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괴로운 생각 말고도 문득!!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런 구절이 머리속에 용케도 떠오르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너한테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 이반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 생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언젠가 나는 어떤 책에서 <자비로운 요한>이라는 성인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어떤 굶주린 나그네가 얼어죽게 되어 그를 찾아와서 몸을 녹이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이 성인은
그 나그네와 함께 침대로 들어가 누워서 그를 꼭 껴안고 어떤 무서운 병으로 썩어 문드러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그의 입에다 입김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러나 이 성인이 그런 짓을 한 것은 일시적인 발작적 감격, 즉 허위적인 감격 때문이며,
자기에게 부과된 고행으로서 의무가 명한 사랑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해.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상대방이 숨어 있어야만 할 필요가 있어.
그 인간이 조금이라도 얼굴을 드러냈다가는
사랑 같은 건 당장 날아가 버리고 마는 법이야.\'
\'.........추상적인 경우라면 가까운 인간을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소설 구절이 용케도 제 머리속에 떠오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을때는 추상적으로 인간을 사랑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가까운 비참에 빠진 사람들한테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없었던 거지.
허위적인 감격! 이 말이외에 내 머리속을 진동시킨 현실과 이상사이의 분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아.. 너무 괴로워..\'
\'마치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도 나온 말처럼
내가 지탱하고 있는 마룻바닥이 슬쩍 어딘가로 빠져 나가 허공에 붕 뜬 느낌이잖아..\'
하지만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전집 가운데 몇장을 빼서 음악을 은근히
즐겨 들었습니다.
처음의 괴로운 생각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가셔지고 말았죠..
이런 감정이 가셔진 가장 큰 이유는 \'대체 누가 이런 내 마음속을 알랴?\'
\'그건 잘못됐다, 크게 잘못됐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제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죠.
저를 비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그런 감정을 스스로
감추고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이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악과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했죠.
\'그래 나도 한번 다른 사람들처럼 보스나 인티머스 같은 비싼 스피커를 사볼까?
아니면 돈 더 모아서 하이파이 오디오로 가?
베토벤의 교향곡 같은 걸 오디오로 내뿜는 웅장한 소리로 들어볼까?\'
이런 생각 뒤에 바로 그 순간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제 머리속을 휘젓더군요.
\'베토벤의 교향곡을 웅장한 소리로 들어서 어쩔려고?
그러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 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가셔지기나 하나?
그런 비싼 스피커나 오디오 살돈으로 차라리 베토벤의 음악이 이상으로 한 것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낫지 않을까?\'
\'에이.. 병X.. 몇십만원짜리 비싼 스피커나 오디오 살 생각이나 쳐하고..\'
\'하하하.. 바X같으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처럼 금전적인 여유도 그리 많지도 않으면서..\'
이런 식으로 저를 끊임 없이 비웃기도 했죠..
\'베토벤은 나한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무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와 부자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커다란 구렁보다도 더 멀리..\'
혹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왜 너 자신의 예를 드냐? 그렇게 괴로우면 자신을 속이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을 비난하지.. 너 자신에 대해서는 감추고.. 안그래? 인터넷 공간이란 데가
다 그렇지 뭐.. 자신을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난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정녕 없겠지만 전 도저히 부시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감히 들추어 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워낙에 저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서 그런지 저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도 벅차거든요.
끊임 없이 베토벤의 음악과 구걸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일더군요.
\'베토벤의 음악을.. 들어 말어? 들어 말어? 들어 말어? 들어 말어? 들어 말어?\'
이렇게 말이죠.
예전처럼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을때의 감흥같은 것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비참한 감정만 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건 정말 운명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데 문득, 웬지 모르게
그 유명하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책을 샀는데 사기 전에 이 책의 내용의 한 부분이 제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
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 십칠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셀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못했고…… 남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 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217)
그리고 베토벤의 전집을 산 후에 슈베르트의 전집, 쇼팽의 전집, 모짜르트의
전집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그런 전집을 사서 뭘 들을려고? 어차피 그런 걸 사도 베토벤 전집을 사고
난 후처럼 비참한 감정만 들뿐이지
여전히 현실에 있어 어떤 괴로움을 상쇄할 수 있는 길은 없다니깐..\'
지금 이 말을 함으로써 슈베르트, 쇼팽, 모짜르트의 전집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이런 말을 한 이상 그런 전집을 사서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죠..
이젠 음악 듣는 것 뿐만 아니라 제 취미인 피아노도 당분간 그만 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은 \'선\'이라고 믿었는데 현실에서 남을 돕는 선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추상적으로만 선에 빠지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제 괴로움에 대한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선의의 행동을 취하자. 최소한 내가 베토벤의 전집을 산
금전적인 여유에 상응하는 그 어떤 노력이라도 취하자.
왜 베토벤의 전집을 살때는 기쁨을 느꼈으면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적선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는
그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할꺼라고 안태정 너는 생각하고 있는 거냐?\'
현실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직 실천되지 않은 문제이니 말씀은 못드리겠고
실천한 후에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죠..
전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된거죠..
지금까지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 말했는데 현실에서
어떤 실천을 안한다면 전처럼 \'대체 누가 내 마음속을 알랴?\'
라고 하면서 저 자신을 감추는 일도 이젠 못하게 된거죠.
그리고 이젠 베토벤의 그 훌륭한 음악을 듣고 예전처럼 그 어떤 감동을
느끼거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기회는 현재로선 거의, 아니 완전히 없는 셈이죠..
대체 언제쯤 과거처럼 베토벤의 음악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
그건 아마 먼 미래쯤 알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죠..?(베토벤이건 바흐건 모짜르트건
슈베르트건 이제 이런 고전 음악을 듣는 건
현실에서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난 뒤에나 겨우 들을 수 있을지도..
음악이 단순히 청각적인 유희가 아닌 이상에야..)
그럼 다음번 얘기에는 잠시 미뤄두었던 \'밑바닥 논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기로 하고,
그와 더불어 \'카프카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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