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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강명석씨 리뷰(무지 깁니다. 심심한 사람만 읽어보길...)

**(124.62) 2007.02.17 14: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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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본다 - 태릉 선수촌

‘쿨핫’의 세대는 어떻게 청춘을 돌파하는가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2005-11-25 오후 3:39:44]


 나는 민기(홍민기)가 퀸을 정말로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섬세함은 가지지 못했지만, 무슨 노래에서건 웅장함을 갖추고 ‘폼’이 나는 퀸의 음악을 정말 사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3년만에 2진에서 벗어난 주제에 자신을 ‘베스트 홍’이라고 지칭하고, 수틀리면 심판이라도 대들 수 있는 그에겐 ‘Don\'t stop me now\'만큼 어울리는 노래도 없다. 정말, 그는 태릉 선수촌에 들어와서 줄창 뛰기만 하지 않는가. 어차피 할 줄 아는 것도 그것밖에 없고.


 하지만, 이 ‘태릉’은 ‘Don\'t stop me now\'만 외쳐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안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베스트‘로 잘 뛰면 왠만큼은 해결될 수도 있다. 35kg으로 체중 만든 것도 처음이고, 공중에서 두바퀴 돌아 착지한 것도 처음이었던 마루(김별)처럼. 마루같은 천재는 인간이 아무리 지랄 맞아도 참고 봐줄 수 밖에 없다. 그 종목의 ’베스트‘가 걔밖에 없는데, 그것도 그냥 국내권이 아니라 진짜 올림픽 금메달이 가능할 거 같은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코치 역시 그가 금지한 기술을 쓰며 대놓고 개기는 이 고교생에게 한 수 접어줄 수 밖에 없다. 태릉 선수촌에서 자기 개성 지키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딱 두가지 종류의 인간들에게만 해당된다. 시스템을 비웃으며 저 위에서 군림할 수 있는 천재거나, 아니면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은 2진이거나. 2진시절의 민기 같은 ’백정‘들이 어찌하고 다니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정말 문제를 일으키면 내쫓으면 그만이다.


 


  ▶Don\'t stop me n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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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백정이 덜컥 귀족이 됐다. ‘머리 뽀개지는’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2진 시절엔 그저 열심히 달리면 됐다. 그러면서 언젠간 기회를 잡을 날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막상 귀족이 되고 보니 지켜야할 것, 신경써야할 것이 너무 많다. 처음엔 대표가 된 게 마냥 좋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 바로 등에 붙인 ‘베스트 홍’가지고도 태클 들어온다(‘나의 힘’). 또 왠만큼 이기니 슬럼프가 찾아오고(‘슬럼프’), 이제 완전히 태릉 생활에 적응했다 싶으니 금메달을 아무리 따도 연금으로 ‘월 백만원’이라는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영웅’). 게다가 같은 국가대표라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아무리 국내 최고라도 세계에 더 센 녀석이 존재하면 어떻게 하지?(‘콤플렉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민기는 태릉인이 되면서 수아(최정윤)를 만날 수 있었지만, 수아는 말 그대로 ‘다른 세계’의 여자다. 그는 민기가 사고나 치고 다녔을 때 이미 ‘천재’ 소릴 들었고, ‘엘리트’이자 ‘범생이’로 평생을 살았다. 심지어 태릉 선수촌 바깥에서도 수아는 민기를 압도한다. 민기는 ‘Fighting\' 철자 하나 제대로 못 쓰지만, 수아는 이미 영어에 능통하다. 더 확장하면, 수아는 이미 살아갈 터전을 마련한 태릉의 스타지만, 민기는 ’새 아버지‘의 집밖엔 돌아갈 곳이 없어 태릉에서 2진으로 3년을 버텼다. 그가 악과 깡밖에 안 남은 건, 그렇게 살아야 그나마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녀석이 무모한 자존심도 없으면 어떻게 사는가.


 MBC \'베스트 극장 - 태릉 선수촌‘은 그렇게 시스템 바깥에 있던 인간이 시스템에 들어가서 또다른 삶을 살아갈 때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태릉 선수촌‘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세계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그 하나는 수아와 동경(이선균)으로 대표되는 메인스트림, 혹은 범생이의 세계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태릉인이 되기 위한 소양을 길러왔고,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어길 생각도 없다. 마루같은 천재중의 천재라면 모르되, 동경은 한국 최고지만 세계 ’8강‘정도의 엘리트고, 수아는 이미 올림픽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선발전을 치러야 하는 한국 양궁 대표선수다(얼마전 12발을 전부 10점으로 쏘아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최원종 선수의 목표가 뭔 줄 아는가?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이다). 그들은 늘 경쟁의 압박속에서 최대한의 감정적 절제를 요구받는다. 덕분에 동경처럼 세련된 화술과 어떤 순간에도 침착해질 수 있는 이성을 갖추고, 수아처럼 경기를 기권한 그 순간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후배에 대한 코멘트를 들이미는 언론에 웃으면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수아와 동경이 사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같은 ’레벨‘이고, 둘다 어떤 순간에도 극단적이고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며, 그만큼 언제나 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민기와 마루는 감정의 절제 따윈 모른다. 마루는 지킬 이유가 없고, 민기는 아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들은 시스템에서 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 둘은 어울린다. 입장은 하늘과 땅으로 다르지만, 그들은 태릉에서 자기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다. 이는 ‘Hot\'과 ’Cool\'의 만남이다. 언제나 감정 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세상과 부딪히며 늘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민기와 마루는 ‘Hot\'이고, 언제나 감정을 절제하면서 최대한 품위를 지키려 하는 동경과 수아는 ’Coo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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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수아가 민기와 자기 사이에 놓인 커튼을 젖혀 민기의 눈에 들어오면서 두 세계는 섞이기 시작한다. 아니, 섞인다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요소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마지막까지 민기는 여전히 ‘Hot\'하고, 수아는 ’Cool\'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니 말이다. 민기가 드라마 내내 겪는 일들은 곧 그가 ‘Hot\'을 전제로 하되 ’Cool\'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가 ‘비천’했으되 마음대로 살 수 있던 2진 시절에는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자기가 안되는 건 다 남 탓, 불운 탓이었다. 그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필요도, 시스템의 주류를 차지한 사람들을 인정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의 ‘베스트’는 나다.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2진 생활을 견뎌낼 수 있다. 그가 수아를 만난지 얼마 안 돼 수아에게 온갖 트집을 잡으며 수아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이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개기는 게 멋있는 건줄 안다. 혹은 속으로는 인정해도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인정 못한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의 주류에 있는 수아는 그런 민기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대신 민기에게 직접 양궁을 해보게 하면서 지긋이 밟아 준다. 그제서야 민기는 수아를 인정하고, 이후 수아에게 메달을 돌려주면서 수아에게 사과하며 수아의 세계를 인정한다. 민기도 드디어 운마저 실력이 되는, 상대방이 7점을 쏘는 동안 계속 만점만 쏴야하는 세계에 한 발 들어선 것이다.


 


  ▶Yor\'re so fucking special


 그 때부터 민기는 조금씩 ‘Cool\'해지는 방법을 배운다. 민기처럼 모든 것을 뜨겁고, 대단하고, 흥분되는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태릉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는 국가대표가 되자 국가대표증 같은 건 없냐고 말한다. 그만큼 그에게 대표선수란 큰 일이었다. 하지만 태릉 선수촌에서 대표가 된다는 건 이제 그 세계 사람으로 인정 받은 것 밖에 안된다. 그것에 흥분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태릉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민기처럼 기뻐하고 날 뛸 수 있는 순간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그것도 금메달을 따는 그 순간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 그는 계속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건 곧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청춘이 시스템에 편입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처음에는 두려울 게 없었지. 그리고 이미 세상에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애들이 속물같고 우습기도 하겠지. 하지만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언젠가 그 세계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 나이에 다시 ‘아버지’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 처음 거기에 들어갈 땐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역시 나는 ‘베스트’였던 거야. 하지만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제는 후배도 생겼고, 그들을 하도 괴롭혀서 ‘미친개’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태릉은 그 미친개를 순한 애완견으로 만든다.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민기가 마루처럼 살 수는 없다. ‘베스트 홍’을 떼라는 스태프의 요구에 그는 ‘내 방식’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떼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 그럼 어떻게 할까. 무조건 개성 만세를 외치는 자신의 ‘Hot\'을 지킬까, 아니면 ’Cool\'을 받아들일까.


 민기는 그 문제의 해결을 ‘스승’과 ‘형’에게서 배운다. 수아를 좋아하는 것을 깨달은 민기는 동경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러나 동경은 절대로 민기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수아가 자신의 방식으로 민기의 기를 죽였듯, 동경은 민기의 속을 긁어 민기를 괴롭힌다. 덕분에 사고를 치는 건 민기다. 축구공으로 동경을 맞췄다가 코치에게 맞는 것도 민기고, 동경의 말에 참지 못하고 다시 술집에 돌아갔다가 취객과 싸우는 것도 민기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민기는 세상에 자신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는 ‘범생이’인 동경이 자기 대신 책임을 지는 것을 보면서 왜 태릉에서 얌전히 살아야하는지도 알게 되고, 더불어 자신의 일에 책임질줄 아는 동경에게 꼬박꼽가 반말대신 ‘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후 민기는 동경과 아무리 감정적으로 부딪혀도 자신의 위치(두 사람 사이에 낀 ‘똥’)를 솔직하게 인정하기도 한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튀는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성이 아닌 해악이 된다. 민기는 동경과 유도 선수단의 처세를 통해 그것을 깨닫고, 그때서야 자신이 ‘베스트’라는 오만함을 떨쳐낸다.


 그러나, 진정한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조직을 위해 개성을 죽였다 해도 ‘나는 나’다. 그런데 그걸 다 죽이고 살면 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베스트 홍’이 홍민기가 됐을 때 민기가 ‘통조림’이 됐다며 통곡하는 마루의 모습은 절실하다. 그것은 단지 민기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마루야말로 10대의 나이에 동료들의 왕따를 버텨내고, 그 몸에 먹고 싶은 것도 참으며 체조를 해서 자신의 세계 안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민기는 시스템에 발을 들이면서 그걸 포기해야 한다. 마루에게 그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17대 1로 싸웠다며 허풍을 늘어놓고, 말은 거칠게 하되 그만큼 거침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그 남자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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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태릉 선수촌’은 거기서 현실 순응이 아닌 절묘한 조화점(타협보다는 조화라고 해야할 듯 싶다)을 찾는다. 감독의 말처럼, 1류는 오히려 말 안듣고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것이 시스템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아무리 ‘장풍’을 날린다고 해서, 그게 유도 선수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가? 그렇게 자기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다만 조직과 어울리는 방법만 익히면 된다. 수아는 민기에게 민기가 축구 경기를 볼 때 해준 것처럼 빨래바구니를 엎어서 그 위에 올라가 TV를 본다. 그러고선 민기에게 “오늘 의자대신 바구니에 앉았다. 다음에는 더 참신한 거에 도전해 볼 예정”이라고 한다. 의자대신 빨래 바구니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그게 뭐 잘못인가? 그렇게 ‘Cool\'의 세계에 있는 수아가 자신의 스타일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민기는 ’스페셜 홍‘이 되어 통조림의 세계에서 벗어난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 건 여긴 내 세계고 여기서만큼은 내가 왕이라는 거”다. 다만 그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생기는 가치인 ’베스트‘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내세우는 ’스페셜‘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그 때부터 ‘Hot\'의 힘이 드러난다. 태릉 선수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Cool\'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청춘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건 ‘Hot\'이다. 그래서 동경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민기를 부러워한다. 물론 민기는 수준이 맞지 않는 인간이다. 수아와 동경이 서로를 정리하는 순간에까지 끼어들 정도로 에티켓도 모르고, 감정만 앞서 계속 사고만 친다. 동경의 말대로, 수아는 민기와 사귀면서 계속 싸울 것이다. 2진일 때도 올림픽 2관왕을 우습게 보는 남자와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민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찌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경은 이성적이고, 차분하며, 해결책을 먼저 찾는다.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Hot\'한 행동은 여자친구와 싸우고 난 뒤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같이 뛰어노는 정도일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먼저 행동하는 게 수아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민기는 다르다. 그는 자기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과자로 탑을 쌓아버리고, 좋아할 때는 아무런 수사 없이 그저 좋아한다고 말한다. 물론 부담스럽다. 늘 세련되게 사람을 상대하는 동경과,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주류 시스템에서 살아온 수아는 그런 민기 때문에 자기까지 ‘구차’해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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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민기는 동경이 못하는 걸 할 수 있다. 물론, 동경은 좋은 남자다. 그는 다정하고, 손쉽게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 그러나, 동경과 그렇게 지내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 이 ‘Cool\'한 ’태릉 엘리트‘의 삶을 살아야 한다. 크게 괴로운 일도, 크게 슬픈 일도 없는 상태에서는 동경과 수아처럼 살 수 있다. 하지만 20대에겐 그런 안정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그건 통조림의 삶이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무너지지 않는 완전무결한 인간에게나 통용될 일이다. 수아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하면서 처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때 그에게 필요한 건 ‘천재’ 편의 후반이 보여주듯 ‘울게 해주는’ 것이다. 오직 문제는 메달의 색깔뿐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엘리트이자 천재였다는 프라이드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2인자는 커녕 ‘보결’이 됐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지만 그 때 동경은 수아의 기분을 풀어주되 그 불안과 고통까지 감싸진 못한다. 그는 수아를 찾아가서 가볍게 수아에게 ‘미안한척’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쿨한 동경이 보기엔 수아는 이런 일을 한번의 실수쯤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잘하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Cool\'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해가며 상대방을 위로할 뿐 거기서 더 파고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동경은 수아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 보다는 기분좋은 위로를 해주고, 그 뒤에는 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놔둔다. 물론 그건 그와 수아의 관계에서 당연한 것이었지만, 후에 수아와 헤어지기 직전 고백하듯 그것은 ’무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수아가 정말 필요했던 건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고, 한번 ‘바닥’까지 떨어지게 만들어줄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 민기의 지적을 부인한다. 나는 보결도 아니고, 울고 싶지도 않고, 스트레스 같은 것도 없다. 마루가 수아의 대표팀 탈락을 보도한 신문을 보여줘도, 그는 오히려 그걸 자기 방에 붙인다. 마루 말대로 그는 ‘독종’이고, 어린 시절부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였다. 그래서 대표팀에서 탈락해도 ‘빠져죽기야 하겠냐’는 동경의 말대로 HOT의 ‘캔디’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한다. 하지만 민기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한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그는 사람이 실패하고 좌절할 때 울게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수아를 건드리고, 결국 울린다. 이런 민기는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런 민기의 접근은 수아의 마음에 그대로 파고든다.


 ▶ Life is Cool ?


 이런 두 남자의 차이는 그들의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상 생활에서는 분명히 동경의 방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는다. 취객이 덤비면 머리위로 손 올리고 있어야 하고, 자신을 긁는 기자에겐 웃음으로 대처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세련되게, 손해 안보게 대하는 사람에 가깝다. 아무리 갈등이 폭발직전이어도 살살 긁지 민기처럼 대놓고 ‘나 싸울래요’하지 않는다. 반면 민기는 사고치기 딱 좋다. 술만 마시면 주변 사람들부터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대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위해 살아갈 수 있다. 동경은 수영을 ‘마약’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한계가 온 시점에서 은퇴하는 것을 선택한다. 반면 민기는 ‘국가대표’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이종 격투기 단체의 제의를 거절한다. 물론 이성적으로만 본다면 동경의 선택이 옳고, 민기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민기가 계속 유도를 하기로 결정하고 난 뒤 벌어진 그의 시합에서 카메라는 여전히 텅텅 비어있는 관객석을 비춘다. 그가 아무리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정을 내렸어도 현실은 현실이다. 언젠가는 그 결정에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민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엔 말이야, 똑똑하고 잘난 거로만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마음 깊은 곳에 뭐 있어.”라고. 당신은 20대에, 혹은 바로 지금 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무엇이 없는가. 아무리 세상이 냉정하고 힘들어도 그것을 뚫고 계속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힘.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건 비록 남들이 보기엔 가치 없더라도 자신에겐 소중한 무엇을 갖도록 만드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등에 ‘스페셜 홍’을 붙이고 나오는 그 순간, 이종격투기의 음악대신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들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두 에피소드 ‘신기루’와 ‘봉우리’에서 동경이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은퇴를 결심한 그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현명하다. 지금 당장은 민기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몇 년 후에 민기가 왜 그 때 이종격투기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가 그 자신의 이성과 ‘여유’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했다는 데 있다. 그는 정말 끝까지 ‘Cool\'의 세계를 지키려 한다. 자기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껴안는 것을 봤다면, 직접적으로 따져볼 필요도 있다. 그걸 따지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서로‘ 이야기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동경은 자신의 ’Cool\'을 유지하기 위해 수아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움직인다. 수아와 민기의 포옹을 봤으면서도 모른척하며 결혼하자고 하고, 미리 수영장에서 영화를 볼 준비를 하고 수아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로맨틱하게 말하는 고백으로 프로포즈 한다. 하지만 지금의 수아가 바라는 건 준비된 프로포즈나 무엇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무조건 널 사랑한다는 거칠고 생생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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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아가 민기의 진심을 의심했을 때, 민기가 수아의 마음을 돌려놓은 건 ‘동경처럼’ 행동하는 민기가 아니라 ‘민기답게’ 술마시고 와서 마음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물론 사귀고나서도 이러면 아웃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나 동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지 못한다. 적어도 헤어지는 과정만으로 보면, 점점 ‘Hot\'으로 변하는 건 수아가 아니라 동경이다. 처음에는 수아가 동경을 뒤에서 안으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동경은 차분한 모습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다시 수아를 전화로 불러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때도 수아가 민기를 선택하자 ’민기처럼‘ 술을 먹고 찾아가 제발 돌아오라고 사정한다. 하지만 그 때 수아의 반응은 “오빠 취했어?”와 “오빠랑 함께했던 추억 너무 좋았어. 그거 망치지 마.”였다. 끝까지 쿨하려고 했던, 그리고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마찰대신 우회적인 심리전을 즐겨 사용한 남자는 여자의 마음이 떠나고서야 그것만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동경이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는 주차장 문을 그대로 차를 몰아 부숴버리는 모습은 그가 드디어 \'Hot\'한 세계도 받아들이게 됐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까지 이성을 지켜 수아에게 “잘먹고 잘살라”는 얘기를 하는 모습은 역시 동경답지만 말이다. 잘먹고 잘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비아냥에 가깝지만, 이 때 이선균의 연기는 잘살라는 말에서 살짝 어조가 차분해지면서 그것이 진심어린 말임을 확인 시켜준다. 그가 조금 더 일찍 수아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줬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수아가 민기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민기가 “이렇게 다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경은 자신이 은퇴문제로 괴로운 순간에도 오히려 수아를 달래려 했다.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에야 말했던 자신의 진심이었다. 내가 괜찮은 건 너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민기가 동경을 통해 태릉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듯, 동경도 민기를 통해, 그리고 수아와의 이별을 통해 사람의 또다른 일면에 대해 배운 것이다. 과거엔 “형은 쿨이 되요?”라는 민기의 말에 동경은 “언제나”라고 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동경은 “가끔은 아냐”라며 자기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이 과정속에서 수아는 자신의 진짜 속성이 단지 ’Cool\'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다만 엘리트였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삶의 자세를 배웠을 뿐이다. 울지 않기, 우아해지기, 어른스럽게 행동하기. 하지만 그의 내면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잠들어 버리고, 책상밑의 의자가 아니라 책상위의 의자에 앉는 것에 신나하며, 민기와 마루만 할 수 있다는 ‘도유’를 유치하다면서도 은근슬쩍 하고 싶어하는 내면이 감춰져 있었다. 비록 한 번 대표 선발에 탈락했다곤 하지만 그는 ‘올림픽 2관왕’이다. 이미 천재중의 천재라고 해도 누구도 부인 못할만한 사람이다. 다만 그는 처음 겪는 ‘바닥 생활’에 당황했을 뿐이다. 언제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실력으로 ‘Cool\'한 생활을 유지하는 모습. 어쩌면 수아는 동경보다는 마루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던 민기가 자기 마음에 파고들면서 드디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곧 민기와 동경이 고민하는 청춘의 현실과 열정의 문제와 그대로 겹친다. 그는 안정적이고 자신과 어울리는 동경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이성‘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민기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주저없이 민기에게 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수아가 민기를 선택하며 동경에게 하는 말은 ’태릉 선수촌‘의 주제를 집약한다. 그는 정말 끼지 말아야할 동경과의 만남에 ’자존심도 없이‘ 끼는 민기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선 민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불안불안해요.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래서 많이 싸워요. 좋아하는 것도 많이 망설였어요. 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자신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그런데 난... 난 그 긴장이 좋아요. 오빠처럼 편안하진 않지만 늘 기대가 되요. 두근두근해요.” 그거다. 동경은 사랑에도 머리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사랑은 머리’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이 끝없이 늘어진 평온보다는 행복하다. 수아는 민기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Cool\'한 현실과 ‘Hot\'한 꿈, 혹은 열정의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선택했다. ’태릉 선수촌‘은 그렇게 이성적인 현실과 마음의 열정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같은 것, 그걸 청춘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루는 반대로 ‘Cool\'을 받아들인다. 마루는 정말 자기 세계속에 갇혀 있었던 아이다. 그는 20대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10대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과 지성은 발달하지 못했으되 어른들의 처세는 본능적으로 알게 된 영악하고 불안한 아이가 됐다. 그래서 그는 체조에 그렇게 목멜 수 밖에 없다. 자신이 타인에게 맞추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건 자신의 체조실력 때문이다. 즉, 그에게 체조는 자신의 존재 증명 같은 것이다. 수아나 동경은 운동을 그만 두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루는 다리를 다치고 민기에게 “오빠 나 이뻐 체조 못해도?”라고 묻는다. 그는 자신이 체조를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수아가 슬럼프에 빠져도 비교적 조용하게 그걸 해결하는 반면, 마루는 슬럼프에 빠지자 폭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미 이룰 걸 다 이루고, 인간으로도 점점 완성되어 가는 수아는 극단적으로 양궁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마루는 조금만 삐끗해도 자신의 인생이 무너진다. 그는 아직 ’사람‘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가 아무리 어른인척 해도 힘에는 민기를 당할 수 없고, 말로는 동경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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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는 상당수의 운동선수가 그러하듯 ‘삐끗’해버렸고, 그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삶의 의지를 잃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옆에 있어줄 민기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마루를 기다리는 건 그가 재활훈련을 하지 않을수록 다리를 움직이기 어렵고, 체조는 커녕 일반 학생의 생활도 못할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 뿐이다. 그리고 그는 다리가 나아 민기와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꿈을 꾸면서 재활을 결정한다. 물론 그건 꿈이다. 전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루가 지금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재활’을 통해 마루도 체조기계에서 좋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고뭉치였던 민기가 어느덧 마루의 재활을 돕는 사람이 됐듯이. 실제로 수업시간에 민기와 통화를 하면서도 영어수업의 내용을 모두 알아들었던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던 마루는 재활을 거쳐 자기식대로 학교 생활에 적응한다. 교실 한 구석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었던 아이가 공개 수업에서 앞에 나서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이렇듯 청춘의 갈등과 해결, 변화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태릉 선수촌’의 시선은 곧 이 작품의 예술적 성취로도 이어진다. 이 드라마의 이야기 그대로, ‘태릉 선수촌’은 ‘Cool\'과 ’Hot\' 양쪽을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이 드라마를 전반적으로 이끌고 있는 건 ‘Cool\', 즉 간접적이고 섬세한 표현방식을 통해서다. 이 작품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여러 요소들을 곳곳에 깔아놨다. 캐릭터의 성격과 종목의 연관성을 보라. 수아가 직접 말한대로, 양궁을 하는 그는 ’평정심‘하나는 끝내준다. 아무리 속이 복잡해도 겉으로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슨 결정이건 심사숙고 한다. 또 늘 침착하고 냉정하며, 모든 걸 혼자 계획하고 끌고 나가려는 동경은 수영선수다. 그 반대라 할 수 있는 민기는 상대방과 치열하게 시합을 벌여야하는 유도선수며,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진 마루는 가장 개인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종목 중 하나인 체조를 한다. 또한 이 4부작 에피소드는 실질적으로는 불과 몇 개월간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가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은 ’4년‘이다. 민기가 대표선수가 되기까지 3년, 그리고 마루가 재활을 결정한 뒤의 1년. 4부-4년일 뿐만 아니라 올림픽과 올림픽 사이의 기간을 정확하게 맞춘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작품은 가을에 촬영됐지만, 매 회마다 조금씩 그 분위기가 바뀐다. 첫주 에피소드에서 두드러진 것은 햇빛을 이용한 밝은 분위기다. 민기와 수아가 추격전을 벌일 때나, 그들이 운동하는 녹색의 그라운드, 녹색으로 뒤덮인 잔디밭. 그러나 그 다음주에는 마치 여름처럼 비와 흙탕물이 작품의 이미지를 결정짓고, 세 번째 주에서는 곳곳에 낙엽이 가득 깔린 태릉선수촌의 모습이 중심적인 이미지가 된다. 특히 은퇴문제로 힘들어하던 동경과 수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낙엽깔린 벤치와 민기와 수아가 서로 사랑을 느끼던 낙엽 가득한 공간의 대화는 이 삼각관계의 지형에 변화가 생겼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서는 그 낙엽마저도 없어지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주로 배경으로 사용된다. 물론 이것이 4계절의 변화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4주째 에피소드의 시작이 2년전의 크리스마스로부터 시작되는 건 이런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들의 변화와 더불어 이뤄지는 이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는 처음에는 밝은 스포츠 드라마에서 일과 사랑 양쪽에서 모두 괴로운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변하는 ‘태릉 선수촌’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화면 끝에서 끝으로 가는 인물들의 동선을 최대한 살리거나, ‘태릉선수촌’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옷을 갈아입는 민기의 모습, 그리고 떠나는 동경의 모습을 세로로 길게 잡아낸 컷등은 와이드 화면비의 장점을 힘주지 않고도 잘 드러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인 미장센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조명의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 공간의 불빛들을 이용한 영상들은 각본이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태릉 선수촌’에 독특한 느낌을 부여한다. 수영장에서 민기와 동경이 대화를 나눌 때의 물빛이 주는 느낌이나 캐릭터의 복잡한 심리가 각자의 방을 채우는 조명들이 은은하게 깔리는 것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될 때 특히 그렇다.


 물론 이런 은유적인 표현은 각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민기와 수아가 포옹한 것을 본 동경은 민기에게 전화를 걸어 수아를 봤냐고 묻고, 수아를 만나면 그의 방 열쇠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그 시점에서 ‘방 열쇠’를 말하는 동경의 마음은 곧 수아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선언이다. 또 마루는 대회에 나가서 딴 금메달을 금메달이 가득 있는 서랍에 무심코 집어던진다. ‘Cool\'에 집착하는 동경의 캐릭터나 마루의 천재성같은 것을 아무리 늘어놓는다 해도 이런 묘사보다 더 마음에 와닿게 표현하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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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간접적인 표현들이 하나둘 쌓여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했을 때, ‘태릉 선수촌’은 단지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확실하게 터뜨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기가 ‘스페셜 홍’을 붙이고 다시 경기에 나설 때, 혹은 진흙탕에서 뒹굴 때, 민기와 마루가 단 둘이 있는 그라운드에 마치 비처럼 물이 쏟아질 때. ‘태릉 선수촌’은 그 부분이 주는 감정적 희열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만약 제작진이 끝까지 쿨한 표현에만 매달렸다면 ‘태릉 선수촌’은 좋지만 밋밋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릉 선수촌’에는 그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해결할 길이 없을 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순간을 멋지게 강조하며 차분하지만 ‘울컥’하게 만드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마루의 꿈이 진짜 꿈속에서 벌어질 때 킨의 ‘Bedshaped\'가 흘러나오면서 펼쳐지는 그 꿈결같은 활강의 이미지. 그것이야말로 현실과 꿈, 혹은 이상의 결합이다.


 ▶Cause it\'s bitter sweet symphony that\'s life.


 그 결과로, ‘태릉 선수촌’은 주제와 형식 모든 면에서 우리가 드라마에서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청춘의 현실적인 모습을 복원한다. 정말로 20대를 지나본 사람들은 알지 않는가. 우리 스스로 비겁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때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리고 어떤이는 지나치게 빨리 현실에 순응하지만, 또다른 어떤이는 한참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미친듯이 달려들기도 한다. ‘태릉 선수촌’은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쿨 핫’을 읽으며 동경이를 동경하던 그 세대는, 이제 다시 ‘태릉 선수촌’이라는 한 사회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너무 냉소적이지도, 너무 거창한 꿈만 존재하지도 않는 우리의 그 달콤 씁쓸한 20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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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민기가 이제 퀸의 ‘Don\'t stop me now\'뿐만 아니라 버브의 ‘Bitter sweet symphony\'를, 그리고 그 뮤직비디오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태릉 선수촌’의 BGM중 한 곡으로 등장한 이 노래는 멜로디 자체는 참 ‘Cool\'하다. 약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툭툭 내뱉듯 진행되는 멜로디는 힘이나 열정이라곤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현악세션은 계속 이 곡을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그렇게 건들건들 거리면서도 무조건 ’직진‘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차가 앞을 막아도 끝까지 가는 그런 남자. 아마 민기도, 수아도, 동경이도, 마루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앞으로 끝없이.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호모 드라마쿠스-dramamo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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