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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상 첫 파업선언 ㄹㅇ...jpg
이기 뭐고 ㄷㄷ.... - 속보) 삼전 노조 사상첫 파업선언- [속보] 삼성전자 노조 '파업 선언'…창사 이래 처음.jpg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990355?sid=101 삼성전자 노조 '파업 선언'…창사 이래 처음 [상보]삼성전자가 1969년 창사 이래 첫 파업 위기에 처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을 선언하면서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이날 서n.news.naver.com와 ㄷㄷ... - 삼성전자 노조, 사상 첫 파업 발표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슈화(착한대만인)고정닉
120만 남자 뷰티유튜버, 이거 월세 탈세라고 볼 수는 없음?
지인이 작년에 이사 하시려고 집을 알아보고 다니셨는데 그 중에 한 집이 유명한 고급주택 중에서도 로얄층, 로얄호수였다고 함.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A동의 2302호라고 하셨는데, A동과 B동의 2호라인 모두 거실, 마스터룸, 마스터룸 화장실에서 서울숲이랑 한강이 한 눈에 보여서 아는 사람은 전부 인정하는 로열호수임.전세가로 보통 50억 중후반 ~ 60억을 예상하는 집이었으나 로열호수라 워낙 인기가 많아서 애초에 집주인들 중 전세로 내놓는 사람은 없었고, 월세로만 집을 내놨는데 당시 월세 시세가 2천후반에서 3천 정도였음.그런데 어떤 집 하나를 봤는데 그 집이 전입신고 안하는 조건으로 보증금 5억에 월세 2천을 불렀다고 함.지인분도 로열호수에 월세가 본 시세 대비 거의 천만원 가까이 저렴해서 고민을 하셨는데 전입신고 안한다는거부터가 ’월세수익 탈세 + 나중에 부동산 매매할 때 양도소득세 세금 탈세‘ 라는걸 모를 수가 없기에 찝찝해서 안하셨다함.그런데 얼마 뒤에 유튜버 레오제이가 이사했다고 올린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 내가 포기했던 그 집이다’ 라고 하심.내가 어떻게 이 집인줄 바로 아냐고 했는데 아서포(아크로서울포레스트 줄임말)가 동이 2개짜리 집인데다가 각 동별로 위치가 어느정도 떨어져 있어서 창 밖에 보이는 뷰 조금만 보면 이게 A동인지 B동인지 판별 가능하고 집 구조랑 밖에 보이는 뷰로 보면 어느 동의 몇층대인지는 모를 수가 없다고 함.그래도 비슷한 층수에 비슷한 호수로 계약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그 분 말로는 자기가 이 집을 반년도 넘게 나오는거 다 봤는데 A동 2호라인 월세로는 최근에 이거 하나밖에 매물로 안나왔고 자기가 다시 물어봤을때 계약 됐다고 말한 시점으로 보면 이 집일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셨음.그래서 내가 말씀하신 집 등기부 등본을 떼보니 전입신고 아무것도 안되어있고(‘등기부등본 을구’ 깨끗) 지금도 전입신고 되어있는 것은 없음.호기심에 레오제이 영상에 댓글로 이 집 전입신고 안하는 조건으로 월세 싸게 받은 집인데 이거 탈세 가담하는거 아니냐 의 댓글을 달았는데 좋아요 막눌리고 ‘헤어몬 사건 이제 좀 조용해지나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냐’라는 답글 달렸었는데 갑자기 채널에서 사용자 차단해서 댓글이 갑자기 남한테 안보임ㅋㅋ(친구 계정으로 확인해 봄)레오제이 유튜브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깐깐하고 이거저거 다 따져서 좋은 제품 추천해준다는 이유로 유튜브 광고 한편당 2~3천씩 받는다는데 그런 성격 상 시세를 몰랐을리도, 시세보다 이렇게나 싼 이유 중 탈세의 목적이 있다는걸 절대 몰랐을 수가 없어보임.본인이 직접 탈세를 주도한게 아니라 문제가 안된다면 이건 뭐 할 말은 없는데.. 탈세의 목적이라는걸 알면서도 그 수요에 공급을 제공해준 사람이면 그탈세를 도와준 사람이나 다름이 없는데 연말에 여기저기 나오고 하는거 보면서 이런게 전혀 문제가 안되는 사회구나 싶음ㅋㅋ그렇게 보다보니 예전 트리마제 살던 집도 그렇고 이번 집도 그렇고 설마 월세를 비용처리 하면서 사는건 아니겠지? 하는 의문까지 들기 시작함. 영상 보면 집에서 컨텐츠를 이거저거 찍던데 숙식을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는 집을 컨텐츠용으로 국세청에서 월세를 비용처리 해주지도 않겠지만..저거 하나 알고 나니까 설마 저것도 꼼수 써서 비용처리 하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됨지금 저기도 싸게 계약해서 5억에 2천일건데 레오제이 수입에 세후로 2천이면 거의 세전으로 매달 3천후반을 내는건데 이것도 비용처리 하고 있는거라면 얘기가 엄청 달라짐.. 저기 이사가고 나서 유료광고만 영상만 계속 올라오기도 했고 그때부턴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광고영상만 올라와서 구독은 안하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게 신기해서 한번 올려봄..저런 이미지로 광고 찍고 방송도 타는 사람이면 거의 공인인데 이런건 전혀 문제가 안됨?
작성자 : 윱갤러고정닉
일본 전체를 불바다로 만든 르메이 대장...jpg
미공군의 기틀을 닦은 군인이자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을 사실상 이끌어낸 커티스 르메이 대장 커티스 르메이는 1906년 11월 15일에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서 태어난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ROTC로 육군 조종병과 장교로 임관하여 군생활을 시작한다. 미국이 2차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까지 그는 빽도 없고 연줄도 없는 평범한 장교였으나 1941년 일본의 진주만폭격 이후 진가를 발하게 된다. 미국의 선전포고 후 르메이는 영국에 주둔중인 육군항공대 소속 8공군의 지휘관 중 하나로 투입된다. (일본에 선전포고 연설 중인 루즈벨트 대통령) 8공군의 지휘를 맞게 된 르메이는 8공군의 폭격성공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파일럿들이 나치의 대공사격이 시작되자마자 단체로 쫄아버린 나머지 폭탄을 최대한 빨리 떨구고 곧바로 회피기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르메이는 본인이 직접 폭격기의 선두에 탑승하여 파일럿들을 격려한다. 적의 피해를 높이기 위한 그의 작전은 꽤 무모했는데, 회피기동을 하지 않고 폭격내내 직선기동을 했으며 탄착률을 높이기 위해 저고도비행을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폭격기가 전보다는 다소 많이 요격되는 등 피해는 늘었지만 나치독일의 피해는 그전보다 훨씬 더 컸다. 그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41년 중령이었던 그는 1943년 준장으로 진급하고 그 다음해인 1844년엔 37세의 나이로 소장에 초고속 진급한다. 르메이가 나치 독일을 상대로 많은 피해를 내는 동안 고전적인 고고도 폭격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태평양전선에서는 낮은 명중률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후 태평양전선으로 투입된 르메이는 유럽에서의 전략을 일본에도 적용하기로 결심하고 한마디의 명언을 남긴다. “적을 충분히 많이 죽이면, 그제서야 적은 싸움을 멈춘다.” (폭격중인 일본 폭격기) 그리고 일전에 일본 육군항공단은 중국의 충칭을 폭격하면서 소이탄을 활용했는데 그 위력을 보고받은 르메이는 똑같은 전술을 일본에 써먹는다. 이전까지 미군의 폭격교리는 고고도 정밀타격이었는데 당시 기술적 한계와 일본상공의 강력한 제트기류덕분에 고고도에서의 폭격은 탄착률이 형편없었다. 한 예로 한 군수공장지대를 폭격할 때 100여대의 B-29가 수천발의 폭탄을 퍼부었음에도 명중률은 2%를 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일본 대도시의 피해는 크지 않았는데 이에 르메이는 폭격에 앞서 평소에 쓰이던 고폭탄 60% 소이탄 40%의 비율을 소이탄 100%로 바꾼다. 그리고 "저고도 소이탄 폭격을 통해 목제 건물이 많은 일본도시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것" 이라 장담한다. 그리고 1945년 3월 9일 밤. 9톤의 폭탄을 꽉꽉 채워넣은 344기의 B-29 폭격기가 사이판에서 도쿄로 출격한다. (폭탄 적재 중인 B-29폭격기) (M47 소이탄을 적재한 폭격기) 도쿄 대공습의 시작이었다. (도쿄상공에 흩날리는 네이팜 소이탄) 약 6시간동안 지속된 폭격에서 1700톤의 소이탄이 도쿄 시내 8500여 곳에 골고루 뿌려졌다. 네이팜 소이탄의 불길을 목조건물들을 만나 순식간에 번졌고 폭격 당시 지상에서 불던 강풍에 의해 불길은 수백미터를 넘어 쓰나미처럼 모든걸 삼켰다. (야간폭격당시의 도쿄 항공사진. 도시 전체가 불타오르고 있다.) 일왕과 그의 가족이 거주하고있던 궁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구만 빼고 다 타없어져 버린 일왕의 궁) 도쿄시내 전체가 어마어마한 불길로 인해 타들어갔고 강물마저 그 열기에 의해 끓었다. 도시전체를 뒤덮은 열기를 피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물에 삶아져 죽었다. 불길에 타 죽지 않은 사람들도 그 엄청난 온도의 증기에 질식사하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그 결과 약 10만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4만여명의 중상을 입었으며 10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소이탄에 불타버린 도쿄 시민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기에 현재 도쿄에선 과거의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도쿄대공습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출격 준비중인 B-29 폭격기들) 이틀 후인 3월 11일엔 나고야와 센다이 (폭격 당하는 나고야) 13일엔 오사카 (폭격당하고 있는 오사카) 16일엔 고베 (폭격당하는 고베) 19일에는 다시 나고야가 공습의 타겟들이 되었다. 나고야 공습 후 폭격이 잠시 멈췄는데 약 두 달치의 폭탄을 르메이가 10일만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사카는 일본 최대의 공업거점이었기에 1700여톤의 소이탄이 퍼부어진 오사카는 더 이상 일본제국의 엔진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오사카성도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일본의 거점도시들은 10일만에 모조리 평평해졌다. (폭격 후의 도쿄) 폭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4월엔 일본인들을 굶겨 죽이기 위한 작전인 “Operation Starvation”을 통해 (투하중인 기뢰) 일본의 앞바다 여려곳에 수 천대의 기뢰를 투하한다. 그 결과 일본은 670여척의 배가 손실되는 피해를 입는다. 한편 자신의 부하들이 민간거주도시들을 폭격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 르메이는 또 하나의 명언을 남긴다. “저 밑에 스즈키네는 집에서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그걸 또 옆집의 키타가와네가 공장으로 가져다 준다.” 또한 미군은 공습에 앞서 공습예고 삐라를 뿌려서 어떤 도시들이 폭격을 당할지 친절히 알려주는 패기를 보였다. (미군이 공습 전 일본에 살포한 삐라. "공습예고. 이 도시가 미 공군 다음의 공격 목표입니다." 라고 써있다.) (미 공군은 공습타겟이 될 도시들을 하나하나 삐라에 적어 넣었다. 저 삐라엔 나가노, 후쿠야마, 마에바시 등등의 도시 이름이 적혀있다.) 이러한 삐라는 한편으론 이러한 도시들에 폭격이 있을 예정이니 살고 싶다면 피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삐라에 적힌 글. 여기에 적힌 도시들에 미공군이 몇월 며칠에 폭격을 할것이니 살고싶다면 피하라는 내용) 어디 어디 도시를 폭격할지 알려주고 그걸 실제로 실천하는 미군의 언행일치에 일본인들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르메이의 이러한 무차별적이고 쉴 틈 없는 폭격으로 폭격이 시작된 4월부터 폭격이 소강상태에 이른 7월까지 르메이는 약 10만톤의 폭탄을 소비했고 30만여명의 사망자를 강요했으며 100만톤의 일본 수송선단들을 격침시켰고 26개의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르메이의 폭격이 성과가 너무 좋은 나머지 미군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몰락 작전 (Operation Downfall)”을 실행할 필요도 없었다 (일본이 끝까지 항전할 경우를 대비한 본토 상륙 작전이었던 미군의 몰락 작전 Operation Downfall) 4개월 내내 본토가 얻어터지기만 한 일본은 수십차례의 공습에 이어 두차례의 핵폭탄을 맞고 곧바로 항복을 선언한다. 끝없는 폭격을 통해 일본군부가 전의를 상실했기에 망정이지 르메이의 이러한 효과적인 공습이 없었다면 미국도 결국엔 일본본토 상륙 작전을 감행했을 테고 그에 따라 수십만의 미군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르메이는 대규모의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여러가지 임팩트로 인해 르메이는 1945년 8월 13일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 르메이는 일본 항공자위대 설립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공로로 일본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욱일대수장을 수여받기도 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르메이는 여러가지 어록을 남겼다.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르메이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기전에 쿠바에 먼저 핵폭격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1965년 베트남전 당시 "지상군이 아닌 폭격으로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놔야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매우 호전적인 자세에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을 때마다 르메이는 이렇게 답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우리가 피해를 입기전에 먼저 적을 충분히 그리고 많이 죽여놔야 전쟁에서 승리하기 때문." 후일 르메이는 그 호전적이고 독불장군 같은 면모로 인해 주변인들과 여러 마찰이 많았고 결국 케네디 정부당시 공군참모총장에서 사임한다. 하지만 르메이의 그런 호전성이 일본의 항복을 빨리 받아냈고 그로인해 전쟁도 일찍 끝났음을 알아야 한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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