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막 - '복학생 유동익'

내 이름은 유동익. 전역하고 2학년 2학기에 복학한 대한민국 남자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군 휴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났고,

그나마 있던 여자들은 이제 졸업반이라 토익시험과 취업에 바쁜 나날을 보낸다.

1학기 때, 복학했으면 14학번 신입생들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을텐데,

제대일자를 잘못 맞춰서 2학기 복학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선배라는 예우를 해주는 후배들이 있지만,

'남중-남고'의 테크트리를 탄 나로써는

아직 여자 후배와의 만남과 대화가 낯설기만 하다.

나름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는터라,

후배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로 나를 찾아온다.

공부와 관련된 것을 이야기할 때는 그 누구보다 당차지만,

공부 이외의 것들을 이야기할 때는 속된 말로 거의 '쫄보'에 가깝다.

위로 2명의 누나와 아래로 2명의 여동생이 있지만,

'여자'라는 단어 앞에 언제나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

그러던 나에게 큰 변화를 일으켜줄만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 제2막 - '같은 유씨, 후배 유지애와의 만남'

이번 학기를 위한 수강신청의 날이었다.

학교 사이트에 일찍부터 접속해서 원하는 과목을 수강신청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Fail. 나는 교양 가운데 '여성학'이라는 과목을 강제수강하게 되었다.

40대 중반의 깐깐해 보이는 여자교수가 이 과목의 담당이다.

첫 수업 시간, 주변을 둘러보니 약 40명의 클래스 중

남자는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가나다 순으로 출석을 부르는데,

'유동익'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유지애'라는 여학생과 짝이 되었다.

- 유지애 : 안녕하세요. 선배님, 14학번 유지애예요.

- 유동익 : 어.. 알아! 저번에 인사했었지?

- 유지애 : 아! 기억하시는구나! 역시 선배님 최고세요.

- 유동익 : 어.. 아니야.. 나도 유씨잖아. 그래서 왠지 이름이 외워졌어.

- 유지애 : 아! 그러신거구나! 유동익 선배님, 잘 부탁드려요.

- 유동익 : 어.. 그건 내가 해야할 말 같은데? 나도.. 잘 부탁해..

쭈뼛거렸지만 유지애 후배와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같은 유씨라서 편했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한편 생글생글 웃는 유지애 후배의 얼굴을 보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는데?' 후배 유지애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참 생각에 빠졌다.

그러던 순간!

"어! 거기 남학생! 유동익 군!"여교수의 앙칼진 목소리가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나의 머릿 속을 '찌익'하고 갈라놓았다.

"네?" 어리버리한척 대답하며 일어났다.

그녀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우리 클래스의 유일한 남학생인데, 여성학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나는 이 질문을 받고 '수강신청이 밀렸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순간 재치를 발휘하여 대답할 수 있었다. 점수를 위한 마음 때문이랄까?

"네, 저는 위로 누나 2명, 아래로 여동생 2명이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일제히 '워~'하고 소리쳤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할머님과 어머니까지 포함하면 저는 6명의 여자들 속에서 자라왔죠."

조금 엄숙해지는 듯한 분위기. 그 분위기에 큰 못을 박듯이 나는 말했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한 가정에서도 큰데,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

이렇게 여성학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교수는 검은 뿔테 안경을 올리며 싱긋 웃었고,

39명의 클래스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강의실이 떠나갈 정도로 박수를 쳤다.

여교수는 다음 시간까지 여성학을 수강하게 된 동기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하도록 과제를 내주었고,

3~4명으로 이뤄진 조를 자율적으로 구성할 것을 요청했다.

나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헤치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휴우~" 안도의 숨소리와 함께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짝인 유지애 양과 몇 명의 무리가 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