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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39.118) 2015.04.19 12:42:35
조회 214 추천 0 댓글 6

‘사시’는 한적한 카페였다. 냇킹콜인지 벤.E.킹인지—어쩌면 레이 찰스일지도 모른다—아무튼 흑인으로 짐작되는 가수가 스피커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고 있었는데,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막으며 율을 찾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율은 눈에 띄는 곳에 있진 않았다. 구석진 곳에서 소파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율을 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었다. 이미 다 늙어빠진 율은 손을 겨우겨우 들며 내 인사에 화답했다. 나는 재빨리 그의 앞으로 가서 그처럼 소파에 몸을 구겨 넣었다. 어린아이 뱃살처럼 딱딱함이라고 하나도 없는 그 소파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율은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앞에 있는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요즘은 이런 곳이 좋더라구.

 

율의 목소리는 이미 저 멀리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의 입 모양을 통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기괴하게도, 율은 수화를 배우라는 나의 제안을 무시하고 있었다. 나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커피 마셨어?

 

나는 그의 앞에 있는 에스프레소를 턱으로 가리키며 율에게 물었다. 율은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버린다. 카페인에 그토록 취약한 사람을 그전에도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생각은 없었다. 율은 내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모금도 안 마셨어.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자신의 말을 내게 전달하려고 애를 썼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그래봤자, 내게 보이는 건 숭숭 뚫린 잇몸과 몇 안 남은 치아뿐인데. 그 끔찍한 몰골을 보기 싫어서 나는 고개를 돌리며 율의 입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미안해.

 

율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끔찍한 촉감이었다. 덕분에 나는 반사적으로 율의 손에서 내 손을 빼냈다. 이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율이었다. 나는 아까 그가 했던 말을 따라서 내뱉었다.

 

—미안해.

 

괜찮다고, 율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율에게 전혀 미안한 감정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사시’에서 서로를 쳐다봤다. 동갑이지만, 율은 나보다 늙었고, 나는 율보다 젊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 본 결과, 담배 말고는 답이 안 나왔다. 율은 하루에 한 갑씩 뻑뻑 피우던 대단한 골초였고, 나는 담배를 쳐다보지도 않던 비흡연자였다. 아직도 율의 방에는 못다 핀 말보로 블랙이 가득 놓여있었다. 율은 그만큼 대단한 골초였다.

 

 

 

—나가자.

 

언제나 그렇듯, 침묵을 깬 건 나였다. 나는 잠이 오는 참이었고, 그건 율도 마찬가지였다. 율은 볼썽사납게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내가 율의 어깨를 톡톡 건들며 소리치자, 율이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3초도 안 돼서 다시 주저 앉아버렸지만. 율은 아구구, 하면서 그대로 소파에 다시 파묻혔다.

 

—뼈 삭은 거 까먹었어?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율은 응, 까먹었나 봐, 라고 내게 답했다. 정말이지 짜증나는 친구였다. 율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한심한 눈으로 율을 쳐다봤다. 여전히, ‘사시’에서는 어떤 흑인 가수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가 장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님들은 왜 노래를 잘하는 걸까. 언젠가 한 번 율에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율은 모르겠다고 답했고, 그렇게 그 질문은 영원한 미제로 율과 나 사이에 남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잠이나 자야겠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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