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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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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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그저 자신의 마력을 되찾고 싶어서 이 엘의 나무에 오게 된 것이고, 이미 사라져 버린 엘 때문에 조금 좌절하고 있던 와중에

아이샤는 마족과 만나 버렸다.

보통 마족이라면 마력이 없는 아이샤라고 해도 도망치거나, 혹은 쓰러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마계의 군단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격에 마나 실드가 깨어지고, 이격에 몸이 날았다. 옷이 잡아 뜯겨졌지만 수치심보단 공포감이 앞섰다.

저것을 상대로 도망친다는 것은 꿈에 가까운 소리다. 살아남는것도 현실성이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타난 엘프 여성, 원숙한 활솜씨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흉포하게 날뛰는 베르드를 상대로 화살을 맞추는 것에 성공 했지만 그것으로도 이 마족의 행동은 막을 수 없었다.

"꺄아아앗!"

강렬하게 내려친 베르드의 발톱은 그대로 아이샤를 관통하려 한다.

절체절명의 상황. 화살 한 두발로는 베르드를 막을 수 없다.

레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내 운명은 끝이다. 아이샤는 실감했다. 1초 후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여기에 1초의 시간만 있으면, 운명마저 바꿀 치트 아이템으로 도배한 소녀가 있다는 사리을, 그녀들은 알지 못했다.

카드드드드득!

발톱이 몸을 가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소리.

죽음을 각오한 아이샤가 눈을 떴을때 보인 것은,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단발이었다.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가녀린 체구의 소녀가, 몸보다 큰 거검을 한 손으로 들고, 베르드의 손톱을 막아낸 것이다.

표정조차 바뀌지 않고, 그자리에 묵묵히 서서 괴물과 가볍게 힘겨루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질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괜찮아?"

등 뒤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저 묻는 그 소리에,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래서야 대답이 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한 아이샤는 입을 열려고 했다.

"읏─!"

하지만 방금 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은 소리를 내는것조차 마음대로 하게 해주지 않았다.

"무리하지 마, 괜찮으면 그냥 쉬고 있어. 아니면 ──거기 엘프! 이 아이를 치료해 줄 수 있나?"

눈 앞의 소녀는 화살로 이쪽을 지원해주던 엘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렀고, 그것은 이 마족을 통과해 엘프 소녀가 다가오라는 뜻과 동일했다.

"위험하지 않아! 이 녀석은 내가 막고 있을테니까, 치료를 부탁해!"

그리고 엘프 소녀는 ──숲의 요정이라는 이명에 맞게, 이쪽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아아아!"

"시끄러워, 파란 똥개!"

가볍게 후려친 검면으로 아이샤와 레나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간 마족을 네 발 이상 물러나게 한 소녀는 검을 바닥으로 내리고 씩 웃었다.

"그럼 두 분 아가씨는 거기서 잠시 쉬고 계시고─ 너는 나랑 놀자, "

"크으으으, 인간 주제에!"

"인간님을 무시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자신의 키의 네배는 되어보이는 그 괴물과 치고받기 시작했다.

그 검격과 손톱의 부딪힘을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본래 저런 싸움이라면 소녀는 손톱의 일격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의 검격을 최대한 떄려박아, 상대를 천천히 무너트려야 하는 전술이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검과 손톱을 일부러 맞부딪혀, 그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의 무게중심을 흐트러트린 후, 그 빈틈 안에 하나 둘 베어간다.]

즉 검사와 검사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하는 패링의 기술을 바위마저 일격에 내던질 괴물에게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질을 넘어선 이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아이샤와 레나는 그저 그 검격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꽤나 신선한 경험이군,

기존에 내가 했던 엘소드는 전형적인 액션 게임의 RPG화였다. 즉 자신이 공격한 턴에는 상대는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어야 하며

상대가 공격할때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피격을 당하는 게임이었다.

상대와 자신이 동시에 공격하는 장르가 아니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듯, 나는 지금 베르드와 검을 맞대고 있었다.

손톱을 검으로 쳐내고, 힘으로 밀어붙여 그 사이에 몸통을 베어간다.

그동안 갈고닦은 체술은 충분히 빛을 발했지만, 그와 동시에 알 수 있는것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의 몸, 정확히는 옷 아래 가려져있는 초월자 방어구들이 내 몸을 지켜주겠지만, 상대의 일제포화같은걸 맞는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깨달은건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강함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베르드와 검을 마주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가볍게 튀어올라 손톱을 발로 걷어차고는 오른 눈을 검으로 베어 넘겼다.

피와 함께 ──아마도 홍채겠지──검은 액체가 연기를 피워 올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쿵! 하고 거대한 거구가 뒤로 넘어갔다.

"더 할거야?"

"크, 크르르르"

개 짖는 소리를 내는 것 보니 더 할 생각이군.

"좋아. 와라."

베르드는 상처 입은 한쪽 눈을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채 몸을 낮추며 이쪽을 노려봤다.

그리곤 그 거대한 입을 벌려 이쪽을 향했다.

"──아이스, 블래스트?!"

분명 베르드의 썰렁포라고 불리는 그 기술 아니었나.

하지만 괜찮다. 피할 각도라면 얼마든지 있어. 지금 내가 여기서 가볍게 피하─면

"뭐, 뭐야 저 마력반응?!"

"위, 위험해!"

제 뒤에 있는 여성들이 위험해집니다.

지금 레벨에 저거 맞으면 꼼짝없이 부활석입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 부활석이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 즉 재수없으면 죽습니다.

"──젠장!"

나는 베르드 앞을 막아 섰다. 방법, 방법은 없나?!

피닉스 텔런? 아냐, 그건 마력 구체는 막을 수 있지만 아이스 블래스트를 막을 순 없어.

극기로 자세를 잡는다고 해도 관통판정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나는 오른손을 크게 집어 들어 올렸다.

베르드의 마력 집속이 더욱 빨라진다. 지금부터는 될 지 안될지의 승부다!

"루나 블레이드!"

베르드의 집속포가 쏘아지기 직전, 나의 검은 베르드의 머리에 내꽂혔고, 그리고──

"마력이 흩어지고 있어!"

아이샤가 내지른 말보다 빠르게, 상황의 끝을 예감한 나는

"이런 빌어쳐먹을 똥개새끼야!"

베르드에게 달려가 냅다 발로 걷어차버렸다.

"캥! 크르르르! 인가아아안! 죽여버리겠다!"

"흐, 흥.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이 망할자식아!"

사실 좀 쫄았습니다!

베르드는 그런 나의 속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광분하기 시작했고 이내──

"송환이로군."

마법진에 몸을 맡겨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언젠가 죽여버리겠다! 네노오오옴!"

"그래, 그래, 언젠가 죽일 수 있으면 좋겠네, 네가 니놈 가죽을 뒤집어 써서 옷으로 만들기 전에 말이야!"

"죽이겠다! 죽이겠다아아!"

그렇게 말하며 베르드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위험천만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어쩄든 임무 완료, 나는 가볍게 검을 등의 검대에 걸치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곳에는

"──히익."

왠지 모르게 굉장히 겁먹은 두 사람이 있었다.

어라, 루트를 잘못 선택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