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솔직히 가게 물려받기 싫은 것 같아.
「엘리멘탈」. 픽사 영화로서는 또 오랜만에 사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두줄요약하면 이렇다.
이걸 찍는데
배경이 여기임. 구라아님
남주 여주가 만나 사랑에 빠지며 같이 도시에 등불도 띄우고 마지막엔 여주가 마법 주문을 외워서 죽은 남주를 살리는데, 버럭이도 있고 슬픔이도 있고 핑크색 커다란 친구는 몸이 솜사탕인데 주인공들을 도와주고 마지막엔 두 주인공이 섞이는 것도 사실 가능했다는 게 밝혀지는 영화다.
이게 「라푼젤아웃」 아니면 뭔데
게다가 뜬구름 씬도 다시 나온다. 이정도면 빼박이지
이번 작은 「루카」에서처럼 차별과 그 해소를 다룬다. 「주토피아」는 픽사 작은 아니지만 주제 면에서 굉장히 흡사하다. 「온워드」가 그랬듯이 한 영화 속에 여러가지 주제를 담아 전달하였고(사랑, 부모의 꿈과 나의 꿈, 원소 간의 차별), 아주 아름답게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픽사의 상상력은 매번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 바람 원소들이 내리자 가라앉고 다시 타자 하늘로 떠오르는 비행선이나, 유리를 녹이고 빚는 불, 광량 오버가 뜬 4컷사진 등등...
먼저 우리의 주인공들을 보자.
앰버 루멘.
분노조절장애 같은 면모가 보이지만 이건 감독의 억까다. 1+1 행사 중 무료인 하나만 집어가겠다는 손놈이 있는데 당신이라면 화가 안 나겠는가? 바로 추리금지 때려야지. 어쨌든 웨이드보다는 좀 더 분노에 차 있는 여자다.
웨이드 리플.
슬픔이의 능력을 갖춘 자로, 남자의 눈물을 비장의 무기로 사용한다. 그 눈물 앞에서는 모두 빙봉마냥 무방비하게 된다. 나의 능력을 조심하라 웨이드 눈물
작중 시대는 버니와 신더라는 두 불이 엘리멘트 시티에 유입되고 나서, 그 자식세대인 앰버가 주역이 되는 때이다. 시민들은 아직 불이라는 원소를 달갑지 않아한다. 비비스테리아 사건처럼 이유없는 낙인과 딱지가 아직 남아있다. 불 역시 시민들(특히 물)을 적대시하며, 친해질 수 없는 족속이라 여긴다. 앰버도 그렇게 여긴다.
그런 상황에서 앰버의 삶에 웨이드가 등장한다. 웨이드는 원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게 가능하리라 믿고,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앰버와 게일과의 싸움이 터지기 직전, 웨이드의 외침에 관객들은 하나의 파도가 되어 선수를 응원했고, 구름뭉치와 불덩이는 하나가 되어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웨이드는 조용히 앰버의 얘기를 들어주며 공감해주거나, 집에 초대했을 때 앰버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곤 했다. 웨이드의 노력에 앰버는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하지만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해야 하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던 앰버는 웨이드와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가게를 물려받기로 마음먹는다.
그때 웨이드가 파티에 난입하며 이전에 앰버에게 들었던 어떤 단어를 말한다. 디쇽.
혹시 이 장면을 기억하는가?
맨 처음 엘리멘트 시티에 두 불이 도착했을 때, 직원은 이름을 물었다. 불은 대답했다. %#&$@.
하지만 직원을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고, 대충 '버니'와 '신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민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대신, 편의상 엘리멘트 시티식 이름과 언어를 그들에게 강제했다.
우리는 영화가 끝난 지금도 두 불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 그들의 '영어' 이름은 알아도, 고향에서 그들이 뭐라고 불렸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반면에 웨이드는 열기구에서 한 번 들은 그 단어를 연습해보고, 대충 본인이 편할 대로 '티슈크'라고 발음하는 대신 정확히 불의 발음을 존중해서 말한다. '디쇽'.
입국심사 직원과는 달리, 진정으로 불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웨이드는 솔직히 꽤나 특이했다. 너무 완벽하게 설정되어 있었거든.
픽사에선 드문 방식이다.
긴글) 픽사가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
전에 쓴 글인데, 읽을 필요는 없다. 픽사는 가치관이 다른 두 인물을 등장시켜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며 이해해가는 영화를 많이 그려냈다. 「소울」에서는 자신의 꿈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조 가드너'와 삶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22'를, 「온워드」에서는 마음의 뜻을 따라가라는 형 '발리'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는 동생 '이안'을, 「업」에서는 오래 전 약속을 지키려는 '칼 프레드릭슨'과 눈앞의 모험을 찾아 떠나는 '러셀'을 그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저 인물들 중 완전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한 인물의 말대로만 가다 보면 어느샌가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그때 다른 인물의 시각으로 상황을 다시 보면 새로운 길이 보였다. 두 가치관은 서로를 보완해주며 정답에 가까워진다.
빙봉을 달래는 법은 억지웃음이 아닌 공감의 눈물이었고, 대학생 와조스키가 짠 귀환 계획은 설리반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레미와 링귀니는 함께여야 라따뚜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웨이드... 이 남자는 너무 이상적이다.
중간중간 그의 약점이 보이기도 한다. 가령 스펀지를 무서워한다든가, 아버지와의 안 좋은 과거라든가. 하지만 웨이드의 제안을 따라갔을 때 난관에 봉착했던 기억은 크게 없는 것 같다.
보통 영화에 메리 수 같이 혼자 다 해먹는 캐릭터가 있으면 기분이 나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웨이드에 대해 싫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 그건 웨이드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서 다룬 주인공들의 가치관들을 보자. '내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옳다', '오래 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가치관들은 '상대방을 이해한다'라는 사고방식을 통해 더 성숙한 가치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리멘탈」에서는 웨이드의 가치관이 바로 그 '상대방을 이해한다'인 것 아닌가.
픽사가 다뤄온 여러 영화들은 인물들의 가치관 A, B, C... 등을 소개하고, 그것들은 영화 마지막에 A+B, C+D 식으로 조화하며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웨이드의 가치관은 +다. 픽사가 지난 수십 년 간 수십 개 영화에서 강조해온 궁극적인 주제, A도 B도 아니고 바로 그 + 말이다.
바로 이 점이 웨이드를 아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궁금하다. 그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아버지와 어떤 일이 있었고, 그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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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앰버를 보는 것도 즐겁다. 공짜로 막대불꽃을 나눠주며 웨이드와 찍은 사진을 몰래몰래 보는 장면은 「라푼젤」의 데이트 장면만큼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시나브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짜증났던 손님들은 점점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어갔다.
그렇게나 싫었던 자신의 분노(temper)가, 강화 유리(tempered glass)라는 멋진 누수 해결책이 되었다.
앰버가 인상을 찌푸리고 우산으로 피하던, 열차가 쏟아내는 귀찮은 폐수는,
이제는 손을 가져다 대고픈 아름다운 거울로 보였다.
이런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도 몇몇 있었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대사가 꽤 많다고 느꼈다. 마치 쓸데없이 긴 이 글처럼 말이지
워낙 다양한 주제를 한 영화에 눌러담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니 앰버와 웨이드는 길고 깊은 대화를 오래 나눠야 했다. 내가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좀 느려서 잠깐잠깐 놓치기도 했다. 최소한의 대사로 주제를 전달한다는 건 뭘까?
모범답안을 모셔보자
그렇다. 영화 시작 전 짧게 틀어준 그 단편의 주인, 「업」이다.
노인은 죽은 아내와 맹세한 약속을 마침내 이뤄냈다. 하지만 허탈하기만 하다.
책을 덮으려는 찰나, 뒷 페이지에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아내와의 삶이었다. 비행선을 타고 미지의 모험을 떠나는 사진 대신, 부부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온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노인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을 넘겨본다.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아내의 말.
'나와 함께 모험해줘서 고마워요. 이제 당신의 모험을 떠나요.'
노인이 모험가 뱃지를 집어드는 것으로 시퀀스가 끝난다.
대사는 최소한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왜 노인이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하는지, 아내에게 있어 남편과의 삶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전해진다. 아름답고 간결하게, 그렇지만 묵직함을 잃지 않고 주제가 전달되었다.
「엘리멘탈」의 감독이 이처럼 대사보다 이미지를 강렬히 활용할 수 있다면 더욱더 멋진 영화가 탄생할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유리가 깨지는 연출은 정말 압권이었다.
예전에 나무위키를 잠깐 보았는데, 픽사의 작품별 최종보스 목록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잠시 생각해보자. 「엘리멘탈」의 최종보스는 누구인가?
배려가 부족한 입국심사 직원일까?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게일일까? 불같이 화를 내는 버니일까? 아니면 관람객에게 눈갱을 선사하는 클로드일까?
정답은 없다. 마음 같아서는 4번을 찍고싶긴한데
앰버가 사는 이 엘리멘트 시티에서는, 불에 대해 퍼진 인식과 차별, 그것이 최종보스인 셈이다.
「엘리멘탈」은 하나의 특정 악인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픽사는 그런 영화들을 많이 찍었었고, 그 작품들 역시 훌륭하지만, 적어도 「엘리멘탈」에는 무찔러야 하는 단 하나의 존재 따위는 없다.
선량한 수달을 흉포한 육식동물로 바꾼 사건의 배후에는 벨워더가 있었지만, 엘리멘탈 시티의 수로는 누군가가 악의를 품어서 부서진 게 아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워터누즈 사장과 랜달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지만, 「엘리멘탈」에서는 모두가 잘못했고 모두가 같이 성장해 나간다.
이전에 「코코」를 볼 때, 미겔과 할머니의 화해, 가족의 재결합, 이 주제는 굳이 한 명의 악인을 무찌르지 않고도 진행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픽사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엘리멘탈」.
아마 픽사 영화사상 가장 궁극적인 등장인물인 웨이드가 등장한 인상깊은 영화였다.
시각적으로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 쓰다 처음 알았는데, 이 공원, 원소 주기율표 모양이다. 진짜 픽사 미친놈들 아님?
알칼리 극장이란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네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야
긴 글 읽어줘서 너무 수고 많았고 정말로 고마워
딪붕이들 모두 굿밤
앰버 옷 너무 잘입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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