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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삼중기원론으로 변형된 반도일본어설을 세울 수는 있겠다

ㅇㅇ(121.146) 2024.05.23 19:43:44
조회 358 추천 6 댓글 8

일본인 기원에 대한 최신 유전학적 연구인 일본인 삼중기원설에 따르면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h2419)

일본인은 토착 조몬인과, 야요이시대 이주한 북동아시아 그룹, 그리고 고분시대에 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동아시아 혈통의 삼중 기원임.


야요이시대에 벼농사를 가져왔던 집단은 북동아시아 그룹이고, 야요이시대 인골의 유전적 비중은 조몬인 60%로 그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은 것으로 묘사됨.


이에 따르면 새로운 일본인 삼중기원설에서는 야요이문화의 기원이 전형적인 도작농경민인 동아시아 혈통집단이 아닌, 북동아시아 집단이 남하라고 본다는 점, 또 이들 연구에서 야요이시대 조몬계 혈통 비중이 비교적 높게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보빈-휘트먼의 세형동검이나 기반으로 한 반도 일본어설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잃는다는 건 분명함.



고분시대에 이들 토착 야요이인을 압도하는 숫자의 동아시아 혈통의 대규모 이주가 상정되기는 함.

그런데 만약 고분시대 이주한 동아시아 혈통 그룹을 반도 일본어족이라고 상정한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혈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 왜 언어가 크게 다르냐는 점이 제대로 해명되지 못하기 때문에 보빈과 휘트먼이 제시하는 반도 일본어설은 그 이론적 매력마저도 상실.


결국 인구 혈통비중에 비해서 언어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 중 한 나라, 혹은 두 나라 모두 혈통 비중이 작은 특정 선주민 집단의 언어가 해당 국가의 주류 언어 형성에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특히 보빈이나 휘트먼은 주로 '기층이론'을 가지고 이주민의 언어가 토착민의 언어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는데, 이 틀로는 어느 한쪽에서는 선주민의 언어가 더 강하게 잔존했을 것이 분명한 한일 언어에 대한 차이를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는 것.




다만 상기한 일본인 기원 연구를 그보다 1년 전에 UNIST 연구팀이 진행한 한국인의 기원에 대한 이중기원설 연구(https://academic.oup.com/gbe/article/12/5/553/5812782?login=false) 와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빈이 제시하는 언어학적 고찰을 마냥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유전학, 고고학적 연구와 어느정도 서로 상통하는 새로운 형태의 반도 일본어설을 입론할 여지가 생김.


UNIST 연구진은 한국인의 기원을 동시베리아 혈통과 동아시아 혈통의 조합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미 최소 기원전 6000년 경에 먼저 북상하여 동시베리아-북동아시아 쪽에 확산된 토착 신석기인 집단과, 기원전 3-2000년 경 남중국에서부터 급격히 확산된 동아시아 집단이 서로 3대 7이 비율로 결합하여 한국인이 형성되었다고 봄.


만약 야요이문화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북동아시아그룹이, UNIST 연구진이 한반도 신석기시대 선주민으로 지목한 동시베리아 혈통그룹과 동일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면(내가 유전학을 잘 몰라서 이걸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확언을 잘 못하겠음)

결국 야요이시대 벼농사를 가져와서 선주민인 조몬인과 결합하여 야요이인을 형성한 집단은 결국 한반도에 신석기시대부터 거주했던 선주집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음.


물론 고고학적으로 보자면, 주로 한반도에 동아시아 집단이 대규모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시대에는 한반도 전역이 새로 전래된 정주농경문화의 영향을 크든 작든 받게 되고, 재래의 신석기사회는 일제히 해체되는 양상을 보임. 물론 이 과정에서 농경민에 의한 대규모 이주 역시 있었으리라 보지만, 이들이 모두 이주민에 이해 대체당한 것은 분명 아닐 것임.


김장석은 토착 신석기시대 집단들은 이주민에 이한 배타적 토지점유가 확산되자 어쩔 수 없이 기존 생계경제 방식을 버리고 정주적 요소를 수용했다고 보는데(남한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전환, 2002) 이런 과정으로 반강제적으로 농경민 문화를 받아들인 토착집단도 분명히 있었을 것임. 이 점이 이들 신석기시대 주민집단의 혈통 비중이 아직까지 현대 한국인에게 30%, 혹은 그 이상으로 비교적 큰 비중으로 나타나는 이유일 것임.


사실 이 당시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남중국에서 기원한 농경민집단이 토착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벌이지 않은 채로 토착민들과 잘 융합되었다고 하는 것은 UNIST연구에 참여한 박종화 교수가 강조하는 바임. 아마도 이들의 확산은 무력 정복에 의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정착지에서 새로운 농경을 주된 생계경제 방식으로 삼음으로써 토착 수렵채집민에 비해 토지를 조밀하게 사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양적인 폭발적 팽창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일 것임.


여하튼 이런 양상으로 동아시아 농경민의 팽창이 이루어졌다면, 이들은 각지의 토착 신석기인들과 비교적 평화롭게 융화되었을 것이고, 그들을 자신들의 사회에 흡수시킬 수 있었을 것임. 그리고 일부지역에서는 이들 토착 수렵채집집단이 이주 농경민들과 교섭을 통해 농경기술과 여러 물질문화를 수용함으로써 독자적인 농경문화를 이룩할 수도 있었겠지.


한반도에서도 검단리-천전리 문화는 이러한 청동기시대 문화가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로 전형적인 도작농경사회인 송국리문화에 비하면 비교적 농경비중이 낮고 이동성이 강하며, 또 타 문화에 대한 배타성과 보수성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어쩌면 이들의 문화는 토착 신석기시대 주민집단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문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들 신석기시대 토착민과 비교적 유연관계에 있던 한반도 동남부 일부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송국리문화를 전향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래서 실제로 해당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송국리문화가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도 있음. 그리고 이들이 북규슈로 이주하여 송국리문화의 물질문화를 해당지역에 전파하고 이들이 토착 조몬인 집단과 4대 6이 비율로 결합하여 야요이 문화가 성립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음.


물론 이러한 야요이인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일본인 삼중기원설과 UNIST연구진이 진행한 한국인 이중기원설이 서로 상통하는 연구라고 전제했을 때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하겠음.



어쨌든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야요이시대 주민들의 언어가 어떤 언어냐에 대해서는 당연히 두 가지 가설이 나올 수 있음.


첫째는 바로 혈통 비중상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조몬어가 기반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야요이문화 형성에 기여한 한반도 신석기인이 언어가 기반이라는 것.


혹은 이 두 언어가 비슷한 비중으로 절충되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 중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은 적어도 고고학적, 유전학적으로는 확증내리기 어려움.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언어학적 고찰이 필요해 보일 듯 한데, 문제는 이 시기가 선사시대라 관련 자료를 찾고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임.


다만 이 중 두번째 가설은 보빈과 휘트먼 등이 제시하는 반도 일본어설과 어느정도 상통할 여지가 있어보임.

왜냐면 위의 논의에서는 야요이시대 개막에 기여한 한반도 신석기 토착민들이 주로 검단리 문화와 관련있을 가능성을 검토했는데, 이 검단리 문화가 주로 보빈의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신라-진한의 기층문화이기 때문임. 물론 신라-진한은 삼한시대에 이르러 도작농경의 영향이 강해지고, 실제로 경산 임당고분군에 나온 인골이 주로 현대 한국인과 유사하기 때문에 적어도 어느 시점 이후로는 확고하게 농경민 인구 비중이 훨씬 더 높아졌겠지만, 과거 특정 시점에서는 신석기 토착민들이 그 비중이 높았을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삼한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들 신석기인 주민들이 해당 지역에 다수 거주했고, 삼한사회 형성되고 난 뒤 이들이 사회 기층민이 되면서 이들 언어가 기층언어로서 신라어-진한어에 어느정도 그 흔적을 남겼을 개연성이 있음.


다만 청동기시대에 검단리-천전리 문화권은 주로 울산 북부와 경기동부 일대이 그 북쪽으로만 영향권이 한정되기 때문에 삼한계 언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삼한계 언어는 토착 청동기시대 주민들이 계속해서 거주하면서 계기적으로 발전한 결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음.


다만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삼국사기 등에서 등장하는 한반도 내부의 '말갈'이라는 집단임. 그 말갈이 그 당대의 표현인지 아니면 후대에 김부식과 같은 역사가들이 해당 용어를 소급해서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 당시 국가-문명사회를 건설한 삼한계 종족들 입장에서 그들이 명확히 이민족으로 간주한 어떤 집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이고, 이들의 위치는 주로 한반도 중북부 일대로 청동기시대 비송국리문화권인 천전리-검단리 문화의 분포권과 어느정도 유사함.


해당지역은 일정부분 원형점토대토기나 세형동검 문화가 전래되기는 했지만 청동기시대 이래의 무문토기문화가 강하게 잔존했고, 그 이후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를 위시한 철기문화가 들어서면서 이른바 '예계 문화권'이 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선주문화가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됨. 이후에 낙랑-백제-고구려-신라의 영향을 차례로 받으면서 이 예게문화는 소멸하게 되지.


이들은 당대 문헌에서 나타나는 '예' 집단과 관계돼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중국문헌에서는 한예로서 한인과 함께 통칭되기도 하고(환령지말의 '한예의 강성'이라는 용례), 마찬가지로 광개토왕릉비문에서도 한인과 예인들을 함께 부르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낙랑군과 고구려 역시 이들을 마치 이민족처럼 취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음.


사실 이상하게 인터넷 상에 '예맥족' 담론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보면 고구려나 부여의 문화는 사실 그 기층이든 상층의 지배층이든 모두 정주농경민의 문화로서 시작되었음. 공귀리형문화, 서단산문화가 모두 그러하고 고조선의 문화 역시 송국리문화와 거의 비슷한 계통에서 있어서 이들의 문화 형성은 모두 동아시아 정주농경민의 이주, 확산으로 해명될 수 있음. 그러나 반면에 이들이 예나 말갈로 통칭한 이들은 주로 수렵채집과 어로의 생계경제 방식을 주로 하고 있었음.


특히나 미스테리한 것은 역사시대 강원지역 예계 문화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이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는 기원전 시기에 명확히 읍루계 문화와 구별되는데도 불구하고 문헌 상에서는 마치 이 광범위한 지역, 즉 예계문화권, 옥저문화권, 그리고 읍루문화권이 모두 '말갈'로 범칭되면서 유사한 계통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점임. 사실상 표면적으로는 이들이 수렵채집어로라는 생계방식을 공유한다는 것 이외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지.


어쨌든 이들이 주로 삼한인, 부여인, 고구려인들에게 주로 '말갈'이라는 비교적 멸칭에 가까운 표현으로 불린 까닭에는 아마도 주로 동아시아 정주농경민이 기반이 된 이들 종족의 주민들과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함. 그렇다고 고구려와 삼한계 종족이 서로 동류로 인식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없고, 이들 역시 서로를 이민족 취급하고 멸시하기는 했지만, 이들을 말갈로 칭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말갈은 단순한 멸칭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물론 이런 차이는 주로 정주농경이냐 아니면 수렵채집어로냐 하는 생계경제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고 그것도 상당부분 타당하다고 나도 생각하지만, 어쩌면 언어의 차이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봄.(물론 이에 별다른 근거는 없음)


그렇다면 어쩌면 한반도 내부에 남아있던 반도 일본어는 바로 이 한반도 말갈, 즉 다시말해 한반도 신석기시대 원주민의 언어가 계승되어 온 것이 아니었을까함.

진한-신라는 이러한 신석기 토착민이 기층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한어-신라어에 보빈이 포착한 반도 일본어의 편린이 기층어로서 남아있었고, 일부 한반도 중남부에서 경북북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사는 '말갈인'들은 이런 반도 일본어를 일정 시기까지는 계속 사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


이들은 결국 4세기 이후부터 처음에는 백제에, 그다음에는 고구려, 마지막에는 신라에 포섭되면서 차츰 이들 정주농경민에게 동화, 흡수되었던 것이고.

특히 6세기 이후 신라가 해당 지역에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신라계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이주하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언어는 확실하게 한화되지 않았을까 싶음.


또 재밌는 건 이들 한반도 신석기시대 주민들은 동시베리아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퉁구스족과도 아주 멀지만 어느정도 연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퉁구스제어와 한반도 언어, 일본어의 연관관계가 이들 때문일 수 있음.


특히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전환과정이 단절적이지만 비교적 그 과정은 그렇게까지 폭력적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마도 신석기시대 주민집단의 언어 역시 한국어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듦.



물론 앞선 논의는 어디까지나 한반도 내부 말갈=토착 신석기계통 주민집단이 반도 일본어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가정에 따르자면 이런 논의를 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고 일단 나는 한국어-일본어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음.


나는 언어가 일방적으로 대체된다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납득이 되지 않아서 상당한 인구 비중을 가지고 있던 토착민의 언어를 이주민에 의해 그렇게 급작스럽게 대체했을 것 같지는 않고, 이런 까닭으로 서로 다른 언어들이 제각기 영향을 끼치면서 한국어와 일본어가 서로 비슷하면서도 꽤나 다른 언어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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