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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덕팬픽] 추화군 4

(119.199) 2018.03.31 22:09:37
조회 2848 추천 40 댓글 40







***
비가 올 것을 예고하는 달무리가 진 밤과 새벽의 중간 시간.

덕만의 옆에서 그녀를 꼭 껴안고 자고 있던 비담이 몸을 뒤척였다.


“덕만아...”


그의 작은 부름에 덕만이 잠에서 깨었다.

비담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잠꼬대를 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단단히도 안고 있는 그의 팔에서 차마 벗어나지 못하곤 덕만이 그런 비담을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덕... 만...”


다시 한 번 덕만의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꿈의 내용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비담...”


결국 덕만이 그의 얼굴을 매만지며 비담을 깨웠다.

그녀의 부름에 즉각 응했던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빠르게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은 숨을 토해내며 가녀린 덕만의 몸을 끌어안았다.


“하아...”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덕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비담이 그녀의 등을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분명 옷을 입고 있음에도 그의 손길이 마치 맨몸을 쓰다듬듯 유혹적이라 덕만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폐하께서... 떠나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노골적인 손길의 주인임이 믿겨지지 않는 절박한 목소리로 비담이 힘겹게 말을 하였다.


“떠나지 않는다. 꿈일 뿐이야.”


그런 그를 그저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그의 품에서 벗어나 덕만이 비담을 안아주었다.

늘 그가 그리했듯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으며 미세히 떨리는 그의 몸을, 힘 없이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다독였다.


“네 곁에 평생 네 여인으로 있을 거야...”

“그 말씀,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이가 어미의 품 안에 곤히 안기듯 비담은 그저 덕만의 품에 얼굴을 묻고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어떠한 것보다 끔찍한 내용의 악몽이 다시는 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비담은 덕만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비담...”


덕만의 작은 부름에도 비담은 미동이 없었다.

가슴 쪽 옷자락이 적셔드는 것을 알아차린 덕만이 그제야 비담이 차마 눈물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품에 숨은 것을 알아차렸다.


“비담... 널 떠나지 않아.”


아닌 척을 아무리 해도 그는 덕만의 병세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도 대답 없이 그저 안겨있는 것일 테다.


“예전에... 내가 사막에 살 때 말이다...”

“.....”

“카탄아저씨가 먼 나라들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었다.”


그제야 비담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를 투명히 비추었다.

비담의 눈에는 덕만만이 담겨져 있었고 덕만의 눈에는 비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토록 온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였다.


“그 이야길 들으면 재미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지. 내가 들려줄 테니 너도 어릴 때의 나처럼 아무 걱정 없이 잠에 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그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덕만이 비담을 안아주었다.

제 몸보다 큰 비담의 몸을 안아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다행히 서로가 누워있는 덕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별자리 중에 천준이라는 것이 있다. 아느냐?”

“예, 압니다.”

“그것을 저 멀리 서국에서는 쌍둥이자리라고 부른다 더구나.”

“그러합니까...”


비담이 다시금 덕만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의 뜨거운 숨이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닿을 때마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애써 숨기며 덕만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국 신의 아들들이었던 쌍둥이들이 있었는데 비담 너처럼 아주 무예에 능했더란다.”

“.....”

“둘 중 동생은 신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었지. 둘 다 용감한 전사로 자랐었는데 어느 날, 그들의 앞에 아주 고운 미색을 지닌 두 자매들이 지나갔단다.”

“고운 미색을 지녔다니 폐하와 천명공주님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말과 동시에 비담이 더 이상 떨어질 거리조차 남아있지 않음에도 덕만의 허리를 붙들고 자신에게로 당기었다.


“비... 비담...”

“계속하십시오.”


머뭇거리던 덕만이 비담의 등을 토닥였다.

자신이 덕만에게 잘해주던 행동이었지만 막상 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했다.

이리 다정히 자신을 안아 토닥이는 이는 어미였던 미실도, 기억 한자락도 없는 아비도, 생각하면 눈물 밖에 나지 않는 스승님도 아닌 이 세상에 오로지 덕만뿐이었다.


“두 쌍둥이들은 그 여인들을 보고 반하여 자매들의 약혼자들과 결투를 치르지. 헌데 형이 심한 부상을 당해 죽음을 맞게 되고 불사의 몸인 동생은 다친 곳 하나 없었단다.”

“같은 아버지의 아들인데 왜 동생만 불사의 몸이었을까요...?”

“글쎄...”


덕만에게 갇혀있던 팔을 들어 올려 덕만의 삐져나온 머리칼을 비담이 귀 뒤로 넘겨주었다.

덕만이 그 행동에 미소를 짓자 어느새 다가온 비담이 그녀의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자꾸 이리 하니 이야기를 끝을 낼 수가 없구나.”

“계속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폐하께서 너무 예쁘셔서 잠이 안 옵니다.”

“능글맞아져서는... 아까 슬퍼하던 사람이 맞느냐?”


덕만의 말에 비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덕만 역시 아차 싶어 입을 오므렸다.


“.....”

“음... 미안하다.”

“아닙니다.”


덕만이 걱정하는 얼굴을 보는 제 자신이 더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을 핑계 삼아 비담은 다시금 덕만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부끄럽다...”

“이제 계속해드릴 텐데 부끄러워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걸 어떡하느냐...”


그럼에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는 자신이 우스워 덕만은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였다.


“이야기를 마저 해주십시오. 형이 죽은 뒤에 남은 아우는 어찌 되었습니까?”

“음... 무척이나 슬퍼했다. 어찌나 슬퍼했던지 아우가 자결을 시도했었단다.”

“불사의 몸인 그는 죽지 못했겠네요.”

“그래. 그래서 아우가 아비인 신에게 찾아가 죽여달라고 간청을 하지.”

“.....”

“쌍둥이의 우애에 감동한 아비는 하루의 반은 세상에서, 남은 반은 사후세계에서 살도록 허락한단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되도록 그들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 천준이 되게 했다더구나.”

“슬픈 이야기네요...”


비담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죽음.

제 손으로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단 한 번도 그들이 가여웠던 적이 없었기에 스승님이 호통이 나날이 늘어갈 무렵, 제 눈앞에 덕만이 나타났다.

그녀가 측은지심이 무엇인지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금수같은 자신을 차근차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 그녀였다.


“덕만아...”


비담이 덕만을 끌어안았다.

폐하라고 부르는 것보다 덕만이라 부르는 것이 훨씬 듣기 좋아 덕만은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응...”


조그마한 대답을 들으며 비담이 덕만에게 입을 맞추었다.

짧게 끝난 이전의 입맞춤이 아니라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격한 입맞춤이었다.

도톰한 입술을 열어 그 안을 맛보자 덕만의 혀가 수줍게 비담의 혀와 어우러졌다.

어느새 덕만의 얼굴을 감싸던 손이 쇄골로, 어깨로, 팔로 천천히 내려갔다.


“하아...”


덕만이 막힌 숨을 겨우 토해내었을 때 비담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작은 숨을 토해내며 얼굴을 붉혔다.


“폐하께서 먼저 떠나신다면...”

“.....”

“저 역시 그 이야기의 아우처럼 행할 것입니다.”


비담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 온 그였기에 그의 눈만 바라보아도 그가 지금 어떠한 심정으로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덕만은 눈앞의 이 사내가 겁이 났다.


“비담... 그러라고 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야...”

“압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 내가 먼저 가더라도... 넌 살아야 한다. 그리해야 해.”

“폐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 바보...”


바보 멍청이.

세상에 이런 바보는 없을 것이다.


“네가 날 버리고 가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널 버리지 않아. 두고 가지 않을 거야.”

“예, 꼭 그리하셔야 합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세차게 뛰어대는 심장을 마주하며 작은 숨결 속에 전해지는 진한 감정을 온전히 느꼈다.

누구의 연정이 더 큰지 비교할 수 없었다.


“연모합니다...”

“비담...”


당장이라도 덕만의 몸을 가지고 싶은 사내의 욕구를 억지로 잠재우며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다시금 잠을 청하였다.

덕만의 건강을 우려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어쩌면 최대한의 일이었다.

그렇게 짧고도 길었던 밤과 새벽의 시간이 지나갔다.












***
다음날 아침.

비담이 피곤한지 잠에서 깨질 않아 늦잠을 자게 두려고 방을 나오자 어느새 먼저 와 마당을 쓸고 있던 덕구아범이 덕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찍 오셨습니다. 조식은 드셨습니까?”

“전 날 석식을 과하게 먹어 설렁 먹고 왔습니다요.”


너털히 웃는 덕구아범을 따라 덕만 역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소한 말들도 듣는 이가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부인, 일어나셨습니까?”


밖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덕구어멈이 부엌 밖으로 나와 덕만에게 인사를 했다.


“예. 헌데 너무 일찍들 오셨습니다. 그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이가 깨어났으니 같이 일하면 됩니다.”

“부군께서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시고 부인께서는 조심하셔야 하니 저희가 이리 해야 하는 것이 맞지요.”

“정말 괜찮습니다. 이리 마음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덕만의 말에 덕구아범과 어멈이 서로 닮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성격들이 꼼꼼한지라 금세 마당과 부엌이 깨끗해졌다.


“참, 덕구는 돌아왔습니까?”


서신을 서라벌로 전해준 이가 덕구였기에 덕만은 혹여 답신이 온 것은 없는지 서라벌까지 간 덕구가 무사히 왔는지 둘 다 궁금하였다.


“아직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디... 아마 오늘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요.”

“예... 먼 길을 보내 미안합니다.”

“서라벌이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요. 게다가 삯도 두둑히 주셨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혹여 가는 길에 문제는 없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덕만은 덕구가 누구와 함께 오는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인, 식사를 차려드릴까요?”

“어어, 제가 요리를 하겠습니다.”


덕구어멈의 물음에 덕만이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이 무색하게 어느새 갖가지 재료들로 다채로운 음식들이 준비되어져 있었다.


“이미 다 해놓았으니 드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뭘 해드린 줄 알겠습니다. 저는 제 일을 한 것인데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늘 음식이 너무 맛있습니다.”


덕만의 칭찬에 덕구어멈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밥을 혼자 먹기에는 아쉬워 덕만이 방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덕구어멈이 덕만의 마음을 눈치채었다.


“부군께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까?”

“예...? 예... 오늘 많이 피곤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그이가 깨어나면 같이 먹겠습니다.”

“부군께서 부인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부인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이젠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덕만의 바램이 작은 목소리를 타고 세상에 나와 흩어졌다.

부디 그 바램이 미약하게나마 하늘에 닿기를 덕구어멈은 덕만의 왠지 모를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망했다.


“식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들어가서 깨워보아야겠습니다.”

“예.”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맛있는 음식을 빨리 비담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덕만이 비담이 자고 있던 방으로 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미동 없이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문을 닫고 방에 들어선 덕만이 비담의 옆에 앉아 그의 등을 손으로 토닥이며 비담을 불렀다.


“비담.”

“.....”


그녀의 부름에 비담이 천천히 눈을 떴다.

손으로 눈을 비비며 덕만이 제 앞에 있는 것을 알아차린 비담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거라. 덕구어멈이 아침을 해놓으셨는데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그렇습니까...”

“응. 너랑 같이 먹고 싶다.”


덕만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비담이 누운 채로 덕만의 허리를 껴안았다.


“얼른 일어나거라.”

“예...”


대답과는 달리 그는 미동이 없었다.

참고 참던 덕만이 그의 팔을 안마하듯 두드리고 나서야 결국 비담이 잠에서 온전히 깨어 일어섰다.


“폐하, 세안하고 오겠습니다.”

“응... 저, 비담!”


그녀의 부름에 밖으로 나서려던 비담이 다시 그녀를 향해 시선을 옮기었다.


“밖에 덕구아범과 어멈이 있을 때는 그리 부르면 아니 된다.”

“아...”


그렇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다른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는 비담의 주군이자 여인이었다.

주군으로써 폐하라 부를 수도 없고 반역자가 되어서야 죽음을 대가로 부를 수 있었던 덕만의 이름조차 누군가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신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선덕여왕과 상대등 비담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무어라 불러야 할지...”

“나도 막상 너를 부를만한 것이 없구나. 늘 비담이라 불렀기에...”


그렇다고 그를 다른 여인들처럼 호칭으로 부르기에는 무언가 낯간지러웠다.

덕만과 비담의 얼굴이 동시에 밖에 핀 꽃들처럼 피어오르더니 붉어졌다.

비담이 허둥지둥 제 모습을 들키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을 나서며 덕만에게 외치었다.


“똑똑한 분께서 호칭을 정리하십시오! 전 모르겠습니다!”












***
“저어기이...”

“예?”

“저...”


비담이 씻는 틈을 타 부엌으로 다시 온 덕만이 계속 우물쭈물 덕구어멈을 쳐다보며 말을 하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 덕분에 덕구어멈이 덕만이 오히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 그러니까...”


그 작은 부엌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덕만이 그제서야 결심을 한 듯 자리에 멈춰 섰다.


“저기... 남편을 부르실 때 무어라 부르십니까?”

“예? 저는 그냥 덕구아부지 라고 부릅니다.”

“그럼 남편께서는...?”

“저보고 덕구어멈이라 부르지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덕구어멈 덕분에 덕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비담과 자신 사이에는 아이가 없으므로 그리 부를 수가 없었다.

문득 드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에 덕만이 물끄러미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아이...

언젠가 비담과 나 사이에 아이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부군을 부르실 호칭이 마땅치 않으신 모양입니다.”


아궁이에 걸쳐앉은 덕구어멈이 예리한 눈길로 덕만에게 말을 하자 덕만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말을 꺼내는 것보다 덕구어멈이 말을 꺼내준 것이 덜 민망스럽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저희가 처음에 혼인을 했을 때 그랬지요. 서로 이보오, 저기요, 이러한 호칭으로 불렀지 뭡니까.”

“이름을 부르기는 좀 그래서...”

“그렇지요. 낭군이라 부르시면 되지 않습니까?”

“쑥스러워서요...”


덕만의 양 볼이 불그스럼하게 물들었다.

그런 덕만의 모습이 마냥 새색시 같아 덕구어멈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여보는 어떻습니까? 낯간지럽긴 해도 그만한 호칭이 없지요.”

“여보요?”

“예,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사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이리 불릴 수밖에 없으니 서로 여보라고 부르기에는 지금이 딱이지요!”


동그란 눈으로 박수마저 치며 이야기를 하는 덕구어멈의 모습에 덕만은 여보라는 호칭을 쓰겠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기에 그녀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비가 옵니다. 빨래를 널어놓았는데!”


보통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지다 점점 더 많은 빗물이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거늘 오늘 봄비는 다른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쏟아내는 소나기에 놀란 덕구어멈이 발을 동동거리는 와중에 덕구아범이 손바닥으로 비를 피하며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섰다.


“아이고야, 하늘님이 왜 이런디야...”


허리가 안 좋은 덕구아범은 곧바로 허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빨래 밖에 널어놨는데 어떡하지요?”

“빨래만 널어놨는가? 장작도 밖에 내다 놨지, 이파리들도 따다가 마루에 말린다고 내놓고...”

“얼른 가보세요.”


덕만의 말에 움직이려는 덕구어멈과 달리 덕구아범은 그럴 마음이 없는지 오히려 부엌문에 기대섰다.


“이미 이리 많이 오는데... 답이 없습니다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파리 말린 것이라도 건지셔야지요. 얼른 가보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뭉그적 거리는 덕구아범을 참지 못한 덕구어멈은 먼저 말을 내뱉고는 빗속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표정의 덕구아범이 어버버거리는 사이 덕만이 얼른 따라가라며 그를 밖으로 밀어내자 덕구아범 역시 어멈과 같은 모습으로 빗속으로 뛰어들어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텅 빈 마당을 바라보던 덕만의 눈앞에 온몸이 젖은 비담이 나타났다.

분명 세안을 한다며 방을 나섰던 것 같은데 세차게 내리는 소낙비에 온몸이 목욕이라도 한 듯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

“예?”

“감기 걸리겠다. 얼른 몸 닦거라.”


차마 나오지 못하는 그 호칭을 삼키며 덕만이 방으로 가도록 부엌에서 나가라는 손짓을 하자 비담이 오히려 그와 반대로 덕만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다른 이들이 그녀의 마음을 알았다면 무어라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다가오는 비담의 모습이 야릇했다.

그의 목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과 그가 사내임을 나타내는 굵은 선의 몸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많이도 차려놓았습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지 비담은 어느새 덕만의 앞으로 와 그녀 옆에 놓여진 밥상으로 시선을 옮기었다.


“응...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


하지만 밥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비가 너무 쏟아져 마당으로 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덕만이 부엌문을 향해 다가섰다.

가까워질수록 흩날리듯 비바람에 물방울들이 튀어지며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 덕만을 뒤에서 바라보던 비담이 자신의 옷에 물기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히 뒤에서 안아주었다.


“비담...”


그의 몸은 젖어있었지만 몸이 뜨거워 춥지 않았다.

부드럽게 안아주는 그의 행동에 기분이 좋아 덕만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비담.”


그래서 그녀는 몸을 돌려 비담에게 안기었다.

그의 옷이 여전히 젖어있어도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보아라.”

“예.”


반짝반짝 빛나는 덕만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비담이 대답하였다.

그래, 저 눈이 그렇게 예쁘더라.

늘 밝게 빛나던 저 눈.

비담이 덕만의 눈에 입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나 말고 다른 여인에게도 이리 해주었느냐?”

“예?”


당황스러운 덕만의 질문에 비담이 놀라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었다.

뭐지?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무슨 뜻이십니까?”


그는 할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의 정중함으로 그녀에게 질문하였다.

하지만 덕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그가 마음이 들지 않는 듯 눈썹이 서서히 위로 솟았다.


“질문한 그대로이다.”

“... 폐하?”

“나 말고 다른 여인에게도 이리 해주었느냐 물었다.”


덕만이 이리 질문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어찌하여 그리 물으십니까? 제게 폐하 외에 다른 여인이 없지 않습니까?”


비담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수년의 세월 동안 비담은 그 흔한 혼인조차 하지 않으며 그녀의 곁에 머물러있었다.

어느 날 춘추가 지나가는 말로 어떻게 100명의 아내를 둔 자의 조카가 혼인조차 하지 않는단 말이냐며 비아냥거렸던 일도 덕만에겐 뚜렷이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네가 여인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아 그리 물었다. 괘념치 말거라.”

“제가 말입니까?”


덕만의 말에 비담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응.”

“어째서요?”


덕만이 다시 양팔을 뻗고는 그에게 안아달라는 표시를 보이자 비담이 그런 덕만을 다시 껴안아주었다.

가녀린 등을 어루만지며 덕만의 대답을 잠자코 기다렸다.


“네가... 좋다.”

“폐하...”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였지만 비담은 똑똑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네가 하는 행동이 다 좋아서... 다른 여인에게도 이리 했다 말한다면 너무 슬펐을 것이다.”

“.....”

“그러니... 앞으로도 나에게만...”


덕만의 말은 끝맺지 못하였다.

일렁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비담이 순식간에 그녀의 입술을 가졌다.

살짝 벌어진 틈을 그는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입속을 유영하며 어색히 굳어 있는 덕만의 혀를 유혹하듯 잡아채었다.

제 쪽으로 잡아당기어 허리를 단단히 결박한 채로 덕만이 그를 피해 뒷걸음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음...”


황홀한 입맞춤에 덕만의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붉어진 양 볼에 비담의 거친 손이 닿았다.


“하아...”


위험하다.

자신의 자제력이 얼마 남지 않음을 비담은 알아차렸지만 제 몸은 이미 본능에 충실하였다.

부드러운 입술을 맞대었던 뜨거운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덕만의 목덜미로 옮기며 하나 둘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흰 덕만의 목덜미에 불그스런 꽃잎이 피어났다.


“비.. 비담...”


뒤로 절로 넘어가는 제 몸을 겨우 비담을 붙잡아 지탱하며 덕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천천히 덕만의 앞섬을 벌리어 제 얼굴을 비담이 묻었다.

덕만이 놀라 숨을 크게 들이키는 것을 알아차린 비담이 다시금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아...!”


목덜미에 그리했듯 살짝 입을 맞추고는 치마에 묶여져 살짝 삐져나온 가슴의 일부분에 똑같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었다.

맨살에 닿는 그의 숨결이 너무나도 유혹적이라 덕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비담이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부군! 부인! 손님이 오셨습니다요!”


덕구아범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었다.

당황한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치며 몸이 굳은 그 찰나에 덕구아범이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었다.

쿵.

그와 동시에 비담이 순식간에 부엌문을 닫아버렸다.


“이보게,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그러게나 말일세...”


예까지 왔건만 비담과 덕만을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은 것은 알천과 유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 무명! 우리가 왔네!”


고민하던 알천이 결국 생각해낸 그의 화랑도의 이름이었던 무명이라 부르자 유신이 옆에서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웃음이 서려있는 알천과 유신과는 달리 부엌 안의 덕만은 얼굴이 하얗게 질릴 만큼 당황하였다.


“어떡... 하느냐?”


그런 덕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담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벌어진 덕만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그렇다 해도 덕만의 목덜미에 생간 흔적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비담이 씨익 미소를 짓자 덕만이 토라진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 계십니까요?”


덕구아범이 주변을 두리번 거림과 동시에 덕만이 부엌문을 열었다.

비 맞은 생쥐 꼴로 한 보따리의 짐을 각각 지고 웃고 있는 알천과 유신이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본 덕만이 환한 미소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하하하, 놀라게 해드리려고 직접 왔습니다. 비... 아니 무명의 몸은 괜찮은지 또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알천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덕만이 비를 맞지 않는 처마 쪽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무명, 몸은 괜찮은가?"


유신의 질문에 헛웃음을 낸 비담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찌른 놈들은 기억하지 못해도 찔린 놈은 평생을 기억하는 법이네."


그들의 대화에 덕구아범은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제 주인을 그리 피투성이로 만들어 생사를 넘나드는 그 긴 시간을 보내게 한 자들이 찾아온 손님이라는 뜻인데 어찌 이리 다들 그저 웃음을 짓는 것일까.



"우리가 그래도 잘 찔렀지. 정말 마음먹고 죽이려 했다면 즉사시키지 못했겠나."

"거참 눈물 나게 고맙구먼."



알천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비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덕만이 그의 손을 따스히 잡아주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천천히 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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