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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반쪽(121.144) 2015.06.17 14:04:14
조회 52 추천 1 댓글 1


나는 사과를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나에게 잘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가 내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서술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언어화하는 순간부터 그가 나에게 저지른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가 나에게 저지른 잘못이 아직 완벽해지기 전에 내게 사과를 하길 바랐다. 골목을 도는 시점부터, 나는 최대한 화난 얼굴을 꾸몄다. 참새소리가 전깃줄 사이로 날아다녔다. 나는 그가 사는 빌라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철문을 두드렸다. 그가 기름진 머리를 긁으며 문을 열었다. 나는 대뜸 그의 가슴팍을 밀치고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따져댔다. 그런데 그는 전전긍긍하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화난 표정으로 나의 가슴팍을 따라서 밀치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는 소설속의 인물이었고, 남자였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성향에 알맞게 소심하고 방어적이어야만 했는데,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서술자에게 따지고 들려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내 옆에는 그 남자가 누워 있었다. 발가벗은 채였다. 깊은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색색거렸다. 나는 그의 뺨을 때려서 잠에서 깨웠다. 여러 차례 뺨을 때리며 나에게 사과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몇 차례 모질게 얻어맞은 남자는 잠에서 깨어 고개를 숙이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내게서 자신을 방어했다. 남자의 꼴이 초라했다. 덜렁거리는 풀죽은 고추에 눈길이 먼저 갔다. 남자를 때리던 내가 지겨워져 우연히 고개를 들어 왼쪽을 보니 창문은 반지하의 집답게 높게 달려 철창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때리기를 멈추고 철창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커다란 자동차 바퀴 하나가 소리를 내면서 굴러갔다.

다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배경이 바뀌어 있었다. 먼저 창문들이 길쭉해졌고, 철창들도 창문을 따라서 더 길어졌다. 환자들이 마치 제 2차 세계대전 때의 유대인들처럼 누렇게 낡은 환자복을 입고 이불을 깐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내 손에는 책 한 권이 쥐어져 있었는데, 책 속의 남자는 가족과 친척에 대한 욕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책의 페이지들을 막무가내로 찢어서 구겼다. 종이를 집어던지자 수간호사가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았다. 쳐다만 볼 뿐 아직 제어하지는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가족들이 면회를 오길 기도했다. 그러는 것 말고는 나에게 가족들과 연락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내 사과를 받아줄까. 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나를 이곳에서 꺼내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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