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이 선재한테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요청했던 베.토벤 열.정 소나타.
본방 때였나 한참 18세기 낭만주의. 낭만적 주체에 대해 이바구 떨었던 기억이 나.
그 때 하려다 말았던 얘기들.
바르트는 불.란.서 주체 ㅋ 라고 명명하면서 질투하는 주체를 세워두고 이 것과 전혀 다른
독일스러운 주체를 종종 소환해서 열정. 주체 LeidenSchaft라고 불렀어.
사실 열,정 - 라.이.덴 - passion은 고통,수난을 의미하는데
이걸 샤프트schaft 한다는 건 고통을 업으로 하는 者인 거지.
질투하는 주체는 사랑을 어딘가에 정박시켜 소유하는 무엇이라고 여기지만
열.정 주체는 도착할 수 없고 다만, 자꾸 누설되고 넘쳐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어 계속 흘러 가.
사랑할 수록 붉은 피가 터져 나와. 방혈..
일 년이 될지 십 년(평생)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한번 살아는 봐야죠.
다 역사고 과정이죠.
단정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마음.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졌던 선재는
열정소나타로 혜원을 뻑이 가게 만들었지.
드라마가 정교하다 못해 엄정하다는 느낌까지 드는 거.
제 방 창문이 작게 느껴져요.
사랑하는 사람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데....
신부를 딴 놈 방에 떨구고 온 것 같아.
무력한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어떨 수 없이 우겨 넣는 한숟갈의 밥.
눈물에 밥 말아 먹으며 그런 자신을 바라 본다.
그리고 곧, 그 약함을 긍정해버려.
세상에서 약함은 퇴치해야 할 어떤 단계이고, 이걸 고수하는 자는 순진하고 약해빠진 루져 낙인을 박고 사는 건데 말이지.
열정주체. 즉 고통을 업으로 하는 자는 고통을 속이며까지 순진성을 배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배우 유아인이, 선재는 차라리 천사에 가까웠다고 했지만
난 선재라는 아이의 신비감은 탈코드적인 무엇에서 나왔다고 봐.
부정의 상대적 가치로서의 긍정이 아니라 사랑을 신화화 시키지 않았던 사랑 그 자체.
선재의 독창성이라는 것도
배우 유아인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것도
우리가 보는 그 오리지널리티라는 건 사실 본질적이고 고유한 속성이 아닐테니까.
독창성이라는 건 문화 생산품, 혹은 이데올로기 산물에 불과한 거니까.
선재의 탈을 쓴 유아인의 이미지에서 천사를 본 건 매우 자연스럽지만
난 외려 배우 유아인- 엄홍식이 강조하는 ' 폐허를 보는 자', '주변부성'marginality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낯선 긴장, 설렘을 받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 들을 사람 없는 언어와 이미지의 폐허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 귀를 기울이는 사람.
언어는 시니피앙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데 이걸 붙잡고 끝없이 수다 떠는 새로운 관종.
언어 이래로 계속 이어져 왔던 이 고루한 주체는
시대 감각에 뒤떨어진 18세기 낭만주의를 넘어 새로운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되려는 야심이 있지.
엄홍식은 야심가야. 이런 넘을 본 적이 없다. 자슥.
선재와 유아인이 겹쳐서 왔다갔다 하는데 지금. ㅋ
선재는 낭만적 열정의 주체. 슈만적이고 슈베르트적인 낭만의 끝판왕이였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낭만의 원칙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긍정 없이는 안되는 거잖아.
순진성과 운명을 긍정하기 위해 윤리를 거부했던 선혜가 고루한 주체 같지만 전복적이라는 것도 새삼
이 드라마가 얼마나 선동적이였는지 말야.
쟤, 너무 낭만적이야. 했던 방원이 까지 상플하기 시작하면 끝이 안나.
정박하지 않고, 분산된 채로 방혈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던 방원이
배우 유아인은 낭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막 던졌을까 아니면 의도했을까.
결론은 엄홍식의 뇌를 파보고 싶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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