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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까

운영자 2022.06.13 10:56:26
조회 287 추천 14 댓글 0

가난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대학동문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고물상에서 리어커를 빌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폐지나 박스를 수집하며 살았다. 그가 어느 날 빌딩 앞에 놓여있는 신문지 더미를 발견했다. 그걸 보고 부지런히 리어커를 끌고 가는데 옆에서 찔떡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까 다리를 저는 노인이 카트를 끌고 정신없이 그 신문지더미 쪽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며 더 이상 가기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난하면서 오래 사는 건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 수시로 요양원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본다. 치매 노인들이다. 잠시 전에 전화를 했던 사실도 망각하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래 사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풍이 걸려 몸이 마비된 채 십년 이십년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건강하게 사는 게 아니라 병에 걸려서 오래사는 건 또 다른 지옥이었다. 내가 집필실로 빌려 쓰는 실버타운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여러 노인들의 모습을 본다. 노년의 또 다른 고통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매일같이 골프장을 다니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이 혼자서 골프만 치면 재미가 없어 못 치겠다고 한다. 책도 젊어서 봐야지 늙으니까 눈도 아프고 못보겠다고 한다. 보조기를 밀고 다니는 머리가 하얀 노인은 “남아도는 게 시간 밖에 없다우”라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노인 몇 명이 모이면 정치를 논하고 대통령을 욕하고 사회정책을 한탄한다. 그들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방법 같았다. 그것은 그냥 지독한 무료함과 권태인 것 같다. 밥시간에 술을 혼자 몰래 따라마시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 노인도 보았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백세시대’라는 말이 일부에게는 행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일수도 있다. 칠십 고개를 오른 나는 느닷없이 다가올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워할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바닷가에는 죽음의 기운이 스며있는 것 같다. 수영장에서 나 혼자 헤엄을 칠 때가 있다. 갑자기 심장쇼크라도 오면 죽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곳곳에 스며있다. 살만큼 살았는데도 벌벌 떠는 내모습이 초라하다. 그런 때면 내면의 또 다른 내가 약한 나에게 꾸짖는다.

‘저녁노을이 지고 밤이 오는 것 같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거야.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 그냥 자연스럽게 맞아들여. 살다가 쓰러져 죽는 자리가 너의 목적지야.’

그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맞은 지금의 황혼부터 잠이 들 밤까지의 남은 여백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일본의 실존주의 문학가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에 대처하는 이런 세 가지 독특한 대안을 내놓았다고 들었다.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귀의할 것.’

죽거나는 자살하라는 것이다. 미치거나는 늙어서도 돈에 섹스에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면서 죽을 줄 모르고 살다가 죽으라는 것이다. 결국 종교에 귀의하라는 소리였다. 오늘 아침도 백여년전에 살다가 간 현자가 쓴 글을 읽었다.

‘왜 세상 죄악을 한탄하며 죽으려 하는가? 왜 사회의 무정을 노하며 이를 가는가? 너는 네 자신에 대하여 화를 내고 있다. 마음에 조화가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불안을 세상을 향해 나타내고 있다. 와서 그분의 평화를 맛보라. 그게 모든 생각을 초월하는 평안이다.’

그 평안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도 아직 얻지 못한 것 같다. 조그만 자극에도 소용돌이 치는 게 접시물 같이 얕은 내 마음이다. 엉뚱하게도 걱정은 죽은 후까지 확장되어 있다. 나는 더러 죽고나서 몸에서 빠져나온 내가 어두운 적막 속에서 고독하게 방황할까봐 두렵다. 그 노인은 또 이런 말로 나를 위로했던 것도 기억한다.

‘죽는 순간 혼자서 강을 건너갈 것을 겁내지 말라. 그 분이 와서 너의 손을 잡고 밝은 빛의 세상으로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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