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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사형수 (남킹 단편소설)

남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8 00:07:41
조회 132 추천 0 댓글 0
														





그녀, 사형수

































교도소 철망이 열리면 나는 심호흡을 한다. 이제 익숙한 곳이지만, 불안이 내면의 깊은 곳에 여전히 박혀있다. 동시에 흥분이 인다. 스스로 선택한 방문이지만 확신은 그다지 없다. 그저 나는 돈이 필요했다. 무명 작가. 문단에 이름 석 자는 일찍이 올렸지만, 대중을 사로잡지도, 비평가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저 그러한 삶이 이어진다. 밥 먹고 살기 위해, 남들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나는 교도소를 방문한다. 재소자들에게 작문을 가르친다. 글쓰기 수업. 주제는 없다.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아무 글이나 쓴다. 나는 맞춤법, 띄어쓰기 같은 기본 문법만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대한 내 느낌을 간단하게 전달하면 된다. 사실 노력 대비 보수가 꽤 후한 편이다. 지원하는 작가도 많지 않다. 그러니 그저 감옥이라는 부담감만 떨쳐 버리면 꽤 오랫동안 우려먹을 수 있는 쏠쏠한 부업이다.

 

지난달에는, 언론플레이에 관심이 많은 교도소장의 노력으로, 모 방송 프로그램에도 잠시 소개가 되었다. 덕분에 창고 구석에 쌓여있던 나의 책들이, 오래간만에 기지개를 켰다는 소식도 들었다. 물론 잠깐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나의 글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내던 젊은 시기가 있기는 있었다. 내가 천재라고 착각하던 시절 말이다. 신춘문예에 연속으로 당선하고 지방 신문에 칼럼 하나를 맡을 때였다. 적당한 보수와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리고 추종자들로 둘러싸인 나의 미래가 환각처럼 펼쳐지던 날들. 나는 서둘러 책을 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다. 한 편, 두 편, 세 편.

 

4개의 철문이 차례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나는 도서관 옆 라운드 탁자가 놓인 방에 도착했다. 3개의 탁자에 10명의 수강생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몰린다. 모두 여자다. 같은 재소자 복장이지만, 화사한 분홍빛과 덤덤한 회색, 서늘함과 따스함, 늙음과 젊음, 무표정과 반항이 섞여 있다. 그들의 글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치졸한 신세 한탄부터, 지나간 날들에 대한 추억과 연민, 혹은 후회로 점철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고백, 세상에 대한 적개심, 배신과 따돌림, 불우한 숙명으로 이어지는 자조, 그저 시간 보내기용으로 묘사하는 적나라한 야설도 등장한다.

 

글의 수준은 낮지만 다들 진지하다. 나는 그들을 희망으로 인도하는 착한 거짓말을 한다.


“지난주보다 좋아졌군요.” 


“네, 많이 나아졌어요.” 


“표현이 풍부해졌어요.” 


“좋은 글이군요.” 


“마음에 닿는군요.” 


“다음 주가 더 기대됩니다.”

 

**********

 

1시간 반이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아직 30분이 남았다. 나는 다른 한 여자를 기다린다. 일반 재소자와 같이할 수 없는 여인. 사형수.

 

여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 친구와 공모하여 강도질했다. 가족을 협박하여 돈을 갈취한 뒤, 불을 질렀다. 3명이 죽었다. 그녀의 의붓아버지와 이부동생들이었다.

 

방화는 우연이라고 변호사는 항변했다. 하지만 경찰은 트렁크에 난 신나 자국을 증거로 제시했다. 남자 친구의 차였다.

 

나는 다시 4개의 문을 통과한다. 일반 면회실을 지나 복도 끝, 정사각형의 골방에 도착한다. 장식이라곤 CCTV뿐인 온통 하얀 곳. 모든 모서리가 라운드로 된 탁자와 의자가 중앙에 있다. 나는 그곳에서 항상 그녀를 기다린다. 장기수 혹은 사형수 전용 면회실.

 

흥분이 밀려온다. 익숙하지만 늘 낯선 감정이 감싼다. 나는 그녀를 항상 생각한다. 어리석으리만큼 뜨거워진다.

 

그녀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여자는 너무나 단순하고 해맑아 보였다. 마치 내가 사형수인 것처럼 느꼈다. 창백한 피부와 투명한 눈빛, 맑은 미소로 그녀는 낯선 이에게 말했다.

 

“아저씨와 섹스하고 싶어요.”


“CCTV가 비추지 않는 좁은 공간이 있어요. 바로 저 구석이죠.” 그녀는 열정에 사로잡힌 듯 단발을 흔들며 발그레한 볼을 부풀렸다.

 

그녀는 느긋하다. 마치 갇힌 공간을 부유(浮遊)하는 햇살 속의 먼지 같았다. 여자는 고사리 같은 손을 턱에 괴고는 끝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노트북을 펼치고 녹음기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여자의 목소리가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흘러나온다. 나는 그녀를 자판에 담는다. 여자가 글을 남기는 유일한 방법. 그녀는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흉기가 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허락되지 않는다.

 

여자의 문장력은 놀랍다. 직선의 광선에 갇혔으나 빛보다 더 선명하게, 그녀가 선택한 단어가 이어지고 엮어진다. 그녀가 내게 내놓은 문장은 화려함을 감춘 응축과 포용이 뒤섞인 황홀한 습지처럼 부스스하다. 낙서와 무질서, 혼란스러운 메모 덩어리들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질서정연하게 이어나간다. 혹은 느닷없이 거친 문장이 치열하고도 단순하게 불쑥 솟아오른다.

 

나는 그녀의 언어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갖고 싶은 문장들. 내가 늘 건사하고 싶었던 언어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겨우 한 장이 끝났는데 숨이 헉하고 찬다. 격렬한 연주가 끝난 음악가처럼 두근거린다. 나는 그녀를 쳐다본다.

 

“죽기 전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뒤져 볼 생각이에요. 선생님.”


“그냥 첫 장만 읽으면 감이 와요. 끝까지 읽어야 할지 말지.”


“이번 주에만 벌써 서른 권 넘게 읽었어요. 물론 끝까지 읽은 책은 단 2권이죠. 양철북과 악마의 시.”


그녀는 글이 주는 수혜의 병 속에 잠겨있다. 여자의 운명은 너무도 잔인하게, 죽음 앞에 비로소 삶의 가치를 내비친다.

 

나는 순간, 그녀가 사형수라는 것에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우리는 모두 그날을 알 수 없는 사형수다. 그녀는 애써 살기 위해 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된, 어찌 보면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다. 삶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맞추어 놓으면 된다.

 

나는 타협을 한다. 그녀는 완전히 나에게만 있다. 여자의 사형 집행일은 내 소설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다. 나는 그녀의 재능으로 명예를 벌고, 그녀는 나로 인해, 사람들 속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소멸하기까지.

 

나는 그녀의 생각을 거두고 빈 녹음기를 건넨다. 그리고 그녀의 요구대로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긴다. 앙증맞은 입술에 나를 포갠다. 하찮은 내 몸뚱이를 계약의 징표로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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