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폐인을 본적 있는가. 피시방 가장 구석진곳에 앉아 있는, 꽁초가 잔뜩 들어있는 종이컵을 키보드 앞에 두고 본체와 유리벽 사이에 희고 붉은 소스가 묻은 햄버거 봉다리들을 적당히 구겨 끼워놓은, 다른이의 시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오로지 모니터속 자신의 게임 캐릭터에만 몰두하는, 그런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혹여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본적이 있는가. 재미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옜날 RPG 게임 속에서 몇 천마리를 더 잡아야 할지 모를 똑같은 모습의 그래픽 괴물들을 마치 평생을 그래왔다는 듯이 무심히 마우스 클릭으로 도축을 하는 하드코어 게이머의 눈을 본적있는가.

죽음이 단순히 귀찮은 일로 치부되는 가상의 세상을 3인칭으로 바라보는 눈. 비록 가상이지만 생살이 벗겨지고, 찢기고, 불타고, 녹아 내리는 모습이 지겨워진 눈. 자극에 절고 절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 그런 눈을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예가 필요한가? 오후 3시에 술에 절어있는 알콜 중독자의 눈. 방금 코로 마약을 들이킨 약쟁이의 눈. 눈앞에 현실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그 눈. 무슨일이 벌어지든-그것이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일일지 언정 아무 관심이 없다는 그 눈. 산자의 것인지 망자의 것인지 알수없는 그 눈. 그 회색의 공허함. 어쩌면 또 다른 무심의 경지.

그 눈으로 남자는 검은 양복에게 고통을 새겨넣고 있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건 정으로 보이는 쇠막대기 하나. 그 마저도 주먹에 감싸져 보이는건 약 5센치 정도의 끄트머리. 절대로 날이 잘 서있다고는 말 못할 그 투박한 쇠끝으로 그는 돌이 아닌 사람을 조각했다.

시작은 양복의 발등에서 부터. 남자의 목적은 쇠막대로 양복의 발에 구멍을 내는것 이었지만, 남자는 한번에 내려쳐 뚫는 대신 천천히 찢어 나가는 방법을 썻다. 정의 끝자락을 발등에 대곤 천천히 손목을 좌우로 비틀며 살점안으로 파고 들었다. 양복의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발가락은 흡사 몸통이 잘려나간 애벌레 마냥 그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가 위로 고개를 쭉 들어 부들부들 떨기를 반복 했다. 그게 눈에 거슬렸는지 남자는 자신의 발로 양복의 발가락을 밟아 짖이겼다. 껍질은 금방 벗겨져 그 안에 분홍색 속살이 남자의 구두 밑창과 부비어 졌다. 콘크리트 부스러기와 썩은 흙먼지가 맨살의 신경을 긁자 양복은 더 이상 비명을 참을수가 없게 되었다.

[으아아아악,크아아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꺼어억 꺼억] 하는 숨 넘어가는 소리로 바뀐건 정이 둘째 발가락뼈와 샛째 발가락 뼈의 줄기 사이를 억지로 벌려나가기 시작하고 나서였다. 그그그극 하고 철과 칼슘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지만, 남자와 양복에겐 들리지 않았다. 양복은 들을수 없었다. 남자는 듣지 않았다.

그렇게 약 5분간 남자는 막대로 양복의 살 안을 휘저었다. 막대에 끼인 뼈가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뼈에 걸린 힘줄이 늘어졌다. 근육은 3갈래로 갈라지고 그 틈새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신경을 괴롭히던 마찰음이 끝나고 막대가 발바닥을 뚫고 나와 양복의 구두를 발에서 밀어내 벗겼다. 남자는 양복의 발바닥을 바라 보았다. 양복은 잠시 사그라든 고통속에서 놓쳤던 정신줄을 잡기 위해 숨을 헐떡였다. 남자는 이내 막대를 단숨에 뽑았다. 그리곤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하니 위치를 잘못 잡았다. 반대쪽 발은 제대로 뚫고 여기는 다시 하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 양복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즐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