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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홀린 광대 (2018년 서울예대 문창과 수시 산문)

학예회(1.225) 2018.10.10 19:43:14
조회 1146 추천 1 댓글 2

달에 홀린 광대


아파트 공동 출입문 밖으로 나오니 베란다에서 봤을 때보다 빗발이 더 거세져 있었다습기를 가득 머금은 먼지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하은이는 곱게 접힌 검은색 장우산을 건네주며 말했다펼치면 더 예쁘다나는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들어섰다우산 안으로 그녀가 자랑하던 밤하늘의 뭇별이 펼쳐졌다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하은이네 베란다를 올려다봤다크림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위로 주홍빛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하은은 집안으로 들여보내 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아무것도 묻지 않는 통에 두 사람이 헤어졌단 소식을 들었다고호진에게 직접 들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하은은 문을 열어주고는 부엌 의자에 앉았다식탁 위로 찌그러진 맥주 캔이 널브러져 있었다내가 오기 전부터 저렇게 팔베개를 하고 엎드려 있었던 듯했다어깨끈이 가느다란 실내복을 입고 있어 마른 등 위로 뼈가 도드라진 걸 엿볼 수 있었다방안은 어둡고 습했다누군가의 감긴 눈 속 같았다나는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난간에 팔을 걸친 채 주차된 자동차와 화단에 심어진 철쭉나무 따위를 내려다봤다그러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 있는 걸 발견했다두 녀석이 뺨을 부비고 있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칙칙부싯돌 바퀴 헛도는 소리가 들리다 그쳤다우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입에 물려 있는 담배가 보다 가벼워지길 기다렸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던 자리는 이제 까맣게 젖어 있었다바짓단이 차갑고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나는 다시 걸었다몇 발자국 떼지 않았는데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묘하게 달라졌다마치 무어라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나는 우산을 옆으로 내렸다비구름이 빠르게 거치면서 달이 서서히 드러났다베란다 쪽을 돌아보니 여전히 실루엣이 비쳐 보였다.

진호로부터 하은을 처음 소개받던 그 날도하은은 혼자 울고 있었다셋이서 술을 마시던 중 진호가 실언을 했고 그 자리에선 잘 무마된 듯싶었다그런데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나선 하은은 도로변에 걸터앉은 채 훌쩍이고 있었다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남자친구인 호진을 대신 내보냈을 것이다나는 그저 화장실이 급했을 뿐이었으니까그런데 하은은 내가 자기를 위해 일부러 나온 줄 알았는지 더 펑펑 울어대기 시작했다나는 아랫도리로 파고드는 요의를 참으며 그녀가 울음을 그치도록 애써 농담을 걸었다술에 취해 울고 있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능력 따위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그러나 울고 있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화장실을 갈 수는다시 술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적어도 그때는 그녀를 웃겨야겠단 생각뿐이었다내 농담은 별 효과가 없었다다만 요의를 참느라 다리를 배배 꼬는 내 모습이 그녀의 눈엔 웃기게 보인 듯했다그녀는 웃었다그러곤 다음날 기억하지도 못할 키스를 내게 했다.

오늘 내가 찾아왔던 일도 하은은 잊어버릴지 몰랐다어쩌면 진호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비가 완전히 그쳤다비구름이 전부 걷혔는데도 달은 기름막이 씌워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다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주차장 입구 쪽에서 젖은 몸뚱이를 잔뜩 경직시킨 채 검은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나는 꿈에서 깨듯 우산을 펼쳤다우산을 쓴 채로 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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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간이 눈팅하며 위로 받던 사람입니다. 활동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심심풀이 삼아 써봤습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예대 갤러리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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