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라 꼬마 영혼들아

거인의 발이 다시 움직인다

병실이 이모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차고

승일이 형이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동안

나는 도망칠 궁리를 한다

물론 서울대 병원 라운지의 고급 한식은 먹고 갈 생각이나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은 내가 이 병실에 더 머물다가는 거인의 영혼에 짓밟혀 연약한 꼬마 영혼이 생을 다할 수도 있다는 그런 가능성이다

나는 밥을 먹는다 고급 갈비탕이다 깔끔한 기름이 먹음직스럽게 떠다니고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점이 올라오는 그런 밥이다 밥을 먹으면 꼬마 영혼과 이야기할 수 있다

도망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밟혀 죽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키가 작은데요

맞습니다 키가 작은데 독일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공부했어요

그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군요 우리는 도망쳐야 합니다

서두릅시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일단은 도망칩시다

장례식은 어쩔 수 없이 차분했다 인간의 혈액함유수분량은 정해져 있으니 이모들은 이제 울지 않았고 승일이 형은 형수님의 눈치를 보며 육개장을 날랐다 구두의 주인이 바뀌고 조화의 꽃잎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작업이 전부였다 도망친 나와 꼬마 영혼은 어렵게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거인의 형상을 한 실체적 공포가 비석의 주인으로 남아있었으므로

새겨질 문장을 보지 않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