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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이세하! 송은이 경정님도 안에 계시죠? 들어갈게요?"
정도연 씨는 지금 무언가를 만드느라 바쁘신지라, 캐롤이 대신 연구 성과를 알려주기 위해 방문했다. 캐롤이 문 안에 들어서자 은이누나의 몸은 거짓말처럼 작동을 멈췄고, 캐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만이 아직 사람의 정신이 남아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캐롤의 표정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아니 사실 어둡다는게 절망적이여서 어둡다라기보단 힘들어서 어둡다는 느낌으로. 확실히 힘들긴 하겠지. 이런 비공식적인 일에 이정도로 힘을 쏟고 있으니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난 은이누나를 무릎에 앉히고 요즘 들어 진행되고 있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은이누나의 애정공세와 집착, 그리고 신체능력의 향상과 위상력 반응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 설명했다.
그 건에 대해 캐롤의 반응은 생각보다 부정적이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은이누나의 '저주'는 일종의 퍼즐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저 저주가 차원종의 최후의 발악이 아니라 일종의 기생이나 적어도 최소한의 자아가 남아있는 상태로 은이누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거라면, '퍼즐'과는 다르게 로직에 의해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그런 사례는 정말 정말 극히 드물다며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냥 은이누나의 집착이 저주 내에 포함되어 있는 수순일 수도 있으니까. 저 정도 수준의 별거 아닌 위상력 반응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Well...그 문제는 나중에 정도연 요원님과 상의해보도록 할게요. 그럼 다시 원래 가설로 돌아가자면,"
일단 지금까지는 근본적인 목적은 퍼즐을 풀지 않고 저주를 인형에서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제거할 방법을 찾는게 목적이었다. 애초에 저 퍼즐이 풀릴지도 의문이고 풀린다 해도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그건 역시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비슷한 저주는 많이 있었어도 퍼펫마스터 급의, 그것도 인간을 통째로 인형으로 바꾸는 저주는 너무나도 복잡해 물리적으로 제거하는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은이누나가 인형으로 얼마나 살아야될지 감이 안 잡히고, 그 도중에 목에 네번째 선이 그어지고 죽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결국, 우린 다시 원점으로, 퍼펫마스터가 말한 해제 방법, 동화의 각성이란 키워드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세하. 일단, 송은이 경정님께 Kiss...하도록 하세요!"
...뭐? 방금 뭐라고?
"네?"
"Kiss! 제가 조사해본 결과, '동화'라고 간주되어 있는 책들 중 히로인이 의식불명에 빠지는 책들이 약 60%. 그 책들 중에서 히로인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방도는 95% 이상이 키스였다구요. 일단 동화의 각성이란 건 그걸로 보는게 제일 타당할 듯 한데요."
나랑 은이누나의 미묘한 시선이 서로를 훑고 지나갔다.
그...그런가?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은 동화들을 보면 위기에 빠진 공주는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나도 그 생각을 아주 안 해본건 아니다. 근데...
"설마 그런 간단한 행동으로 풀릴까요?"
"사실 우리도 그 의문이 들어서 좀 고민하긴 했어요. 보통 저주들을 푸는 조건은 나름대로 어떤 재료를 모아오던지 어떤 위기상황에 처하던지 꽤 어렵거든요. 근데 상위 차원종인 퍼펫마스터의 저주가 이렇게 쉽게 풀릴까?란 생각은 했죠."
"근데 왜..."
"일단 동화의 각성이라는 게 키스 외에 다른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하가 그랬잖아요? 퍼펫이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상당히 슬프게 절규했다고. 혹시 퍼펫마스터는 Love...사랑에 한이 맺혀 있었고, 그래서 그런 조건을 걸지 않았을까요? 사실 어떤 조건을 걸든 그건 자기 마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차원종을 죽이면서 딱히 동정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퍼펫마스터가 절규하는 걸 봤을 땐 그래도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했었으니.
인형의 피부색이 약간 물든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 색깔 변화도 나한테만 보이는 걸까? ...아. 하긴. 말하는 것도 나한테만 보였는데 색깔 변화따위야...
"Well...It's worth a try. 한번 해봐요! 세하!"
사실 이게 진짜 되기만 한다면 고민했던 것에 비해 정말 날로 먹는 거긴 한데...
"하...하지만 이건 제 첫..."
이라고 얼굴을 붉히며 순간적으로 내뱉긴 했는데, 애초에 은이누나가 날 감싸려다가 이 꼴이 된 걸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그런 사람인데...다시 원래대로 돌리기 위한 키스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너무 억울해 할 것 없어. 나도 연애경험 따위 없으니까. 빨리 해버리라구."
"억울해 한 것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인형을 공주님안기로 들어올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평소의 그 뻔뻔한 성격과는 정반대로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인형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서로를 마주보며, 눈을 굴리며,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다가,
결국 난 인형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1초...
2초...
3초...
시간이 경과하면서, 혹시나 했던 기대는 점점 다시 마음이 무너지는듯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아직 입을 맞추고 있다. 아직 눈을 감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은이누난 아직 인형이란 거다.
만약 키스로 풀려버렸다면 천과 솜털이 뼈와 살로 바뀌는 만큼 점점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기라도 해야 할텐데, 이 차가운 천이 인간의 살갖으로 바뀌면서 입술에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야 할 텐데, 모든 것이 아직 그대로니까.
한참 있다가 떨어졌다. 은이누나나 나나, 한껏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와 동시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의 눈빛을 회피했다. 역시...무린가.
캐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렇게 쉽게 풀리진 않는군요. 그래도 나름대로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동화의 각성이란게, 저도 꽤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키스 외엔..."
캐롤은 앞니가 보이도록 입술을 깨물며 책상을 건반을 치듯 살짝 두들겼다.
"Hmmm...역시 그냥 키스는 너무 쉬웠나 보네요. 하지만 아직 키스라는 수단을 폐기하기에는 일러요."
"네? 방금 실패했잖아요?"
"Yes, 하지만 동화에서 히로인을 각성시키는 건, 그런 dry한 키스가 아닌, 말하자면 True-love...진정한 사랑의 키스니까요."
진정한...사랑의 키스? 은이누난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거라면 사실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는데.
아니 잠깐, 모순이지 않나?
"근데 이상하잖아요, 분명히 로직이 있는 퍼즐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트루-러브는 주관적인 감정이지 논리가 아니잖아요? 기준도 애매하고?"
"그렇죠, 하지만, 더 어렵게 퍼즐을 만들어놓을 능력이 되면서 키스 따위를 설정한 차원종이라면 역시 좀 더 조건을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겠죠. 진정한 사랑이란 말은 주관적이지만, 키스를 할때의 심박수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나름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심박수...심박수만 따지자면 사실 인형이 은이누나 본인인걸 아는 만큼 충분히 높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암튼, 트루-러브라. 은이누날 좋아하는 사람이...
"은이누나, 은이누나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사람 혹시 아...아니에요."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있어도 이 누나 성격에 신경쓸 리가 없지. 게다가 전에 신강고에서 들은거 보면 없어보여...
"왜 그런 식으로 묻다 말아! 내가 특경대에서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응? 전에 나 다쳤을때 잔뜩 화나서 싸우러 간 거 못봤어?"
"그건 캐롤때문...아니에요. 암튼, 민우 형은요? 민우 형은 누나를..."
"글쎄~ 아닐걸? 나한테 키스해 주는 걸로 날 구할 수 있다고 하면야 해 주겠지만...그래봤자 방금이랑 똑같을거고."
사실, 생각해보면 은이누날 좋아하는 사람이 특경대 내에 없진 않을 것 같다. 예쁘고 귀엽고 부하들도 잘 챙겨주고 따뜻한 여자 대장이란 포지션이 엄청나게 희귀하잖아? 가능성이...
"하긴, 특경대 내에서 찾아보면 있기야 있지 않을까요. 그럼 내일 당장 특경대로..."
그 말을 들은 캐롤씨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뭔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데...지금 경정님의 정체를 한 명이라도 더 아는 순간 정지될텐데요. 그렇다고 인형으로 인식하는 상태에서 키스한다고 효과가 있을지는...세하, 당신이라면 좋아하는 사람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완전히 대할 수 있어요?"
힘들지. 인형인데, 진짜 사람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면. 역시 무린가...
난 은이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캐롤은 갑자기 무언가 결심한듯 이를 악물고
"But, I have a plan. 사실 세하가 실패할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네?"
"제가 채민우 경감...아니 이제 경정님. 에 대해서 Research를 해본 결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채 특경대에 같이 들어온, 첫사랑이 있더라구요. 민송이라고...뭐 사귄 적은 없었고 쭉 짝사랑이었던 것 같지만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은이누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자...잠깐! 송이라면...그 애는! 걔는! 죽었...잖아!"
죽었...다고? 잠깐, 민우 형 첫사랑은 특경대에 들어왔고, 차원종에 의해 사망. 그리고 캐롤씨가 그걸 이용해서...설마...!
"캐롤, 은이누나 말이 사실이에요? 고인이라구요?"
"...Yes.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더 완벽하게 속일 수 있죠. 정도연 요원님이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소개팅'작전의 브리핑을 시작할게요."
그 말뜻을 알아챈 듯 인형의 표정이 경악에서 곧, 서서히 일그러지며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노는, 지금까지 인형이 된 이후로 그 어느때보다도 심한 살기를 그대로 온 방안에 퍼트리며
"이런 미친년이! 결국 나보고 그 애 행세를 한 다음에 민우한테...!"
"캐롤, 지금 은이누나가 굉장히 반대하고 있는데요, 역시 그건..."
"송 은 이 경 정 님.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건 싫어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잖아요? 생각해봐요, 죽은 줄 알았던 첫사랑이 사실 살아있었고, 정도연씨의 로봇공학으로 인해 새 몸을 얻어 돌아왔다. 진정한 트루-러브가 될 상황 아니에요?"
"그걸 말이라고 해? 민우는...그 애가 죽은 후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지만, 예상은 가네요. Yes, 저도 민우씨한텐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왕 사람 마음을 이용할거면 확실한 걸로 이용해야죠. 경정님은 그 몸으로 사랑을 얻을 수 없어요. 경정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에 하나 있더라도, 그 사람은 경정님을 사랑하는거지 인형을 사랑하는 게 아니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경정님이랑 가장 동료애가 깊은 채민우 경정님이 제격이죠. 가장 설득력 있고, 속이기에 적당한 조건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트루-러브를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 같은 특경대고, 같은 동료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대장도 아닌 일반 대원들한테 이런 짓을 할까요? 아니면 특경대도 아닌 클로저나 일반인 한 명 골라서 이런 식으로 속일까요? 도의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정도연 요원님은 기본적으로 특경대들을 맡아서 수술하기 때문에 특경대로 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많이 떨어질 텐데요?
채민우 경정님도 송은이 경정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이해해 줄거에요. 지금 송은이 경정님은 경정님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태에요. 이대로 경정님이 영원히 굳어버리거나 만에하나 차원종으로 변해버린다면 채민우 경정님은 지금 이 계획보다 훨씬 더 상처받을걸요?
이미 정도연 씨랑 다 계획을 준비해 뒀어요. ...모두 송은이 경정님을 구하기 위해서에요. 이해해주세요.
"...그...래. 민우라면 이해해 줄거야.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성공한다면 모든 걸 설명할 거고, 용서를 구하면, 당연히 이해해 주겠지. 근데, 만약 내가 안 돌아가면 어쩔 건데? 그럼 민우한텐 말도 못하고 민우는 죽은 줄 알았던 첫사랑이 다시 살아온다음 또 다시 사라지는 걸 겪어야 할텐데?"
"...라는데요, 캐롤."
"Oh, Don't worry. 실패할 경우 제가 새로 개발한 약을 한 모금 먹일 거에요. 그럼 몇 시간 분의 기억은 날아가겠죠. 전에 박심현 요원한텐 부작용이 심해서 먹이질 못했지만, 이젠 부작용도 별로 없도록 개발시켰으니까요."
은이누난 그 말을 듣자 조용히, 슬픈 눈으로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심한 말 한건 미안해요. 캐롤. 어짜피 못 들었겠지만."
...우는 것 같았다. 누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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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쟝
캐롤 기억 지우는 약 있다고 신강고에서 나와욧
역시 홍시쟝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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