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가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임. 같은 것을, 다르게 바꾸어 연주하는 것.
그랜드 라인의 모든 국가들은 '섬'임.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공간에 놓여있는, 불변의 공간이지.
그런데 그 불변의 공간에 어느날 이질적인 외부의 방문객이 찾아옴. 해적, 그러니까 주인공파티지.
그 이질적인 요소가 끼어들면서, 무언가 새로운 걸 끼얹었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변화가 발생하게 됨.
가령 알라바스타에서, 비비네 아빠는 '나라란 사람이다. 나라를 나라로 존재하게 하는 건 이어지는 의지다'라고 말하는데.
비비네 아빠 최측근인 페루랑 챠카도 비비네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장면이 나옴.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겠지.
걔들 머릿속에서는 물을 필요도 없이 나라 = 네펠타리 왕가거든.
그런데 주인공 파티가 몰고 온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걔들 머릿속에서도 나라의 의미가 변하게 됨.
그래서 나중에 비비가 왕궁을 폭파시켜서라도 반란군을 포함한 국민들을 구해야 한다고 할 때 병사들이 말리는데도 자연스럽게 따르지.
심지어 악역인 크로커다일도 말야. 이 친구 목표는 '이상국가 건설'이거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국가'가 처음에는 분명히 '사람-이어지는 의지' 같은 건 아니었을 거란 말야.
그런데 얘조차도 계속 비비랑 루피랑 얽히다보니까 언제부터인가 '나라 = 사람'으로 말하고 있음. 그 유명한 광장 폭파씬에서 말하잖아.
"넌 폭발을 막을 수 없다. 넌 '나라'를 구할 수 없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알라바스타라는 공간에 끼어들면서, '국가'라는 이야기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국가'의 의미가 뒤바뀌어버리는 것임.
여전히 부르기는 '국가, 나라'로 똑같이 부르는데, 그 알맹이의 의마가 바뀌어버려.
그것은 여전히 '안전과 정체성을 위한 구속'과 '자유' 사이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특이점이야.
쵸파 에피소드에서 와포루 부하가 말함.
"나라는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에서 탈락한 자들은 야생의 토끼처럼 잡아먹힌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도 이런거지. 그런데 이 '나라'랑,
"나라는 사람이다. 설령 왕가가 멸망해도, 의지를 이어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라는 살아남는다."
이 '나라'랑, 같게 불릴지언정 전혀 다른 의미인거야. 말하자면 이것은 새로운 구속과 자유의 새로운 타협점이야.
이건 하늘섬도 마찬가지야.
하늘섬 초반에 에넬에 대해 말할 때 하늘섬에 애들이 말하는 '신'이랑.
하늘섬 막판에 에넬이 하늘섬 다 떨어뜨리려 할 때 마지막까지 발버둥치던 하늘섬 주민들이 손을 모아 비는 '신'은, 똑같이 '신'이라 불릴지언정 그 알맹이의 의미가 전혀 달라.
전자가 지배하는 인격체의 신이라면, 후자는 보다 '의지가 빚어내는 소망'에 가까운 거야. 그래서 종교가 '사람의 꿈'이 되는 것이야.
그리고 그 차이는 그 신 앞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인간이 하는 행동들에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고.
그리고 뭐 시대의 일렁임은 세계정부 깃발 태워버리는 씬이면 설명 가능하고. (시대는 역사로서 지층처럼 견고하게 '쌓이는 것'이 아닌, 수면처럼 유동적으로 '일렁이는' 것. 변혁, 개변의 가능성.)
결국 원피스는, 주인공 파티라는 새로운 항을 사건을 통해 '국가, 종교, 역사-권력'과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그것들을 소멸시키거나 소멸당하는 대신 그 의미를 변형시켜.
'인간이 나라나 종교, 역사-권력집단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거기에 조금 다른 입장으로 접근하면서 제각기 힘을 다해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오늘날에 인간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야.
그것이 원피스가 하필 '해적'이어야 하는 이유야.
바다는 땅과 달리 여전히 개인들의 사적 소유가 불가능한 해방의 공간이며, 해적은 그 바다를 누비는 존재인 동시에
나라-종교-권력집단-법률 같은 구속 외부에 존재하는 인종들이거든.
쵸파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이걸 노골적으로 대사로 드러내는데. 루피가 와포루 줘패면서 말하잖아.
"니가 왕이든 뭐든 상관없어. 나라든 뭐든 상관없다고. 난 해적이니까." 이러거든.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그처럼 밖에서 끼어드는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항'이 필요해. 그 힘을 만나 내부가 변화를 일으켜.
그러기 위해 해적이라는 설정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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