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송은 자기를 접대하는 이덕형에게 매료되었어.   남자가 남자에게 반한다는 게 이런 경우지.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여송은 이덕형이 조선 팔도에서 제일 잘났으니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난처한건 조정대신들에게도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거지.   결국 선조 귀에도 이 말이 들어갔대.   

이 정도면 이덕형이 역모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이항복은 고심하다가 선조와 측근들이 함께하는 술자리를 만들었어.

그리고는 임제 이야기를 꺼냈어.   임제는 죽을 때 천하 모든 나라가 천자를 칭하는데 조선만 칭제를 못한다고 한탄한 사람이야.   

조선처럼 칭제도 못하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죽어도 애석할 것도 없고 곡도 하지 말라고 했어.

임제는 늘 자기가 오대육조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윤체천자쯤은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어.   

윤체천자는 여러나라에 순서에 의해서 천자자리가 돌아온다는 의미.   오대육조시대는 중원을 차지하는 나라가 계속 바뀌는 시대니까.

임제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다 웃었대.   이항복이 임제이야기를 하자 선조도 웃었어.

이항복은 때를 놓치지 않고 요즘에도 그런 웃기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선조가 누구냐고 하자 이덕형이라 했어.

자기가 볼 때는 크게 잘난 것도 없는데 임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니니 웃기는 사람이란거지. 

이항복이 대놓고 이덕형을 비웃자 선조도 크게 웃었대.   역모로 비화될 사건이 그냥 웃기는 사건으로 변해버린거지.

이런 일은 이항복 아니면 누구도 못하는 일.   어째든 명나라 사람들이 볼 때 조선에서는 이덕형이 제일 잘났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