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남자는 멍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귀찮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어디 특임 이벤 대신 돌려줄 여중생 없나.."

"팀 왈츠! 스타트 유어 엔진!"

"팀 왈츠! 스타트 유어 엔진!"

"팀 왈츠! 스타트 유어 엔진!"

4군에 들어있는 2성 조이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린다.   

스킵. 스킵. 스킵. 스킵. 스킵. 

볼 것도 없다. 특임 이벤따위, 이미 다 S승으로 보스방까지 통과하도록 덱을 세팅해뒀으니까. 

A승이 뜰 일도 없다, 피격으로 피로도가 닳아 낙오하는 경우도 없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똑같은 덱으로 똑같은 스테이지를 깬다.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작업. 이젠 눈 감고도 스킵버튼을 정확하게 누를 수 있을 정도다. 이미 게임이라는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게임이라기보단 단순 노무에 가까운 행동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젠 누워서 특임이벤을 돌리고 있으면 잠부터 쏟아진다. 

"아.. 어디 특임 이벤 대신 돌려줄 여중생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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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남자가 눈을 뜬 건 새벽 한밤중이었다. 새벽 세시, 아니면 네시쯤 되었을까. 

또 누워서 특임 이벤을 돌리다가 잠이 쏟아져서 방에 불을 켠 채로 잠들고 말았다. 

"아.. 몇시야 대체.."

귀찮아졌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이불 어딘가에 파뭍혀있을 핸드폰을 찾는다. 

말랑.

생각지도 못한 말랑말랑한 감촉. 깜짝놀라 이불을 홱 들어올린다. 

"......????"

"대체 이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붉은색 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거기에 누워서 잠에 빠져있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거야?

어깨까지 내려오는 연갈색 머리. 아직 젖살도 안 빠진 말랑말랑한 볼. 155쯤 되어보이는 키와 제복 밑으로 내려오는 하얀색 주름치마.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딘가 낯이 익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렌타인 8 경전차!!!

그랬다. 그녀는 자신의 5군 소대에 들어있는 발렌타인 8 경전차, 클라리 주디스였다. 

"저기, 저기요!"

"서어짓! 오늘 당번은 네가 하기로 했잖아~ 하아.."

남자는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흔들어 깨웠지만 그녀는 베개를 뒤집어 쓴 채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어갔다. 

"헤엑!"

"......"

그리고 뭔가 잘못됐는걸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나앉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대, 대체 누구야.. 여긴 어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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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갑자기 게임속에서 현실로 똑 떨어진 그녀를 이해시키는 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래저래 설명을 하려 진땀을 뺐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1950년대 사람이 갑자기 60년 뒤로 똑 떨어지면 이해를 못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고맙긴한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강철의 왈츠? 쇳덩어리가 춤을 춘다구?"

"하...."

"게임이라는건 또 뭐고? 체스나 오셀로 말하는거야?"

나는 머리를 짚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방법이 떠올랐다는 듯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혹시 헌터스가 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봐봐, 난 헌터스 소속 소대장이야."

"....!"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대사였지만, 그것과 정 반대로 클라리 주디스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서짓이랑 데니스 언니.. 어떻게 이자벨 교관님까지?!"

"허, 헌터스라면 그, 천재들만 간다는 그, 무슨 용병단체..아, 아니었나요?"

그리고 동그랗게 변한 토끼눈으로 내 쪽을 바라본다. 어딘지 모르게 덜덜 떨면서 갑자기 존댓말쓰더니 날 보는 시선이 180도 바뀌어있었다. 

"어, 어떻게 샌드허스트 학생들이 다 여기에.."

"말이 짧은데."

"이, 있는 건가요?"

클라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꼭 감은 채 곧 떨어질 불호령을 들을 생각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뭐, 됐어. 자 이거 봐봐."

나는 클라리에게 내 1군 소대와 1군 소대의 특임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프룬제 군사학교의 사라 교관.. 저건 여해적 리사 헌트잖아요! 롬멜 장군의 딸 넬리 롬멜까지.."

그녀는 실신할 기세로 작은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2도면 경전차인 클라리 입장에서 6도면 전차들이 우르르 몰려있는게 놀라운 일이긴 하겠지.

"어. 리사는 근데 지금 백수야. 휴게소에서 일시키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대단한 사람이 저랑 같이 같은 침실에... 핫!"

그녀는 말을 하다가 무언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홍당무로 변해버렸다. 

"그, 헛.. 저도 그.. 그런게 있다고 얘긴 듣긴 했는데, 사실 좀, 그..  음.. 마음의 준비가.. 어 음.. 거부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요.. 그게..흡..."

갑작스럽게 놓인 현실에 놀란듯 진땀을 뻘뻘 흘리며 횡설수설하다 눈시울이 점점 붉어진다. 

젖살도 안 빠진 동그란 볼을 콕 찌르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런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그러면요?"

클라리의 눈은 아직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할 일은 나 대신 특임 이벤을 돌리는거야."

"네?"

"소대장 권한대행으로서 말이지."

"지, 진짜요?"

********************************

"헤헤헤..."

그녀는 내 방에서 하루종일 내 핸드폰을 붙잡고 계속 무언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헤헤.. 이자벨 교관님 이번 임무에는 출전하셔야하지 말입니다. 탄은 살상 헤쉬로 해 드릴게요. 흥! 아냐, 특별히 인심써서 이번엔 다기능 헤쉬로 드리죠."

"....."

"흐흐.. 나한테 맨날 잔소리 하는 오필리아 언니는 군용프라이나 만들게 휴게소나 보내버려야지! 시간은 22시간!"

"데니스 언니한테는 스킬을 줬다 뺐어야겠다! 그러면 땍땍거릴 힘도 없어지겠지?"

"......"

"클라리 밥먹어."

"네에~"

"진짜 열심히하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진짜진짜 재밌어요! 이따 보리소바 언니 데리고 마지막 임무 갔다오면 오늘치 특임이벤 끝나요!"

"아직 두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다 끝낸거야?"

"네!"

"아이구 잘했네."

"헤헤헤.."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클라리는 기분좋다는 듯 실실 웃기 시작했다. 

"나 잠깐 낮잠좀 잘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넵!"

어설픈 거수경례를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온다. 샌드허스트에서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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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에 내가 잠에서 깼을 때에도 그녀는 핸드폰에 코를 박을 기세로 뭘 자꾸 만지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게임을 열심히 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스킵도 하지 않고 저 지겨운 전투를 일일이 볼 줄이야. 

"이거봐요 저 소대장님 자는동안 매 두개 땄어요!"

어느새 내 매의 갯수는 64개가 되어있었다. 이제 5도면 9스킬까지 찍을 수 있다. 

"아이구 잘했네. 잘했어."

"헤헤.."

나는 한 손으로 다시 클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엇...어어.."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의 감각이 옅어진다. 그녀가 반투명하게 변해가더니 점점 희미해져간다. 

그러더니 클라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방바닥에 내 핸드폰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클라리!"

나는 허둥지둥 내 폰을 잡아들었다. 1군.. 2군.. 전부 그대로였다. 

"뭐야.."

"그냥 꿈.. 이었던 건가.."

"하, 하하...."

그냥 웃음만 나왔다. 그럼 그렇지. 땅무스가 게임 밖으로 튀어나와서 특임 이벤을 돌려주다니. 

맨날 갤질만 하니까, 이런 개꿈을 꾸는 날도 오는거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그리고 난 다시 게임을 켜고 반신반의하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64매? 진짜 매 두개를 딴거였잖아?"

그럴리가. 분명 난 62매에서 포기한 뒤로 따로 기습에 도전한 적은 없었다. 

진짜로 클라리가 있었단 말야?

나는 허겁지겁 상태창을 닫고 전차소녀 목록을 확인한다. 

발렌타인 8.. 발렌타인 8.... 대체...

"하.."

"하하하하...."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발렌타인 8은 가장 첫 페이지에 있었다. 

"하하..."

"어디 나 대신 특임 이벤 대신 돌려줄 여중생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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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갤문학단편) 아.. 어디 특임 이벤 대신 돌려줄 여중생 없나..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