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단편선] 프리저브드 플라워

물부포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2 00:19:49
조회 284 추천 5 댓글 6
														

그리 반가운 첫 만남은 아니었다. 태자님을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먹은 대가로 붙여진 포상의 이름을 한 감시용 시중이었으니까. 시종을 하사하실 때 표정관리조차 되지 않아 웃음이 히죽히죽 새어나오던 태자님의 얼굴은 다시 떠올릴 때마다 혈압이 치솟을 정도로 얄미웠다. 처소로 돌아오고 난 후 말없이 앉아 곰방대를 피워대며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내가 무서웠는지 방구석에 콕 박혀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모습이 퍽 한심해 보여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다. 겁에 잔뜩 질려 쉬이 대답을 못하던 그녀는 내가 답답한 마음에 호통을 치자 그제야 더듬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미야코 요시카, 14살. 시종 치고는 과분한 이름 같으면서도 궁의 시종임을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이름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는 모든 곳마다 진드기처럼 붙어 다녔다. 마을에 내려갈 때도, 태자님을 뵐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는 방중술을 할 때조차 감시라도 하듯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봐두었다가 태자님에게 고하기라도 할 속셈인 것 처람 보였다. 나는 감시는 물론이고 통제받는 것도 싫어한다. 선인이 된 것도 그러한 이유인데 정작 선인이 되고 나서 저런 일을 당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결국, 난 요시카와 만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호통을 치며 그녀를 처소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하였다. 그녀는 날 감시 못 하면 무시무시한 형벌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내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 애원했으나,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 간은 내가 나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시종다운 단정한 옷차림과 자세로 내가 외출할 때나 돌아올 때나 예의 바르게 맞이하는 것이 퍽 기분 좋았다.


그렇게 해방감 넘치는 행복한 한 달이 또 흘러갔다. 그날은 유독 방중술에 열중해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하였다. 집 대문을 열려는 순간 집 안에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 순간 멈칫하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 소리의 근원지는 마당 앞 작은 정원을 보았더니 바위에 걸터앉아 조용히 시를 읊으며 구름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요시카였다. 요시카는 그제서야 나를 알아채곤 허둥지둥 바위에서 몸을 떼곤 사시나무처럼 떨며 내 발치를 바라보는데, 그녀는 내가 아마 벌을 줄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아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녀는 떨며 내가 없을 때면 심심풀이로 처소에 있는 책을 읽었다고 이실직고했다. 호기심이 거품처럼 일었다. 글 하나 읽을 줄 모르던 아이가 독학으로 근 두 달 만에 시를 외울 정도가 되었다니, 이곳에는 글을 지으며 놀 사람이 없었다. 태자님은 한번 놀려먹었다가 크게 덴 적이 있고, 토지코는 꽉 막혀 도통 즐길 구석이 없었으며, 후토를 비롯한 대부분은 글솜씨도 형편없는데다 사냥과 연회를 더 즐기며 나를 태자님이나 홀리는 년이라며 싫어하는 것을 넘어 증오할 정도니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다소 험하게 놀려먹어도 괜찮은 시종 글동무가 생길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자신을 집에 가둬둘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글을 가르쳐 준다니,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말을 다시 한번 듣곤 애써 침착한 척 감사를 표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슬며시 올라오는 웃음과 기쁨에 동동 굴러지는 발은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그녀와 시간 대부분을 보내게 되었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은 날이 갈수록 다른 감정으로 변해갔다. 무료함을 달래려 내려가던 마을보단 그녀와 함께 마주앉아 책을 펼치고 보내는 시간이 훨씬 즐겁고 알차게 느껴졌다. 어쩌다 태자님을 뵈러 갈 때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같이 갔다. 나와 그녀는 어디를 가던 언제나 붙어 다니게 되었다. 잠도 한 이불에 같이 들어가 그녀의 체온과 향기를 맡으며 잠들었고 방중술도 그녀와 같이 해결했다. 말린 미역처럼 가르친 것들을 무시무시하게 빨아들이는 그녀를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비가 오는 날엔 처마 밑 마루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날이 맑으면 정원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같이 시를 읊으며 웃었다. 그녀는 언제나 정원에 있는 복숭아 나무를 보며 나 같은 선인이 되고 싶다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되뇌었다. 나를 사선이 아닌 선인이라고 말해주는 건 요시카 뿐이었다.


낙엽과 풍요가 가득한 가을과 눈과 빈곤이 가득한 겨울이 지나가고 복사꽃이 싱그럽게 피는 봄이 찾아왔다. 언제나 겨울일 것만 같았던 내 얼어붙은 빈곤한 마음도 차츰 녹아내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으로 천천히 채워졌다. 요시카는 이제 단순히 시종과 글동무를 넘어서 제자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행복했었다.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때 느껴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뜨거운 차를 마실 때의 홀짝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대화하거나 시를 읊을 때 내는 단아하고 맑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복사꽃을 하나 따 머리에 꽂으며 복사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청아 님을 닮고 싶다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선인으로 살아왔던 고난의 잿빛 나날들이 이날만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운 쌀과 금은보화도, 태자님에게 알랑거리며 얻어낸 권력을 휘둘러 보는 것도 요시카와 곁에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천인이 되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선인이 된 요시카와 함께 영원히 함께 살고 싶었었다,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후토는 사냥을 좋아했다. 아마 순위를 매기라면 절 불태우기 다음으로 좋아할 정도였다. 그런 후토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기가 무섭게 사냥을 나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나를 사냥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너무 행복감에 젖어서 경계심이 허물어진 탓이었을까. 나는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후토와 동행을 승낙했고 당연히 시종으로 요시카를 같이 데려갔다. 그때 후토와 그녀가 대동한 호위들의 이상한 눈초리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멍청했다. 사냥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난 후토와 호위들이 사슴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간 동안 요시카와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시카의 등에 화살이 박히기 전까지는. 요시카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졌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요시카를 부둥켜안았다. 덤불에서 튀어나온 후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슴인 줄 알았다고 성의 없이 변명하며 흐릿한 이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잊지 못할 말을 하였다.


“미안하긴 미안하오만… 어차피 시종 아니오?”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치솟아 그대로 후토에게 달려들었다. 나와 후토는 호위들이 떼놓기 전 까지 말 그대로 피 터지게 싸웠고, 결국 후토는 나와 죽어가는 요시카만을 남긴 채 성급히 숲을 떠났다. 나는 요시카를 일으켜 얼굴을 보았지만, 이미 눈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입에서 뿜어내는 피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요시카를 업고 빠르게 의원에게 데려가려고 했으나 몇 발짝 못 가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이미 그녀의 심장은 멈췄고, 가망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요시카의 시신을 껴안고 그저 흐느껴 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녀의 체온이 식어가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맑고 아름답던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죽은 생선처럼 변해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이 내는 소리도 싫었다. 요시카의 피가 적 셔져 빨갛게 변해가는 풀들이 싫었다. 수행이 부족해 그저 요시카를 껴안고 울기만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모든 게 싫었다.


요시카와 허리춤에 복사꽃을 어루만질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흘러 색바래고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몇 세기가 지나도 그때 꽃다운 모습 그대로 피부색만 달라진 채 나에게 달라붙는 사랑스러운 요시카와, 그때 요시카의 머리에 꽂혀있던 아름다운 복사꽃. 이 둘이 있기에 감정은 여전하고, 환상향에서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


이쯤되면 고질병

추천 비추천

5

고정닉 3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내 며느리, 사위로 만나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6/03/09 - -
AD 노트북 지금이 기회!! 운영자 26/03/05 - -
AD 전설을 키우다, 창세기전 키우기 지금 시작하기. 운영자 26/03/10 - -
공지 동방프로젝트 갤러리 "동프갤 슈팅표" [59] 돌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4 22757 52
공지 동방프로젝트 입문자와 팬들을 위한 정보모음 [46]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7.27 113069 132
공지 동프갤 구작권장 프로젝트 - 구작슈팅표 및 팁 모음 [531]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2.03 110435 136
공지 동방심비록 공략 [58] BOM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2.18 93636 30
공지 동방화영총 총정리 [43] shm(182.212) 15.06.11 119972 52
공지 동방심기루 공략 [64] 케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10.12 128755 33
공지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 이용 안내 [157766/7] 운영자 09.06.23 611243 536
8473679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33 2
8473678 그래서 단톡방 떡밥 뭐임 ㅇㅇ(106.101) 03.10 63 0
8473677 난 옾챗출신인데 [2] ㅇㅇ(153.209) 03.10 139 6
8473676 챈 뒷단톡 있다는거 웃긴점 [2] ㅇㅇ(223.38) 03.10 115 3
8473674 챈첩인데 폭로하나 함 [3] ㅇㅇ(87.249) 03.10 320 12
8473673 꽃에 살다라고 옛날 동방 동영상 기억하는사람?? [1] 동갤러(118.235) 03.10 102 1
8473672 신키야 더이상 상갤에 미련갖지말고 니 받아주는 옾챗가서 놀아라 ㅇㅇ(106.101) 03.10 113 4
8473671 상갤하는게 그렇게 큰 잘뭇인가? [1] ㅇㅇ(211.235) 03.10 163 4
8473670 O0님 일안함? [3] ㅇㅇ(106.101) 03.10 236 7
8473669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115 0
8473668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34 0
8473667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35 0
8473666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0 33 0
8473664 오히려 요우무빠는 유입이면 사신키아님 [4] ㅇㅇ(223.38) 03.10 340 5
8473663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69 2
8473662 ‼+상하이⁉+앨리스‼+환악단‼+갤러리로‼+ 상하이갤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34 1
8473661 사신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라 ㅇㅇ(128.14) 03.09 166 9
8473660 처음에 lphp가 사신키인줄 알았던 이유가 [3] ㅇㅇ(211.235) 03.09 279 1
8473659 금마가 존나 대단한 새끼인 이유 ㅇㅇ(61.25) 03.09 166 7
8473658 lphp 얘 급딱은 맞는거냐 [2] ㅇㅇ(211.235) 03.09 233 0
8473657 갤에 106.101가 많은게 안좋은 이유 [1] ㅇㅇ(106.101) 03.09 172 4
8473656 한동안 잠잠하던 동갤이 챈 떡밥 나오니 다시 활발해졌다라... ㅇㅇ(211.235) 03.09 138 7
8473655 106.101 갤 혼자쓰노 [3] ㅇㅇ(223.38) 03.09 184 7
8473654 구매력 딸리는 보지년들은 말살이 답이다 ㅇㅇ(106.101) 03.09 234 4
8473653 동방의 처참한 미래 ㅇㅇ(223.39) 03.09 141 0
8473652 갤에 나이 쳐먹고 아직도 디시붙잡는 앰생들 너무 많은듯 ㅇㅇ(106.101) 03.09 128 6
8473651 사신키 부계 추측 동갤러(106.101) 03.09 127 2
8473650 갤에 급식들 ㅈㄴ 많아진듯 [4] ㅇㅇ(106.101) 03.09 264 6
8473649 아웅견님 키워드벨튀 작작하세요 [1] ㅇㅇ(106.101) 03.09 229 11
8473647 ‼+상하이⁉+앨리스‼+환악단‼+갤러리로‼+ 상하이갤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97 1
8473646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48 0
8473645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46 0
8473644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44 0
8473643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39 0
8473642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8 138 3
8473641 fa 들먹이는거 람파가 아니라 망설이 아님? ㅇㅇ(106.101) 03.08 225 10
8473640 test castle06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8 116 3
8473639 로갓식구 한명이 더 늘었습니다 ㅇㅇ(211.235) 03.08 249 6
8473638 나 이제 다 파악했어 유웃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8 304 12
8473637 게이글쓰는애들이나잡던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8 268 3
8473636 람파야 fa 작작들먹여라 ㅇㅇ(106.101) 03.08 201 6
8473635 ‼+상하이⁉+앨리스‼+환악단‼+갤러리로‼+ 상하이갤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8 45 3
8473634 찐따새끼들 ㅇㅇ(106.101) 03.08 162 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