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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압) 영종도에서 비행기 빼고 다 타본 시승기
8월 2일 토요일주말에 약속있는거 빠다리나서 기왕 밖에 나온김에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쏘이려고 월미도 옴약속 파토낼려면 미리 말하던가 약속시간 30분전에 연락하노 쉬밸럼사진만 보면 근들갑 같겠지만 이날 날씨가 아주 앰창이었는데 고비사막 돌궐 타타르족 체험하게 만드는 개념상실한 수준의 폭염이 하루종일 이어졌음월미도유원지에 사람이 없어보이는게 다 이유가 있음월미도선착장 매표소이고 매표소 위쪽으로는 월미바다열차 일명 뭥미운하레일 선로가 보임인천역에서 저거 타볼까 했는데 역시 세금슈킹용 철도 아니랄까봐 월미도까지 오는데 더럽게 비싸기만 하고 빠르지도 않고 진짜 좆털만큼도 도움이 안되서그냥 동화운수 2번 버스 타고 선착장으로 옴이게 영종도가는 세종5호인가 하는 배인데 내가 탄 배는 6시배였고 이날의 막배였음요금은 3500원이고 인터벌 1시간이라 이거 언럭키 한강버스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 많이 탐대부분의 승객이 나처럼 할일 없어서 놀러나온 놈팽이던데 이걸로 봐서는 관광수요가 주 수요인거 같아보임제3연륙교 개통해도 큰타격 없을듯내가 타자마자 바로 출항함한강공원 닭둘기마냥 인천 앞바다엔 갈매기가 있는데선내컨텐츠 중에 하나가 배에서 2봉지에 3000원 하는 새우깡 사서 저 갈매기들에게 던져주는거임갈매기들 새우깡 절라좋아함 ㅋㅋㅋㅋㅋㅋ해군에서 한참 배탈때 바다에 짬 버리러 100리터짜리 짬통 들고 함미로 나가면 갈매기들이 짬처먹겠다고 배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곤 했었음하루종일 잠 4시간 자면서 좆뺑이치고 짬 버리러 갈때마다 살@@@@@자마려웠는데이거보니까 PTSD오노 씹거물치도랑 제3연륙교갈매기 쳐다보면서 대충 멍때리고 있으면 대략 20분 안에 영종도 구읍뱃터에 도착주변엔 뭔 회센타같은 게 잔뜩 있음여기서 회나 서더리매운탕 같은거 드셔보신 분들은 댓글로 어떤지 알려주삼세종5호는 구읍뱃터에서 6시반에 월미도로 출항하면 이날의 일정을 마치게됨선착장 입구 ㅇㅇ선착장 주변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203번 놓침배타고 월미도에서 여기 들어오는 시간이 20분인데 ㅅㅂ 버스 배차가 30분이라서 걸어서 하늘도시 쪽으로 나가는데역시 마계도시 린천 아니랄까봐 뭔 보도 한복판에 정글이있노저거 나뭇가지 털면 털파리 야스버그 나올것같아서 사리면서 감역시 린천 2사람 건너오던지 말던지 아랑곳하지 않고 깔쌈하게 좌회전 때려버리는 선진교통문화 보유중인천e음버스란 걸 살면서 처음 타보는데 이거 버스가 아니고 일종의 에어서큘레이터인듯한마디로 공기순환원래는 중간에 내려서 202타고 공항가려고 했는데 어이터지는 주말배차에 할말 잃고 영종역에서 공철탐영종도에서 공철타면 환승 빠개지는거 쌉그지같음인천공항 2터미널 입갤2터미널은 별로 올 일 없어서 저 표지판만 보고 따라갔다가 공항버스 타는곳밖에 안보여서 얼탔는데인천버스는 1층 가서 타야되던올라왔더니 310번 수소유니 걸림거의 전설포켓몬급 차라서 저거 타보고 싶긴 했는데 난 김포를 가야 되기 때문에 패스대신 이거 타기로 함평소에 LS 잘 뽑다가 유니시티라는 좌석조무사 버스 나오니까 그거로 잽싸게 갈아타는 회사들 졸라 많아서 괘씸했는데강인패거리들도 그 많은 회사중 하나였음 근데 현대가 고상버스 단종시키니까 차급 정상화됨^^아 물론 정상화 안된회사도 있음 (유니시티 단종되자 긴급상황쳐뽑은 씹선진) 1터미널 들르고영종대교도 넘어가고김포 북변환승센터 도착소요시간은 대충 한시간 반정도 걸림북변환승센터에 308번 말고 9000번도 오는데 이노선이 원래부터 구터미널기준 308번이랑 소요시간 비슷하고차는 긴급상황으로 도배해놓고 요금은 7천원 받아처먹는 쌉먹튀 하자노선인데이번에 308번에 유니 들어가면서 차급역전세계 입갤 선진은 7천원 계속 받고 싶으면 우등 넣어야댐오래된 생각이다약간 걸어서 걸포북변역으로 왔음좀전에 인천e음버스가 공기수송한다고 깠는데 이번에는 공기를 두배로 수송하는 버스를 탈거임3천원에 버스 전세내는법- 6701타기일산대교에서 보이는 야경은 제법 그럴듯함상암동 도착 오늘의 시승 종료
작성자 : 엄마고정닉
이발사=의사?.jpg
중세 유럽 특히 13세기 중엽의 파리대학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의과대학 중 하나였으나뜻밖에도 외과 수업을 정규 과정에서 완전히 폐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외과는 고귀한 의학의 일부가 아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수술이나 상처봉합고름을 짜는 일은 지나치게 육체적이고 비천한 노동으로 간주되었고이 정도 일은 굳이 박식한 의사가 아닌 이발사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이에 따라 당시 의사들이 추구한 것은 보다 지적인 행위 이를테면 환자의 피를 뽑아내거나 관장을 통해 내장을 비우는 방식의 치료였다. 당대에는 몸속의 나쁜 피나 기운을 제거해야 병이 낫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내과는 학문적 권위와 실질적 영향력을 점점 더 강화해 나갔고외과는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파리대학의 결정은 도미노처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에든버러, 런던, 앤트워프 등지의 대학들 역시 외과 과정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기에 이른다. 자연스럽게 외과의사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그들의 역할과 명예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하지만 여기서 외과의사들은 순순히 무너지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각자의 도시에서 독립적으로 대학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과 중심의 교육체계에서 배제된 이상자신들만의 체계로 교육을 시키고 후학을 양성하자는 움직임이었다. 이는 단순한 밥그릇 싸움을 넘어자신들의 직업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생존 투쟁이기도 했다.이런 외과의사들의 단결은 점차 형식과 상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당시 이발사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외과의사들은 길고 품위 있는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복장 차원이 아니라 “우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전문가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외과의들의 반격이 거세지자 내과 진영도 다시 움직인다. 그들은 기존의 이발사들을 단기간 교육시켜 외과적 처치를 가능케 하는 ‘속성 외과 과정’을 개설한다. 이는 외과의사들의 권위와 전문성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누구나 짧은 교육만 받으면 외과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발외과의사’라는 이종 직군이 사회에 퍼지게 된다.이렇게 의료계가 내과 중심으로 재편되고 외과는 그늘로 밀려난 상황에서도외과의들은 단결하며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이발사와 구분되는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해이들은 ‘정규 외과 교육’을 이수한 자만 가입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인증받은 외과의라는 상징으로 청백적줄무늬 간판을 병원 앞에 걸기 시작한다.다만 그 색의 배열이나 회전 방식은 이발사와 차별화되도록 살짝 달리했는데이것이 오늘날 이발소 앞에 흔히 걸려 있는 ‘회전하는 청백적 간판’의 시초가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정규 외과 교육을 받은 외과의와속성 이발외과 출신을 쉽게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고오히려 외과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기 시작했다.“어디가 진짜 의사인지 모르겠어요.”“외과에 가봤자 고름 짜고 빨간약이나 바르던데그거면 이발소 가도 되겠더라니까요.”이렇듯 외과는 ‘돌팔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처지로 전락했다.내과 진영이 바랐던 여론몰이에는 성공한 셈이었다.의사란 곧 내과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외과는 ‘2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그러나 이 모든 흐름을 뒤집어버릴 한 인물이 등장한다.바로 ‘태양왕’ 루이 14세. 절대왕권을 구축하며 유럽을 지배하던 프랑스의 국왕이었다.루이 14세는 말년에 극심한 치질을 앓았다.좌불안석은 물론, 앉지도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고 통증은 왕의 권위마저 흔들 정도였다.문제는 그를 진료하는 어의들 역시 당시 주류였던 내과의들이라는 점이었다.이들은 연고를 바르고 고약을 붙이고끊임없이 관장을 하며 ‘치료 중’이라는 시늉만 반복했다.실제로 루이 14세는 생애 동안 2천 회가 넘는 관장을 받았다고 한다.그러나 아무리 관장을 해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결국 루이 14세는 내과 방식의 치료에 회의를 품는다.왕은 더 이상 이론이나 기운 같은 말장난이 아니라실제로 자신의 항문을 ‘직접’ 살펴볼 것을 명한다.검사를 해보니, 항문 안쪽에 작은 혹이 발견되었다.내과의들은 이를 치핵으로 판단했지만문제는 누구도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다는 데 있었다.그때, 한 외과의가 등장한다.샤를 프랑수아 펠릭스는 수년간 치질 치료에 매진해 온 외과의사였다.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로 임상 실험을 거치며 자신만의 수술법을 정립했고그 경험을 바탕으로 왕의 치질도 고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펠릭스가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 중 일부는 수술 도중 사망했고,“환자가 죽으면 몰래 공동묘지에 묻는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었다.이 때문에 루이 14세는 망설였다. 몸에 칼을 댄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파격이었고게다가 ‘전통적인 의사’가 아닌 외과의그것도 이발사 출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겨지던 인물을 신뢰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왕의 항문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참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연고도, 고약도, 관장도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자 결국 결단을 내린다.항문에 칼을대기로수술은 성공적이었다.치질 수술이 끝나자마자 루이 14세는 빠르게 회복했고고통에서 해방되었다.왕은 크게 감동했고 펠릭스는 단숨에 왕의 ‘은인’으로 떠오른다.왕이 인정하면 귀족 사회도 따르기 마련이다.베르사유 궁전의 귀족들 역시 치질을 앓고 있었고이들 또한 펠릭스를 찾기 시작했다.그가 고안한 수술법은 유행처럼 퍼졌고펠릭스의 명성은 곧 외과의 전체의 위상으로 이어졌다.그전까지 외과의는 이발사 수준으로 취급되며 조롱받던 직군이었다.그러나 ‘왕의 똥꼬를 구한 의사’라는 극적인 사건 하나로 판이 바뀌었다.절대왕정 하에서 왕의 신임은 곧 권력이며, 권위였다.왕이 인정한 외과의는 더 이상 하급 기술자가 아니었다.이제 외과는 유럽 전역에서 각광받는 학문이 되었고외과의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양한 수술기술을 발전시키며 본격적인 의학 전문 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물론, 루이 14세의 치질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외과의 중요성이 부각됐을 것이다.의학은 점차 실증적 방법론과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역사는 늘 필연과 우연의 교차로에서 움직인다.왕의 치질이라는 사소한(그러나 매우 고통스러운) 사건이 역사의 변곡점이 되어외과의들은 한발 먼저그리고 더 높이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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