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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 우리 사랑의 조각들 3-1

편린(125.184) 2019.12.15 23:39:32
조회 1298 추천 7 댓글 2


“공주님이 사고 싶은데로 따라가겠습니다.”

“우선 옷부터 사요. 많이 사야하나?”

“그럴 필요없습니다. 조만간 궁으로 가야하니깐요.”

“왜요?”

“궁이 안전하니깐요. 제곁에 있으신 것보다 궁에 공주님을 밝히는 게 낫습니다.”

“공주라고요? 내가 가짜인데?”

“공주님. 저는 한번도 틀린 적 없었습니다. 망설인 적은 많지만 틀린 적은 없어요.”

“그래서요?”

“공주님이 진짜라고 저는 믿어요. 그곳에서 다시 만난 것. 그리고 이 옷차림까지 하며. 제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고요. 전하도 보시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근데요. 은시경씨. 나는요. 이런 맹목적인 믿음이 무서워요. 아닐까봐.”



재신의 말에 시경은 재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걱정하지마세요. 이제는 망설이지도 불안하게도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정말 무슨 사이였어요?”



재신의 말에 시경은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재신에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재신은 시경을 사랑하지 않는다. 재신의 마음을 예전과 똑같이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정말이었지만. 한편으론 재신이 기억하지 않기도 바랐다.



“근위대장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친하고 조금... 엉망이었던 관계요.”

“아, 모르겠다.”



재신은 시경의 아리쏭한 말에 고개글 저으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시경은 재신의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옷을 고르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두 사람 모두 할말을 찾지 못했다. 원래부터 재신과 있으면 시경은 이야기하기보단 들어주는 쪽이었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것은 재신의 몫이었다. 재신마저 침묵하니 두 사람은 집에 들어와서도 침묵이었다.



“은시경씨 침대는 은시경씨가 누워요. 나는 그냥 바닥에서 잘게요.”

“아닙니다. 공주님. 제가 어찌....”

“그렇게 말하지마요. 난 손님이니깐.”

“아니요. 제가 소파에서 자는게 편합니다. 원래도 야영도 하고 저는 군인이니까요.”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한참을 실랑이를 해도 팽팽하게 맞선 싸움은 끝이없었다. 재신이 아무리 소파에서 잔다고 이야기해도 시경도 물러서지 않았다. 재신은 한숨을 시며 타협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이 침대에서 자고 진 사람이 바닥에서 자요.”



시경은 재신이 제안하는 순간 머리를 돌렸다. 재신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궁인들과 보드게임을 할 때나 가끔 엉뚱한 것으로 실랑이를 할 때면 재신은 항상 처음에는 내는 것이 정해져있었다. 시경은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좋아요. 공주님.”

“왠지 은시경씨가 꼭 이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이길겁니다. 공주님을 바닥에서 재울 수 없으니깐요.”



정말 시경의 생각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항상 가위를 내는 재신의 버릇은 여전했고 시경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겼다.



“누우세요. 공주님.”



시경은 요와 이불을 들고서 재신의 앞에 서 있었다. 재신이 쓸 수 있도록 평소 쓰지않던 이불을 침대에 깔아주고 그 앞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분위기의 재신을 바라보며 시경은 웃음기를 숨기지않은채 말했다.



“불공평한데요.”

“네?”

“내가 공주님이라면 시경씨가 다 알고 있을테니깐 불공평한것이죠.”

“이제 인정하시는 겁니까?”

“마치 큰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은시경씨가 하는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잖아요.”



재신이 침대에 누우면서 말했다. 시경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를 깔고 누웠다. 재신 쪽으로 쳐다보았지만 침대에 누운 재신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때 재신이 침대끝으로 누워 시경을 내려다보았다.



“은시경씨.”

“네?”

“있잖아요. 내가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진짜 공주님이고 살아돌아왔다면요.”

“네. 공주님.”

“내가 다시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예요?”


재신의 말에 시경이 표정을 굳혔다. 그런 시경의 표정을 못본채한채 재신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정말 죽었는데 돌아왔다면 돌아온 이유가 있겠죠. 기억들도. 다른 것들까지.”

“안 보내드릴 겁니다.”

“만약에요. 나라고 또 죽고 사라지고 싶고 그러겠어요? 근데 이런 생각을 안 하면 불안해요. 그냥 생각도 많아지고. 정말이라면 난 이유를 찾고 싶거든요. 궁금해.”

“꼭 찾으셔야하는 겁니까? 그냥 이대로 이렇게... 살으셔도 되잖아요.”



시경의 말에 재신은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답했다. 시경의 말대로 그대로 살 수 있지만 눈을 뜨니 그곳이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다면. 다시 돌아온 기회를 놓아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까 아니라는 생각들이 있다. 재신은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않았다.



“찾는거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사라질 생각하지마세요.”

“그런 거 아니예요. 난 다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은 거예요.”

“그럼 계획있으세요?”



시경의 말에 재신은 몸에 힘이 쭉빠져버렸다. 다짐해도 계획이없었다. 평상시의 자신은 별로 머리가 좋지 못한 편이었나라고 생각하고선 풀죽은 말로 재신은 답했다.



“아니요.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죠.”

“공주님. 공주님이 바라는 것이 그거라면 도와드릴거예요. 걱정하지마세요.”



재신의 말에 시경은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재신은 갑자기 돌아와서 어느 순간 사라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재신을 붙잡고 싶다고 하더라도 붙잡는 방법도 알 수 없는 건 시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은시경씨가 그렇게 말해주니 좋네요. 잘자요.”

“공주님도요.”



시경은 재신이 잠든 숨소리를 들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서 재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저 다음날이 되어서도 재신이 시경의 옆에 있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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