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고혜란'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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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둠에 잠겼을 때, 나는 그가 없는 세상을 불안해했고, 그가 다시 빛에 살게 되었을 때, 내가 없는 그의 세상을 불안해했다. 간악한 신은 그에게 새 삶을 주는 대신 '나'를 지웠고, 나에게 사랑을 주는 대신 '그'를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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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다시 안아줄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 그를 보며 절망해야 했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지만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의 추억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지워 버린 그의 허무한 눈빛을 보며 홀로 무너져야 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해?'

'전혀.내 이름도 모르더라고.'

'와...진짜 안믿긴다...태욱 씨가 네 이름 석자를 모른다고?'

'몰라.아무것도 몰라.내가 누군지…어떤 사람인지…아무것도 몰라.기억 못해.'

'그럼 그 사건도...'

'……'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윤 기자에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잔하게 파도가 이는 검붉은 빛이 감도는 와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뒤덮었던 선혈과 다르지 않은 자태에 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이제 어떡하려고 그래?아무것도 기억 못한다며.'

'글쎄…기억을 찾으려고 노력은 한다는데 잘 모르겠어.의사도 언제 어떻게 기억이 나타날지, 아님 죽어도 기억을 못 찾을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대.'

'적어도 고혜란은 기억할 줄 알았는데...'

'태욱 씨한테 가장 큰 상처잖아.'고혜란'이란 여자는.'



스스로 조소를 지으며 쓰린 속에 와인을 들이 부었다. 윤 기자는 별 다른 위로 없이 내가 취할 때까지 잔을 채워줬고 정신이 몽롱해지자 유일한 법적 보호자인 그 사람을 이곳으로 불렀다. 잠시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오지 않을 때, 테이블에 엎어져 흐릿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날 깨우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일어나봐요.'

'……'

'저기요.정신 좀 차려봐요.'

'……'



변함없이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내가 아는 '강태욱'은 아니다. 내가 아는 '강태욱'은 늘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무리 내가 미운 날이어도.



'혜란아.'



순간 뒷통수가 저릿했다.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 때문에 흐릿했던 정신이 잠시나마 맑아졌다.



'혜란아.일어나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리듯 몸을 일으켜 날 보고 서있는 그를 마주했다. 변하지 않은 다정한 눈빛, 보일듯 말듯한 부드러운 미소.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싸쥐었다. 변하지 않은 온기. 내가 아는 '강태욱'이었다.



'어?강태욱이다...'

'네.강태욱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애틋함이 묻어나는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심연(深淵)처럼 깊고 진한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췄지만 담기진 않았다. 그가 보이는 애틋함은 가짜였다.



'내가 아는 강태욱이 아냐…'



지금 내 앞에 그는 진짜 '강태욱'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강태욱'이 아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강태욱'이 아니다. 내가 아파하는 '강태욱'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강태욱'이 아니다. 이제 날 안아주는 '강태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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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란의 시점을 보고싶어하는 갤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ㅋㅋㅋ쓰면서 안도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