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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다르다' 재벌 3세들이 선택한 독특한 자신만의 경영방식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0
조회 2463 추천 4 댓글 27
요즘은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런 변화에 맞춰 재벌 자제들의 경영방식도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벌 3, 4세들도 예전의 보수적인 경영방식 대신 자신들만의 독특한 혁신 경영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죠. 아마도 변화를 통해 기존의 관습이나 수직적인 구조, 소위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들 각각의 독특한 혁신 경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1. LG 구광모 회장LG 그룹 구광모 회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재벌 자제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인지 구 회장은 '회장' 대신 '대표'로 불리길 원했다고 합니다. 호칭이 주는 효과가 생각보다 큰 만큼, 호칭의 변화를 통해 딱딱하고 관습적인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또, 그는 경영진 회의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일방적 보고 형식보다는 토론 형태로 경영진 회의를 진행함으로써 좀 더 자율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도록 한 것이죠. 또, 내용 측면에서도 '실적'만 강조하기보다는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사실 더 놀랍게 한 것은 파격적 인사였습니다. LG화학은 창립 이래로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적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LG의 핵심 격인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다국적기업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내정하면서 기존과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순혈주의로 불렸던 LG그룹이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좀 더 혁신적이고 변화하는 이미지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2.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대개 '재벌'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SNS를 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SNS에 자칫 올린 글들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트위터에 이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SNS를 꾸준히 활용해와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소탈한 모습 혹은 유머 섞인 홍보글을 올리거나, 진지한 홍보 콘텐츠를 업로드하곤 했습니다. 딱딱한 광고가 아니라, 친근한 SNS를 통해 '공감'에 포인트 맞춘 부회장의 모습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존과 같은 성장 방식은 앞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2018년 경영 화두로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 개발’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야말로, 경쟁사와 근본적으로 차별화하고, 고객들과의 공감을 통해 고객이 우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라면서 말입니다. 상품 그 자체뿐 아니라 내면의 스토리까지 구성해 소비자를 사로잡는 '공감' 키워드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고정관념을 넘어 일상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진솔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찾으라고 한 점에서 관습적인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지도 보입니다.3. 신라 호텔 이부진 사장사실 이부진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호텔 신라는 일전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중 유명한 것이 '한복 출입 거부 사건'이었죠. 우리나라의 전통 복장이 '한복'인 만큼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유명 호텔이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반응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장은 변명보다는 상황 설명과 신속한 사과로 대처를 잘했다는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사건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죠. 또, 한창 제주도 결항으로 난리였을 때 신라 호텔 투숙객들에게 무료로 1일 숙박을 연장해주고 조식까지 제공해주는 등의 서비스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규칙이 강조되는 호텔이지만, 융통성을 발휘해 대처하는 모습이 대중들에게도 인상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신라 호텔에 택시가 출입문을 들이 받은 사건도 유명합니다. 사실 배상액이 보험금을 제하더라도 4억 원에 이르러 일반인이 부담하기엔 큰 금액이었죠. 그때,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닐 것이라며 해당 택시 기사의 상황과 처지를 알아보고 배상액을 면제해주어 화제가 됐었습니다. 또, 직원들에게도 공을 돌리는 경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운영권 입찰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확정되기 전에 임직원들에게 사업 선정이 잘 되면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내 탓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직원들까지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이 사장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대중들에게 '재벌'이라는 말은 멀게 만 느껴지고, '재벌 세습'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재벌 경영인들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보수적인 틀을 깨고 혁신적인 자신들만의 경영방식을 만들어 나가면서 그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재벌 3, 4세 경영 시대인 요즘, 관습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혁신적이면서도 자신들만의 색이 뚜렷한 경영방식을 구축한 모습은 직원들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무학력, 무스펙, 한달 15일만 일해도 월 300만원 수입'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0
조회 1491 추천 2 댓글 8
간판회사 대표 2명이 말하는 간판의 세계간판 시공 일당 20만원 수준 "15일만 일해도 월 300"경력 쌓았다면 창업도 쉬운편, 리스크도 적어 "불황에도, 미래에도 끄떡없는 황금업종"“학력도, 스펙도 필요없습니다. 정년도 없는 ‘평생 기술직’입니다. 사지만 멀쩡하면 월수입 300만 이상입니다.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디자인 바로' 이송근 대표(왼쪽)와 '한성 디자인' 김수엽 대표/jobsN20년 이상 옥외광고업계, 이른바 간판업계에 몸담고 있는 두 대표가 입을 모아 말했다. 간판회사 ‘디자인 바로’ 대표 이송근(61)씨와 ‘한성 디자인’ 대표 김수엽(53)씨. 이 대표는 “길게 보면 삼성, 현대차보다 낫다”고 했다. 김 대표는 “간판을 제작하거나 시공하는 ‘간판기사’도 좋고, 창업을 하더라도 리스크가 적다”고 했다. 그러나 간판 사장님들은 같은 고민을 한다. “요즘엔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간판업계 종사자 가운데 30대 이하는 어림잡아 10%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실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한 요즘 같은 시대에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이들 주장이라면 좋은 직업인데 왜 구인난에 시달리는 걸까. “인지도가 낮은데다 험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송근 대표) “바깥과 단절된 장소에서 일하는 건설 현장직과 달리 길바닥에서 일을 하는게 창피한 것”(김수엽 대표)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대표는 “하지만 알고보면 정말 괜찮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며 “아이들도 모두 대를 이어 이 일을 한다”고 했다. "벼랑 끝까지 몰린 절박한 사람이라면 우리 이야기를 한 번 속는셈치고 들어주세요." 구인난에 시달리는 간판업계. 왼쪽은 잡코리아에 올라온 간판기사 구인공고. 오른쪽은 보조기사를 구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디자인 바로/잡코리아·디자인바로 블로그◇3년 수련과정, 어떤 것들을 배우나 간판업계에선 보통 4가지로 업무를 분류한다. 제작과 시공, 디자인, 그리고 영업. 제작은 말 그대로 간판을 만드는 일이며 시공은 제작된 간판을 박는 업무다. 디자인은 간판을 디자인하는 일, 영업은 거래선을 확보하고 간판 제작과 시공 주문을 따내는 역할을 한다. 이 중 일부만 다루는 간판회사도 있고, 4가지 업무를 모두 하는 간판회사도 있다.최근 오픈한 개그우먼 이국주의 가게 '호로록' 간판이 이 대표가 운영하는 디자인바로의 작품이다. 왼쪽은 간판을 만들기전 디자인 시안. 오른쪽은 전기배선 작업을 한 모습./디자인바로 블로그김 대표는 “신체가 자산의 전부라면 제작과 시공으로 업계 커리어를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잡코리아 등에 내는 간판회사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하면 됩니다. 다들 인력난에 시달리니까 웬만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죠. 처음 1년간은 ‘보조기사’로 일합니다. 이때는 연봉이 1800만쯤 되죠. 일종의 수련 과정입니다. 간판 시공은 2~3명이해요. 처음엔 시공을 하러가도 건물 재질이 시멘트인지 블록인지 분간도 못해요. 그러나 경험이 쌓이다보면 현장을 보고 ‘어떻게 시공하면 되겠다’는 감이 섭니다. 3년 정도 경력을 쌓았을 때입니다.”간판 제작이 끝나면 현장으로 이동, 간판을 박고 전기선을 정리한다. 오른쪽은 완성된 간판의 모습./디자인바로 블로그간판 제작과 시공 기술에 대해 이 대표는 “일종의 종합 노가다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처음엔 경력이 많은 기사를 따라다니며 도구를 들어주는 등 잡일을 한다. 제작 분야에선 간판 내부에 들어가는 전기 배선 작업 기술과 간판 조립을 위해 공구 사용법 등을 익힌다. 시공 분야에선 벽에 앙카 볼트를 박거나 도배를 하는 법 등을 배운다. 때로는 땅도 팔줄 알아야 한다. 이런 기술들을 익히려면 3년쯤 걸린다. ◇불황에도 끄떡없는 ‘월 300 이상’ 입문기간 3년을 거쳐 기술을 숙지했다면 계속 회사에 다니거나 아니면 일종의 프리랜서인 ‘일당 기사’로 업계를 누빈다. 김 대표는 “3년 이상 경력의 경우 회사에 남는다면 연봉 3500 전후를 받을 수 있다”며 “워낙 사람이 귀하다보니 상사가 막말이나 잔소리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기술직이기 때문에 회사가 맘에 안 들 경우 이직을 하기 쉽다. 직원이 오히려 ‘갑(甲)’이라는 얘기다. 그는 “갈 곳은 널려 있다”며 “전국에 간판 회사만 2만개”라고 했다./육선정 디자이너아예 회사를 나와 일당기사로 뛰는 방법도 있다. 시공을 할 때마다 일당을 받는다. 수요는 끊임없이 존재하는데 공급은 부족하다. 일당이 20만~22만원선으로 치솟은 상황. 주간 8시간 작업 기준이다. 백화점 등 혼잡한 곳에선 야간 작업을 한다. 이땐 일당이 두배(40만~44만원)로 치솟는다. 불황에 오히려 일당기사의 일감은 늘어난다. 가게가 망하면 새 가게가 들어서고 새로운 간판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사다리로 고층 간판작업을 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크레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안전성 측면에선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크레인을 활용한 간판 시공작업/디자인바로 블로그일당기사는 서로 친한 사람 2~3명끼리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간판회사에서는 자체 직원만으로 작업량을 충당하기 어려울 때 일당 기사를 쓴다. ‘실력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먼저 간판회사에서 일당 기사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 경우는 스케줄이 빡빡하기 때문에 일주일쯤 전에 미리 연락해 예약을 걸어야 한다. 김 대표는 “아니면 일당기사들끼리 조직한 협회에서 일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어쨌건 항상 일감은 있습니다. 한달에 최소 15일 이상은 있습니다. 그러면 월 300이죠. 그 정도는 최소 수준이죠. 20일 이상(월 400) 일하는 분도 제법 됩니다.”◇창업도 리스크 적어…“칼퇴 가능한 자영업”아예 가게를 차리는 경우도 많다. 창업이다. 창업자인 두 대표는 “아마도 리스크가 가장 적은 자영업종일 것”이라고 했다. “초기 자본금이 정말 적게 들어요. 자재를 실을 트럭과 임대료를 내는 작은 사무실, 그리고 배선장비나 드릴 등 200만원어치의 공구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임대를 어느 곳에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증금을 합쳐 2000만원 수준이면 초기 비용으로 충분합니다. 인테리어에 큰 돈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빙그레'나 '대림통상'은 이 대표의 고객이었다. 이밖에도 주연테크, 흥국생명, LG카드, 대한적십자사 등과 계약을 체결, 다른 업체들과 나눠 간판 작업을 했다./디자인바로 블로그영업범위가 전국이라는 점, 그리고 재고가 없는 것도 간판업의 특징이다. 이 대표는 “프랜차이즈나 대기업과 계약하면 제작·시공을 맡는 간판 숫자가 많아진다”라며 “평소엔 수도권 위주지만 때로는 제주도까지 작업을 가기도 한다”고 했다. “세상에 같은 간판이 없어요. 다 조금씩 달라요.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도 주문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정해진 가격이 없어요. 주문 제작이니까 재고가 남을 수도 없습니다. 망하더라도 손실비용이 적은거죠.” 보통 간판의 원가는 의뢰금액의 30~40%선. 두 대표는 “간판일을 하다보면 주문자가 다른 업계 사람이다보니 그 업계의 노하우나 알짜정보도 쉽게 알려준다”며 “그러나 그런 정보를 듣고도 간판업에서 발을 빼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야간 작업이 없는 이상 우리는 보통 오후 6시 이후에 ‘칼퇴’합니다. 칼퇴하는 자영업자 보셨습니까? 주말엔 여행도 다닙니다. 삶의 여유를 즐기는 자영업은 우리밖에 없어요.”건설업계는 외국인근로자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왼쪽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 오른쪽은 전체 대비 외국인근로자 비중. 외국인 근로자가 흔해진 건설업계와 달리 간판업계는 외국인을 찾아보기 어렵다./채널A 캡처·건설근로자공제회 제공◇“미래에도 간판은 사라지지 않는다”우리나라에서 육체노동 위주의 업계는 외국인 근로자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간판업계처럼 젊은이는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직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인건비가 크게 오르질 않는다. 그러나 이 분야는 다르다. 김 대표는 “간판업은 외국인 대체가 어려운 업종이라 인건비가 끊임없이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팀플레이니까 의사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일이 힘들어요. 수시로 소통해야 합니다. 말이 안 맞아서 실수를 하면 크게 다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직도 이 현장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거의 없어요.”일하면서 보람을 느낄때는 간판을 달아준 집이 '대박'이 날 때. 김 대표는 "고객 대부분은 처음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간판을 만든 다음 몇년 지나서 '덕분에 잘 됐어요'라는 연락을 받으면 힘이 납니다. 그분의 소개로 또 다른 간판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반대로 가게가 금방 망해버리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4차 산업 혁명’은 이들과 무관한 얘기라고 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으나 간판이라는게 사라지겠느냐”고 했다. “몇 년만 배우면 인생이 바뀝니다. ‘사자 직업’을 갖지 못할 바에는 기술을 배우는게 최고예요. 요즘 ‘100세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나중에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수저들 힘만 있으면 보조기사로 썬팅일이라도 하면서 먹고 살수 있습니다. 숨어 있는 ‘황금직업’입니다.” 글 CCBB 에디터 오유교시시비비랩
부업으로 시작해 6년만에 주4일 연봉 8천만원 된 직업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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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직함 가진 30대 1인 기업 CEO재무설계사, 청소부, 화장품 판매 등으로 보낸 20대우연히 접한 블로그 세계…투잡이 본잡으로 강연, 저작, 컨설팅 활동 등으로 연수입 8000만브랜딩&마케팅 컨설턴트, 강사, 저자 그리고 MC. 그녀의 명함엔 이렇게 4개의 직업이 찍혀있다. 명함의 주인은 1인기업인 사람북닷컴 대표 박세인(33)씨다.  박씨는 “주로 친절한 세인씨라는 휴먼 브랜드로 소셜마케팅과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 일반인에겐 낯선 분야. 이른바 ‘온라인 마케터’로 불린다. 사람북닷컴은 연매출 8000만원을 낸다. 기업 운영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매출 대부분이 박씨의 주머니에 떨어진다.박세인 대표/본인 제공전체 수입 가운데 강연 수입이 가장 크다(회당 50만~100만원). 개인이나 기업 컨설팅료로 한시간에 25만원 정도를 받는다. 누적방문자수 100만명이 넘는 블로그를 통해 진행하는 공동구매에서도 수익이 발생한다. 2014년 펴낸 ‘블로그 투잡됩니다’라는 책은 1만부가량 팔렸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8000명이 넘는 인맥을 쌓은 박씨는 아는 사람끼리 연결해주고 받는 소개비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5년 전까지 그녀는 청소부, 화장품 판매, 재무설계사 등을 전전했다. 박씨는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20대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주4일에 저녁있는 삶을 산다. 30개월 아들과 노는 시간도 많다. 주변에선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전업 주부로 보일 정도로 아이나 가사에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해본 것이 없었던 20대영화 스텝 시절 박세인씨/본인 제공박씨는 서일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사진찍고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졸업 후 가진 첫 직업은 상업영화 스텝. 이후 대학 조교를 거쳐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막상 호주로 떠날 즈음에 가세가 기울어 공부가 아닌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였다. “학비를 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어요. 공부하러 갔다가 일만 했죠.” 4년가량 호주에서 휴대전화 판매, 환전소 운영 등을 했다. 전단지 알바를 뛰다 취직한 적도 있다. “전단을 열심히 돌리는 모습을 본 대표님이 직원으로 채용해 주셨어요. 애교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전단을 들고 가게 만들었거든요.” 26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벌도, 경력도 ‘무스펙’이나 다름없었던 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박세인씨의 인생을 타임라인으로 재구성한 것/본인 제공재무설계사로 일하며 전국의 마트를 돌아다니며 보험을 팔았다. “종이를 집어 던져 얼굴을 맞은 적도 있었고, 쌍욕을 먹어가며 일했습니다.” 화장품 방문 판매, 빌딩 청소부도 전전했다. “20대 후반까지는 어떻게 보면 변변한 직업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셈이에요.” 대학시절 거쳤던 백화점 판매원, 바텐더, 웨딩 촬영까지 포함하면 27살까지 거친 직업이 10가지가 넘는다.  27살부터 1년 정도 다녔던 유통회사에서 뜻밖의 ‘인생 역전’의 계기를 찾았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발생하는 공동구매를 중개하는 회사였다. “대표가 제 블로그에서 한번 개인적으로 팔아보라고 하더군요. 수익의 일부분은 제가 가져가는 걸로 하고요.” 네이버 블로그는 그녀에게 신세계였다. 직접 진행한 공동구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예를 들어 '39만9000원짜리 청소기 100대 순식간에 완판.' 믿기 힘든 경험이었다.  어느 순간 공동구매를 통해 얻은 인센티브가 월급(약 200만원)을 넘어섰다. 가령 판매 수익의 10% 정도를 인센티브로 가져간다고 치면, 이것이 월급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투잡이 본잡이 되다 박씨는 “투잡이 본잡이 되는 상황이었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자립하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블로그가 입소문을 타면서 광고대행이나 기업광고 등 협찬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블로그의 초기 성장 경로와는 달랐다. 보통은 일상 포스팅을 통해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씨의 블로그는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세일즈 블로그로 성장한 케이스. “혼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박씨는 퇴사를 했고, 2012년 창업을 했다.포스팅이 1700여개에 달하는 박세인씨의 블로그. 오른쪽은 그녀의 페이스북. 최대 한도를 채운 친구 5000명 이외에 팔로어도 7000명에 육박한다/네이버블로그·페이스북 캡처네이버 블로그에서 많은 유입량을 기록하려면 ‘상위 노출’이 중요하다. 검색했을 때 상단에 뜨는 것을 뜻한다. “내부 원칙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활동력과 소통지수가 좋은 블로그가 상위 노출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씨는 꾸준함을 무기로 삼았다. 거의 매일 같이 포스팅을 올렸다. 현재도 마찬가지.  유통회사 경력은 강연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알고 지낸 거래처에서 마케팅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100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학벌도 경력도 별 것 없는데 물건을 잘 파는게 신기했던거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전 블로그 운용 기법을 알려줬다. 입소문이 나면서 강연 요청이 봇물처럼 터졌다. 4년 가량 한림대에 200여차례 출강했으며, 각종 기관이나 기업 강연 요청도 끊임없이 들어온다.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마케팅)이나 SNS 활용이 주요 강연 콘텐츠다. 자신의 블로그 기법을 정리한 책 ‘블로그 투잡 됩니다’는 2014년 처음 나왔고, 현재까지 8쇄(누적 1만부)를 찍었다.  오프라인 소셜 파티를 통해 MC로 활약하고 있는 박세인씨/본인 제공박씨는 ‘친절한 세인씨’라는 닉네임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강연과 저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알렸다. 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소셜 친구'와 파티, 플리마켓, 토크쇼 등을 통해 교류하면서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돈되는 활동만 치중한 것은 아니었다. 꿈 중의 하나였던 MC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4년 전부터 인천 N방송(인천N북수다)을 시작으로 7개의 팟캐스트 및 소셜라이브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누구도 나를 고용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고용한다'는 이른바 셀프 고용입니다. 제 꿈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놀면서 돈버는 세계  박씨는 삶이 곧 일이고, 일이 곧 삶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는 “삶이 콘텐츠이며 콘텐츠가 곧 돈”이라고 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는 박씨의 친구들은 박씨의 결혼, 육아 등에 관한 포스팅을 보며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의 남편도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만났다. 오른쪽은 인천N방송을 통해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박세인씨 제공현대백화점 목동 서포터즈 활동은 일이 곧 놀이가 되는 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SNS에서 영향력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모집한 서포터즈였다. 일주일마다 한번씩 백화점 문화 행사를 아이와 함께 보러 다닌다. 이를 나중에 블로그 포스팅에 올리고, 그 대가로 활동비를 받는다.  휴먼 브랜딩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방송인 하지영씨. 무명의 리포터였던 하씨는 사람북닷컴의 4년간 지속적인 마케팅 지원 및 ‘하톡왔숑’ 토크 콘서트 브랜딩으로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고민이 많아 걱정인 사람’, ‘스트레스가 고민인 사람’, ‘연애와 우정의 고민’ 등 다양한 고민을 주제로 관객과 소통했다. ‘하톡왔숑’은 박경림, 김장훈, 허각, 소녀시대 수영 등 유명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사람북닷컴이 론칭한 '하톡왔숑'. 유명인들이 토크콘서트 게스트로 출연한다/사람북닷컴 홈페이지박씨는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경험만 갖고 강의를 하다보니 깊이가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론적인 보완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슈퍼 커넥터’가 목표이다. 일종의 창직을 꿈꾸고 있다. “사람을 많이 알다보니 소개해 달라는 연락도 많아요. 그런 부탁을 받으면 소개를 못해본 적이 없어요."전문직 종사자나 강연자를 구하는 구인구직 문의도 수시로 들어온다. 자신의 8000명 인맥 네트워크를 체계화해서 나중에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중개자, 이것이 슈퍼 커넥터다. 이를 위해 명사(名士)와의 인터뷰도 꾸준히 하면서 인맥을 쌓고 있다. “늦어도 2~3년 내에는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스스로 MC의 길을 개척한 박세인씨는 예전엔 TV로만 접한 유명인도 많이 만난다. 사진은 인순이씨와 함께한 모습/본인 블로그◇소셜 마케터로 살아가는 비결 TOP 5   젊은 시절 방황의 나날을 보냈던 박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심어린 조언 다섯 가지를 건넸다.   ①자기 자리에 최선을 다해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인가를 고민하라. 동시에 그 일을 할 때 짜릿하고 즐겁고 가치가 있는지를 탐색하라. 신경세포를 항상 열어둔다는 느낌으로 모든 것을 예의주시하는 태도가 배어있으면 빨리 진로를 찾을 수 있다.  ②하는 일에 주인의식을 가져라  태도가 중요하다. 과거 보험을 팔 때도, 전단을 돌릴 때도 온갖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아 가입을 하고, 전단을 받아줬다. 사람과의 관계성에 주목해야한다.  ③마케터를 꿈꾼다면 지나친 상업성은 자제하라 당장 돈만 벌려는 생각을 가진 마케터는 오래 갈 수 없다. 블로그 성공 이후 많은 제안이 들어와도 대부분은 거절했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제안만 받아들였다. 이웃과 함께 소통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자세를 견지해야한다.  ④약점은 장점으로 승화시켜라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고작 발표 하나 때문에 운 적도 있었다.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업그레이드될 수 없다. 지금은 한달에 10번도 넘게 강연을 다닌다.  ⑤사람이 먼저다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 때면 나를 찾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일절 내뱉지 않는 성격이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못하는 얘기를 항상 나한테 털어놓는다. ‘직장내 불화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사람에게 흙수저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여기까지 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벽이든 언제든 항상 연락이 오면 받았다. 지금은 직장도 즐겁게 다닐 정도로 많이 개선됐다.  글 CCBB 에디터 오유교시시비비랩
직장 8년 쉰 31살 엄마‥사탕 팔아 '월수 300'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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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정육점, 수산물 가게, 지물포, 금은방, 통닭집…길가에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 10분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재래시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이름은 ‘THANKS LOLLIES’(땡스 롤리). 전면 유리벽 안으로 기다란 테이블 하나와 카운터, 그 뒤에 조리실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7평 남짓한 조그만 사탕가게다.   보기에 작지만 지난 2~3월 평균 월 매출 800만원이 나왔다. 이익은 매출의 30~40%. 사탕 수요가 늘어나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특수 덕분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경력단절녀이기도 한 홍미선(31)씨는 이곳에서 직접 사탕을 만들어 판다. 월 순수입은 300여만원쯤 된다. 2008년 직장을 관두고 주부로 산지 8년만인 2016년 서울시가 진행한 전통시장 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창업했다.  시장에서 수제 사탕을 만들겠다며 손을 들었다.그는 “엄마가 즐겁게 일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너희가 행복한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할 때는 즐거워야 한다’는 말이요. 그런데 이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더군요.”홍미선 땡스롤리 대표./jobsN, 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행복해야 한다'는 말 대신 행복한 엄마 모습 보여주려 일 시작 그가 찾은 ‘일’은 사탕과 캐러멜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8살, 6살, 5살짜리 세 남매에게 간식을 만들어주던 노하우를 살렸다. 2016년 5월 무작정 구청에 찾아갔다.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부서였는데 공무원을 붙잡고 이야기했죠. ‘선생님 저 창업하고 싶은데 도움 받을 수 없나요?’” 서울시에서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곧 시작할 예정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자기소개서부터 만들었다. 왜 사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만들어 팔 수 있는지, 사업을 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차분히 메모했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 손 꼭 잡고 말 잘 들으면 엄마가 번데기와 호떡을 사주셨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시장 가는 날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정릉시장에 우리 사탕을 먹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런 추억을 남겨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엄마들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홍미선씨가 만드는 레고모양 사탕(왼쪽), 꽃사탕(가운데), 캐러멜(오른쪽)./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서울시 심사위원 5명 앞에서 면접을 보던 날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직접 만든 사탕과 캐러멜을 나눠줬다. “그날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맛있다며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 드렸던 게 생각이 납니다.” OK 사인이 났고 2016년 10월 정릉시장 한켠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인테리어비 700만원, 1년간 월세를 지원 받았다. “제가 투자한 건 700만원쯤 됩니다. 아끼느라 테이블과 의자 서랍장 같은 건 다 친구한테 얻어왔습니다. 중고에요.” 메뉴는 사탕과 캐러멜이 전부다. 4개가 한 묶음인 레고 모양 사탕은 한 봉지에 3500원, 식용 꽃을 넣은 꽃사탕은 한 개에 3000원이다. 캐러멜은 개당 1000원에 판다. 캐러멜은 소금 맛과 아몬드 맛이 있다. 주로 혼자 만들지만 일주일에 한번 아르바이트생을 부르거나, 교회 지인들이 도와주기도 한다. 홍씨는 9시에 출근해 10시에 가게 문을 연다. 퇴근 시간은 6시다. 토요일, 일요일은 쉰다. “회사원과 근무시간이 비슷하다”고 했다. 매출의 대부분은 인터넷 판매로 나온다. 캐러멜 포장은 홍씨가 직접 한다. “남편은 사탕 포장만 도와주고 있습니다. 캐러멜은 종이로 싸야 하는데 남편이 하면 예쁘지 않아서 제가 못하게 했어요.” 정릉시장 땡스롤리 가게(왼쪽), 홍미선씨 모습./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9년 차 주부, 경단녀에서 청년 창업가로홍씨는 9년 차 주부다. 2008년에 결혼하면서 2년간 다녔던 여행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여행사에서는 인터넷으로 여행사 배너광고를 하고 홍보하는 일을 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다. 200만원이 채 안됐다. 당시 나이 스물세살이었다. 결혼 이듬해 첫 아들을, 2011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2012년에는 셋째 딸이 생겼다. "아이가 너무 좋아서 주변에서 안 말렸다면 넷째도 낳았을 거에요"라고 했다. 남편은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 전업주부의 삶은 정신없을 만큼 바빴다. “저도 어렸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주면 좋고 나쁜지도 잘 알지 못하는 서툰 엄마였어요. 첫째 아이는 돌 좀 지나서 사탕을 처음 준 것 같습니다.”  셋째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의 먹거리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간식은 사탕이었다. “사탕은 아이들한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달랠 때 쓰는 마법 같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탕이 건강식품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가능하면 좀더 나은걸 먹이고 싶었습니다."땡스롤리 꽃 사탕(왼쪽)과 홍미선 대표./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사탕은 설탕, 물, 물엿 등을 넣고 끓여서 식히면 만들 수 있다. 말로 설명하자면 쉬운 일 같지만, 노하우를 얻는데 5개월이 걸렸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설탕 시럽이 타기 일쑤였다. 맛을 다르게 하는 것도 어려웠다. 향을 조금만 강하게 하면 너무 자극적인 맛이 나왔다. 향이 부족하면 맛도 없었다. 바닐라 씨앗을 넣어 향과 맛을 살렸다.  설탕을 고르는 일도 단순하지 않았다. “처음엔 비정제 설탕을 사용해봤습니다. 미네랄이나 영양분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정제한 설탕보다 좋거든요.” 하지만 비정제 설탕은 사탕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물을 묻히거나 끓이면 커피색이 나왔다. “약간 탄 냄새가 났고, 맛은 ‘달고나’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탕을 만들 때는 백설탕을 쓴다. 대신 당분이 몸에 덜 흡수되는 자일로스 성분이 들어간 설탕을 사용했다.   비정제 설탕으로는 캐러멜을 만들었다. 설탕에, 우유, 꿀, 생크림을 넣고 걸쭉하게 만든 뒤 4시간 동안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이면 캐러멜이 된다. 그냥 두면 타기 때문에 4시간 내내 주걱으로 휘휘 저어줘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사탕과 캐러멜 만드는 것 자체가 이벤트였다. 홍씨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뻤다고 했다. 그래도 사탕은 일주일에 한 개씩만 준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사탕은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동네 벼룩시장이 열리면 가지고 나가 팔아보기도 했다. 평이 괜찮았다. ‘사탕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캐러멜이 슈퍼에서 파는 것과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계기였다.조리실에서 홍미선씨가 사탕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jobsN◇가족과 보내는 저녁 있는 삶이어서 더 행복 그는  장사가 잘 돼도 계속 시장에 남을 계획이라고 했다.  애들과 나눠 먹으라며 꿀떡을 챙겨주는 이웃 떡집 아주머니, 이사한 친구네 집에 가느냐며 족발을 가득 그릇에 담아주는 족발집 아저씨 모두 가족 같은 존재다.   장사를 크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고 했다. “아이들과 행복하려고 하는 일인데, 일에만 몰두하면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주문이 밀려 집에 늦게 들어갈 때는 “내가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2017년 4월이 돼서야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왔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면 7시 쯤 된다. 아이들과 간식을 먹으며 ‘뒹굴뒹굴’ 한다. “누워서 책을 읽거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오늘 뭐 했는지 이야기 하고 장난치는 걸 뒹굴뒹굴이라고 해요.”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은 영화 데이로 정하고 집에서 가족끼리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홍씨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시부모님께서 낮에 아이들을 봐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누구 도움을 받지 않고 워킹맘으로 일어선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욕심내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 CCBB 에디터 이병희시시비비랩
'증명사진 이래도 돼?' 싶지만, 여기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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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증명사진이야?" 나만의 개성 살려주는 증명사진관 '시현하다'증명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증명사진 이상의 초상사진을 남겨주고 싶다"최종목표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사진신논현역 근처에 위치한 건물의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면 한쪽엔 금속 공예품과 꽃이, 다른 쪽엔 타투(tattoo·문신) 도안들과 빨강, 노랑, 파란색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걸려있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니 크고 작은 조명과 카메라, 작업용 컴퓨터가 옹기종기 놓여있다. 한쪽 벽엔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시현하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포토그래퍼 김시현(24)의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다.작업실 곳곳에 걸려있는 다양한 배경색의 사진은 증명사진이다. 이곳의 증명사진은 일반 사진관에서 찍는 것과는 다르다. 배경을 원하는 색으로 선택할 수 있다. 표정과 포즈도 다양하다. 익살스러운 얼굴, 활짝 웃어 치아 교정기가 드러난 얼굴 등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표정을 사진에 담는다.개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증명사진으로 SNS에서 화제가 돼, 월말에 진행하는 촬영예약은 30초 만에 마감된다. 김시현은 어떤 사연으로 기존과는 차별된 증명사진을 찍게 됐을까.김시현 포토그래퍼 / jobsN◇첫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가 직업으로학창시절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김시현은 생일선물로 카메라를 받았다. 주로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친구들이 싫어할 정도로 항상 셔터를 눌렀다. "더 예쁜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보정 해서 싸이월드에 올렸습니다. 몇천 장을 가만히 앉아서 보정했는데 지겹지가 않았죠."고등학생 김시현과 직접 만든 졸업앨범 / 김시현 제공-고등학교 때는 졸업사진을 직접 찍었다고 했습니다."축제 때 사진부가 촬영한 사진을 파는데, 남는 사진들은 다 버렸습니다. 너무 아까웠어요. 그 사진들을 사용할 수 없을까 해서 직접 졸업앨범팀을 구성하고 학교 동의를 받아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는 매년 학생들이 직접 졸업앨범을 만든다고 해요." -사진을 좋아해서 진로를 포토그래퍼로 정했나요."좋아하기만 했다면 정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여행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기 때문이죠. 좋아하기도 하지만 잘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잘하는 일을 했을 때 상대방이 그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어요."◇증명사진 1000명 프로젝트 시작 김시현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안 가는 게 아니라 못가는 거라는 엄마 말에 자극받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졸업 전, 학교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증명사진 1000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시현하다에서 촬영한 증명사진 / 시현하다 제공-왜 증명사진이었나요."TV에서 노홍철이 사원증 사진을 노홍철 특유의 표정으로 찍은 걸 봤어요. 그때 증명사진도 개성 있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라는 제 좌우명과도 맞았어요. 틀이 정해져 있는 증명사진을 손님이 만족할 만큼 예쁘게 찍으면 정말 잘하는 게 아닐까 해서 시작했죠."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했나요."작년 9월에 시작했습니다. 시작 전, 증명사진 규정 안에서 모든 걸 시도했습니다. 턱을 살짝 들어서 찍기도 하고, 조명도 바꿔보고, 배경색도 다양하게 넣어서 찍었어요. 그 사진으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신청했습니다. 사진을 인화해 주는 곳마다 ‘이 사진으로는 안된다’고 했지만, 촬영한 모든 사진으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이후, 주말마다 서울에 스튜디오를 빌려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촬영 장비를 들고 서울과 경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을 했는데도 힘든 줄 몰랐죠."-시현하다는 언제 오픈했나요.“예약이 점점 많아져 올해 2월에 오픈했습니다. 혼자 스튜디오를 차리기엔 부담이 커서 금속공예가, 플로리스트, 타투이스트와 함께 공간을 나눠서 보증금과 월세 부담을 줄였습니다. 전 학기에 모은 돈으로 장비를 마련했고, 부모님의 지원도 조금 받아 시작했습니다.”◇증명사진을 넘어 초상사진으로 다양한 각도와 조명, 배경색을 쓴 이유는 단 하나다. "증명사진 이상의 초상사진을 남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얼굴 각도와 조명을 통해 가장 본인다운 모습을 끌어내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으로 배경을 선택합니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시현하다 표 증명사진이 나오는 거죠."김시현은 지금까지 총 460명의 증명사진을 촬영했다. 그중 100개의 사진을 골라 지난 5월 ‘시현하다 과정전’을 열었다. 촬영했던 손님 한명 한명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특히 제주도와 진주에서 당일치기로 오셨던 분들과 제가 촬영한 사진을 이력서 사진으로 써서 디자인 회사에 합격했다는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지난 5월 열었던 시현하다 과정전 / 시현하다 공식 페이스북-어떤 의미로 전시회를 열었나요."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모작(模作)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한곳에서 1000명을 찍으면 전시회를 열겠다고 공지를 띄우더군요. 예술 쪽에선 전시를 먼저 하면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독창성)가 생겨서 불안했습니다. 고민하다가 1000명이 모이기 전에 과정전을 열어보라는 교수님의 조언으로 열게 됐죠."-시현하다의 작업을 따라 하는 곳도 많다고 합니다."손님들에게도 제보가 많이 옵니다. 저는 시현하다의 작업을 오마주(homage·존경하는 예술가 작품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했다는 것을 표시하면 상관없습니다. 또, 이런 작업을 통해 사진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시현하다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슬로건과 마케팅 방식을 카피하는 것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존중해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종 목표는 가족사진 시현하다의 증명사진 촬영 가격은 7만원이다. 증명사진 6장과, 풀사이즈 보정본을 제공한다. 한 달에 100명 촬영 예약이 30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도 있다.김시현 / 시현하다 홈페이지 캡처"한 만화에서 이런 대화가 나와요.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캐리커처가 왜 이리 비싸냐’는 질문에 화가는 ‘15분 만에 그리기 위해 30년을 투자했단다’라고 답합니다. 저 또한 30분의 작업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드리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요."1000명의 증명사진을 모두 촬영한 후엔 전시회를 열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현하다만의 사진관을 차리고 싶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포스터나 프로필 촬영을 쉽게 할 수 있는 사진관을 열고 싶어요. 특히 지금은 저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데, 나중엔 여러 세대를 다 아우르는 가족사진을 누구보다도 잘 찍는 게 목표입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근육 세계 1위' 주인공의 반전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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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집 주방장→간호사→머슬마니아 세계 챔피언까지 오른 이 남자는?세계 머슬마니아 클래식 초대 챔피언, 허윤간호사에 반해 간호학과 재입학목표는 "건강을 챙기며 운동할 수 있게 돕는 것"“2016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대회 클래식 부문 우승자는....허윤!”우승자 이름을 부르자 무대 위 다섯 명의 선수 중 키가 가장 작은 동양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트로피를 받은 그는 관객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근육 세계 1위를 한 주인공은 간호사 보디빌더로 유명한 허윤(41).머슬마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보디빌딩&피스니스 대회. 내로라하는 전 세계 보디빌더들이 출전한다. 허윤은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하는 근육을 평가하는 클래식 부문 초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보디빌더이자 간호사다.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직업으로 각종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간호사 보디빌더라는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 그냥 허윤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머슬마니아 대회 직전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건 헬스장(1:1개인 훈련)을 운영한다.2016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출전 모습 / 허씨 제공◇역도선수 그만두고 중국집 주방장으로처음 시작한 건 보디빌딩이 아닌 역도였다. 중학교 때, 역도 감독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역도부에 들어갔다. 5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경기도체전 금메달은 항상 허윤의 차지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역도를 그만뒀다.-왜 그만뒀나요.“한국체육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모자랐습니다. 메달만 많이 땄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운동 다음으로 좋아하던 요리를 택했습니다. 강원관광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둔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 보디빌딩을 접했습니다.”-그게 언제였나요.“20살 때예요. 입학하자마자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저를 본 강원도 보디빌딩협회 심판위원장님이 시합에 나가자고 설득하셨습니다. 3개월 연습하고 강원도민체전에 출전했어요. 20여 명이 출전한 70kg급 대회에서 1등 했습니다. 그때부터 보디빌딩에 빠졌죠.”◇간호사 되기 위해 간호학과 재입학보디빌딩을 위해 운동을 계속했다. 전국 대회 우승도 수차례 했다. 보디빌딩도 좋았지만 요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웍(wok·중화요리용 팬)과 불을 다루는 일이 좋았다. 2003년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2005년, 문득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허윤 보디빌더 / 허씨 제공-그래서 간호학과에 재입학한 건가요.“네, 당시 마음을 다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어요. 간호사를 하려면 하루빨리 공부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사는 곳이 의정부여서 근처에 있는 신흥대학교(현 신한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했죠.”-공부가 어렵지 않았나요.“어려웠죠. 운동과 요리만 하다가 해부학, 생리학 등을 공부하려니 힘들었습니다. 1~2학년 땐 보디빌딩대회도 병행해서 공부에 집중을 못 했어요. 그래서 3학년 때는 오직 간호사 국가시험에만 매달렸습니다. 하루에 4~5시간 하던 운동도 1시간으로 줄였습니다. 잠 3시간, 운동 1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 했습니다.”2008년 1월 시험을 봤다. 한 달뒤 홈페이지에서 합격자를 확인했다. “떨려서 모니터를 제대로 못 봤습니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한참 뒤에 보니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고 뜨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떨리고 짜릿했던 순간이었습니다.”◇'간호사 보디빌더' 별명을 얻다2008년,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경기도 의료원 의정부 병원에 내과 병동에서 일을 시작했다. 큰 덩치 때문에 술에 취한 환자들이나 진상 환자는 허윤의 몫이었다.-환자를 돌보는 일이 상상했던 것과 같았나요.“밖에서 보는 것과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한 번에 여러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다한다는 게 쉽지 않았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못 하는 성격이라 혼나기도 많이 혼났습니다.”-당시 보디빌딩 대회도 나갔나요.“네,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2010년부터 광명시청 보디빌딩 실업팀 선수 및 주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수하면 병원 선배들은 어떤 게 더 중요하냐면서 꾸짖었습니다. 그때마다 이 악물고 두 가지 모두 포기하지 않으려 더 열심히 했어요.”◇세계 보디빌딩 챔피언 허윤내과 병동에서 3년을 채우고 2011년, 의정부 힐링스병원 정신과 병동으로 옮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더 큰 보람을 느꼈다. 3년 뒤에는 양주시 보건소 정신보건센터로 이직했다. 운동을 통해 정신치료를 하는 자원봉사도 다녔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그는 2013년 아시아선수권 보디빌딩 대회 출전 및 2016년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대회 클래식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허윤 보디빌더 / jobsN“마흔 살이 되면서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머슬마니아에서 클래식 부문을 신설했어요. 마지막으로 세계 1위를 하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있어서 출전을 결심했죠. 대회가 11월이었어요. 2016년 10월에 간호사를 그만두고 마지막 한 달간은 헬스장(1:1개인 훈련) 개업과 운동에만 집중했어요.”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운동만 했다. 대회 5일 전부터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몸에 있는 수분을 빼내는 작업이다. 몸에 수분이 없으면 근육 갈라진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보디빌딩과 클래식 부문에 출전했다. 보디빌딩은 2위, 클래식에선 초대 우승자란 결과를 냈다. 세계 1위로 보디빌더 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맛있는 음식, 여행 등을 절제했습니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이제 세계 1위가 아닌 온전히 저만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또 무리하게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닌 건강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운동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중간은 없다' 지독한 반성으로 소비자도 놀라게 한 치킨집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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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하면 찜닭, 전주하면 비빔밥이듯이 속초는 닭강정이 유명하다. 속초를 들리는 여행객들은 너도 나도 닭강정을 먹으러 갔으며 몇 개씩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만석닭강정 앞은 항상 문전성시였다. 즐비한 닭강정 가게들 중에서도 만석닭강정의 인기가 최고였기 때문에 1시간 웨이팅 정도는 기다리는 축에도 못 들었다. 그랬던 만석닭강정이 위생불량으로 영업정지를 받은 후, 그 많던 손님들이 모두 발 길을 끊어 큰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다시금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석 반도체’로 업종을 변경하여 재단장을 마쳤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놀라게 한 만석닭강정의 근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속초 중앙시장에 위치한 닭강정 골목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원래부터 닭강정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속초이지만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더욱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만석닭강정이었다. 이렇게 방송 이후, 엄청난 인기를 누려왔던 만석닭강정이었지만 얼마 전 ‘만석 닭강정의 근황’이라고 공개된 사진 속에는 손님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원래부터도 “속초 사람들은 만석닭강정 안 먹는다. 방송 타고 만석 닭강정이 갑자기 너무 큰 인기를 끌었다”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왔지만 여행객들의 발길을 끊지는 못했다. 너무 길고 긴 줄에 질려 다른 닭강정 집을 찾는 사람들은 있어도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은 집도 마찬가지로 만석닭강정이었다.이처럼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려왔던 만석닭강정에 위기가 찾아온 이유는 ‘위생불량’때문이었다. 만석닭강정은 지난 7월 19일 식약처 점검에서 위생 취급 기준 위반으로 적발되었는데 이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서까지 알려지자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음식점에 위생관리는 매우 필수적인 사항인데 ‘속초의 명물’이라 불렸던 만석닭강정이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위반사항으로 지적된 것은 조리장 바닥과 선반, 그리고 주방 후드였다. 바닥과 선반은 청결히 관리되지 못해 음식 찌꺼기가 남아있었고 주방 후드에는 기름때와 먼지가 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만석닭강정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매출이 40%나 감소했다. 만석닭강정 대표는 즉시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지만 성난 민심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이후, 만석닭강정이 꺼내든 카드는 ‘과감한 주방 개선’이었다. 식약처 점검에서 적발된 중앙시장점 142호 매장을 곧바로 폐쇄하고 바로 옆 143호 매장에 새로운 시설을 설치, 가동했다. 특히 142호 매장을 비롯한 모든 사업장의 후드와 덕트를 전면 교체하여 소비자들의 향후 우려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노력한 만석닭강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방을 투명하게 오픈하였으며 다른 지점과 주방까지 볼 수 있도록 CCTV도 설치하였다. 곽승연 만석닭강정 대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동화 설비 도입, 닭강정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 설립 등도 추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위생 적발 이후 정말 대대적인 시설 개선을 실천한 셈이다. 직접 만석닭강정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만석 반도체 시찰 온 줄 알았다. 다들 위생복을 입고 있어 마치 반도체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반도체 생산 공정을 방불케 하는 만석닭강정의 모습에 현재 네티즌 사이에서는 ‘만석 반도체로 업종 변경’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선 만석닭강정의 근황이다.위생기준 위반 이후 4개월 만에 원래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이제는 다시 만석닭강정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닭강정을 사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개선된 위생 사항에 오히려 이전보다도 방문객이 늘어난 것 같다는 후기도 있었다.이에 대해 ‘진즉에 이렇게 하지’,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없다’, ‘제대로 된 불매운동으로 본보기를 보이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현재 ‘지독한 반성을 했구먼’, ‘저 정도 실행력은 있어야 성공하는 건가, 반성하고 개선하니 보기 좋다’, ‘한 번 더 믿어보자’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글 CCBB 에디터 집토스시시비비랩
14년전 찍은 시트콤 한편으로 매년 200억씩 배당받은 이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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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보다 좋은...동대문과 광명 등에서 월 1%씩 부동산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는 요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웃지 못할 말이 점점 더 와닿고 있는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서울 건물 하나만큼의 큰 금액이 통장에 알아서 꽂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미드나 시트콤을 좀 봤더라면 누구나 알만한 미국 배우들인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배우들한테 이런 어마어마한 돈이 아무 댓가없이 지금까지 지불되고 있을까요?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헐리우드급 ‘미드’가 뜨기 전에 패밀리 시트콤이 호황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중 당연히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미국 NBC에서 방송된 ‘프렌즈’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었죠.우리나라에서도 최근까지 케이블 채널인 온스타일과 동아TV 등에서 방영을 했는데요. 흔히 영어회화 또는 리스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프렌즈 시트콤 시청을 거의 필수로 추천받았었죠.시즌10까지 이어졌던 프렌즈는 미국 시트콤 역사상 가장 이익을 많이 남긴 방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각종 관련 판촉상품부터 DVD 세트, 광고 등 수익구조가 굵직하고 다양했는데요. 프렌즈가 가장 많은 매출을 일으킨 곳은 바로 ‘신디케이션’ , 즉 재방송이었습니다.2004년 시즌10을 끝으로 촬영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지만, 무려 14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케이블 방송인 TBS에서 계속 재방송들이 나가고 있는데요. 물론, 대부분의 수익은 프렌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워너브라더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 프렌즈를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배우들에게 지급되고 있는데요.제니퍼 애니스턴을 포함한 프렌즈의 주연배우 여섯명은 당시 파격적으로 시트콤이 종영된 후 재방송에 대한 로열티 부분을 모두 동등하게 총 매출의 2%를 받기로 계약을 했습니다. 2004년 당시, 이 주연배우들은 한 에피소드를 촬영할 때 마다 100만 달러 (약 11억2,000만원)를 받고 있었는데요. 이때만해도 이들은 방송이 종영된 후에 앞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일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죠.일반적으로 미국 방송업계에서 이러한 파격적인 계약은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리 사인펠드나 코난 오브라이언 같이 본인이 주연이면서 방송 제작과 기획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보통 이런 계약이 주어지는데요. 프렌즈 시트콤은 워낙 그 파급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이에 맞는 대우를 해줬던 모양입니다.프렌즈 시트콤이 종영된지 12년이 흐른 지난 2016년, 미국 NBC 방송국은 프렌즈 재방송이 해마다 무려 10억 달러 (약 1조1,200억원)의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계약 내용대로라면 결국 각 주연배우 한 명이 2,000만 달러 (약 223억5,000만원)씩을 챙겨간다는 뜻인데요. 2004년 이후로 촬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채 이정도 금액을 가만히 앉아서 해마다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울 따름입니다.참고로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손흥민 선수가 연봉 63억원을 받고 있고 대한민국 톱스타 이병헌이 ‘미스터선샤인’ 출연료로 36억원을 받았는데요.제니퍼 애니스턴이 프렌즈 시트콤 덕에 올해 아무것도 안 하고 챙겨간 돈이 손흥민과 이병헌을 합친것의 두배를 넘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글 CCBB 에디터 집토스시시비비랩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공식 전세계 부자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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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포보스에서 조사한 부자 순위를 보면 1위가 제프 베조스(약 119조), 2위가 빌 게이츠(약 96조)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포보스는 합법적인 절차와 완전한 공개로 이루어진 부자들만 리스트에 추가한다. 즉, 비공식적으로 이들보다 더 큰 돈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로스차일드 가문은 베일에 가려진 거대 세력이다. 추정 자산만 해도 적게는 500조에서 많게는 5경 7,400조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빌 게이츠나 워렌버핏과 같은 부자들은 한 개인이 축적한 재산이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이기 때문에 정확한 재산을 파악하기는 어렵고,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 추론만 가능한 것이다.수에즈 운하 건설의 자금을 대었고, 1820년대에 브라질을 독립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1919년부터 2004년까지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 가격을 직접 책정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기타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실제 이들의 소유이다. 비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각종 음모론에 등장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다른 한편으로는 과거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거대해지고 정교해진 지금 로스차일드 가문도 긴 세월 동안 대규모의 전쟁과 재산 분할 등의 영향으로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것이란 말이 있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부터 가문이 소유한 토지와 성들을 팔기 시작해 재산을 측정하기 더 어려워졌는데, 대중의 눈을 피해 사업 규모를 축소한 이들이 과거 전성기에 비하면 재산의 규모가 더 줄어들었을 것이란 말이 있다.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림잡아 왕가 재산만 1,000조가 넘는다. (사우디 왕가 웹사이트 정보에 따르면 1경에서 2경까지 추정) 이들이 보유한 재산 자체가 그 가치를 쉽게 평가할 수 없는 부동산과 궁전, 보석,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식적으로 알려진 왕족들의 개인 재산만 해도 기본적으로 조가 넘어간다. 최근 사우디 정부가 아랍 부호 지도자들의 재산 상황을 실은 포보스지에 아랍어판 최근호 발간을 금지했다.사우드 가족은 자산 가치를 매우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석유 수출 대금의 18%가 왕실의 몫이기도 하고, 국고는 언제나 오일머니로 넘치고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석유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는데, 아랍 왕족 중에서도 가장 그 수가 가장 많으며, 부 역시 비교할 바가 못 된다고 한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공식적으로는 지난 6년간 7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나와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가족 또는 측근들의 명의로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의 투자자인 빌 브라우더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재산이 대략 2,000억 달러 (약 224조 원)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푸틴의 측근들이 석유를 비롯해 러시아의 주축 산업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특혜를 입은 대신 푸틴에게 일정 부분 수익을 건네고 있다. 포보스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제프 베조스(약 119조)와 빌 게이츠(약 96조)의 재산을 합쳐도 푸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전 리비아의 국가 원수로 카다피 일가의 재산이 약 200조 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사회는 카다피의 죽음 이후, 그의 돈이 리비아의 재건 비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카다피 일가는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고,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어들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카다피의 재산은 해외 여러 나라에 분포해 있다. 700억 달러의 국부 펀드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 유벤투스의 지분과 영국 북부의 초호화 주택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반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짐바브웨로 은닉재산을 일부, 실어 나른 것으로 파악된다.공식적으로 기록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재산은 15억 달러이다. 하지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은닉 자산이 무려 1,22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돈으로 136조 원에 해당하는데, 그의 돈은 파나마 은행에 있으며, 그의 아내와 가족들의 이름으로 은닉되어 있다.수니파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충격적인 잔혹성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가 IS보다 무려 7배나 많은 국민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리아 국민들이 아사드를 최대의 적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글 CCBB 에디터 집토스시시비비랩
이 쪽지 쓴 공시생은‥'분노조절 장애,우울증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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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김동철 박사우울증 등 정신질환 앓는 청년들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호기심' 느낄 때 우울함 학습 효과 떨쳐내려는 노력 중요“예전엔 입시경쟁 때문에 상담받으러 오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졸업을 앞둔 23~24세 사이 학생들이 많습니다. 최근 상담하러 오는 성인 가운데 20~30%가 대학생들입니다 ”  심리상담센터 '김동철 심리케어'를 운영하는 심리학자 김동철(46) 박사의 말이다. 그는 방송에 등장하는 단골 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KBS '아침이 좋다', MBC '오늘 아침' 등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TV조선 Mnet 등에서도 그를 볼 수 있다. 우울증, 공황장애부터 끔찍한 토막사건 살인이나 폭행, 이혼이 일어난 심리적 원인을 명쾌하게 분석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반복되는 취업 실패,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12년 5만3949명에서 2016년 6만6409명으로 5년새 53%가량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 통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대학생 729명에게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질문한 결과 605명(82.9%)이 그렇다고 답했다. 김 박사는 심리학자이자 뇌공학 분야 전문가다. 국민대 대학원에서 문화교차학, 바르셀로나 대학원에서 정신분석학 박사를 받았다. 유학 시절 스페인 현지인 대상으로 심리 상담 봉사를 하면서 심리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에게 청년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묻고 대처 방안을 알아봤다.심리학자 김동철 박사 /김동철 박사 제공◇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호기심'이 생길 때졸업 후 2년 동안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A씨. 그는 연이은 실패로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무기력하며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다.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김 박사는 A씨에게 종이를 내밀면서 '미래 계획표'를 적어오라고 했다. 조건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집중해 생각할 것'. A씨는 안정성을 생각해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공공미술 연구였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이루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우울함을 이겨냈고, 원하는 기업에 취업도 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은 우울증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인간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조건은 '호기심'입니다. '흥미를 느끼는 일에 몰두했을 때' 인간은 행복해요. 하지만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안정적인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상당수 경우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A씨는 자기가 무엇에 호기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는지 깨닫고 우울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어요." 호기심은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인체에 생체 전기를 발생시켜 뇌에 흐르는 산소량을 높이고 세로토닌(기분 조절·식욕·수면·기억력·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 도파민(행복·의욕을 갖게 하는 호르몬)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도록 한다. 호기심을 갖는 분야가 줄면 무기력, 패배감을 느끼기 쉽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김 박사를 찾아오는 청년 환자 대부분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심리·정신적 불안함을 토로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패배감을 느낀다.“중·고등학생들은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가출을 하거나 청개구리 처럼 행동하는 과잉행동을 하죠. 하지만 20대 청년들은 말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대인 기피 증세를 보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인다. "토익, 토플, 봉사활동, 인턴, 각종 자격증까지 스펙이란 스펙은 모두 따요. 안 해도 될 노력을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가 더 커집니다. '내가 못나서 취업을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죠. 취업에 성공해도 다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생기를 잃어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을 때는 창의적인 사고력이 떨어집니다. 업무 효율성이 낮아지고 시간 때우기 식 일을 하게 됩니다. 직장은 더 싫어지고 자존감은 더욱 하락하고, 악순환의 반복이죠."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독서실이나 고시원에 붙은 메모가 화제가 됐다. '외투는 밖에서 벗고 들어와라', '딸깍 소리가 나는 볼펜을 쓰지 말라', '박탈감이 드니 비싼 커피를 자주 마시지 말라'는 요구였다. '힘든 취준생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울증의 초기 증세라고 볼 수 있는 신경 쇠약, 분노 조절 장애입니다. 이 경우는 이미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상태는 넘었다고 봐야 합니다. 옆에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정말 만나기 싫어하는 게 아니고 자신을 싫어할까봐 겁먹는 거예요. 주변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한 3단계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Seligman) 박사는 “헤어날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우울증을 생긴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이다. '무력감을 학습'하는 것이다. 실제 김 박사가 만난 청년들 대다수는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믿고 상담을 받으러 온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들이 많고 취업이 어려워 우울증에 걸리는 청년들이 늘고 목숨을 끊는다는 뉴스도 자주 등장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울증·강박증 약식 진단법'으로 자가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개인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 질환을 스스로 진단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고 '병'에 걸린 건 아닙니다. 인터넷에 있는 자가 진단법에는 일반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보편적인 특성을 '내 얘기'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jtbc 사건반장, KBS 아침이 좋다 캡처우울증은 스트레스를 제때 털어내지 못해 생긴다. 생활 습관에 변화를 주는 게 좋다. 김 박사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가까운 미래 실현하기'를 꼽는다.  "‘퇴근 후 저녁에 치맥을 할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크게 줄어듭니다. 취미를 반드시 시간을 빼서 해야 하는 것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소해도 좋아요. 누구는 일회용 컵을 모아서 그 위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예쁜 전단지를 모으는 사람도 있어요. 여행처럼 조금 먼 미래 예언을 실현하려면 디테일한 계획을 잡아야 합니다. 여행을 가는 날까지 얼마 정도의 돈이 있어야 갈 수 있을까. 한 50만원 있으면 갈 수 있겠다. 그럼 모아서 미래 예언을 실현합니다.”   시각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보다 크다. “우울도가 높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두운색의 옷을 입는 편입니다. 검은색 옷을 자꾸 입으면 자기도 모르게 민감해지고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색은 빛의 산란이에요.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편안한 빛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늘색을 보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 요일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옷을 입거나 입술색을 다르게 칠해도 좋습니다. 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는 빛이 잘 들어오게 해주세요. 창이 많고 천장이 높은 곳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생활 습관에 변화를 주었는데도 심리가 불안정하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자기 객관화'를 해본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정신 질환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객관화'를 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일주일 자기 생활표'를 만든다. 하루 수면시간, 식습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침-점심-저녁에 기분은 어땠는지를 적는다. 이렇게 하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우울증 테스트를 보면 '잠을 잘 못 잔다'라는 항목이 있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2~3시간 잠을 잔 걸 계속 잠을 못 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단을 하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은 걸 '계속 우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 2단계 : 서울시에서 만든 정신질환 자가 진단법(blutouch.net:6001/health/test5.asp)을 참고한다. 이때 반드시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3단계 : 가족이나 지인 3~5명과 대화를 나누며 자가 진단을 해본다. 1단계와 2단계에서는 '내가 바라보는 나'였다면 이제는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파악해야 한다. 1단계와 2단계에서 나온 결과를 보며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해소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 마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오늘만 넘기면 되지',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더 이상 심리·정신 상담을 미뤄서는 안됩니다." 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쓰레기장으로 직행하던 부러진 배트가 부활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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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 향하던 부러진 배트가 되살아난 사연은한화이글스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부러진 배트를 재활용해 만든 샤프. / 사진 한화이글스 제공한화이글스 ‘부러진 배트 재활용’ 눈길못 쓰는 배트로 샤프⋅연필케이스 제작   배트 이어 다른 제품 활용도 구상 흔치 않은 경우지만 야구 경기 중 타자의 배트가 부러질 때가 있다. 공이 배트 안쪽에 맞거나 배트 끝에 맞으면 부러질 확률이 높아진다. 타자의 실력과 배트가 부러지는 빈도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배트가 부러지고 난 뒤 향하는 곳은 쓰레기 처리장.  최근 이 부러진 배트를 새 상품으로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야구단이 생겼다. 프로야구 구단 한화이글스는 최근 부러진 배트를 업사이클링(upcycling) 해 만든 샤프, 연필통, 명함꽂이 등을 야구팬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업사이클링이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로, 폐기물을 본래 가치보다 높게 재활용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회 공헌을 기획한 오창석(37) 한화이글스 홍보팀 과장의 얘기를 들어봤다.한화이글스는 부러진 배트를 재활용해 연필꽂이, 샤프 등의 제품을 만들었다. / 사진 한화이글스 제공-부러진 배트를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보통 사회 공헌이라고 하면 봉사활동을 떠올리는데 기왕이면 야구단의 특징을 살리고 싶었다. 선수들이 쓰는 물건 중 배트, 야구공, 글러브 등을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해 왔다.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부러진 배트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다가공이 맞는 부위에 따라 배트의 약한 부위가 잘려 나가는데 나무는 어떤 부위가 잘라져 나가도 재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연간 부러지는 배트는 몇 개나 되나. “추정하기 힘들다. 한 경기 동안 부러진 배트가 하나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3개 이상 나오는 경기도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4월부터 7월까지 한화 대전구장에서 모은 배트는 약 50개다. 다음 달에도 행사가 있어서 서산 제2구장에서 부러진 배트 50개를 더 받기로 했다. 어림잡아 연간 100개 이상은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러진 배트는 어떻게 새 제품으로 만들어지나. “성공회 대전 나눔의 집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 6곳과 합께 샤프, 볼펜, 연필통, 명함꽂이, 시계 등을 만들었다. 쉼터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제품을 직접 만든다. 한화 임직원도 시간을 따로 내서 제품 만들기에 동참했다. 배트는 단풍나무나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다. 길이는 106.7㎝를 넘으면 안 된다. 무게는 900g 전후 제품이 가장 많다. 배트가 부러진 부위나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배트 한 개 당 샤프 6~8개와 명함꽂이 3~4개 등을 만들 수 있다.”업사이클링 제품 판매로 올린 300만원 수익은 대전 성공회 대전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 사진 한화이글스 제공-배트를 재활용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나. “그렇게 어렵지 않다. 손잡이 반대편 배트 끝부분의 안쪽 부분을 도려내면 연필꽂이를 만들 수 있다. 샤프는 기계를 활용해 만드는데 이 과정도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 청소년도 어른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무를 야구 배트 모양으로 다듬고 그 안에 샤프 심 부분을 끼우면 된다. 볼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다. 쉼터 내 공방이 있어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재활용해서 만든 제품은 얼마나 판매됐나. “이달 초 이틀 동안 플리마켓을 열어 300만원 수익을 냈다. 샤프나 볼펜 끝부분에 이름을 각인해주는 서비스를 함께 해서 반응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샤프는 1만 5000원을 받고 판매했는데 이 가격은 회사 내 상품담당 부서의 자문을 구해 결정했다. 수익금은 전액 성공회 쉼터에 기부했다.” -야구 선수들 반응도 궁금하다. “선수들에게 당신들이 쓰던 배트로 만들었다면서 제품을 보여줬더니 신기하다며 본인 배트로도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선수들이 많았다.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것이라 더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선수들은 안타 하나를 치기 위해 수백 번, 수만 번의 스윙을 한다. 선수뿐 아니라 제품을 사는 사람도 이런 가치를 높이 사는 것 같다.”오창석 한화이글스 홍보팀 과장. / 사진 한화이글스 제공-구단 선수들이 평소에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김태균 선수가 대표적이다.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아너스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나눔국민대상 표창을 받았다. 중증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 건립 캠페인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정우람 선수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선수단과 팬이 함께 하는 기부 행사도 종종 여는데, 우리 팬들도 선수들과 함께하는 기부 행사에 상당히 적극적이다.”-사회 공헌 활동 후 인상적인 피드백이 있었나. “팬들의 반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호평을 받을 줄 몰랐다. 선수들이 사용한 값진 물건이 의미 있게 사용된다는 점을 좋게 평가해준 것 같다. 플리마켓 당일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면서 샤프를 10개나 사 간 분도 있다. 배트 수급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제품을 많이 만들지 못한다. 의도치 않게 리미티드 제품이 됐다.”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은데.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서 다음 달 중순쯤 플리마켓을 한 번 더 진행할 생각이다.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금액대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예정이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한 직원이 와서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회 공헌 활동도 얼마든지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28살에 진짜로 회사 그만두고 커피숍 하나 차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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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숙현 커피전문점 '케이트커피' 운영 5년차커피전문점 운영 5년차 류숙현씨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농담 중 하나가 ‘나 회사 그만두고 커피 전문점 하나 차릴까’라는 말이다. 커피 전문점은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생기고 없어지는 업종이다.웹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서울 공덕동에 커피 전문점을 차린 류숙현(33) 씨는 ‘케이트 커피(Kate Coffee)’라는 자신의 브랜드 카페를 5년 째 운영하고 있다. 하얀색 인테리어와 민트색 출입문이 인상적인 케이트 커피 매장을 찾았다.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 전문점을 차린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케이트커피' 류숙현 대표 / jobsN- 웹 디자이너였다는데, 그만두고 커피 전문점을 차린 이유는.“커피 전문점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 생활은 4년 정도 했었어요. 웹 디자인 회사를 다녔는데, 야근도 잦고 업무량이 많은 것에 비해서 내 아이템을 만든다는 성취감이 적었어요. 일하는 것에 비해 페이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관심이 있는 것은 다 배우러 다녔어요. 운동, 요가, 꽃, 실내 인테리어, 옷 디자인, 풍선 만들기 등 흥미로웠던 것들은 다 배웠습니다. 모두 재미는 있었지만 직업과 연결시키지는 못했죠. 그때 커피 전문점이 생각났어요. 커피를 좋아했었거든요. 내 방식대로 나만의 카페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커피 전문점을 차리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했는지.“커피를 좋아하긴 했지만, 마실 줄만 알았지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그래서 일단 커피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커피 학원에 6개월 다니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어요. 커피 이론부터 커피의 특성, 만드는 방법 등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커피 전문점 운영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여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차이점을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쳤던 것 같아요.”- 유명 프랜차이즈 말고 개인 커피 전문점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에는 ‘사장님 돈 많이 벌어가겠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손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계속 일해 보니 생각보다 지출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출의 3분의 1일이 월세로 나갔고, 매장 규모도 크다보니 아르바이트를 많이 둬야 해서 인건비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본사에 지불해야하는 로열티도 꽤 많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 드는 인테리어 비용도 본사의 기준에 맞춰야 하니까 적지 않더군요. 남는 게 별로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케이트커피' 류숙현 대표 / jobsN-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많이 생긴다. 이유가 뭘까.“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접근이 쉬워요. 워낙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운영 매뉴얼이 잘 짜여 있어요. 커피 전문점에 대해서 잘 몰라도 운영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커피 뽑는 기계나 커피를 담는 컵들을 선택하는데도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본사에서 정해주는 것들을 사기만 하면 되거든요. 초기 비용은 많이 들어도 고민할 게 적으니 편리해요. 브랜드가 있으니 가게를 홍보할 필요도 없죠. 그래서 프랜차이즈 매장이 많이 생깁니다.”- 개인 커피 전문점을 차릴 때는 어떤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지.“모든 것들을 제가 스스로 정해야 했어요. 원두를 선택하는 것, 컵을 선택하는 것, 커피 머신을 고르고, 컵 홀더부터 시작해서 포장지 무늬, 쿠키를 담아내는 케이스까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커피 가격을 정하는 것도 고민이었어요. 얼마에 얼마나 팔아야 이익이 남는지 경험치가 없었으니까요.”- 이곳 케이트 커피 분위기가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다. 어떤 커피 전문점을 콘셉트로 만들었는지.“가게 위치를 알아보고 콘셉트를 정하는데 3달 정도 걸렸어요. 우선 상권 분석을 통해 공덕동 특성상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을 파악했어요.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끝나고 가볍게 커피를 들고 들어가는 캐주얼한 카페를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무거운 인테리어 보다는 가볍고 밝은 느낌으로 카페를 꾸몄어요. 그래야 접근성이 좋을 것 같았거든요. 벽을 다 뚫고 외벽도 빛이 잘 드는 창으로 모두 바꿨어요. 가구와 벽, 창틀을 모두 화이트로 하고 인상적인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 민트색 문을 골랐습니다. 손님들이 오래 앉아있지 않기 때문에 면적은 좁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대신에 답답한 느낌은 없애기 위해서 층고가 높은 곳을 선택했어요. 가격은 가격 경쟁력을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00원 수준으로 맞췄습니다.”- 커피 전문점을 차린 지 5년이 지났다. 그 정도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혼자 운영하다보니 의욕적으로 일했어요.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카페에 있었죠.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무리가 왔습니다. 두 번째로는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쌓기까지가 힘들었어요. ‘맛있는 커피를 팔면 손님들이 많이 찾아 주실거야’라는 생각만 했지, 이윤을 남기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어요. 장사는 잘 되는데 남는 이윤이 별로 없었던 거죠.”- 어려운 점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운영에 있어서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절해 나갔어요. 메뉴의 숫자를 줄여서 효율성을 높였고, 유통 단계를 줄여서 좋은 원두를 보다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유행하는 메뉴가 있으면 개발해서 시즌에 맞게 대비했어요. 체력적인 부분은 요령이 생겼습니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와 계절을 파악해 카페를 탄력적으로 운영했어요.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엔 아르바이트를 썼고, 겨울 비수기에는 쉬는 시간도 가지면서 개인적으로 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세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각각 다른 시간대에 써가며 조금 여유를 갖고 운영하고 있어요.”- 주변을 둘러봐도 커피 전문점이 계속 생겨난다. 매출에 영향은 없는지.“커피 전문점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주변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이미 들어왔고, 조그만 카페들도 자주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른 카페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조그만 카페들이 만들어 놓은 상권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서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에 오픈하고 제일 잘 나갔을 때는 한 달 매출이 2000만원 넘기도 했어요. 커피 시장이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올해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이 실감이 나요. 작년까지만 해도 평균 매출은 유지했었는데, 올해 들어 유난히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손님 숫자가 최고일 때 비해 절반 정도로 줄었습니다.”'케이트커피' 류숙현 대표 / jobsN- 얼마 전에 처음으로 가맹점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비결이 궁금하다.“지난 여름에 성북구 종암동에 ‘케이트 커피’ 첫 가맹점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제 카페를 지켜보던 지인이 가맹점을 내고 싶다고 제안을 하셨어요. 깔끔한 카페 분위기와 꾸준히 운영하는 모습을 좋게 보셨던 것 같아요. 우리 카페의 콘셉트와 커피 노하우를 그대로 가져가서 오픈했습니다. 저는 매출의 일정 퍼센트를 로열티로 받고 있어요.”- 커피 전문점의 운영을 위해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지.“커피 전문점이 워낙 많이 생기고 있어서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앞으로도 더 힘들어 질 것 같습니다. 희망적인 부분은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커피 전문점이 많아지면서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책방이라든지 꽃가게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 같이 혼자 운영하는 카페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문화와 접목시켜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커피 전문점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처음 커피를 배우러 학원을 다녔을 때,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어요. 진입 장벽이 낮다보니 커피 전문점을 창업하려 하시는 분들이 많죠. 제가 실제로 해보니 준비하는 과정부터 운영하는 것 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체력도 중요했고, 매출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정신력도 필요했어요. 상권에 대한 분석과 메뉴에 대한 고민, 수익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 시작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어떻게 나만의 카페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글 CCBB 에디터 오종찬시시비비랩
저희 직업이 그리 길지 않아요…그래서 동료들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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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출신 발레리노가 체코로 날아간 까닭은프로 사진가로 데뷔한 체코국립발레단원 김윤식씨“짧은 순간 위해 노력하는 무용수 모습 담고 싶어”“무용수 생명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이 더 가치있는 것 같아요." 김윤식(29)씨가 무용수 사진을 찍는 이유다. 김 씨도 무용수다. 체코국립발레단(Czech National Ballet)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노다. 현역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무용수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흔치 않다. 친형을 따라 취미 삼아 시작한 사진은 ‘제2의 직업’이 됐다. 최근 들어 발레만큼 사진에서도 왕성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2019년 체코국립발레단 달력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었고 글로벌 카메라 브랜드가 선정한 프로 포토그래퍼로 뽑혔다.체코국립단 발레리노로 활동하면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하는 김윤식(29)씨. / 본인 제공◇ 국내 최고 발레단 박차고 유럽으로 간 이유 김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 출신이다. 네 살 위 형이 다니던 무용학원에 놀러 갔다가 춤추는 모습에 반해 그날로 학원에 등록했다. 예술 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형과 나란히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6년간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체코로 갔다. -유럽행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체코로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왜 굳이’라는 시선을 많이 보냈다. 국립발레단을 나오겠다고 하니 심지어 바보라고 했던 분도 있다. 지난해 체코국립발레단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무용수는 나 혼자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전환이 필요했다. 사진도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사진이 유럽행을 결정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사진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2012년 무렵이다. 국립발레단 해외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한 달 정도 장기휴가를 받은 적이 있다. 긴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사진을 배워보기로 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수동 카메라로 가족사진을많이 찍어주신 기억이 있었다. 한달 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4번 출사를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고 독학한 것인가. “동호회 활동을 한 것이 전부다. 형이 쓰던 캐논 DSLR(디지털일안반사식)카메라를 들고 공원에서 꽃도 찍고 거리에서 ‘패피(패션피플)’ 사진도 많이 찍었다. 뭔가 한 번 빠지면 몰입하는 편이다. 일 년 정도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을 찍었다.”김 씨가 촬영한 무용수들의 모습. (모델명 왼쪽부터 Friedemann Vogel, Alexandra Pera, Alina Nanu) / 본인 제공-무용과 사진을 병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나. “국립발레단 다닐 때 보통 오전 11시쯤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공연 리허설 연습을 한다. 하루 일과가 빠듯하지만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계속 찍었다. 공연할 때는 무대 옆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찍고 쉬는 시간에는 동료들의 무대 뒤 모습을 담았다. 발레를 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사진 찍는데 썼다.”-유럽으로 가서도 주말에는 주로 사진을 찍나. “그렇다. 발레단 지원을 받아 유럽 다른 나라들의 극장, 박물관에서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혜택이다. 독일 드레스덴은 자주 가는 편이고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 이번 겨울에는 프랑스 파리를 갈 예정이다. 단원 동료들로부터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 “짧은 순간 위해 땀 흘리는 무용수 삶 기록하고 싶어”무용수가 찍은 무용수의 모습을 어떨까. 2차원의 사진에 담긴 무용수의 팔다리 근육이 눈앞에 튀어나올 듯 역동적이다. 단원들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그를 어색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동료들로부터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는 러브콜을 받는다. -찍는 대상은 주로 동료들인가. “그렇다. 체코국립발레단 소속 단원이 80명 조금 넘는다. 그곳에 가서 사진도 찍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잘 믿지를 않았다. 직접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더니 ‘얘 사진 잘 찍네’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사진 찍는다고 말하지 않고 찍어도 결과물에 만족하니까 별 얘기 안 한다.”김윤식(29)씨. / 본인 제공-찍고자 하는 사진의 콘셉트 같은 것이 있나. “연출은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무용수의 동작에 중심을 뒀다. 유럽에 가서는 좀 달라졌다. 워낙 아름다운 배경이 많은 곳이다. 장소와 어울리는 발레 동작이나 무용수의 의상 같은 것들을 세세히 신경 써서 연출한다. 내가 무용을 해 봤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이 가능한 것 같다.”-발레리나의 '등'을 찍은 사진도 있던데. “연출한 사진이다. 사람들은 무대 앞에서 무용수를 본다. 우리 같은 무용수들은 무대 뒤에서 사람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제일 많이 본다. 그 친구의 등이 인상적이었다. 등에서 움직이는 뼈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꼭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승낙해줬다.”-어떤 사진을 찍고 싶나. “사진의 콘셉트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의 기록’이다. 내가 무용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무용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직업에 비해 무용수로서의 삶은 그렇게 길지가 않다. 남자 무용수는 40세 정도까지 활동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말 관리를 잘 했을 때 얘기다. 그래서 매 순간이 가치 있고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서는 1~2분을 위해 아픈 것을 참으며 엄청난 연습을 하는 무용수들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무대 뒤에서의 사진을 많이 찍을 생각이다." ◇ ‘발레부터 사진까지’ 같은 길 걷는 형이 든든한 지원군‘무용하는 사진작가’의 가족 구성이 다채롭다. 첼로를 전공한 뒤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어머니와 체육 교사 출신 아버지, 발레를 전공한 형을 뒀다. “음악과 체육이 만나 무용이 나왔네”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특히 형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김 씨 형제는 무용계에서 ‘형제 발레리노’로도 유명하다. 국립발레단에서 동생과 활동하던 형은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2019 체코국립발레단 달력에 들어간 사진. / 본인 제공-가족들 영향을 많이 받았나. “가족들 사진 찍고 비디오 촬영해주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형은 올해 초에 무용을 그만두고 여행 영상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는데 이름도 많이 알려졌고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존재다.”-프로 사진가로서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다면. “체코 간 지 1년 차에 체코국립발레단 달력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이렇게 금방 기회를 얻을지 몰랐다. 6개월 동안 12장의 사진을 달력에 실었다. 공연을 하면서 사진 작업도 해야했기 때문에 상당히 바빴지만 결과물이 좋아 만족스러웠다. 최근에는 소니코리아가 주최한 프로 포토그래퍼 공개모집에 지원해 최종 12명의 프로 포토그래퍼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무용수와 사진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무용수로서는 8.5점 정도, 사진가로서는 6점 정도 주고 싶다. 사진은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고 배울 것이 많다. 아직 사진으로 인한 소득은 거의 없다. 이제부터 시작이다.”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제차 제일 많이 판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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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도 안 쓰고 간 고객 때문에 '판매왕' 된 딜러한성자동차 신동일 이사 서른넷에 자동차 딜러 시작해 12년 연속 판매왕좌에“나도 나 같은 딜러에게서 차 사고 싶을 만큼 최선 다해”   “세일즈도 ‘하나의 사업’…활발한 성격만 갖고 통하는 직업 아냐”  13년 전이다. 30대 여성 고객 한 명이 서울 강남의 한 벤츠 전시장에 들어섰다. 고객은 이 전시장의 한 딜러에게 상담을 받았지만 정작 자동차는 다른 지역 벤츠 매장에서 구입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딜러는 ‘나한테 차를 사지 않았다’는 서운함 대신 고마움을 느꼈다. 앞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고객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에서다. 딜러는 상담했던 것을 계기로 고객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갔다. 심지어 자동차에 고장이 났을 때에도 직접 차를 샀던 매장의 딜러보다 먼저 달려가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거두절미 ‘당신에게 차를 사겠다’는 ‘통보’였다. 딜러가 계약서를 들고 찾아간 곳은 한 중견기업 회장 집무실. 회장은 가족들과 모인 자리에서 본인이 차를 바꾸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더니 막내며느리가 적극적으로 한 딜러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차를 구매하지도 않은 고객에게서 추천을 받은 딜러는 이때 인연으로 그 고객 가족 일가에 벤츠 20여 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냈다. 얼마 후 그는 벤츠코리아 최대 딜러사에서 벤츠를 가장 많이 파는 주인공이 된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12년 연속 벤츠 판매왕 자리를 놓치지 않은 신동일(48) 한성자동차 이사 얘기다.신동일 한성자동차 이사. / jobsN◇ “수입차 타며 멋지게 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좀 멋지게 살고 싶었습니다. 수입차를 탈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사람으로요. 그런데 회사생활만 해서는 그런 바람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에서 태어난 신 이사는 중학생 때까지 스키 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스키 선수로는 먹고살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등학생 때 마음을 바꿨다. 성균관대 토목학과에 들어갔고 전공을 살려 대기업에 취업해 8년 일했다.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하며 조직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또박또박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는 ‘내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 세일즈를 사업이라 여겼어요. 창업은 쉽지가 않았고 세일즈를 내 방식으로 해보자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부자들,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일즈를 하고 싶었어요. 그들을 상대하면서 내 삶의 방향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고 뭔가 배울 것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급 수입차의 대명사인 벤츠를 팔아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당시만 해도 체계적으로 일하는 딜러들이 많지 않았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는 딜러에게 차를 파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체계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에서 배운 것들을 접목했어요. 일하는 매뉴얼도 만들고 효율적으로 고객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 3년 안에 톱에 못 들면 그만두겠다 생각하고 시작했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호 고객’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중년의 여성분이셨어요. 폭스바겐 투아렉과 벤츠 모델을 비교하면서 질문을 하는데 저는 그때 투아렉이라는 차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당연히 고객은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죠. 바로 다음 날 고객이 질문하고 갔던 것들을 정리해서 그분이 일하는 회사로 찾아가 전해드렸습니다. 이후에도 그 고객이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해 오면 최선을 다해 응대해드렸습니다. 한 번은 그분이 궁금해하던 것을 정리해서 새벽 1시쯤 고객이 운영하는 회사 문 앞에 두고 온 적이 있어요. 다음 날 그것을 알게 된 고객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신동일이라는 주식이 있다면 나는 그 주식을 당장 사겠다'고요. 딜러가 큰 약속을 안 지키면 고객은 클레임을 걸어요. 하지만 작은 약속을 지켜주는 사람은 잘 잊지 못합니다. 작은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 버려지고, 잊지 않고 챙겨주면 훗날 신뢰로 쌓여 나에게 돌아옵니다.”신동일 한성자동차 이사. / jobsN◇ 14년 동안 하루에 한 대꼴로 벤츠 판 비결신 이사가 몸담고 있는 한성자동차는 벤츠코리아 최대 공식 딜러사다. 그가 2004년 입사 후 2018년 12월 12일 현재까지 판매한 차는 총 2009대. 하루에 한 대꼴로 차를 판매한 셈이다. 점점 수입차를 구매하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입차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 어딜 가든 VIP로 대접받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신 이사만이 갖는 영업 비법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그가 철칙처럼 여기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➀ 첫째도 ‘기억’, 둘째도 ‘기억’이다. 정확히 1만 5302개. 신 이사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다. 그는 만개가 넘는 전화번호가 들어있는 똑같은 번호의 스마트폰을 두 대 들고 다닌다. “고객이 어떤 차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구매했는지에서부터 어떤 고장이 언제 났었는지 같은 세세한 모든 것을 메모해요. 전화기 두 대를 쓰는 이유요? 고객 전화가 오면 재빨리 다른 한 대로 고객 정보를 찾습니다. 3초면 고객에 대한 정보를 바로 볼 수 있어요. 모든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기본은 ‘기억’입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딜러들에게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➁ 내 고객들은 서비스센터가 어딨는지 모른다. 신 이사와 거래를 한 고객들의 공통점이 있다. 고객들은 자동차 서비스센터가 어딨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영업사원의 전화는 24시간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화를 못 받으면 저를 도와주는 누군가를 통해 콜백을 하도록 합니다. 고객이 어떤 것을 물어봐도 응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려요. 갑자기 사고가 나면 고객들이 당황해서 딜러에게 전화를 해요.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달려갑니다. 제 고객들은 서비스센터가 어디 있는지 잘 몰라요. 그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말이죠." ➂ 내가 차를 산다면 나 같은 딜러에게 사고 싶다. '내가 차를 살 때 딜러에게 받고 싶은 서비스를 모두 해 드린다'는 것이 철칙이다. 십수 년째 실천 중이다. 그는 활발한 성격이 딜러의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과 얼마만큼의 친화력을 갖는지는 세일즈를 하는데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뢰입니다. 활발하지 않아도 차분하게 행동하고 고객이 무심하게 했던 말 한마디를 기억할 때 고객은 감동합니다. 가령 어떤 고객이 ‘열쇠고리가 하나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쳐요. 벤츠를 타는 고객이 열쇠고리 살 돈이 없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몇 개 보내드리면 이 고객은 감동합니다."➃ 선물 하나도 똑소리 나게 하자. 그가 딜러 일을 시작하면서 꾸준히 해 온 일 중 하나가 ‘황태 선물’이다. 고향인 진부령에서 일 년 전부터 구해서 매년 추석 때마다 1000여 명에게 보낸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합니다. 벌크로 품질이 최상인 황태를 구해서 추석에 햇황태로 선물하는 것이죠. 일일이 제품 검수를 해서 드립니다. 한 번 보내고 다음 해에 중단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한 5년 정도를 보내드리면 황태가 그 자체로 감동이 됩니다. 그때부터 오히려 고객이 저에게 줄 선물을 찾습니다. 저보다 부자인 그분들에게 비싼 선물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신동일 한성자동차 이사. / jobsN◇ 적금 붓듯 기다려야 결과 나오는 일신 이사는 연봉을 공개할 수 없지만 “대기업 이사 연봉보다는 많이 버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많이 번 만큼 많이 쓴다”고도 했다. 자동차 딜러를 평생 하기 위해서 ‘재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초보 딜러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여기서 나온다고 말했다. “초보 딜러들이 범하는 오류가 있어요. 차를 팔고 몇 천만 원이 통장에 들어오면 거기에 곱하기 12를 합니다. 이번 달에 천만 원이 들어오면 갑자기 억대 연봉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백 퍼센트 망하는 길로 가는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소득이 일정치 않아서 늘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익의 일부는 늘 세일즈를 위해 재투자를 해야 하고요. 이렇게 몇 년을 하고 나서 수익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자리를 잡게 되는 겁니다. 저도 많이 벌지만 계속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 재투자를 해요."시계를 돌려 14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딜러를 하겠냐고 물었더니 1초도 안돼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업인으로 성공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고객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분을 많이 아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고객들 덕분에 판매 일등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제 고객들 직업이 정말 다양합니다. 병원장이든 떡볶이집을 하든 내가 속한 그곳에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일하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누가 알아봐 줄까 싶지만 결국 주변에서 다 알아봐 줍니다.” 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한국도 길어야 10년 뒤면 '유령 집' 사태가 올 거라고 하는 이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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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은행'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일본에서는 '아키야(あきや) 뱅크'라고 하는 빈집 은행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빈집 은행은 일본에서 빈집 판매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개 기업인데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빈집이 부지기수로 늘어났고, 이를 무료나 헐값에 제공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의 빈집은 819만 6000채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이는 일본 전체 주택 수의 13.52%에 달한다고 합니다. 2033년까지 2170만 채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일본 노무라 연구소의 예측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빈집의 증가와 빈집 은행의 등장이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본의 부동산 문제에 우리나라도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일본과 한국의 부동산 현황1. 일본의 부동산'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일본 경제는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끼면서 비정상적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정부의 미약한 대처와 금융시장 부실화 등의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장기 불황으로 들어서게 되었죠. 금융권의 부실 채권 등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거품이 꺼지자 대출로 사들인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한없이 추락하게 되었는데요. 기업 및 개인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서 그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져 은행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 때문에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었고, 자연히 출생률 저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한때 인구가 많아서 고민이었던 일본은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고령화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2. 한국의 부동산그렇다면, 한국 부동산의 현재는 어떨까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인구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에 따라 부동산 값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해왔죠.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대출 규제 등의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지만,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은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예측했었는데요. 최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755건을 기록해 한 달 만에 73% 감소했다고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매물은 늘어나는데 주택자금을 마련할 길이 막히면서 내년에는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의 결과가 곧 가시화될 것이라는 것이죠. 또, 가계마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고 저금리 시대 역시 끝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부동산과 경제 전망이 밝지는 않아 보입니다.3. 일본 부동산과의 공통점흔히 일본 경제를 보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한다고 할 만큼 그동안 옆 나라 일본과 경제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많다고 합니다. 저성장, 저물가, 과도한 경상수지 등 지표로 나타나는 증상이 같다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 침체의 선행 조건들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상황을 남의 일로만 치부하긴 힘든 상황입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과 일본 부동산 시장은 경제 시장만큼 닮은 점이 많은데요. 우선, 두 나라 모두 상당기간 이어진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 부채형 부동산이 많았습니다. 또, 경제를 보더라도 수출 주도형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죠. 특히 일본은 현재 노동 가능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그들이 부양해야 할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3.8%로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에서 제일 빠른 수준이라고 하죠. 일본은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1992년부터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경우 2017년을 정점으로 2018년부터 줄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습니다.장· 단기적 문제점1. 단기적 문제그래서 이런 경제 상황에 우리나라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요? 이는 기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지방에만 빈집이 늘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지역은 여전히 버틸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와 경제 구조가 비슷했던 일본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초기에는 지방의 일부 지역만의 문제였습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는 여전히 높은 집값이 유지되고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도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기준 도쿄권의 빈집은 약 200만 호였다고 하죠. 그리고 앞으로 더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문제는 한국도 그렇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답습해온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2. 장기적 문제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갈 경우, 수도권에도 빈집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이어진 고령화까지 겹치기 때문입니다.원래 도쿄권은 젊은 사람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일을 찾아 서울로 몰려들 듯 전국의 젊은 세대가 도쿄권으로 이동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유입된 많은 세대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고령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서울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죠. 심지어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일본의 수도권 빈집 문제보다 더 빨리 가시화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JTBC서울과 제일 가까운 경기도가 19만 5000호의 빈집이 방치돼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하는데요. 빈집이 늘어나면 붕괴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방범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리에 투입될 행정 비용이 늘면서 경제적 비용이 커지게 됩니다. 또,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노후화된 빈집이 주변에 있으면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런 일이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이어져 경제에 타격이 간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 측은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일본 부동산 폭락 초기와 비교했을 때 한국 부동산 시장 상승률이 일본만큼 가파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주택 공급량이 당시 일본처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단독주택 비중이 높은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온 과정과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볼 때 우리나라도 '유령 집'에 대한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요?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잘 나가던 강남역 파리바게뜨가 서둘러 폐점한 이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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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1번 출구 주변에는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가 서로 마주 보고 치열한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가 점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뚜레쥬르마저 철수를 확정 짓게 되면서 강남역 ‘빵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2011년부터 시작된 강남역 ‘빵전쟁’은 2016년까지 5년간 지속 되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강남역 중심 상권에서 20M 골목을 하나 두고 맞불 경쟁을 펼쳐 왔다.이들 매장은 단순히 빵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남역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는 ‘시그니처 매장’으로 운영되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빵전쟁’은 외부에 의해 종식되었는데, 파리바게뜨가 5년 임대 기한을 끝으로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파리바게뜨 강남점은 기존 월세를 1억에서 1억 400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에 결국 백기를 들고 빠져나갔다. 빵과 커피만으로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월세가 7천만 원이었을 때도 적자였는데, 1억 4000만 원으로 오르면, 그 금액이 고스란히 적자가 되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2003년부터 17년간 한 자리에서 파리바게뜨를 알렸던 강남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뉴발란스 신발 브랜드가 들어왔다. 그나마 바로 들어와서 다행이지, 뚜레쥬르의 경우에는 한 달 가까이 임대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이들 제과점이 이익이 나지 않아도 굳이 강남과 명동 등에 매장을 내는 이유는, 빵을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브랜드 광고의 목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 브랜드를 충분히 알린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과도한 비용부담을 안고 무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매장을 빼게 되었다.두 업체는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른 만큼 굳이 적자 부담을 떠안으며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파리바게뜨의 경우 2030년까지 미국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 2000개 이상의 매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강남역 상권에는 온통 홍보 매장만 가득할 뿐, 1층에 위치한 외식 매장은 전멸했다. 빵과 커피가 빠진 자리에는 의류와 화장품, 통신매장이 들어왔고, 대한민국의 대표 거리인 강남대로는 높은 임대료로 인하여 다양성 없는 간판 거리가 되고야 말았다.이는 일반 외식 업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외식업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대기업 외식업체라도 강남역 한복판에서 ‘시그니처 매장’을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2층으로 올라가도 월세가 4000만 원 대에 이른다. 이제는 강남대로가 광고대로라고 불릴 정도로 간판 광고의 중심지가 되었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가만 가도 월세가 2500만 원인데 강남역은 맨해튼보다 무려 4~5배가 높다.이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거리에서, 밥 먹을 곳을 찾아 골목 골목을 돌아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 브랜드가 아니면 일반 업체들은 강남역 상권에 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강남역에서 장사하면 바보라는 말이 떠돌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글 CCBB 에디터 집토스시시비비랩
한 달에 재테크로만 100만 원 이상 저금할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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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번다고 하는데 그 돈이 없다.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월급은 적고 미래에도 내가 계속 일 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재태크는 필수다. 하지만 직장인이 월급쟁이로써 그 두가지를 모두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재테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사회초년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달에 재테크로만 100만 원 이상 저금할 수 있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알아보자.1. 재테크 준비와 마음가짐재테크의 기둥은 마음가짐이다. 파이어족(극단적인 절약을 통해 조기 퇴사를 준비하는 고액 연봉자)이 가능한 건 마음을 독하게 먹어서다. 이들은 어떻게 극단적인 절약을 지속할 수 있을까? 자신에 맞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그렇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를 위한 재테크를 위해 내가 체험하고 생각하고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재테크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당신만의 재테크 금액에 자존감과 책임감을 가지자. 남이 한 달에 얼마를 저축하던 무슨 상관인가. 나를 위한 재테크를 한다는 중심을 잡고 가자.2. 앱을 활용한 절감법스마트폰을 쓰면 많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먼저 가계부 앱을 통해 자신의 소비유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다음가장 크게 줄일 수 있는 건 운동과 학습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맨몸 운동, 요가, 스쿼트 등 몸매 관리에 필요한 앱, 공부를 할 수 있는 앱이 무료로, 또는 더 저렴한 금액에 제공된다. 교통비는 물론 학원비 절감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다.3. 삶에 필요한 3가지 카드기본적으로 체크카드가 필요하다. 통장 잔고로만 결제가 가능해 올바른 소비습관에 도움이 된다. 능력만큼만 소비하고 더 소비하고 싶으면 능력을 높이는 게 맞다. 특히 사회 초년생은 아르바이트나 용돈보다 수입이 높아지는 만큼 바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과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통장 잔고를 문자로 알려주어 잔고를 매번 확인할 수 있다. 요즘 1인 가구 한 달 생활비가 평균 98만 원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자주 이용하는 마트나 편의점 카드는 지출 중 생활비의 비중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생활비는 어차피 나가는 돈이다.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과 같은 혜택을 받자.마지막은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는 갑작스러운 큰 지출에만 사용한다. 냉장고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체크카드로 구입하기는 어렵다. 무이자 할부를 위해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예적금을 한 번 깨기 시작하면 다음에도 깨게 되고 그만큼 돈이 모이지 않는다. 할부는 잠시 허리띠 졸라매면 갚을 수 있다. 하지만 적금은 다시 처음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 소비량을 유지한 채 적금을 깨 추가 소비할 생각으로는 돈을 모으기 어렵다.4. 계획에 없던 지출을 위한 추가 소득계획에 없는 지출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에 없는 소득을 올린다. 무리하지 않는 내에서 하는 부업은 재정상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업 이외에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여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리운전, 재능 거래를 들 수 있다. 5. 본격적인 재테크를 위한 목돈 마련 방안뉴스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1억이 만 원처럼 느껴진다. 나만 1억 없는 기분이다. 본격적인 재테크를 시작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금액은 1억이다. 연봉 3천이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적금해도 6.6년이 걸린다고 한다. 결국 답은 YOLO일까. 유명한 것은 이유가 있다. 목돈 마련 검색하면 풍차 적금이 가장 먼저 뜨는 이유다. 매달 만기 일 년 10만 원 정기 적금 통장을 개설하면, 나중에는 매달 120만 원씩 적금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합의하여 금액을 조절하도록 하자. 번거롭기는 해도 성취감과 현금의 유동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6. 단계를 높여가는 즐거움할인, 이자, 적금은 한계가 있다. 목돈을 모았으면 다음 재테크 단계로 넘어가 더 큰 이득을 노린다. 펀드나 주식이 대표적이다. 추천하는 최소 금액은 3,000만 원이지만 그전에 소액 투자로 주식의 맛을 보는 게 좋다. 단순히 돈을 운영할 곳이 없다고 시장 상황도 파악하지 않고 들어가는 일은 금물이다. 폭락할 때 사고, 상승할 때 팔라. 말은 쉽지만 사람 심리가 쉽지 않다. 그 기업이 제대로 회생할 수 있는 기업인지를 판별하는 눈은 개개인에게 달렸다. 자신이 없다면 코스피 우량주에 투자하는 게 그나마 안전하다. 국민연금이 들어간 주식은 망하지 않는다. 주식의 손익이 실현되는 때는 소유한 주식을 매도했을 때뿐이니 매수 시점에서 더 떨어진다고 초조해할 필요 없다. 단, 이는 우량주에 한정한다. 주식이나 펀드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무한도전 당시 노홍철은 정준하의 말을 믿고 주식을 샀다가 억대의 금액을 그대로 날렸다. 잃은 돈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KBS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 들어갈 일이 많다. 자기 자신만 챙기면 되었던 시절은 가고 가족과 주변 사람까지  점점 돈 들어가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정년퇴직은 요원한데 이래저래 돈 나갈 곳 뿐이니, 사는 게 일이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글 CCBB 에디터 집토스시시비비랩
얼굴 없는 모델 써서 매출 126억원 낸 쇼핑몰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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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쇼핑몰로 성공한 공대생창업 2년 만에 매출 126억 쇼핑몰대학에서 생물학 전공한 박종훈 대표온라인 쇼핑몰 관행 뜯어 고쳤더니 성공2014년 창업 첫해 매출 7억원, 2015년 45억원, 2016년 126억원(영업이익률 10%)…. 27살에 창업해 3년만에 직원 70명을 둔 청년이 있다. 여성 의류 쇼핑몰 에이인(AIN)을 만든 박종훈(30)씨다.최근 서울 성수동의 한 빌딩 지하 1층. 여성 카디건, 바지, 티셔츠 등 옷 수백여벌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직원들이 커다란 박스에 옷가지를 차곡차곡 담는다. 박 대표는 손가락에 은색 반지 3개, 여기에 팔찌와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어릴 때부터 패션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창업한 이후에도 항상 옷에 신경 쓰고 있어요.”그는 창업 전 성균관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약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다. 이른바 모범생으로 평탄한 길을 걷던 그가 약사의 꿈을 접고 여성 의류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에이인은 1만여개가 넘는 여성 의류 쇼핑몰 시장의 떠오르는 강자”라고 했다.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을 대상으로 티셔츠(1만~3만원대), 바지(3만~6만원대)를 파는 에이인의 반품률은 10%선. 경쟁 쇼핑몰 평균 반품율이 30%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자체 쇼핑몰뿐 아니라 지마켓·11번가·텐바이텐 등 다른 쇼핑 사이트에서도 제품을 판다.에이인은 특별한 상품을 파는 것일까. 박 대표는 “우리가 파는 옷은 다른 의류쇼핑몰과 다른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결은 온라인 쇼핑몰의 일반 관행을 근본부터 바꾼 것”이라고 했다. 그는 3가지 관행을 버렸더니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첫째, 예쁜 모델을 쓰지 않는 것. 둘째 고객들과 소통하는 것,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수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박종훈 대표 / jobsN◇예쁜 얼굴 고액 연봉 모델 버리니 대박-제품 자체에 특별한 점은 없습니까?“네. 사실 가격 경쟁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대문에서 제품을 50% 사입하고, 나머지 50%는 자체 제작합니다. 그나마 차별점은 원단은 좋은 것을 쓴다는 거에요.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들이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하거든요. 티셔츠 한장을 2000원에 떼와 한국에서 1만원에 팝니다. 아무래도 우리 제품이 조금 더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그래도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더 삽니다. 저희 소비자의 1인당 객단가(사이트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평균 쓰는 비용)는 7만원, 경쟁하는 대형 의류 쇼핑몰은 5만~6만원이에요.”-제품에 차별성이 없다면 왜 소비자들이 삽니까?“기존에 온라인 쇼핑몰과 다르게 고객 중심적으로 마케팅, 소통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모델입니다. 우리는 얼굴이 그냥 수수하고 평범한 모델을 씁니다. 인스타그램 홍보 페이지에는 모델 얼굴을 가리고 옷을 입은 모습만 올립니다. 고객이 옷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얼굴이 예쁜 모델 사진이 올라오면 고객들은 ‘화장품 뭐 쓰냐’ ‘나도 언니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식의 댓글을 붙입니다. 옷이 아니라 모델을 파는 꼴입니다.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모델이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들이 돈을 버는 핵심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경쟁 쇼핑몰의 경우 얼굴이 연예인급으로 예쁜 모델을 섭외해 월급을 1500만원씩 줍니다. 이른바 ‘스타 모델’을 만듭니다. 통상 2~3명 연예인급 모델에 의존하죠.그런데 그 모델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흔들립니다. 결혼하거나 일을 그만 두면 옷 판매량이 급락하거든요. 한 경쟁 쇼핑몰은 하루 매출 1억원을 찍다가 스타 모델이 단체로 그만두면서 하루 매출이 2000만원으로 추락했습니다. 무엇보다 실제 그 모델이 옷을 입은 핏(fit)과, 현실 속 일반인이 옷을 입은 핏은 달라요. 그래서 반품을 많이 하는 겁니다.”얼굴 없이 옷에만 집중하는 에이인의 의류 모델 사진 / 에이인 인스타그램 캡처-예쁜 모델을 안 쓴다는 말이군요.“네 다른 쇼핑몰과 비교하면 ‘평범한 여대생’ 수준입니다. 평범한 얼굴의 모델을 1~2명 씁니다. 옷을 입는 핏만 좋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얼굴 노출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별다른 보정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보통 쇼핑몰에선 옷을 입은 모델 사진 보정만 수시간씩 합니다. 또 아예 직원들을 모델로 씁니다. 마케팅, CS, 디자인팀 여성 직원들이 옷을 입고 촬영해요. ‘키 155cm에 바지 77사이즈를 입는 여성이 입은 티셔츠’ ‘키 163에 55사이즈 옷을 입은 여성의 핏’ 같은 주제로 올리면 인기가 좋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감을 줄여 본질을 보여주는 게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는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은 호객만 할 줄 알았지, 실제 고객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 업계에 이해하기 힘든 관행이 진짜 많아요. 예를 들어 옷 사이즈를 보세요. 온라인 쇼핑몰 옷 사이즈는 대부분 스몰(S), 미디움(M)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런데 고객들의 불만이 사이즈에 맞지 않다는 거에요. 그래서 바지 사이즈를 25~29사이즈로 세분화했어요. 훨씬 반응이 뜨거워요.” 현재 에이인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5만8000명, 페이스북 좋아요가 27만에 달한다. 인스타그램에 얼굴 없는 모델만 등장하는데도 인기가 높다. ‘의류 쇼핑몰 직원이 일하는 모습’ ‘박 대표가 에이인 본사에서의 4차 산업혁명을 강의하는 장면’처럼 옷과 전혀 관련없는 회사 관련 포스팅도 올린다. 에이인에서 옷을 사는 고객끼리 ‘에이너’라고 부른다. 이런 시도가 ‘단순 쇼핑몰이 아니라 신뢰 가는 회사다’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아요.”평범한 체형의 에이인 여직원이 직접 모델에 나선 사진 / 에이인 홈페이지 캡처성과 잘 낸 직원에게 성과급 ‘2년 안에 초봉 3천이 꿈’박 대표는 성균관대 생물학과 재학 시절 진로에 대해 방황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물학과를 졸업해 약사가 돼야겠다는 꿈을 꿨어요. 그러나 정작 대학 연구실에서 약품을 다뤄보니 재미가 없는 거에요. 고민하다가 군대에 갔어요.” 장교로 제대한 그는 사촌 동생이 운영하는 작은 의류 쇼핑몰의 말단 직원으로 취업했다. “직원 3명으로 월 매출이 3억원이 가능하더군요. 매력적이었습니다. 예쁜 옷 입으며 살 수 있는 매력직인 직업 같았습니다. 새벽 2~3시까지 야근을 해도 재밌었습니다.” 1년 반 일하면서 고객 상담, 배송, 마케팅, 디자인까지 배웠다. 140만원 정도 받았던 월급과 장교 시절 모은 돈을 합해 자본금 2000만원을 마련했다. 그는 “일하면서 의류 쇼핑몰의 문제를 알았다”고 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우선 대부분 사장님이 단순히 감에만 의존해 운영한다는 겁니다. 매출이 떨어지면 ‘우리가 열심히 안 해서 그래’ ‘해외 촬영을 하지 안 해서 그런 거다’라며 기본적인 포털 검색 분석조차 안 했어요. 또 많은 사장들이 ‘언제까지 잘 될 것 같으냐, 돈 있을 때 많이 챙겨놔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빨리 한 몫 잡고 그만 두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사장들에게 있는 겁니다. 솔직히 쇼핑몰 대표들은 잘 먹고 잘 삽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회사가 잘 돌아가도 별로 안 좋아해요. 일은 많아지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으니까요. 월급 130만~150만원 박봉에 야근에 시달리는 삶을 바꾸고 싶었습니다.”회사 내부 모습과 박 대표 / jobsN4대 보험, 퇴직금 같은 기본적인 복리후생조차 주지 않은 온라인 쇼핑몰을 ‘회사다운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도 첫 직장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바로 이런 문제가 온라인 쇼핑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퍼트리는 주범입니다. 언제 폐업해도 ‘그럼 그렇지’란 비아냥을 듣는 행태를 바꾸고 싶었어요.” 2014년 창업과 동시에 동대문 새벽시장을 6개월간 돌았다. “새벽 12시부터 4시까지 매일 거래처 100곳을 찾아가 의류 샘플을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샘플 의류를 빌려 주지 않으면 돈을 주고 사서 촬영해 다시 보여 드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예쁘지 않은 모델’ 전략을 기본으로 매일 신상품 10개씩 내놓는 전략을 썼다. 그랬더니 소문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이 모였다.에이인의 제품들 / 에이인 홈페이지 캡처-신입 사원 초봉이 얼마입니까?“2400만원입니다. 사실 중소기업 수준 연봉입니다. 그러나 쇼핑몰 업계에서 정말 높은 수준입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유명 중견기업 계열사 의류 쇼핑몰 직원 월급이 150만원에 불과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에이인에 다니면 삶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고 싶습니다. 생리휴가, 생일 반차휴가같은 복지도 신설했어요.”고액 연봉을 주는 예쁜 모델을 섭외하지 않는 대신 직원 인건비를 올렸다고 했다. 통상 의류 쇼핑몰의 매출 대비 인건비는 5~6%. 에이인은 10% 이상이다. 4대 보험과 퇴직금은 기본이고 목표 매출 달성 시 기본급의 200% 성과급을 준다. 입사 후 1~2년 만에 팀장을 단 직원이 많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3600만원이고, 일부 성과가 좋은 직원은 연봉 7000만원이다. 직원 평균 연령은 25세. “더 재밌게 일해 성과를 내면 돈도 더 많이 벌 기회를 열어주려고 합니다. 올해 10명의 대졸 신입 직원을 수시로 더 채용합니다. 야근도 거의 안 합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오픈 마켓에 진출해 매달 매출 3억~5억원씩 올린 과장급 직원에게 성과급을 줬다. “회사 성장에 많이 기여한 사람들은 해외여행도 보내드립니다. 2년 안에 대졸 신입사원 초봉을 30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공이 의류와 상관없는데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우선 선입견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은행 대출받으려고 할 때도 ‘생물학과 나왔는데 온라인 쇼핑몰 CEO?’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차례 거절당했습니다. 전공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만들려면 모든 걸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죽기까지 해보자’는 정신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 했습니다. 창업 이후에는 국내 사례뿐 아니라 아마존, 에어비앤비 같은 선진 기업 사례를 연구하면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CCBB 에디터 이신영시시비비랩
슈퍼모델 대상→살 뜯기는 6년 공부로 '사시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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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합격한 슈퍼모델 출신 변호사 이진영1997년 SBS 슈퍼모델 대상 이진영연예계 떠나 2014 사법시험 합격피트니스 대회 준비하는 등 도전은 '현재진행형'"1997년 SBS 슈퍼모델, 영예의 대상은 이진영! 축하합니다."스물 한 살 대학생 이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큰 기대없이 출전한 대회였다. 무대에 오른 서른 다섯명 중 열다섯 안에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3500명 중 1위였다.1990년대는 미스코리아, 슈퍼모델을 비롯한 각종 선발대회가 텔레비전의 주요 컨텐츠였다. 대회 입상자들에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연예기획사들은 억대 계약금을 제시하며 모셔가기 바빴다.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이진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180㎝의 큰 키, 조막만한 얼굴, 서구적인 몸매와 마스크로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 "제2의 이소라"라는 기대가 나왔다.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런웨이'가 아닌 '법정'에 서 있다. 슈퍼모델 1위에 올라 카메라 세례가 터지는 가운데 축하 꽃다발과 트로피를 받을 때만 해도 그가 변호사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잡스엔(jobsN)이 2014년 제5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LnC법률연구소'에서 일하는 이진영(41) 변호사를 만났다.이진영 변호사의 변호사 신분증 / 본인 제공-어려서부터 슈퍼모델을 꿈꿨나"전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농구를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이미 176㎝였습니다. 인천 부일여중 농구부 선수였습니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훈련에 매진했지만 훈련 중 부상을 입어 허리를 다쳤어요. 병원에서 디스크 진단을 내렸죠. 농구선수의 꿈은 그 때 포기했어요. 허리 때문에 고생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 입학 시험에서 본고사와 논술까지는 볼 수 없었고 수능을 치러 1995년에 동국대 영문과에 전액장학금 받고 수석입학했어요."-슈퍼모델 대회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다보니 주목 받을 일이 많았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죠. ‘모델같다’, ‘모델 해보지 그러냐’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대학 입학 후에도 딱히 뚜렷한 꿈이 없었구요. 당시 크고 작은 모델 선발대회가 많았습니다. 무대 위 모델들을 지켜보며 '예쁜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훈련을 받으면 허리디스크 때문에 틀어진 자세도 교정하고 살 또한 뺄 수 있을 것 같았죠. ‘모델라인’이라는 아카데미이자 에이전시를 찾아갔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모델 대회 출전을 준비했습니다.”-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어떻게 대상까지 수상하게 됐나“어릴 때 농구선수로 뛰어서인지 승부욕이 강한편입니다. 한 번 도전한 것은 끝을 봐야만 직성이 풀려요. 1997년 SBS 슈퍼모델 대회에 출전 하기 전,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주최 모델대회에도 출전했습니다. 1년간 출전한 세번의 대회에서 모두 1위를 수상했습니다.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슈퍼모델 대회를 준비할 때도 그랬습니다. 대회 후보자들은 3개월동안 합숙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하이힐 한 번 신어본 적 없던 제가 발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워킹연습을 했죠. 탄수화물은 모두 끊고 각종 효소만 먹어 살을 12~13kg 정도 감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전문 모델대회에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회 경쟁자들의 따돌림에 오기가 생겨 이 악물고 준비했죠.”-슈퍼모델 대상 수상자가 된 후의 생활은 어땠나“학교를 휴학하고 얼마 정도 모델 활동을 했습니다. 모델의 진로를 확실히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대상 트로피가 '정말 내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았어요. 살 빼고 워킹 연습하는 등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키와 외모라는 타고난 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전문 모델인도 아니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닌 애매한 제 정체성도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일하는 모델 동료들 사이에서 겉도는 것 같았구요. 한번은 외국 모델들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외국 모델들과 백스테이지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 일로 선배 및 모델 동료들에게 '공부 좀 한다고 잘난척 한다'며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딸을 낳는다면 항상 경쟁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견뎌야만 하는 모델 활동을 추천해주진 않을 것 같아요."LnC 법률연구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진영 변호사 / 본인 제공-학교에 복학해서는 어떻게 생활했나"모델 활동을 하며 억울한 상황들을 경험한 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대항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법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2000년 학교에 복학한 뒤 교양과목으로 법학개론을 들었어요. '슈퍼모델이 법전을 들고다닌다' 며 말들이 많았죠. 오해와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당시는 힘들었습니다.법학과 수업을 수강하는데 뒤에서 ‘법대생을 유혹해 결혼하려 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럴수록 ‘성적으로 증명하자’며 마음을 다잡았죠. 학교에 복학한 뒤 다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처음엔 한자로 된 법전이 정말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 읽는 것도 엄두가 안났습니다. 옥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했던것 같아요. 그래도 외면적인 것으로 늘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연예계 생활보다 지식을 쌓아가는 공부가 심적으로 더 편하게 느껴졌습니다."-고시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중학교 때부터 앓던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학원에 의자와 책상이 고정된 교실이 있었는데, 키가 커서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꼼짝 않고 8~9시간 이상 앉아 공부하는데 허리 통증이 정말 심했습니다. 짬을 내 걷기 등의 운동을 하며 버텼습니다. 나중엔 허리에 파스를 하도 붙여서 살갗이 다 떨어져 피가 나더군요.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1차 시험을 총 3회 합격했습니다. 2차 시험은 5번 본거죠. 2014년 사법고시를 치를 땐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보기 전까지 8개월동안 갇혀지냈습니다. 주택에 살았는데, 꼭대기 3층 옥탑방에 저를 가뒀거든요. 식사는 어머니가 2층에서 쟁반에 담아 넣어주셨구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온 정신을 집중해 꼭 시험에 통과하고 싶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을 간신히 숨쉬며 걸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시험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나“한 번 시작했으니까 포기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모델 활동의 기억이 한편으로는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SBS슈퍼모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세계모델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었습니다. 미국의 방송인 겸 모델인 타이라 뱅크스(Tyra Banks)가 진행하는 쇼였는데, 전 세계에서 최고의 슈퍼모델이 모여 경합하는 자리였죠. 그곳에서 워킹 잘한다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대회 당시 룸메이트가 인도 모델이었는데, 그 친구가 3일간 안씻어서 나중에 스태프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더군요. 냄새가 너무 나서요. 그런 젊은 시절 즐거운 기억들이 팍팍한 고시생활의 버팀목이었습니다.”이진영 변호사의 평소 모습 / 본인 제공-2014년도 사법고시 합격 이후 큰 화제가 되었다.“수백 군데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사가 쏟아지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한동안 내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그 날은 밖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휴대전화 전원도 꺼놨죠. 전 6년간 고시공부를 하면서 폐쇄적인 생활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나오기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도 전이었는데, 슈퍼모델 대회 출신 법조인이라는 타이틀로 집중 조명을 받으면 연수원 동기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았습니다.”-사법연수원 생활은 어땠나“조용히 생활하고 싶었는데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의례적으로 여성 합격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부회장이 됩니다. 남성 최고령 합격자가 회장을 맡구요. 연수원 동기들을 보면서 ‘다들 이래서 시험에 통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씩 2주간 시험이 이어집니다. 시험 중간에 점심을 먹으라는 방송이 나오면 모두 웃죠. 점심을 먹으러 다녀올 수 있는 시험 분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주내내 초콜릿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살이 3~4kg은 쭉쭉 빠집니다. 글씨를 너무 많이 써서 손목과 팔에 모두 마비가 온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방광염에 걸린 연수원 동기도 있었습니다. 세상엔 독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습니다.”"20대보다 지금의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는 이진영 변호사 / 본인 제공-최근 변호사 시장도 많이 어렵다고 하던데“변호사가 매년 1500명씩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 벌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법조인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투철한 사명감이 없다면 이 길을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고시 안봤다’고 말하는 분들도 봤습니다. 특히 여성 법조인에 대해서는 아직 의뢰인들의 신뢰가 약한편입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수임료가 부담스러운데 여성 법조인에게 맡기기엔 위험이 크다고 느끼는거죠. 수임료를 기본 500만원정도 받는다고 하면 1심까지 기본적으로 6개월이 걸립니다. n분의 1을 하면 한달에 100만원이 채 안되는 금액입니다. 그 기간동안 계속해서 의뢰인과 상담하고 법정에 가야 합니다. 자신만의 전문적인 분야를 특화시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타심이나 사회에 기여한다는 고민 없이 단지 안락한 삶을 바라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다면 분명 후회할 겁니다.”오랜 고시공부 끝에 상해버린 오른손 / 본인 제공-앞으로 계획은“변호사 활동을 열심히 하며 계속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올해나 내년쯤 피트니스 대회 출전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전은 두려운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농구선수를 꿈꿨다가 모델이었다가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모습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도전을 통해 제 자신을 깨뜨릴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현재 한국모델협회, 뷰티스스타 피트니스대회, 아놀드홍짐, 토리코리아 등의 고문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모델출신이다보니 관련 업계에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자문을 받기 위해 의뢰가 들어오는 편입니다. 저만의 독특한 커리어로 개성있는 변호사 활동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즘 20대들 사이에서 욜로 (You Only Live Once)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단어에서 공허함을 느낍니다.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 놓인 길이 사회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있고 그걸 이겨낼 때 즐거운 것 아닌가요? 남들이 다 하니까, 누가 시켜서 선택하는 길에는 고민이 없습니다. 깊은 고민이 없으면 그만큼 포기와 타협도 쉬울 수밖에 없죠. 자신만의 길에 도전해 그 길의 끝에서 성취감을 맛보라는 조언을 하고싶습니다.피트니스 대회에 출전 준비중인 이진영 변호사 / 본인 제공단순히 경쟁레이스에서 승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모델 활동을 했던 20대의 화려한 모습보다 지금이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치열한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뜩 가시가 돋아나있던 제 모습이 보여요. 한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만 설 수 있는 연예계보단 나만의 실력을 갈고닦아 시험을 치르는 고시생활이 더 편했습니다. 아마 연예계의 길을 갔다면 지금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갖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자신만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살기보단 어려움이 수반되더라도 보다 의미있는 일, 가치있는 일을 찾기를 바랍니다.”글 CCBB 에디터 김지아시시비비랩
이 ‘경고 스티커’만 믿다가는 큰코다칩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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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후 교환·환불 불가', 이 스티커만 믿다간 큰코다칩니다전자상거래에서는 경고 붙여도 효력 없어공정위 "법적 근거 없는 사적 규정은 무효"'신발 분실 시 책임 안 짐' 경고도 마찬가지네이버 블로그‘개봉후 환불, 교환 불가’판매자들이 애용하는 문구 중 하나다. 심지어 포장을 뜯지 않으면 디자인이나 색상 등을 확인할 수 없는 제품에까지 붙이기도 한다. 여기에 근거해 광고한 내용과 다른 상품이 가더라도 업체는 “스티커로 미리 고지했으니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로 이 스티커는 무적일까.◇무적은 없다정답은 ‘그렇지 않다’ 쪽이다. 특히 온라인이나 홈쇼핑을 통한 상거래에선 이 문구가 아무 효력이 없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은 제17조(청약철회등)에서 제품을 받은 지 7일 안에 디자인, 색상, 기능 등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반품이나 교환, 환불받을 수 있다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 잘못으로 제품이 망가지거나 수차례 사용해 가치가 떨어지지 않은 이상, 일주일 이내라면 단순 변심만으로도 구매 취소가 가능하다.다수 업체는 “실컷 쓰고 반품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를 막으려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판매자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강요할 수 없다. 전자상거래법 제35조(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의 금지)에서 청약철회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정은 효력이 없다 규정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특별 주문 제작 제품이나 시리얼 번호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 몇몇 특별한 조건이 아닌 이상, 판매자가 법적 근거 없이 사적으로 붙인 스티커만으로는 교환이나 환불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즉, 온라인이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팔 계획을 세운 사람은 ‘개봉 후 교환·환불이 불가합니다’ 라벨만 믿고 있다간 낭패를 볼 위험이 있다.다만 오프라인에서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오프라인 거래에는 전자상거래법이 아닌 소비자기본법을 적용한다. 그리고 여기엔 단순 변심에 따른 교환이나 환불 관련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대개 판매자가 정해둔 자체 약관이 의미 있는 효력을 지닌다. 물론 겉포장과는 아예 다른 물건을 넣어두거나 애초에 하자 있는 상품을 포장해 팔면 ‘사기’의 영역이니 다툴 여지가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 샘플을 보고 마음을 정해 산 물건은 판매자가 고지한 약관에 따라서만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프라인 판매자는 방문한 소비자에게 상품을 미리 보여주거나 성능 시연을 한 다음 포장을 해 줘야 분쟁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신발 분실 시 책임집니다스마트 서울경찰 블로그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음’ 문구 또한 맥락이 비슷하다. 엄포와는 달리 실제로는 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상법 제152조(공중접객업자의 책임)에 근거한다. 1항에서는 ‘공중접객업자는 자기 또는 그 사용인이 고객으로부터 임치(任置·맡겨 둠)받은 물건의 보관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2항은 ‘공중접객업자는 고객으로부터 임치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시설 내에 휴대한 물건이 자기 또는 그 사용인의 과실로 인하여 멸실 또는 훼손되었을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다. 결정적으로 3항에서 이를 종합해 업자의 책임을 못박는다. 여기선 ‘고객의 휴대물에 대하여 책임이 없음을 알린 경우에도 공중접객업자는 제1항과 제2항의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고객이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업주 쪽이 불리하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잠금장치가 달린 신발장을 마련하거나 실내까지 휴대 가능한 신발주머니를 제공하는 등 철저한 조치를 취했다면 몰라도, 단순히 경고문 부착에만 그쳤다면 업주가 분실한 신발값 중 일정 부분은 배상해야 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글 CCBB 에디터 폴리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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