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고양이를 베다 <남전참묘>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9.7) 2023.07.20 13:45:28
조회 267 추천 3 댓글 18
														
0490f719b1856eff20b5c6b011f11a390e5a6003fd8b2059f7


고양이를 베다
남전참묘(南泉斬猫)

중용에서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현인은 배워서 알고, 보통 사람은 고생한 다음에야 겨우 안다고 했다.

<공 안>

동쪽과 서쪽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남전 선사가 마침내 고양이를 잡아들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베지 않고, 말하지 못하면 벨 것이다.”
대중들이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녁 늦어서, 출타했던 조주가 돌아왔다.

남전이 있었던 일을 말하자,
조주가 짚신을 벗어 머리에 얹고 나갔다.

보고 있던 남전이 말했다.
“자네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南泉和尚,因東西堂拿猫兒,泉乃提起云“大染道得即救,道不得即新却也•聚無對,泉遂斬之,晚超州外歸,泉军似。 州乃脱履,友頭上而
出泉云:“子若在即救得猫兒…”
《福宗無門關》 大正藏48, 294c.

-

남전(南泉, 748~835) 선사는 마조도일의 제자로
백장, 서당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선사 중의 한 사람이다.

예전의 승당에는 수행자들이 수백 명씩 모여서 공부했다.
이곳에 우연히 도둑고양이 한 마리 들어왔다.
며칠을 두고 화제가 될 만한 일이다.
먼저 동쪽 승당에 있던 스님이 고양이 밥을 주었는데,
서쪽 승당에 있던 스님이 가만히 보니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서쪽 승당의 스님이 더 일찍, 더 있어 보이는 먹이로 고양이를 데려갔다.
결국 서로 내 고양이라고 우기면서 다툼이 일어났다.
다툼은 점점 커져서 동쪽과 서쪽 양쪽 승당에 있던
스님들 모두 가담한 패싸움으로 번졌다.
설마 그럴까도 싶기도 하지만,
생활이 단순하다 보면 아주 소소한 일도 지나치게
신기해하거나 애착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낯선 사람이라도 한 사람 다녀가면 며칠을 두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고양이 키우는 건 제법 쏠쏠한 재미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어쨌거나 패싸움으로 번진 광경을 보고 있던 남전 선사는 기가 막혔다.
결국, 고양을 잡아 한 손에는 시퍼런 칼을 들고 대중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다.

”말하면 베지 않겠으되, 말하지 못하면 벨 것이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더구나 무슨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말하라고만 윽박지르니
더욱 당황했을 것이다.
결국,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베고 말았다.

-

방을 잘 쓰기로 유명한 이는 덕산(德山) 선사였다.
그는 수행자들에 늘,
”말해라 말해! 말하면 30방이요, 말하지 못해도 30방이다.“
하고 달려들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말하면 베지 않고, 말하지 못하면 벨 것“
이라는 남전 선사의 말도 덫이다.
애초부터 말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사람이 조주 선사다.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으로 말했다.
말함과 말하지 않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섰다.
짚신을 머리에 얹거나 손에 들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굳이 짚신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는 단지 두려움에 갇히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어짜피 도는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안다고 하면 잘못된 깨달음이요,
모른다고 하면 그냥 멍청한 것이다.

-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은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칸트는 판단력을 ‘규정적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과 ‘반성적 판단력(reflektierende Urteilskraft)’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모자는 머리에 그리고 신발은 발에 신어야 한다는 기존의 규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규정적 판단력이라면, 기존의 규칙을 부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는 판단이 바로 반성적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규정적 판단력이 규칙을 따르는 생각이라면, 반성적 판단력은 규칙을 창조하는 생각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규정적 판단력이 지배되는 사람은 기존 규칙을 따르는 충실한 노예, 혹은 기존 규칙에 집착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반성적 판단력을 수행하는 사람은 새로운 규칙을 창조하는 주인, 혹은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 비추천

3

고정닉 0

3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예인 안됐으면 어쩔 뻔, 누가 봐도 천상 연예인은? 운영자 24/06/17 - -
공지 ☆★☆★알아두면 좋은 맞춤법 공략 103선☆★☆★ [66] 성아(222.107) 09.02.21 49095 57
공지 문학 갤러리 이용 안내 [100] 운영자 08.01.17 24374 21
292333 설사똥을 먹으니 정액을 분출하는 기분이다. 시인(211.36) 22:32 3 0
292332 글 왜 써 보리밭(106.102) 22:21 10 0
292331 글 왜 쓰는지 모르겠다 [4] 보리밭(106.102) 22:15 19 0
292330 시ㅡ 조현병II 보리밭(106.102) 21:57 24 0
292329 안녕하세요 순두브(218.239) 20:20 13 1
292328 [문학] 머니 더 아틸러리 등장인물 능력치 덕화명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58 11 0
292327 학교 다닐때 다 배우는 거긴한데 함 봐라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51 15 0
292326 비밀을 영국에서 skeleton 해골로 불러 a(118.235) 19:40 8 0
292325 [창작시] 삶은 계란 [1] 문갤러(222.118) 17:32 41 2
292324 엠네스티도 내 이야기 해 a(118.235) 16:19 17 0
292323 국제 엠네스티가 내 이야기 중인가 보다, [1] a(118.235) 16:17 20 0
292322 사회문제를 인간역학 문제화 한 것도 코로나19 부분이었는데 [1] a(118.235) 16:03 15 0
292321 오늘의 추천 시 오들덜뽕두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26 18 1
292320 돌봄 중심을 해체하라는 거잖니 a(118.235) 15:23 15 0
292319 생각에잠긴다 오들덜뽕두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9 21 0
292318 모닝커피 오들덜뽕두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5 23 0
292317 만약에 / 태연 [1/1] 이정석(218.52) 12:47 31 0
292316 안개 / 정훈희 송창식 [1/1] 이정석(218.52) 12:21 34 0
292315 테스 형 / 나훈아 [1/1] 이정석(218.52) 11:45 23 0
292314 그 겨울의 찻집 / 조용필 [1/1] 이정석(218.52) 11:26 33 0
292313 평범한 찌개는 못 먹겠다 ㅇㅇ(59.25) 11:23 19 0
292312 고흐 정도면 운이 좋은 케이스지 [5] ㅇㅇ(59.25) 11:14 49 1
292310 청춘은 평생이며 노화는 인생의 내리막이다. 비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33 17 0
292309 미군부대를 사실상 게토, 젠트리피케이션, 으로 보아 a(118.235) 09:56 32 0
292308 영어시 조져봤다 [5]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34 72 0
292307 접대비로 골프비용을 세금으로 돌려주면 a(118.235) 09:09 16 0
292306 엠제이 ㅇㅇ(118.235) 08:49 14 0
292305 핏바람 ㅇㅇ(211.234) 08:39 18 0
292304 손목 [1] ㅇㅇ(211.234) 08:14 23 1
292303 평가해주세요 문갤러(61.108) 03:31 44 0
292302 별 헤는 밤 / 윤동주 [1/1] 이정석(218.52) 02:33 53 0
292301 옛 사랑 / 이문세 [1/1] 이정석(218.52) 02:17 38 0
292300 자유 / 안치환 [1/1] 이정석(218.52) 01:38 42 0
292299 야상곡 / 김윤아 [1/1] 이정석(218.52) 01:07 52 0
292298 그런 것 같애 공령지체(118.235) 00:44 19 0
292297 후후후 공령지체(118.235) 00:38 39 0
292296 ㄱㅎㅇㅇㅇㅕㅇ 공령지체(118.235) 00:27 44 0
292295 물자와 자본만 갖춰 진다면 나는 혼자사는 것도 행복할 것 같음 시티팝f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18 0
292294 플롯을 쓰고 있었는데 고양이 달래고 나니까 에너지가 다 빨렸음 시티팝f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5 0
292293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저 내적 욕망의 분출 시티팝f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2 0
292292 어디서 나 혼자만의 이야기를 해야 되나 모르겠다 시티팝f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0 0
292291 평가받고 싶습니다 토번호(14.33) 06.20 38 1
292290 평가받고 싶습니다 토번호(14.33) 06.20 38 1
292289 문학을 한다는 것은 ㅇㅇ(59.25) 06.20 40 0
292288 형도 그랬다 [2] ㅇㅇ(59.25) 06.20 54 1
292287 시중이란 말 ㅇㅇ(59.25) 06.20 86 0
292286 천상병의 애기들국화 ㅇㅇ(59.25) 06.20 40 0
292284 희랍 고전의 미스테리 [3] 이정석(218.52) 06.20 55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