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겨문대회/순수문학]잊혀져도 좋을

겨울문학대회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10 21:00:28
조회 429 추천 23 댓글 11
														



viewimage.php?id=2bafdf3ce0dc&no=24b0d769e1d32ca73fec82fa11d028313f7ca0229f7ff0a914a049d5fe5a9e18ba5a916c47baba519e8160d7c0299da9eb11319517bcd933730f6f7d096726b18c



잊혀져도 좋을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널 처음 만난 게.


 


안나는 눈부신 햇빛에 살짝 눈을 찡그렸다. 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창문의 위치가 문제야. 유리를 밀어내고 들이닥치는 직사광선이 문제라고. 침대에 누운 채로 몸을 옆으로 돌려 누운 안나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 안나는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손바닥에는 손가락의 그림자가 달리 새겨진다. 손금, 혈관, 그리고 여기에 겹쳐졌던... 안나는 순간 얼굴을 찡그림과 동시에 주먹을 꽉 쥐었다. 머리가 아팠다. 지끈지끈거렸다. 그녀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맨 바닥에 닿은 발바닥은 몹시도 차가웠다. 발로 대충 슬리퍼를 찾은 다음 양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짚고, 비척비척 일어나 옷가지를 챙겼다. 거울 앞에 선 안나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고 수척했다. 생기 넘치던 아렌델 여왕의 복숭아빛 홍조는 어느새 구름에 가려 달에 드리워진 커튼 그림자처럼 칙칙하게 변해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죽음. 바위거인으로부터 여왕을 구했다는 사실로, 그는 아렌델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의 품 속에서 발견된 반지는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산산조각난 채로. 그렇게나 귀하다던 주홍빛 다이아몬드 반지 알. 아렌델 왕궁 전속 얼음운반담당이었던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된 청혼을 하기도 전, 죽음의 뒤를 따라야 했다. 크리스토프의 장례식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트롤과 정령 엘사, 아렌델의 여왕, 노덜드라의 주요 인사 몇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슬펐지만,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엘사도, 안나도, 올라프도, 스벤도,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 믿었다. 안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명확한 슬픔이었지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몇 개월이 지나도,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죽음으로 인해 매일매일 마음이 뭉개지는 고통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지어보려 해도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를 잊으려 할수록 더 큰 고통과 아픔이 그녀를 억눌렀다. 크나큰 쓰라림이었다. 온 몸이 찢어질 것 같이 잔인한 전율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던 안나는 말을 달려 살아있는 돌의 계곡으로 향했다.


 


“제 기억 속 크리스토프를 지워주세요, 패비 할아버지.”


“그건...”


“크리스토프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왕님..”


결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만, 안나 여왕의 모습은 더 없이 수척했고 파리했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야윈 모습이다. 확실하게 빛나는 눈빛만이 그녀의 뜻을 대변했다. 패비는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가 없었다. 크리스토프의 가족이자 오랜 친구였던 트롤 무리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 가느다란 실바람이 안나의 붉은 갈색 머리를 헤집었다. 붕, 하늘을 향해 떠올랐던 머리카락은 곧 그녀의 볼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치 그녀가 쉴 새 없이 흘렸던 눈물 자국처럼.


 


안나는 엘사, 올라프, 스벤, 패비와 함께 아토할란 가장 안 쪽에 섰다. 왕국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엘사가 몸을 던졌던 바로 그 얼음 난간. 아렌델이 바닷물로 침몰해버릴 뻔한 바로 그 날을 떠올리며, 엘사는, 안나를 얼음배에 띄워 보내야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 순간 그녀는 안나가 계획하던 바를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정적을, 패비의 갈라진 음성이 열어 젖혔다.


“필연 속 인연은, 여왕님이 직접 끊으셔야 합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직접 끊지 않으면.. 기억을 지우기란 어렵습니다.”


“..네.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절대 인연을 이어나가지 않겠어요.”


“기억이란 연쇄 작용과 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여왕님 자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수많은 크리스토프를 만나게 되실 텐데, 모든 순간의 인연을 거두셔야 합니다. ”


어렵게 꺼내 든 패비의 한 마디에 엘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벙긋거렸다.


“또, 제가 기억해야 할 게 있나요?”


당장이라도 몸을 던지려고 하듯, 상체를 살짝 숙인 채인 안나가 패비에게 물었다.


“정체를 들키지 마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당신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뿐 아니라 수많은 평행우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니 만큼 어떤 역효과가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과거 어느 순간에, 전혀 다른 공간에 뚝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의 모든 사람이 안나를 기억 속에서 지우게 될지도 모른다. 단 한번만 실패해도, 안나는 반동작용으로 자신이라는 존재를 잃을 지 모른다.


“어렵지 않네요.”


“그리고, 인연을 거두실 때, ‘지운다.’라는 말을 잊지 마십시오.”


“네, 그럼.”


확고한 결심을 온 몸에 가득 담은 채인 안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자신에게 눈을 떼지 않았던 엘사조차.


“금방 올게.”


끝도 없이 깊고 깊은 심연 속으로, 안나는 몸을 내던졌다.


 


지운다. 기억을 직접 지운다.


 


추락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안나는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크리스토프를 마주했다. 어디서부터가 상상이고 현실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12,220,621번의 크리스토프의 여러 모습이 산발적으로 그녀를 스쳐 지났다. 그녀는 단 한마디만 하면 된다. 수많은 크리스토프 앞에서, 그를 ‘지운다.’ 단 한마디를.


 


1. 나노초


그녀가 처음 만난 크리스토프는 무척이나 다정다감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었다. 이름도, 나이도,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무엇도 묻지 않았다. 불현듯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와...만나줄래요?”


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크리스토프는 본래 이렇게 온기어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영원히 지우러 왔다.


“왜 안 되죠?”


“안되니까요. 우린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마지막 말은 목구멍 속에 삼킨 채 안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럼, 친구로 지내요.”


친구라면... 안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시간이 흘렀다.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친구로 대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안나의 옆에 붙어 있으려 했다. 언제나 그녀의 일을 도우러 달려와 해결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안나는 점점 그런 크리스토프가 가여워졌다.


“우린, 친구가 아니었나요?”


안나의 건조한 목소리에 크리스토프는 그녀의 눈을 찾았다.


“당신만을 사랑할게요.”


안나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건가요?”


고개를 들어 크리스토프의 눈을 본 안나는, 그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안 되는 건가요?”


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그녀의 두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뱉듯 말했다.


“이대로라도 상관없어요. 당신 옆에만 있게 해줘요.”


안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운다.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천천히 흩날렸다. 컬러였던 그의 모습이 서서히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의외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2. 피코초


그녀가 다음으로 만난 크리스토프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비켜 봐요, 거기 당근.”


“아, 미안해요.”


안나는 오큰 무역소에서 만난 크리스토프가 당근을 집을 수 있도록 잽싸게 몸을 돌렸다. 그래, 원래 저런 사람이었지. 희미한 미소가 번질 뻔 했지만, 안나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름은요?”


“말 못해요.”


“나이는요?”


“비밀이야.”


“어디서 왔는데요?”


“더 이상 물어보지 마요.”


“대단한 비밀 나셨네.”


크리스토프는 철저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안나를 깔아보며 코웃음 쳤다. 안나는 일부러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마을을 오가는 중에 둘은 자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눈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지만 안나는 여전히 그를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마을 축제 날, 사람들 속에서 안나는 신나게 춤을 췄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강하게 땅을 박차기도 했다. 그녀를 보는 사람들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박수를 보냈다. 음악이 끝나자 안나는 자리에 돌아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어느새 그녀 옆으로 크리스토프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깊은 밤, 마을 전체를 둥둥 울리는 분위기에 취했다. 붉은 캠프파이어를 가운데에 두고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고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리는 모습 같았다.


“이제 마스크는 벗지 그래요?”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팔을 가볍게 툭, 쳤다. 안나는 그런 그에게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비어 있는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그녀는 발을 까딱거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기 싫으니까.”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던 안나는 머리 뒤에 손을 깍지 껴 올렸다. 흥에 넘치는 류트 소리에 맞춰 양 팔을 흔들었다.


“나, 당신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말에 안나는 흘끗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에 반사된 크리스토프의 얼굴은 실제보다 더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이 달싹인다.


“그러니까 나랑...”


안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운다.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천천히 조각났다. 단단해 보였던 그의 모습이 서서히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의외로 멋지다고 느꼈다.


 








3. 펨토초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손을 잡고 싶었다. 무척이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으로는 수도 없이 그와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거니는 상상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해 나가는 그녀였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의지를 잡아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소심하게 그의 소맷자락을 살짝 잡았다.


“...손 잡아줘요.”


안나는 방금 그녀의 귀에 들린 크리스토프의 말이 진짜일까 아주 짧은 시간 고민했지만 의심할 여유 따위 없었다. 그녀는 냉큼, 그의 손을 잡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순간을 느끼면서도, 크리스토프와 잡은 손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바닥에 걸쳐진 옷가지는 크리스토프의 온기가 그녀에게 닿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안나는 그와 연결된 손을 잡아 빼 소매를 정리한 후,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잠시 동안 떨어졌을 뿐인데, 아쉬움이 가득했던 둘의 손은 다시 단단하게 이어졌다. 이따금씩 그가 힘을 주어 안나의 손을 꽉 잡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뭉클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느새 뇌는 심장으로 바뀌어 머릿속을 둥둥 울렸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웠다.


깊은 밤,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자 크리스토프는 돌아서던 안나를 잡아끌어 품에 가득 안았다. 긴 시간이었는지, 짧은 시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안나는 눈을 감고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랐다. 그가 안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안나는 힙겹게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운다.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천천히 흐려졌다. 확실해 보였던 그의 모습이 서서히 옅어지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의외로 서글프다고 느꼈다.


 


안나는 수많은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변호사 크리스토프, 왕궁에서 잘나가는 크리스토프, 멋진 순록치기 크리스토프. 조금 위험하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안나가 없어도 상관없이 멋진 모습의 그는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녀는 미련 없이 그들을 지웠다.


 


 


 


4. 아토초


마지막으로 만난 크리스토프는 어리숙하고 어린 모습이었다. 안나는 불신에 가득 차 사람들을 배격하고 멀리하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봤다. 유달리 사람들에게 윽박지르며 자기 멋대로 일을 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눈엣가시였다.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크리스토프를 마을에서 쫒아낼 수 있을지 열심히 궁리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그럴수록 당당했다.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는 자신에게 불평하는 사람들 앞에서 매우 당당했고 거칠것이 없어보였다.


 


“제 삽 빌려드릴까요?”


안나는 맨손으로 땅을 고르다가 익숙한 음성에 동작을 멈췄다.


“아, 고마워요!”


어느새 삽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가 버린 크리스토프의 자취를 찾느라, 안나는 두리번거렸지만, 이내 하던 일에 집중했다. 하루는 무척 짧았다.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이후로도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크리스토프는 스벤을 타고 근처를 지났다. 고된 일에 지쳐 있던 안나는 무심하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툭툭 말을 던지는 크리스토프의 농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잘 안 대해 줬어요?”


“응. 내가 있던 곳을 차지하려고 내 뒤통수를 쳤지.”


“정말 개자식이네요.”


“맞아. 진짜 그랬어. 나한테 청혼까지 했었다고.”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응.. 좀. 하지만 이젠 괜찮아!”


“네, 지금은 좋아 보이세요.”


처음에는 혼자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여겼던 안나도, 어느 순간 크리스토프가 와서 별 쓸데 없는 말을 건네주길 바라게 됐다. 정말 이상한 녀석이라고 느꼈지만 항상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그를 챙겨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기 이상한 누님.”


“뭐래냐.”


“누님, 저랑 일 하나 같이 안 해 보실래요?”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새롭게 맡은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으면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누님이 중요한 일을 맡아줘요. 아주 중요한 일이요. 누님 글 잘 쓰시잖아. 누가 요청하는 걸 써서 방을 붙여주면 돈을 많이 준다니까요? 할거죠?”


안나는 이 어린 녀석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다. 맨날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리는 맹랑한 녀석이.


“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믿어?”


“네.”


“왜?”


“항상 그 자리에 계시니까.”


 


이후로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순록을 타고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방 붙이는 일거리를 주는 아저씨를 안나에게 소개해주었다. 궁에서 여왕직무를 보던 안나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글을 쓰는 일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애썼다. 낙서를 즐겨하는 안나를 보고 새로운 그림 일거리를 가져다 안겨주기도 했다. 점점 일은 늘어났지만 안나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순록치기를 하면서, 얼음장수일에 기타 소소한 일까지... 모든 일을 효율적이고 빠르게 처리해 나가는 똘똘한 크리스토프를 보며 안나는 설레는 마음을 느꼈다. 가슴이 벅찼다. 동시에 안나의 마음은 조바심의 물결이 일었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안 됐다. 빨리 끊고 본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느 날, 순록치기들에게 무척이나 심한 공격을 받고 크리스토프는 실의에 젖었다. 그가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그를 더 크게 비난한 것은 그가 항상 함께 일하던 동료 얼음장수 아저씨였다. 크리스토프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말문을 닫았다. 사람들의 호통과 욕지거리가 이어졌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이제까지 그리도 용감하게 비난에 맞섰던 이가 맞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웅성거릴 정도였다. 부모 없는 후레자식, 원래 천성이 저런 쓰레기, 폐급 인간... 수없는 욕설이 이어졌지만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구었다. 이제까지 크리스토프와 안나가 해왔던 ‘방 붙이는 일’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저런 녀석이 손대고 있는 한, 더 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을 거라는 호언장담도 이어졌다. 안나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곳을 지켜볼 뿐이었다.


깊은 밤,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있는 롯지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예상대로 작은 촛불이 일렁이는 어두컴컴한 방 한 구석에, 크리스토프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이런저런 위로는 필요 없었다. 안나는 가만히 그의 곁에 앉아, 있어주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그맣게 되놰는 작은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당장 내일 마을에 방을 붙이는 일에 크리스토프와 동행해야 할까, 안나는 걱정했다.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토프에게 욕을 하면? 밀치면? 혹시 돌이라도 던져... 다치면? 그런 크리스토프를 감싸 안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를 변장시키면 어떨까? 이 아이를 위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크리스토프, 내일부터 말투를 바꿔보면 어때? 다른 마을에서 새로운 아이를 데려왔다고 하면 어떨까? 어떻게 생각하니, 크리스토프?”


안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로 한참을 미동 없이 앉아있던 크리스토프가 얼굴을 살짝 들었다.


“다른 사람 흉내를 내라구요..?”


“그렇게 할 수 있어?”


난 네가 다치는 게 싫어, 크리스토프. 네 몸도, 네 마음도.


“나한테 다른 사람이 되라고 하지 마세요. 그런 선택지는 없어요.”


그는 단호했다.


생계가 모두 막혀버리면, 크리스토프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나는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지만, 더 어떤 방법을 강구해 볼 수 있을까.


“생각을 좀 해볼게...”


몸을 세워 일으키려는 안나는 옷자락이 팽팽해짐을 느꼈다. 크리스토프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버리지...말아주세요..”


안나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누군가 강하게 짓누르는 것처럼 압박감이 몰려왔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5. 젭토초


두 사람은 돌이 살아있는 계곡에서도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나란히 앉았다. 안나는 자신에게 기대오는, 어린 크리스토프의 무게감이 싫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인지, 안나의 심장이 뛰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둘의 마음은 요동쳤다. 크리스토프의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소리를 담으려고, 안나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크리스토프, 노래 불러줘.”


“싫어요.”


“아 노래 불러줘.”


“안돼요.”


“너 노래 잘 부르잖아.”


“제가요?”


“응.”


“제가 무슨. 말도 안돼요.”


“난 네 목소리가 좋은 걸.”


“네? 제 목소리가 좋다구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응, 그러니까..불러봐, 노래.”


“음.. 무슨 노랠 불러요?”


“우리 왕국에 대대로 내려오는...자장가.”


“All Is Found요?”


크리스토프는 낮은 음성으로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꽈악 붙들었다. 이 손을 놓치면 누구 하나가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못 만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크리스토프의 온기는, 안나의 온기는 서로의 손바닥을 타고 흘러 뜨거운 피가 고동치는 몸 안을 비집고 들어가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졌다. 열기, 마음속의 열기는 둘의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었다. 그 무엇도 문제될 게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뭇잎이 마주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사방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던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둥실 떠오르며 날아오는 것 같은 환상이다. 그들 주위에서 작은 물결이 일었다. 바짝 말라 누래졌던 이파리는 어느새 푸릇하고 싱싱하게 변했다. 풋풋하고 새로운 냄새를 내뿜으며, 나무의 조각들은 하늘위로 연달아 몸을 띄웠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가슴이 갑자기 물컹해져서 여기저기가 말랑거린다. 두 사람은 눈을 감았다. 푸르른 오로라가 둘을 어느 멋진 곳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다시없을 순간을 두 사람은 꼬옥 붙잡았다. 그러려고 애썼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기억을 결코 지우지 못했다. 그녀는 슬픈 기억 속 크리스토프를 지우는 대신, 그의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는 쪽을 택했다.


 


 


 


6. 지금


세상이 바뀌었다.


그녀를 감싼 모든 하늘과 땅과 벽이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크리스토프들로 가득 찼다. 안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이 부어 터져버릴 것처럼 울었다. 온몸의 모든 수분이 눈물로 변해 흘러내릴 것처럼 울었다. 그녀의 귀에 하나의 음성이 반복해서 웅웅댔다.


정말로, 모두 지우시겠습니까?


안나는 더 이상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응. 지울게.”


하얗고 푸른 세상 속에, 안나의 굵은 눈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를.”


가느다란 안나의 어깨가 들썩였다. 안나는 슬펐지만, 슬프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그녀를 흠뻑 적셨다. 발 끝에서부터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몰려왔다. 언젠가 그녀가 엘사 앞을 막아섰던 그 순간처럼, 그녀는 서서히 얼어가고 있다. 더 이상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발에서 종아리, 무릎으로 점점 더 빠르게 퍼지는 추위 속에서도 그녀는 크리스토프를 떠올렸다. 그의 품안에 따뜻함을, 다정한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안나


안나


안나


 


“네, 크리스토ㅍ...”


마지막 길고 더운 호흡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내 사방에는 어두운 정적만 내리깔렸다.  




viewimage.php?id=2bafdf3ce0dc&no=24b0d769e1d32ca73fec82fa11d028313f7ca0229f7ff0a914a049d5fe5a9e18ba5a916c47baba519eec0edfc02498aeff844a1cd4e2f58cc2ff6db96132e802d0d3


에필로그


“..으음...”

차가운 무언가가 툭, 크리스토프의 이마위에 내려앉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덮고 있던 모포를 목 끝까지 올리고 한껏 몸을 웅크렸다. 입에서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계절은 손이 얼어붙을 듯한 한겨울로 변해 있다. 

“...춥네.”

스벤은 크리스토프가 몸을 떠는 것을 느끼고 그를 옆구리를 더욱 깊이 내주었다. 분명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데. 마시멜로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구름 속을 헤쳐 신나게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꿈이었는데. 아주 달콤하고 근사한 꿈을. 그는 방금 전까지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꿈과 기분을 다시 떠올리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멍했다. 방금까지 잠을 자다 일어난 탓인지 한기가 더욱 그의 몸을 거세게 압박한다. 

‘난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거지?’

크리스토프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스벤의 옆구리에 몸을 기댔다. 스벤이 킁킁거리며 그의 냄새를 맡는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헛간 문 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슬금슬금 들어왔다. 내린 지 얼마 안 되는 눈가루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의 발자국소리에 맞춰 바닥을 쓴다. 


뭐, 됐어.


애써 기억해내려 하지 않아도 되는 꿈일 것이다. 그저 평범한 어느 날, 어느 밤 하루 잠을 자는 몇 시간 동안 기분이 좋았으면 되었다.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과 감각은 한동안 계속될 테니까. 


“자,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 볼까? 어제는 장사를 망쳤지만.”

크리스토프는 스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순록이 건초를 털어내고 몸을 푸르르, 턴다. 한동안 헛간 문을 두고 크리스토프와 눈보라가 정면으로 맞섰지만, 그는 결국 문을 열어냈다. 꽤 거친 음색과 함께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겨울 왕국. 온통 하얗디하얀 세상. 그의 눈앞에는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설국이 펼쳐졌다. 나쁘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 해, 아렌델은 새로운 여왕을 맞았다. 

엘사 아그나르스도티르. 아렌델 국왕의 외동 딸. 

아렌델의 성문은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달도, 다음 해도,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끝]




문학러님의 요청에 의해 총대 닉으로 올립니다.

중간에 실수가 있어 재차 올립니다.

작가의 말은 제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 비추천

23

고정닉 16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이슈 [디시人터뷰] 웃는 모습이 예쁜 누나, 아나운서 김나정 운영자 24/06/11 - -
5308901 예전에 친구가 그려준거 [9] 인간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189 16
5308880 얼어붙은 목소리 방송이 점점 발전해가는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21] frozenvoice202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713 31
5308806 여왕님 근본은 묶은머리다=개추 [17] vueli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359 46
5308399 220.77 신성모독 유동 [20] ㅇㅇ(115.137) 21.02.13 802 25
5308254 정령님의 시간 엘-시 [6] 퀸엘사오브아렌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127 16
5307902 낙서) 지난번 얼목 라디오드라마 듣고 그림 [10] Neogur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366 20
5307812 그림)가족사진 [13] ㅇㅇ(223.33) 21.02.12 393 29
5307781 엘사 드로잉 하나 했음 [25] YokoGall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481 36
5307715 겨울왕국 갤러리 일동은 앙졸라이트 복귀를 기원합니다. [12] ㅇㅇ(211.36) 21.02.12 688 30
5307699 그림) 이두나와 아그나르 첫만남 [11] 오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396 31
5307683 겨울왕국의 클라쓰에 대해 다시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25] 냉탕에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561 29
5307618 안시 [9] 꺼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34 17
5307564 [문학/초단편] 로미오와 줄리엣 [13] 프3존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302 18
5307471 그림) ? [16]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295 29
5307415 [그림]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11] PoytailPo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267 33
5307386 02월 12일 설날 엘-시! [10] 눈과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29 16
5307244 [6/21] 여왕님의 시간 안시 [9] 알리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04 16
5307205 두빌스 편곡 미디 완성! [8] ㅇㅇ(59.20) 21.02.12 145 16
5307046 엘——————시 [10]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32 16
5306947 요청짤) 쇼유쉛 옷 바뀌는 장면....? [16]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538 30
5306861 안나와 올라프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 [17]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415 29
5306835 [문학] 왕을 유혹하는 방법 4화 [14] 인간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358 21
5306834 프겜 만들어왔어... [12] FRO2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466 26
5306784 안-시 막트아아ㅏㅏ아아아아아ㅏ아아ㅏ아아아 [10]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08 16
5306713 (그림)하와와 아기 프붕이 그림 그렸어 봐줘! [12] 엘사나라안나공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394 34
5306527 엘——————시 [9]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33 16
5306465 정령여왕넨도뜸 ㅋㅋㅋㅋㅋ [52] 둘리고양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895 46
5306295 엘——————시 [8]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39 15
5306252 [이륙요청!] 제 296회 예술의 밤은 자유 주제입니다! [12] 예술의밤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95 26
5306249 술 엘사 아이컨택 [12]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49 32
5306200 [그림]아렌델 안나VS 서던 한스 [21] 안나병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19 34
5306135 [겨울문학대회/순수문학] 이중나선 [7] 심사불가(110.9) 21.02.10 322 18
5306131 엊그제한 낙서나봐라 [7] 위즐타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51 15
[겨문대회/순수문학]잊혀져도 좋을 [11] 겨울문학대회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429 23
5306001 안-시 막트아ㅏ아ㅏ아ㅏ아아ㅏ아아아ㅏ아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26 16
5305930 새해 인사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대장 올림. [28] 홍메박_홍대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49 58
5305778 낙서) 데굴데굴 [8]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06 20
5305741 엘-시 막트아아아아ㅏㅏ아아아아아ㅏ아아ㅏ아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00 15
5305538 념글 저분이 할소리임? [19] Frozen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818 37
5305494 업스케일로 새로만든짤 [11]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499 24
5305462 연필로 안나 그리기 [8]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65 22
5305445 엘——————시 [11]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38 15
5305366 설갤하는 애를 받아주니까 망갤화가 빨라지지ㅋㅋ [28] 호랑사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892 30
5305159 [얼어붙은 목소리]10방 커버곡 두 곡 공개 [11] frozenvoice202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253 22
5305088 여왕님의 시간 안ㅡ시 [12] 안나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46 15
5304854 엘-시 막트아아ㅏ아ㅏ아아아ㅏㅏ아아아ㅏ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30 15
5304770 Frozen3 얘는 진짜 역겨운듯 [9] ㅇㅇ(223.62) 21.02.09 517 31
5304766 그림#35) 불의 정령을 만나다 外 동글이 그림 [12] 눈과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333 29
5304480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있을까? [38] 대깨엘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085 50
5304456 그림) 엘커벨 [20] 엘겅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455 5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