 현재의 우리들이라, 슬슬 좀이 쑤시는데 과거의 세상으로 놀러 갈까?”


“잠깐, 에, 엣취! 아이고, 재채기가.”


“God bless you!”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나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내 행위에 염증을 느끼고 내가 아주 잘 알고 나를 아주 잘 아는 C를 방으로 불러내 조언을 구했다.





“야, 네가 쓴 글을 봐라. 앨리스가 ‘경험적 법칙으로 성립되지만 결단코 불가해한’ 따위의 말투를 회화체에서 쓰겠냐?”


“어차피 다 이야기잖아요. 그냥 환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거라니까요.”


“대체 환상향을 간접적으로 이해한다는 게 무슨 소리야. 환상향은 그냥 맥주를 좋아하고 유쾌한 ZUN이 만들어낸 세계잖아. 이해하고 자시고, 환상향은 모든 개인에게 저마나 그들의 해석이 있기에 빛나는 게 아니었어? 거기에 무슨 보편적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건데?”


“셜로키언이나 톨키니스트를 생각해보세요. 인류의 유구한 연구 활동이라니까요 이건? 욕을 바가지로 처먹겠지만 불경의 해석이나 성경의 판독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 제시한 일정한 세계에서 특정 가능한 가치를 뽑아내는 일은 중요하죠. 저는 환상향을 좋아하니까 환상향을 조금이라도 규명해보고자 노력하는 거고요.”


“고매한 신학자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생각하는 환상향은 말이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동의할 텐데, 협의는 하쿠레이 결계로 인해 바깥세상과 분리된 잊힌 것들의 낙원이고, 광의는 ZUN이 창조해낸 세계관의 총칭이야. 엑기스는 이거고, 거기다 조미료를 뿌리는 건 환상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이지. 요괴들이 식인을 일삼는 헬상향도 될 수 있고, 그냥 느긋하게 만물이 공존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일 수도 있어. 아니야?”


“제가 말하는 환상향에 대한 이해는 그게 아니에요. C씨가 이야기한건 어디까지나 환상향에서 완벽히 이격되어 있는 우리들이 바라보는 환상향이잖아요? 그보다 중요한 건 환상향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겠어요? 대체 저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25년간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그를 위해선 환상향을 외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요참고인 비봉클럽의 시점도 파악해야 하고, 환상향연기나 원작 대사 등 다양한 사료를 분석해야 하죠. 제가 하고 있던 일도 그런 연구의 일환이었어요. 물론, 무시로 염증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요.”


“모순적인 소리는 그만 해라. 그렇게나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는데 왜 염증을 느끼는데?”


“땅을 기어 다니는 뱀을 보고 간사한 동물이라 치를 떨었을 중세의 신학자들처럼, 댓잎을 흔드는 바람을 느끼고 자연에 깃든 신명님의 조화라고 여겼을 옛사람들처럼, 뱀을 보면 카나코를 떠올리고 바람을 느끼면 사나에를 떠올렸어요. 환상향을 상식으로 여기고 저 자신을 재편하고자 노력했어요. 지나가다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아야나 하타테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니까요? 그러다보면 자연히 환상향에 젖어들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근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저는 도저히 환상향 주민들과 동화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 같아요. 환상향을 관측이라도 할 수 있는 비봉클럽 멤버들이 미친 듯이 부러워요. 염증은 그런 무력함에서 기인했죠.”


“의도는 알겠고, 신학자들이나 셜로키언들이 너와 같은 행동을 통해 믿음을 다진 것도 맞지만, 너무 빠져들어 과하게 몰입하는 것은 좋지 않아. 동방이 너한테 뭐라고 그래?”


“취미지요.”


“보통 사람들이 취미에 그렇게까지 빠져들고 세계의 진상을 찾겠다고 고심 하냐?”


“환상향이 완벽히 창작된 세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가노현 스와를 찾아 스와코나 카나코의 흔적을 더듬잖아요. 성지 순례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 가면서요. 환상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지도 못한 채 성지 순례를 다녀온 것도 부끄러워졌어요.”


“포기다, 나는 그렇게까지 동방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것도 동방을 즐기는 하나의 스탠스죠.”


“다 알면서 또 자가당착적인 소리를 하네.”


“아.”




C는 표정을 찡그리며 방을 떠났다.

나는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본 뒤,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골똘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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