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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때 쓴 엄청나게 못 쓴 더욱 못 쓴 나으 SF 단편이다.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6.06 01: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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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절대자


                    한처음에 없음이 있었다.

                                               -팽창 이론.


내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는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약간은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흠, 흠.>

나는 의사 전달 기관을 가다듬고 도구 사용 기관과 이동 기관도 제대로 움직이는지 점검했다.

왕 앞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되므로 이 모든 것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실수!

만약 그것을 저지른다면 지금까지 힘겹게 쌓아올린 모든 것이 단숨에 무너질지 모른다.

전자기 신호가 숨가쁘게 내 지능 기관을 돌아다녔다.

내 뜻한 바를 왕 앞에 제대로 펼쳐놓을 수 있도록 암기하고 좀더 감동있게 만들려는 애타는 노력이다.

나는 나를 둘러 싼 보호 기관 위에 갖가지 악세사리를 덧붙인다. 그 악세사리들의 매뭇새를 최대한 단정하게 다듬는다.

왕 앞에 나선 경험은 적지않았지만 언제나 새롭다.

처음 왕 앞에 과학 작가로서 나섰을 때의 느낌 그대로다.

과학이라고도 불리는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왕의 집념은 수많은 과학 작가들을 탄생시켰고 나 또한 멋모르고 그 대열에 동참했었다.

현실에 제대로 맞물릴 수 없는 이야기 - 이론이라고도 불렸다 - 를 만들어낸 과학 작가는 영생을 박탈당해야 했다. 영생만 잃는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회로부터도 영구히 추방당해야만 한다.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되었다. 난 왕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전번 발표 때 번 돈이 다 떨어져서 부득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에겐 부업이 없었던 것이다.

내게는 아직 영구 임대 주택이 없다.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번 발표 때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그 주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택을 사고 나면 생활하기 빠듯하겠지만 다른 직업을 얻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래. 다른 직업! 나는 꼭 직업을 바꿔야겠다. 상상력을 쥐어짜는 일은 괴롭다. 과학이 모든 것을 파악하는 시대엔 더더욱 그랬다.

똑바로 움직여야 한다. 왕은 예절을 중시한다.

수많은 기둥들이 왕을 둘러싸고 있다. 기둥들은 어딘지 앙상한 나무를 닮았다. 잎새도 잎눈도 없이 창백한 가지만 남은 나목(裸木).

번쩍거리는 온갖 과학의 발명품들이 왕을 감싸고 돈다.

왕은 무자비하다. 왕의 냉혹한 판단 기관이 나를 훑는다.

<발표하라.>

왕의 의지가 나를 갈갈이 찟는 듯하다.

조금이라도 침착해지기 위해 지능 기관을 굴려본다.

오롯히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야기도 현실의 요소들을 벗어날 수 없다. 바탕이 되는 뼈대는 바뀌지 않으며 단지 보는 눈만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옛날 이야기들도 아무리 엉성하거나 잘못된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훌륭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초존재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입니다.>

초존재 이야기는 신 이야기의 변형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에 해당될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지성체가 죽은 뒤에 그를 거두어 영원한 진보 안에 놓아두는 위대한 존재인 초존재.

어떤 이들은 초존재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했다.

자연이 무한하다는 환상은 우리의 왜소함 때문에 생긴 것이고, 자연이 순환적이라는 환상은 계절 순환 탓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진보라는 것도 환상이라는 것이 그 이들의 주장하는 바의 요지다.

언젠가는 극한이라는 것에 부딪칠 것이고 그렇게되면 끝없는 반복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지 않겠느냐고.

그 지겨움에 빠지느니 모든 지성체가 한꺼번에 자살해 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에 대해 내가 반박한 적이 있다. 이렇게.

<목숨이란 건 소중한 게 아닐까요.

당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필연도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목숨의 본질이 나와 남을 분별하는 것이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이기주의를 배태하게 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분별은 마음을 만들었고 마음은 지능과 관찰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분별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 아닐까요.

지금 우주는 지성체로 인해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지성체는 우주의 일부니까요.

이런 특수한 상황 따라서 귀중한 상황을 깨뜨리는 것을 바란다는 당신들의 기도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도록 유도할 수 있는 목숨에의 외경이 당신들 마음 안에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초존재를 독자적으로 생각해 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미 그런 개념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멋모르고 좋아했었다. 드디어 내가 뭔가를 창조해냈다고. 과학 작가를 꿈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아마도 그것이었을 것이라 회상된다.

이미 그런 개념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난 뒤에도 과학 작가에의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종교와 우주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유추해낼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초존재니까.

내가 말을 잇는다.

<초존재라고 허무의식에 빠지지 말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높은 지능을 지닌 목숨일수록 허무의식에 몸부림치기 쉬우니까요. 극한의 지능을 지닌 초존재야말로 오히려 허무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을 것입니다.>

왕은 긴장한 듯이 보였다. 아니 불안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다시 왕을 보았을 때 그런 기색은 사라지고 없었다.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우주의 어느 곳이든 1입방 미터 안에는 지구 바닷물 모두를 끓여 없엘만한 에너지가 숨어있다고 지구의 노벨상 수상자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끊임없이 끌어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빛과 거의 같은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무한한 에너지를 영원히 공급해주어야만 합니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쓰면서 빛과 거의 같은 속도로 나는 존재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오로지 속도만을 추구합니다.

설사 진공의 에너지까지, 초시공의 에너지까지 모조리 꺼내 쓴다 하여도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라진 세계에는 최대 가능 엔트로피 밖에 남지 않습니다.

팽창도 못 합니다. 얼어붙습니다.

없음조차 없습니다. 없음이란 양자 역학적 진공의 초에너지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조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없음조차 없는 없음을 만들기 위해 그 존재는 움직입니다.

우주는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존재도 우주의 일부입니다. 결국 그 존재의 목적은 우주의 자살이 됩니다.>

나는 이야기를 마쳤다. 왕이 뜻을 나타낸다.

<지혜의 마지막 열매는 떨어졌고, 과학의 마지막 조각은 끼워졌다. 완성된 것이다.

이제 더이상 과학 작가는 필요하지 않다.

너는 속도의 절대자를 훌륭히 그려내는 이야기를 해냈다.

나는 속도의 절대자를 따른다. 과학의 마지막에 나타날 수 있는 그것을.

과학은 모든 것을 알아냈고 이제 추구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추악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추구할 수 있는 단 하나는 죽음이다.

과학은 완성되어 속도의 절대자로 바뀌었다.>

나는 반박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왕이 뜻을 나타낸다.

<빛은 느려터졌다. 그가 오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지. 그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연료로 쓸 것이다.>

나는 속도의 절대자를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도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을 빛의 속도로 느릿 느릿 통과하고 있다. 그가 올 날이 머지않았다. 모든 시공이 폭발하는 고통의 순간이. 시간이 영겁이 아니며, 공간 또한 무한이 아니라면 우주는 틀림없이 자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그 다음은.

그 다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속도의 절대자도 에너지 보존 법칙을 깨뜨릴 수는 없다. 공학이라는 건 결국 인간이 자연 법칙을 이용해서 스스로에게 편리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학문이니까.

제아무리 뛰어난다한들 결국 공학의 산물인 속도의 절대자도 그럴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진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우주가 사라질 것이다. 모두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라는 개념 자체가 목숨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세계는 속도의 절대자가 쓸고 가더라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 뿐이다. 영생 또는 최대 가능 엔트로피라는 이름의 영원한 죽음 속에서 영원토록.

이 이야기는 실상 끝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려진 세계가 끝날 수 없는 것이기에.

하지만 결국엔 끝을 맺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형식을 지닌 모든 이야기의 운명이지만, 이야기가 이야기꾼 없이도 스스로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작은 희망을 지녀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비록 위안을 얻으려 만든 헛된 거짓일지라도.

죽음을 기다리며....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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