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어제 밤에 부랴부랴 초고 쓴 건데 어때?모바일에서 작성

12ㅇㅇ(211.36) 2015.08.12 17:39:22
조회 223 추천 0 댓글 10

내가 글 쓸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여느때처럼 경찬의 시덥잖은 한마디에서 였다.
"우체통 정리 사업이 시작된데."
우동을 먹으려 그릇에 처 박은 고개를 들어 경찬을 바라보았다.
"우체통?"
"전국적으로 안 쓰이는 것들을 처분한다나봐."
녀석은 슬픈 이야기라도 한다는 듯이 고개를 내리깔며 말했다. \'처분\'이란 단어에 묘하게 악센트를 주어서 녀석이 의도하는 바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때의 우체통도 없어지겠네."
녀석은 예상했단 듯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아쉽지 않아?"
라고 조용히 물었다. 무엇이 아쉽다는 거지. 내가 그 글을 우체통에 버린 것? 내가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
"전혀, 나는 아쉽지 않을 걸."
무엇이 되었던 간에 나는 아쉬울 게 없었다. 내가 원치 않았던 글이었기에 버렸고, 더이상은 쓸 수 없기에 그만 둔 것이다.
"그럼 다시 글을 쓸 생각은……."
나는 순간 흠칫했다. 정곡을 찔렸다기보단 녀석의 물음이 우문이라 그런 것이다.
"절대."
나는 간신히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 간신히? 나 지금 간신히 라고 했나.
"그보다도 너 돈가스 식는다고."
경찬의 돈가스에서 김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 말을 돌릴 수 있었다. 녀석은 아아, 그렇지 하며 썰어놓은 돈가스를 콜라에 찍어먹기 시작했다. 전부터 느껴왔지만 정말 괴짜 같은 녀석이다. 콜라에 돈가스 라던지 어중간하게 길러 뒤로 질끈 묶은 머리 라던지 아니면,
"그런데 우체통에 습작이라니. 진짜 괴짜같은 짓이라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경찬은 뚱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며 괴짜라, 하며 작게 중얼 거렸다. 그리곤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민시로. 그건 네가 먼저 시작한 일이었다고."
어, 뭐라고. 내 두 눈이 바야흐로 커졌다. 경찬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잊어버린거냐, 하고 돈가스를 집었다. 그리곤 돈가스가 찍힌 포크를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오래된 기억 속을 이리저리 들쳐 보았다. 가히 오래전 책상 밑틈에 빠진 물건들을 꺼내는 느낌이었다.
4년 전인가. 4년 전쯤, 그러니 우리가 고등학생 1학년이었을 때 우리는 같이 글을 썼다.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나오게 되면 우체통에 버리는 그런, 기묘한 행위를 해왔는데 경찬은 이를 습작버리기라 곧잘 불러왔다. 나는 이 습작버리기가 분명히 이 괴짜스러운 방식의 고안자가 경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가 그 주인공이었나보다.
내가 그 당시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기묘한 짓을 해온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나이였다보니 그런 사고가 가능했을 것이다. 암, 누구나 어릴적에 했던 요상한 행동정돈 있을 것이다. 단지 나이를 먹고도 그 동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흠이지만…….
그 때 마침 경찬의 호출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과대표를 하는 학생들에게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는 누렇게 때가 탄 크림색 호출기였다. 그런데 호출기의 진동을 들은 건지 만 건지 녀석은 돈가스만을 집고 있을 뿐이었다.
"야, 너 그거 울린다."
"알고 있어. 망할 늙은이가 또 요 앞 카페같은 곳이나 가서 시덥잖은 소리들이나 하고 싶은 거겠지."
녀석은 툴툴대며 말했다. 이거 어차피 냅두면 알아서 꺼져하며 호출기에 달린 끈을 손가락에 걸고 붕붕 돌렸다.
"그래도 교수가 관심을 준다는 것자체가 좋은 거 아니냐. 지난번엔 과수석까지 했다며."
"과수석? 그런 거 필요없어. 어차피 졸업하면 다 똑같은 대학병원 레지던트인데 거기서나 잘해야지. 아직 예과인 나한테 그런 게 무슨 의미야."
경찬은 콜라를 먹은 돈가스를 와작와작 씹으며 말했다. 염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색이 빠지기 시작한 녀석의 머리칼이 더더욱 흐리멍텅한 갈색으로 보였다. 저건 먼지색이냐 싶을 정도로 흐리멍텅한.
"애초에 나는 돈때문에 온 거고……."
경찬은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때 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져서 단념했다.
그새 경찬은 어느새 돈가스를 다 헤치우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서우리만치 빠른 속도였다.
"너야말로 식기 전에 먹으라고."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내 우동의 이야기였다. 잠깐동안 잡생각에 빠지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당황하며 뒤늦게 젓가락을 다시 챙기는 것을 본 녀석은,
"아니, 이미 다 식었겠네."
하며 입꼬리를 픽 올렸다. 참 하나같이 기분 나쁜 녀석일세.
"뭐야, 너 먼저 가는 거냐?"
내가 물었다. 수요일은 두 쪽 다 앞으로 강의가 없어서 뒤쳐지는 쪽을 기다리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냥 소화도 시킬 겸 밖에 좀 돌아다닐까 하고. 별 일 아니야. 신경쓰지마."
경찬이 그렇게 말하곤 창밖을 조용히 주시했다.나는 딱히 녀석에게 볼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니 손을 휙휙 내저으면서 적당히 가도 좋다는 투를 보였다. 녀석은 그럼 이만 하고 짧은 인삿말과 함께 등을 돌리고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녀석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 다시 우동을 먹으려 젓가락을 집었을 땐,
“너, 정말 다시 글 써볼 생각 없는 거냐?”
라는 경찬의 말에 젓가락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이 도중에 다리를 멈추고 질문을 해왔나보다. 유감스럽게도 방금 대화에서도 내가 미리 일러둔 대답이 있는 물음이었다. 바로 이전 같이 등돌려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절대 라고 말하려 했지만 왜인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젓가락을 주으며 보이지 않는, 똑바로 날 바라 보고 있을 녀석을 향해 나는 다시금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잖냐. 벌써 3년이나 됐다고.”
인정하긴 싫지만 그때는 그 말의 반쯤은 허세였다고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다음 내용이 궁금한지를 중점으로 평가해주라.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96584 힘든일 있어도 힘내세요라는 말이 맞는말인가? 먼가 어색한데 제곧내 [3] 냉ㅇ(219.248) 15.08.28 70 0
96583 근데 손보미는 진짜 신기하다 [3] ㅇㅇ(180.228) 15.08.28 611 4
96582 방문접수에 대해서 알려준다 [5] ㅇㅇ(107.182) 15.08.28 210 0
96581 신춘문예 투고제한에 기성작가를 걸잖아 [12] ㅇㅇ(121.172) 15.08.28 447 0
96580 기록2 [2] ㅇㅇ(119.197) 15.08.28 79 0
96575 [7] ㅇㅇ(211.36) 15.08.27 337 8
96574 넌 너만의 세계가 있어. 라고 누가 말하면 [6] ㅇㅇ(223.62) 15.08.27 152 0
96573 옛날에 쓴 야구소설. [1] MJ(27.113) 15.08.27 194 0
96572 아마도 [5] 나니(27.119) 15.08.27 105 1
96569 30일 동안 동면하고 싶다 [1] TasCro(183.108) 15.08.27 66 0
96568 리어왕한테배울점이 뭐가있을까? [4] 유니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7 92 0
96564 나는. [2] 나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7 87 2
96563 허수아비- 백무산 [3] 나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7 158 0
96562 내가 만약 중앙신인문학상 담당잔데 방문접수하 놈 있으면 원고 찢어버릴듯 [5] ㅇㅇ(180.229) 15.08.27 465 1
96559 성격 드러운 개는 식용으로 써야 한다 [3] TasCro(183.108) 15.08.27 79 0
96557 폭력배는 죽여야 한다. [1] TasCro(183.108) 15.08.27 60 0
96555 사과 갤러리입니다 사과에 대한 사진과 글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1] 사과(183.100) 15.08.27 89 2
96553 뭐하는거냐진짜 [3] 오동도사태(110.70) 15.08.27 106 1
96547 밥먹었어? [2] 32(121.177) 15.08.27 67 0
96546 지난번 신춘에 냈던 내 시 한 편 공개한다 평가해봐라 [4] 하오(183.100) 15.08.27 213 2
96545 고전작품 영어원서로 읽으나 한글 번역판으로 읽으나 어렵기는 매한가지 스타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7 269 1
96543 다른작가랑 같이 쓴 소설집은 인세 어떻게 받음? [4] \dd(1.251) 15.08.27 148 0
96536 무인지대 [1] TasCro(183.108) 15.08.27 67 0
96535 자석 TasCro(183.108) 15.08.27 46 0
96528 단순히 글을 많이 읽는것만으로 문체나 필력이 좋아질수있나요? [3] 소심해서고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7 165 0
96527 이세상에는왜 [1] TasCro(210.101) 15.08.27 67 0
96523 현대시 [9] spread(222.104) 15.08.27 325 0
96521 진짜 공모전 잉여들 많은듯 [3] ㅇㅇ(89.105) 15.08.27 245 1
96516 커피를 마시면 성욕이 줄어든다 [1] ㅇㅇ(119.197) 15.08.26 146 0
96515 출간안해주고 판권만 가진 출판사는 [1] 32(121.177) 15.08.26 71 0
96514 여기에 지금 술처먹고 갤질하는 놈나와 [2] 32(121.177) 15.08.26 84 0
96513 중요한건 77이 다중질했다는건데 [2] ㅇㅇ(95.27) 15.08.26 104 0
96511 웹소설 쓰는 사람 있음? [4] cc(175.223) 15.08.26 170 0
96509 길은많은것을숨기지않았다. [4] 나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6 139 1
96507 ㅀ 이 나쁜놈아! [4] 라라라(175.211) 15.08.26 127 0
96503 문학이란 [1] (211.107) 15.08.26 96 2
96502 니들이 아냐 `오롯이' 지경을 [7] (211.107) 15.08.26 151 0
96497 ㄴㅇ에게 묻는다. 질문자(5.254) 15.08.26 70 0
96496 골짜기에게 묻는다. [2] 질문자(5.254) 15.08.26 80 0
96495 스타쿠스에게 묻는다. [2] 질문자(5.254) 15.08.26 95 0
96493 沙狗에게 묻는다. 질문자(5.254) 15.08.26 491 0
96491 음대에게 묻는다. 질문자(5.254) 15.08.26 75 0
96489 임자에게 묻는다. 질문자(5.254) 15.08.26 95 0
96488 ㅋㅋ에게 묻는다. 질문자(5.254) 15.08.26 69 0
96487 나언에게 묻는다. [1] 질문자(5.254) 15.08.26 113 1
96481 응모작 겉봉투에 [1] ㅇㅇ(220.118) 15.08.26 128 0
96480 세계 문학 전집 출판사 비교 [5] 스타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8.26 180 0
96479 a' ㅋㅋ(221.165) 15.08.26 54 1
96476 ㅗㅣ [3] (14.34) 15.08.26 124 0
96474 문예지 보려고 해도 [8] ㅇㅇ(180.228) 15.08.26 24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