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지역의 마한(北韓)은 모르겠으나
남한 지역의 경우, 마한계 갑+주에 대한 실물자료는 아예 안 나타나는 걸로 파악 중.
안 나타나는 이유는 ?
일단, 4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백제계 철제 갑주편(하남 미사리 A1 주거지의 종장판주 조각)까지 나타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마한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철제 갑옷들이 부식을 겪고서 소멸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약간 설득력이 떨어지는 소리.
따라서 남한지역의 마한에서 철제 갑옷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배제하고...
남한지역의 마한에서 갑+주의 사용에 대한 실물자료가 안 보이는 이유는 대략 둘 ?
1. 갑주가 유기질이었다. (연안~하천수계에 친숙한 종족이었던 상황과 관련이 있을까?)
2. 갑주에 대한 수요가 아예 없었다.
2번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상대적으로 평화로웠을 경기~충청도 지역과는 달리,
실질적인 인명살상의 상황에 대한 대비수단의 수요가 높았을
해안가(변/진한 지역) 지역이나, 낙랑-대방군 인근의 北韓(北마한)에서는
갑주에 대한 수요가 높았을 것이므로, 이들 北韓人들에게로 공급이 집중됐기 때문이었을 거라 상상.
만약 황해도 北韓에서 철제 갑주를 사용했다면,
판갑이 아닌 찰갑을 사용했고, 그 모양은 변/진한 내지는 先신라/가야의 스타일과 유사했을 것.
따라서 아래와 비슷한 형태(소찰주 혹은 투구의 종장판이 S자가 아닌)였을 거라 상상해 보게 됨.
https://www.instiz.net/pt/5431929
https://bada.io/post/5032286
http://m.dginews.co.kr/view.asp?intNum=14647&ASection=001046
서기3세기 후반까진 목갑 ? 을 주로 이용했다가 ?
종장판주와 종장판갑의 출현시기는 서기3세기末~4세기初.
3세기후반대에서 4세기 전반대에 걸친 공격용무기인 철모의 변화.
새로운 철모는 前代의 철모에 비해 공격력이 향상된 철모다.
이러한 공격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철제갑주가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http://muye24ki.com/zb41pl8/zboard.php?id=archive_document&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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