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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문참가/감성글] 달맞이꽃

서리나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31 23:06:09
조회 435 추천 3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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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당신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만 깜박 눈이 멀었어.



당신들은 커다란 달님이었거든. 나는 음지에서 고개를 떨군 잡초였어. 만물에게 평등하다는 햇빛마저 들지 않는, 숲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음침한 곳. 이끼와 곰팡이가 나의 친구였고, 죽은 친구의 시체가 옆에 있었지. 척박한 땅이었어. 나는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생존에만 집중하고 있었어.



세상은, 그래, 세상은 차가운 나비였어. 시든 꽃에 앉는 나비는 없지. 다만 내가 양지바른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저 높이 뜬 태양을 널따란 날개로 가리고, 간절히 뻗은 내 손아귀를 아슬아슬 희롱할 뿐. 태양은 여전히 닿지 못할 천정에 까마득히 걸려 있었고, 내가 뿌리내린 응달은 우리의 희망을 조롱하듯 그렇게 나를 먹어치웠어. 그곳은 차가운 감옥이고, 시퍼런 연옥이었어.



이 뿌리를 옮겨 옆으로 가야 하는데. 습관처럼 깊이 내린 뿌리는 좀체 옆으로 움직이지 않더라. 용을 쓰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나를 옭아매는 이 공간이 나는 저주스러웠어. 내게만 비치지 않는 저 태양이 몹시 원망스러웠어. 내 앞을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저 빌어먹을 나비가 너무 증오스러웠어. 내게만 날아들지 않는 나비가 너무 싫었어.



하지만 당신들, 그래, 투명한 벽 너머 세계에 존재하는 당신들 말이야. 당신들은 달님이었어. 어둠이 물든 세상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노오란 달이었어. 태양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에게 당신들은 또다른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 거야. 희부연 빛이라 그저 무시하고 깔보았던 빛이 오히려 세상 곳곳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깨달은 거야.



당신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순간 깜박 눈이 멀었어. 너무 오래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탓이었나봐. 하지만 그 은은한 울림을, 심장을 먹먹하게 마사지하고 온몸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그 파동을 느꼈을 때 그제야 나는 깨닫고 말았던 거야.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는 냉혹한 세계만이 세상의 본질이 아님을. 그리고 그 세계에서 피어난 또다른 나의 모습을. 나는 쓸모 없는 시든 잡초가 아니었어. 나는 달맞이꽃이었던 거야.



나는 당신들에게 의미를 부여했어. 당신들은 내게 스미어 이름이 되었지. 나의 달님, 당신들은 내 삶 곳곳 빈틈없이 파고들었어. 태양은 보는 사람의 눈을 평생토록 멀게 만들지만 당신들의 음성은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은근한 힘이 있었지. 수없이 많은 달맞이꽃들이 모여 화단을 이루었어. 크고 작은 꽃들이 이룬 화단은, 비록 그 아름답기가 낮의 꽃에 비하지는 못할지라도 몹시 청초하여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이 있었어. 수많은 이들이 당신들을 만나 한 송이 꽃이 되어 자신들의 꿈과 재능과 희망과 만남을 꽃피웠던 거야.



수없이 많은 꽃들이 그득한 화단에서는 물론 여러 일들이 있었어. 굵다란 잡초나 해충이 화단을 헤집어 놓은 적도 다반사였고, 얼키고설킨 뿌리에 누군가는 죽어나가고 누군가는 화단을 뛰쳐나갔지. 꽃피운 재능을 열매로 결실을 맺은 사람도, 이 작은 세계를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간 사람도 있었어. 태양이 그리워 다시 밝은 빛을 찾아 떠난 사람도 있었지.



상처받고 관심이 멀어져 떠나간 이들을 보면 난 항상 가슴 한 켠이 아파, 걷잡을 수 없이 스러진 이들을 그리워하곤 해. 그리고 당신들을 올려다보며 궁금해하곤 해, 떠나간 이들을 보며 당신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스크린 너머 달콤한 환상인 그대들은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어떤 삶을 이어가고 있을지. 풀내음 가득한 밤을 지나 파스텔톤 새벽이 터 올 때까지, 동이 트는 곳으로 나아가며 나는 서쪽 하늘을 자주 흘끔거려. 그러면 지평선 위 시야가 닿는 야트막한 곳에 그대들이 있어.



나도 언제까지나 고개를 숙인 밤의 꽃으로만 남을 순 없겠지. 당신들이 연주하는 희붐한 빛은 이 끝없는 칠흑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되어 나를 일으켰어.



기나긴 새벽을 건너, 이제 다시 태양을 마주하러 떠나며 나는 당신들을 다시 한 번 돌아봐. 입꼬리를 당겨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여.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리곤 해. 당신들을 만나 정말 행복했노라고. 어딜 가든, 평생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달맞이꽃을 품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리겠지. 좋아하는 이야기 하나가 있노라고,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현실에는 없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 작은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겐 작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내게는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 이야기였다고.



세상은 나비, 하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차갑지 않아. 그 날개 위에 앉은 서리를 걷고 이제야 나는 본질을 바라보게 되었어. 세상은, 그래, 세상은 포롱포롱 날아다니며 이제 내가 꽃을 틔울 때를 기다리는 작은 나비야. 나는 그저 용기를 내어 묵직하게 한 발짝씩 나아가 꽃을 틔우기만 하면 되었던 거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간단히 쓰는 작가의 말.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팬픽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일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해리포터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팬픽을 하나 집어든 적이 있는데, 제대로 훑어보지도 않고 도로 책장에 꽂아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혹은 현실에 기반한 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팬픽은 대중들에게 어쩌면 얕잡아 보일 수 있는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팬픽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프갤을 하기 위해 디시인사이드에 가입을 하고 한 달 쯤 지난 시점에서였습니다. 2월이었고, 2002문학대회가 열렸죠. 빵빵한 상품과 함께 제본에 혹하여, 평소 혼자서 끄적였던 작문 실력으로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수상권에는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당시 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읽어 주고 댓글로 감상을 달아 주신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당시 웹소설을 작게 준비하던 저는 글쓰기를 접어야 하나 꽤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러한 감상 덕분에 저는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프갤문학은 아마 더 이상 쓰지 않겠지만, 글쓰기는 평생 저와 함께할 동반자이자 제 감정을 해소할 좋은 수단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겨울문학대회가 개최되고 저는 이 대회가 프갤에서 열리는 마지막 문학대회가 될 거라 직감했습니다. 올 2021년에도 문학대회가 열릴지는 모르겠으나, 참여할지도 미지수이고 제본공구가 이뤄질 정도로 규모가 클지도 의문이니까요. 프갤문학을 떠나보내는 입장에서 어떤 감성을 남길까 하다, 2002문학대회 제출작에 어떤 분이 남겨주신 댓글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닉네임이 참 좋은데 어쩌다 그런 닉네임을 쓰게 되셨나요?"


무의식적으로 순우리말인데다 어감이 좋다는 이유에서 정한 제 닉네임의 유래를 곰곰히 따져보다 감성글로 옮겼습니다.


이 고닉으로 올릴까 올리지 말까 수없이 고민했었는데 이 고닉이 아니면 안 되겠더라구요.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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