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술에 취했던 것 같다. 생판 모르는 모텔에서 눈을 뜬걸 보면. 익숙하다는 듯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치우다 발견한 콘돔 서너개는 어젯밤의 일을 말해주는듯 했다. 그저 괜시리 울컥하려는것을 겨우 참아내고 밖으로 나와 계산하러 간 허름한 카운터에는 모텔 주인이 늘어지도록 잠을 자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먼지가 잔뜩 낀 작은 창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요,"
"아, 왔나? 어젯밤은 괜찮았고?"
주인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눈빛으로 더럽다는 추파를 던지며 대답했다. "텔비 계산요." "아 402호? 어제 계산하고 나갔어." 아무래도 매너가 좋은 손님이었나 보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비틀거리며 나선 거리는 겨울의 막바지라고 하기엔 따뜻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목이말라 저 멀리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려 했다. 현기증이 심하다. 어제 무슨일이 있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내려 하니 눈 앞이 더 흐려지는 듯 하였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빨간 스커트를 입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채 비틀비틀 걷는 날 동정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모텔이 즐비한 동네에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누구하나 선뜻 부축해 주는 이 없었다. 어느새 편의점 간판이 가까워진 듯 했다. 어지러워. 눈앞이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두통약도 사야하나 라는 생각을 끝으로 당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뜨니 병원이었다. 아직 술도 깨지 않아 의사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길가에 몇시간동안 쓰러져 있던 나를 본 환경 미화원이 병원에 전화를한 모양이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찰실에서 보자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 몇명이 나가자 마자 정수기 앞으로 달려가 종이컵도 쓰지않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배가 고프지만 아직 오후 5시도 되지 않은데다 수중에 현찰도 없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같은 병실에 가족에게 간호받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어려보였다. 나에게 가족같은건 없었다. 뭐 날 걱정해 줄 사람도 없었기에 지금 이렇게 몸팔고 돈이나 받지...아? 어제 술에취해 돈받는걸 깜빡한 모양이다. 매너있긴 개풀. 떡진 머리칼을 움켜쥐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데 간호사가 와 나를 불렀다. 아마 날 진찰실로 대려가는 모양이다. 링거를 꽂고 돌아다니는 환자들 사이에 같은 옷을 입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진찰실에서 의사는 앉아있는 나를 심각하게 쳐다보더니 큰 숨을 들이키며 말을 꺼냈다.

"임신 2개월입니다. 유감입니다만, 아기는 뱃속에서 죽었습니다. 아마 쓰러져 계실 때 잘못 된 모양입니다. 아기를 제거하는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내가 진찰실에서 무슨 얘기를 들은건지 모르겠다. 분명히...분명히 피임은 잘 했던걸로 기억한다. 가만있자, 2달 전이면,..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지? 몸을 판거? 필름이 끊길 때 까지 술을 마신거? 마침내 화장이 번진 얼굴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는 낼 수 없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심장이 아파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줘, 하며 밤새 울 수 밖에 없었다. 얼마 후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내가 싫었다. 모든게, 그중에 내가 너무 싫어서.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더러워진 하이힐을 벗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이 비가 그치면 더이상 흘릴 나조차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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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뻘글...사진 공연영상에서 캡쳐한거라 문제시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