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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씨, 1편

ㅇㅇ(175.223) 2017.08.13 02:12:16
조회 187 추천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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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PARIS’

듬직한 20대 후반 남성이 입은 정장 속 가격 꼬리표에 붙은 몇 글자 마디. 흔들거리는 꼬리표를 가까스로 포착해 그 짧은 순간 훑어냈던 것이다.

값어치를 읽는 데는 실패한 이수진 씨는 눈알을 위로 치켜 올려 잠시 생각에 빠진다.

파리에서 만든 정장은 얼마나 비쌀까?’ ‘200만원-500만원?’ ‘어쩌면 그것보다 더 할 수도.’

저 남자 학벌은 괜찮을까?’ ‘아냐, 돈만 있으면 다 돼. 학벌 따위야 무슨 소용이야.’

대형 도시 광장에는 수많은 빌딩이 새겨져 있고 무수한 광고판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령 프라다, 벤츠, AUDI, SAIKO, GUCCI 등의 마크를 붙이고 남은 여백에 이를테면 황금색이라든가 이목을 집중시킬 적나라한 빨강색 혹은 프리미엄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배경으로 이름 모를 이국적 모델을 옆에 안착시켜 놓으면 순간 선망의 아이템이 된다.

눈이 점차 오기 시작한다. 이수진 씨는 자리를 피하려 한다. 하지만 이곳은 수많은 행인에 둘러싸인 영화관이다. 주연은 갈색 가르마 펌 머리에 베이지 색 계열의 정장을 단 이름 모를 20대의 듬직한 남성과 그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며 나홀로 눈 시위를 맞는 가녀린 30대 여성. 하지만 그녀에겐 곧 시련이 닥친다. 그녀에게 눈은 트라우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유독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되던 그 해 겨울, 고등학생이던 이수진 씨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침 사회에서 급부상하는 이슈였던 페미니즘을 본받아 이 같은 대한을 이기기엔 커피색 스타킹으론 부족하다고 판단, 가을에 간 수학여행을 끝으로 서랍 속에 모셔 두었던 아디다스 유로파 팬츠를 거울 앞에 내세운다. 색은 당연히 여성을 상징하는 핑크색에다 진품의 증서이자 디자인의 화룡점정을 찍는 하얀색 삼선 라인이 제대로 마킹되었다. 거울에 비친 미제 제품이 빛을 발하자 이수진 씨는 핑크색 바지를 내려놓고 즉시 화장대로 달려간다. 그녀는 이따금 TV에서 들었던 생활뉴스를 회상한다.

‘...겨울철에는 특히 자외선 차단제가 필수죠. 많은 분들이 춥고 건조한 겨울철에는 자외선이 약하다고 생각해 바르지 않으시지만 실제로는 겨울철 수북이 쌓인 눈이 하늘에서 내리 쬔 햇빛을 반사시켜 여름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겨울철에도 틈틈이 자외선 차단제를 이용하시길 권고해드립니다. 추천제품으로는...’

그렇다. 그녀 앞에 놓여있는 건 그것이다. 바로 자외선 차단 기능이 포함된 3BB크림. 동양인 특유의 블랙 브라운 피부는 제대로 된 여성을 표현하지 못한다. 최소한의 여성성이란 하얀 피부, 금발 머리, B컵 이상의 가슴 크기 등이 선망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것들은 상업성이 짙거나 도덕성이 결여되고 유전자의 한계점이 비친다고 판단한 이수진 씨는 그동안 하얀 피부만을 선망의 대상으로 남겨놓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기회가 다가온 오늘이 돼서야 이수진 씨는 자신을 여성으로 거듭나려는 의식을 취한다. 깨끗이 씻은 손 위로 지문 마디마다 크림 한 점씩을 짜 올린다. 이어 열 손가락 마디를 얼굴 지면 전체에 덮는다. 문지르고 주무르며 신여성이 되어 감을 희열한다. 오늘이야말로 그녀 인생을 대변할 큰 족적 하나를 남기는 날일 것이다.

그렇게 핑크색 아디다스 바지와 적색 계열의 나이키 가방을 교복과 함께 착용한 이수진 씨는 등굣길을 외로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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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가 참 어렵고 3-4시간 가량을 투자했는데도 분량이 족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되네요.

2편도 내일 부족하게나마 올려보겠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82년생, 김지영 씨를 읽고 모티브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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