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어디까지 가세요?'

'아.. 어휴... (털썩).. 하.. 그 기사님 헉..헉.. 어 그 xx동 xx아파트로 가주세요'

'xx아파트~ 알겠습니다~'

거의 반 정신 잃은 여자는.. 아무리 여자라 해도 업히는 기술이 없는 시체나 마찬가지여서

그리 멀지않은 도로변까지 윤서를 업고나왔을 뿐인데도 생각보다 많이 힘이 들었다.

우여곡절끝에 그렇게 택시를잡고,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씀드리고 나니

다시 새록새록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

막상 도착해서는 어쩌나

내가 얘를 업고.. 집까지 찾아가는게 맞는건가

아니면 집앞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게 맞는건가

집앞에서 얘를 필사적으로 깨워놓고 벨누르고 도망을칠까??

아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찌질하고

모르겠다.. 어찌해야하나

그러던 와중에 택시아저씨가 말을 건네셨다.

'학생 여자친구가 많이 취했네요~'

'아... 아네...(기분좋음)어쩌다보니.. 그렇게 됬습니다 ^^;;'

'그래도 좋은 남자친구 뒀네.. 집에도 바래다 주고.. 요즘 학생 답지않게 착실하구 올바른학생 같아요 허허.. 나도 딸애가 하나있는데 참..'

'아유 아닙니다.. 제가 무슨...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하하..;;'

'허허 학생이 참.. 벌써부터 겸손이 몸에 베었구만.. 학교도 좋은데 다니고 공부도 잘하게 생겼고 ㅎㅎ 우리 딸애 남자친구도 학생같았으면 마음이 참 놓일텐데'

'아이구.. 아닙니다.. 호부아래에 견자없다고 기사님만 뵈어도 따님분이 어떨지 상상이 가네요.. 분명 따님분은 저보다 훨씬 좋은분 만나실겁니다'  

..................

조금전까지의 불안감과 죄책감은 다 어디로 가고

뭐이런식의 덕담을 자연스레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윤서네 아파트에 도착해버렸다.

그렇게 반시체가 되어버린 윤서를 기사님 도움끝에 다시 업어서 윤서가 살고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하.. 정말로 20층 남짓한 그 아파트가 어찌나 커보이던지

중딩때 수학여행가서 보았던 눈덮인 한라산보다 더 크게 느껴졌고,

그렇게 내 감정하고는 아무런 관계없이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기 시작.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윤서네 아파트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떼어내다 보니

결국 엘레베이터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윤서의 엉덩이가

긴장감과 초조함속에 서서히 묻어 없어지고

어느새 손바닥에는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게되었음.

오로지 내 눈과 신경은 한층 한층 윤서의 집으로 다가가는 엘레베이터 중앙 점멸등에 표기된 주황색 숫자쪼가리에만 집중...

그 억겁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간뒤 결국 나는 정말로 오고싶지 않았지만(이런식으로는..) 와야만 했고, 올수밖에 없었던 그자리에 도착해버리고 말았음.

'띵동. 17층입니다'

드르르르르르륵~

'하아...'

문열리고 내리는데 제일먼저 나온건 한숨

그렇게 축늘어진 윤서를 업은채로

내가 얼마의 시간을 그 집앞에서 서성이고 고민했는지

그때의 그 감정이 얼마나 지독하게 고독했었는지

얼마나 심하게 외로웠는지

비루한 단어 몇마디로는..

도저히 나 말고 다른사람에게는 전할 수 없는.. 그런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긴 고민끝에 벨을 누르고말았던 그 찰나의 시간은

너무나 잔인하게도 나를 더이상 기다려주지 않았음.

'♬♬♬~~~♬♬♬♬~~~~털컥. 누구세요?'

'아.. 저 윤서.. 윤서가 많이 취했습니다.'

'......'

'윤서 친구입니다. 윤서가 술에 많이 취해서...'

벌컥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윤서에게 아무것도 아닌 남자인 상태로

윤서의 어머님과 아버님의 험악한 표정을 마주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나의편이 되어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내 등뒤에서 세상모르게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