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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보라 망상 - 나의 크리스마스를 당신에게5.txt

선보라소심쟁이(165.132) 2016.12.04 21:58:30
조회 3013 추천 71 댓글 18

이제야 계절에 맞는 망상을 찌네ㅋㅋㅋㅋㅋㅋㅋㅋ






-


2002년 12월 24일 화요일. 평일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인데도 303호에 웬일로 사람의 기척이 있었다.


"바로 출발할 거야?"


"응."


안방에서 큰 백팩을 들고 나오며 선우가 대답했다. 오늘은 세 가족의 첫 겨울 여행 날이었다.


여유있던 걸음 걸이가 싱크대 앞에 선 보라의 모습을 본 후 다급해졌다. 식탁 근처에 아무렇게나 가방을 내려둔 선우가 어느새 보라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가 할게. 가서 재우 올 때까지 쉬고 있어. 응?"


고무장갑을 끼고 이제 막 물을 틀었을 뿐인데, 뭘 했다고 쉬고 있으라는 건지. 하지만 8년간 익숙해진 탓인지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며 보라가 그저 뒤로 물러섰다.


"너 어제도 밤 새고 왔으면서..."


어느덧 9년차 검사가 된 보라와는 달리, 그간 선우는 인턴을 거치고 레지던트를 거쳐 아직 전문의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연락하기 쉬운 연차의 선배인 덕분에 선우는 요즘도 가끔 주말에 병원에 가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절대로 안 된다며 못 박아 뒀으니 불려갈 일은 없겠지.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린 선우가 여전히 뒤에서 서성이는 보라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그럼 나 뽀뽀."


"뭐가 그럼이야."


"지금 좀 짠한 거 아니었어?"


딱 뽀뽀 받기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덧붙이는 선우의 뒤통수를 슬쩍 노려본 보라. 하지만 그릇까지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는 그의 웃는 얼굴에는 불가항력이었다. 보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못 이기는 척 그의 뺨에 입맞췄다.


"입술에도."


"치..."


"아이, 빨리."


눈을 흘기면서도 보라의 입술이 선우의 입술에 쪽, 하고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것도 아쉬워 선우가 급하게 다시 보라의 입술을 찾았다.


띵동띵동띵동띵동!


화들짝 놀란 둘이 떨어졌다. 이렇게 거칠게 벨을 누를 사람이 없는데...?


"아...! 재우...!"


보라가 서둘러 부엌을 빠져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코와 볼이 새빨개진 채 쌕썍 거리는 숨을 내뱉고 있는 재우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아유, 우리 재우 추웠지이. 엄마가 미안."


보라가 재우를 안으로 들이고서는 단단히 삐진 아이를 꼭 안아줬다. 하지만 재우는 조금 더 심각하게 삐진 듯했다.


"칫. 아빠 와있찌?"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찍찍이를 뗀 재우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재우가 세 번이나 눌러딴 말이야, 띵동띵동."


아무래도 둘 다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여섯 살 난 아들이 초인종 누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진짜 미안. 응? 우리 아들 미안."


무릎을 굽힌 보라가 재우와 눈높이를 맞춘 채 사과하자 아이의 입술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숱 많은 속눈썹이 깜빡깜빡 내려앉았다가 말았다를 반복했다. 이내 재우가 휙 뒤돌았다. 적잖이 당황한 보라가 뭐라고 하려는 찰나, 재우가 아까 벗어던진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다시 돌아섰다.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이 꼼지락꼼지락 하더니 이내 재우의 입에서 나도 미아내요,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아빠도 미안."


어느새 고무장갑을 벗어던진 선우도 재우를 안아올리며 사과했다.


"재우한테 미아내?"


"응. 아빠도 우리 재우 초인종 소리 못 들었잖아. 아빠도 미안."


보드라운 재우의 볼에 제 볼을 비비며 선우가 말했다. 오른쪽 볼이 짜부러진 채 재우가 선우를 불렀다.


"아빠."


"응."


"그럼 인젠 엄마한테 뽀뽀하지 마."











재우의 당당한 요구에는 그 직후 시작된 선우의 간곡한 청에 의해 '오늘만'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운전석에 앉은 선우가 백미러로 뒷좌석에 탄 재우를 보며 말했다.


"안 돼, 진짜 안 돼, 재우야."


"이게 그로케 어려운 부타기야?"


여섯 살 난 아들의 말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던 보라가 콜록콜록, 사레가 들렸다. 쟤 진짜 누구 아들이라 저렇게 말을 잘 하니.


"보라야, 여기."


선우가 금세 보라의 손에 휴지를 쥐어주었다. 선수를 뺐겨 또 골이 난 재우가 다시 풀썩, 뒷좌석으로 몸을 눕히며(키가 작아서 눕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말했다.


"아무튼 안 대. 취소 안해."


단호하게 취소, 라는 표현을 쓰는 여섯 살 아들과 그 말에 또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서른 넷의 아빠라니. 여기서 제일 성가시지만 행복한 사실은 저 둘이 내 아들이고 남편이라는 거겠지. 보라가 재우의 선언을 가볍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재우의 이유 있는 심술은 계속됐다. 그렇다고 해서 보라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내가! 내가 해 줄거야!"


강원도에 도착해서 이르지만 저녁을 먼저 먹으려 들어온 식당에서 선우가 평소처럼 휴지 세장을 뽑으려 할 때였다. 재우가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아빠의 손을 저지했다. 비록 두 손으로 잡아 모양새가 멋짐보다는 귀여움에 가까웠지만.


"내가 할 거야아."


언제 또 어깨너머로 본 건지, 재우는 선우가 하던대로 휴지 한 장 씩을 사람 앞마다 깔고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야무지게도 올려놓았다. 물론 키가 작아 선우에게 수저를 세팅해 줄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우리 재우가 엄마 해준 거야? 고마워."


이런 행동에는 칭찬해줘야 할 것 같아 보라가 재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볍게 엉덩이를 두들겼다.


"나도 할 수 이써."


식당에 말해서 작은 숟가락을 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큰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며 재우가 말했다. 아직 큰 젓가락은 못 써서 포크를 쓰는 재우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보라는 그런 재우가 귀여워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재우의 '내가 할 거야'는 끊이지 않았다. 재우는 엄마 아빠에게 인스턴트 커피를 뽑아 줄 거라며 짧은 다리로 종종 거리며 다니기도 했고, 차갑게 언 보라의 손에 호- 입김을 불어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재우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은가봐."


펜션에 도착해 재우가 손을 씻으러 들어가자 선우가 풀죽은 목소리로 보라를 안으며 말했다.


"뭐?"


"아까 아빠 커피는 아빠가 가져가라는 거 들었어? 그리구 내 손엔 호- 안 해줬어 재우."


심각한 얼굴로 하는 소리가 어이 없어, 보라가 푸스스 웃었다.


"나 진짜 진지해애."


보라가 그런 거 아니라며 선우를 위로하려는 찰나, 재우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엄마, 나 오늘도 9시에 자야 대?"


"당연하지."


"나도 엄마아빠처럼 늦게 자면 안대?"


꽤 간절한 눈빛에 오늘 하루만 그렇게 해줄까 싶었지만 곧 보라는 고개를 저었다. 통통한 볼을 톡톡 치며 보라가 못박았다.


"약속했잖아, 올해까지는 9시에 자겠다고. 내년 되면 9시 10분으로 늦춰줄게."


잉, 하던 재우가 이내 제 몸만한 가방을 질질 끌고 탁자로 갔다.


"나 일기 써야 대."


"일기?"


"응. 숙제야."


보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누가 성선우 아들 아니랄까봐, 여행 와서도 숙제하는 성재우라니. 쿡쿡 웃으며 보라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재우 자?"


보라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선우가 언제 씻고 잠들었는지 모를 재우를 안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아직 8시 반도 안 됐는데,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지. 보라가 입을 꾹 다물며 웃었다.


"응. 좀 전에 나랑 같이 씻었어."


2층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 씻은 모양이었다. 머리를 탈탈 털며 부자에게 가까이 온 보라가 선우에게 먼저 입맞췄다.


"안대!"


조금 길게 입술을 맞닿고 있던 선우와 보라가 깜짝 놀라 떨어졌다.


"뽀뽀....안대...."


그러나 놀란 게 무색할 정도로 재우는 다시 스르륵 선우의 넓은 어깨로 고개를 떨궜다. 쪼그만 게, 뽀뽀하는 건 어떻게 알았나 싶어 어이 없어진 선우와 보라.


"엄마, 나 방에."


잔뜩 졸린 목소리로 재우가 말하자 선우가 작은 방으로 몸을 틀었다.


"아아아, 엄마가."


그러나 재우가 발을 버둥거리며 보라를 찾는 바람에 다시 서운한 얼굴이 된 선우. 입 모양으로 내가 눕히고 나올게, 말한 보라가 선우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여보, 기뻐해도 좋아."


작은 방의 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온 보라가 선우 옆에 누우며 말했다.


"뭐가?"


"열두시 지나면 재우가 뽀뽀해도 된대."


난 또 뭐라고. 선우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까 재우가-"


재우가 잠자리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려는데, 그런 보라의 입술로 선우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제법 진득하게 붙어오는 선우에 밀려 보라가 침대 헤드로 바짝 붙었다.


"아직 열두시 안 지났는데."


장난스럽게 보라가 말하자 선우가 마주 웃으며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음....이건 뽀뽀가 아니니까?"


"어우, 야!"


능글맞은 말을 얼굴 빛 하나 안 변하고 말하는 선우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때린 보라가 작은 방의 문을 살폈다. 혹시라도 애 자다 깨서 들으면 어쩌려고, 진짜.


"재우 잠들면 한 번도 안 깨. 너 닮아서."


치켜올라간 보라의 눈꼬리를 엄지로 쓸며 선우가 속삭였다.


"응?"


그 눈빛에 못이겨 결국 안방의 문이 닫혔다. 그래,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도 당신에게.









+)


"엄마, 아빠 재우한테 삐져써?"


"응?"


"재우가 오늘 뽀뽀 못하게 했자나..."


잠자리에 눕혀 놓자 재우가 보라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러려고 나보고 눕혀달라고 했구나, 보라가 속으로 웃었다. 아들이나 아빠나 귀여워 하여튼.


"재우는 아빠가 되 꺼야."


"응?"


무슨 말이야, 이게.


"아빠가 그러는데, 투명인간은 망막도 투명이라 앞을 못 봐서 살 수가 없대."


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한 보라.


"그래서 아빠는 투명인간이가 되면 엄마를 못 보니까 못 살 거라고 해써."


화르륵, 보라의 얼굴이 불타올랐다.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정말.


"근데 재우도 앞이 안 보이는 거는 시러. 그래서 일기에 그렇게 썼어."


아, 일기 주제였구나.


"아빠는....똑똑해..."


잠이 가득한 눈망울을 한 재우의 뺨에 짧게 입맞춘 보라가 머리를 두어 번 쓸어내렸다. 글쎄, 벌써 똑 닮은 거 같은데? 하는 말은 꾹 삼킨 채.






-

어쩐지 선보라 지분이 적은 것 같다면 그것은 착각(먼산)ㅋㅋㅋㅋㅋ


암튼 아빠처럼 되고 싶어 하루 종일 '내가 할 거야'를 외치다 피곤해서 평소보다 일찍 잠든 재우 넘 예쁘고ㅠㅠ


보라한테 뽀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아들이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서운한 선우 넘 귀엽고ㅠㅠㅠㅠ


한 번 사는 인생 성보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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