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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비담의 난-마지막

명워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6.23 22:19:48
조회 2013 추천 26 댓글 11

잔인한거 싫어하는 사람 안보는게 좋아...









 비담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적의 칼날에 버혀진 팔뚝에서 지끈지끈 통증이 올라왔으나,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숲 건너에서 들려오는 추격대의 발자국 소리는 통증을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난은 실패했다. 이마에 붕대를 감은 유신은 빠르게 군을 편제해 명활성을 공략했다. 설원이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였으나, 노장의 투혼은 젊은 장수의 무수한 경험 앞에서 무참히 쓰러졌다. 설원이 이끌고 간 5천의 병사들이 장수와 함께 명을 달리하자, 반군을 빠르게 와해됐다. 주진과 필탄은 인질로 잡힌 수족들의 목숨이나마 구걸하기 위해 적에게 투항했고, 수을부는 겁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염종과 호재는 홀로 탈출하다 서라벌 경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었다. 특히, 염종은 밤중에 고개를 건너다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뼛조각 하나 온전치 못한 채로 숨을 거뒀다.


 추격대를 겨우 따돌린 비담의 군대는 산기슭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아비를 잃은 보종은 의연했건만 하종은 미생의 옆에서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비담은 손에 쥔 지도를 펼쳤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비담은 육신의 고통도 잊은 채 고민에 싸였다. 그때, 산을 기대고 있는 여왕의 진지가 보였다. 여왕은 겁도 없이 눈이 먼 맹인의 몸으로 월성에서 빠져나와 토벌군 근처에 진을 쳤다고 했다. 여왕의 진지를 보는 비담의 눈빛이 순간 번득였다. 비담은 벌떡 일어나 쉬고 있는 잔당들에게로 걸어갔다.


 "산기슭을 돌아 여왕의 진지를 칠 것입니다."

 "예?"

 "모든 군 병력은 토벌대를 중심으로 편제되었습니다. 허니 여왕의 군대를 지키는 병사들은 그리 많지 않을 터, 기슭을 돌아 여왕의 진지를 쳐, 여왕을 인질로 잡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이 산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산입니다. 기슭을 돌 수나 있겠습니까."


 보종의 반박에 비담이 냉정하게 답했다.


 "그러니 토벌군들은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소수인 우리 병력으로 기댈 곳이란 이 뿐입니다."

 "그려러니 차라리, 당이나 왜로 도망을 가야지요!"


 하종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러나 비담은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에겐 대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미생이 한쪽 입꼬리에 실실 웃음을 걸며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토벌군을 유인할 조이군이 필요할 것입니다."


 비담이 그를 내려다봤다.


 "제가 되지요."

 "숙부!"


 소리쳐 미생을 내려본 하종 뿐만 아니라, 비담과 보종 또한 놀라 미생을 바라봤다. 미생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사내로 태어나 수많은 여인을 안았고, 백명이 넘는 자식을 두었습니다. 권력을 쥐어도 보고, 놓아도 봤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이 딱 하나일진데, 누님이 말한 대의였습니다. 헌데, 이 하잘 것 없는 몸뚱아리가 대의를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모든 것을 초탈한 미생의 웃음에 비담도, 하종도, 보종도 모두 말을 잃었다. 고마움과, 또한 미안함이 섞인 눈으로 비담은 하나 뿐인 숙부를 내려다봤다. 그때, 병사 하나가 비담에게 달려왔다.


 "비담공, 유신이 공께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뭐라? 허면 유신이 우리 군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헌데 왜 우릴 치지 않은 것이야?"


 어이없다는 듯 묻는 하종의 말에 병사는 비담을 보고 말했다.


 "그것이... 유신이 비담공께 마지막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병사의 말에 비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곤 이십오년이란 세월을 배반한 자를 아직도 벗이라고 믿는, 주변머리 없는 머저리 벗을 향해 쓰게 웃었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앞에 두고 유신은 호위 하나 없이 앉아있었다. 마찬가지로 홀로 말을 끌고 온 비담은 대담한 벗의 등을 향해 미소지었다. 황량한 바람이 지나는 유신의 곁으로 비담이 와서 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유신이 고개를 돌려 비담을 돌아봤다. 유신의 이마에는 여전히 하얀 붕대가 감겨있었다. 유신의 눈동자에도, 창과 칼에 찟기고 베인 비담의 살결이 들어왔다. 가지런했던 머리카락 사이로 엉겨붙은 핏덩이 하며, 뺨에 묻은 흙먼지가 유신의 미간에 깊은 골짜기를 세웠다.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있는 비담은 오히려 유연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대군을 이끌고 있는 유신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자네를 보면 가장 먼저, 왜 이런 일을 벌였느냐고 물을 줄 알았건만."


 유신은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비담에게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말했다.


 "막상 자네를 보니 다른 말이 나오는 군."


 비담이 미소를 유지한채 유신을 봤다.


 "서라벌을 떠나게.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도 위험해. 왜나 당으로 가 죽은 듯이 살게. 자네는 이미 실패했어. 승산이 없단 말일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 허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게야."

 "......"


 비담은 말이 없었다. 유신은 그런 벗의 침묵에 짜증스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다시 비담이 입을 열었다.


 "내가 난 중에 죽으면, 여왕은 슬퍼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도 폐하께선 몹시 애통해 하시네, 자네의 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말일세!"

 "허나,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나라를 안정시키고 만기를 수행할 거야. 그것이 왕의 길이니까."


 벌컥 화를 내던 유신은 틀리지 않은 벗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 가슴에 가족을 묻고, 벗을 묻고, 신하를 묻은 채, 그 무덤이 썩어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본인의 세상이 흐려져 가는 것을 묵인해가며 왕의 길을 걸을 거야."


 비담은 유신을 보며 쓰게 웃었다. 알천으로부터 여왕의 병세를 들은 유신은 차마 웃지 못했다.


 "그리고 자네는 그런 여왕을 독려하며, 신하로서 충실하게 그녀를 보좌하겠지."


 비담은 말을 이었다.


 "내가 왜 그랬냐고, 그래서다 유신."


 유신은 비담을 바라봤다. 한명의 여인을 위한 마음은 같지만 걷는 길은 정반대인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으나 차마 그 길을 걸을 수 없기에, 서로의 눈을 보며 벗의 마음을 나눴다.


 "비담..."

 "너와 덕만, 둘 모두 제 이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반푼이들이라... 내가 직접 칼을 잡은 거다, 유신."

 
 유신은 비록 제가 걸을 순 없으나 이해는 하고 있는 그 길을 걷는 벗을 보며, 울컥이는 마음을 다스렸다. 스스로가 원한 길이 아니었으나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길을 걷는 벗의 모습은 세상 어떤 이보다 슬퍼보였다. 유신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슬픔을 삭혔다. 그 모습을 보며 비담도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황제라는 신분을 내려놓기 전까진 결코, 포기 할 수 없어."


 비담은 오른 허리춤에 찬 칼집을 잡으며, 울음 섞인 웃음을 지었다.



 덕만은 찬바람을 맞았다. 막사 바깥으로 흐릿하게 펼쳐진 세상에는 이름 모를 죽음이 뿌린 피냄새로 가득했다. 덕만은 조금씩 발을 뻗어 앞으로 나아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창날이 환하게 비춘 해를 반사해 덕만의 흐린 도화지 위로 찬란한 꽃잎을 뿌렸다. 그 칼은 덕만의 이름으로 덕만의 백성을 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 덕만은 그 꽃잎이 흩뿌려지는 곳이 비담의 가슴팍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덕만은 익숙한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유신은 말 없이 덕만의 곁으로 다가왔다.


 "폐하."

 "...비담은 만나고 오셨습니까?"


 유신이 비담을 만나기 전에, 그녀의 윤허를 받았기에 덕만 역시 비담과 유신의 만남을 알고 있었다.


 "예, 폐하."

 "뭐라... 하던가요. 포기하겠다 하던가요?"


 덕만은 제 말 끝을 잇지 못하는 유신의 침묵으로 대신 답을 얻었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냉정히 버린 제 잔인한 옛 신하를 생각하며, 덕만은 두 눈을 감아버렸다. 유신은 그런 덕만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폐하."

 "...예, 유신공."

 "......비담은, 왕이 되기 위해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진압을 앞둔 장수로서 할 말이 아님은 알지만, 유신은 적어도 제 주군이 벗의 충심만은 의심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덕만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습니다."

 "어찌...?!"

 "여왕불가론(女王不可論), 여인은 왕이 될 수 없다. 비담이 정말로 왕이 되고자 했으면, 내 가장 큰 약점인 실명을 공개했겠지요. 허나 비담은, 차선을 선택했습니다. 이미 십오년 전, 유명무실해진 그것을요. 비담은 아무리 저를 배신하고자 했을지언정, 내 치명적인 약점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유신은 덕만을 올려봤다. 낭도로서 5년을 데리고 있었고, 주군으로서 15년을 모셨지만, 눈 앞의 여왕은 어느새 자신보다도 비담과 더 깊은 신뢰를 쌓고 있었다. 유신은 순간, 십오년 전 자신이 덕만을 바라봤을 때 가졌던 그 눈빛을, 덕만의 흐린 눈동자 속에서 발견했다. 유신은, 사실이라면 너무 잔인한 일이기에 결코 나오지 않길 바라는 답을 삼키며 물었다.


 "혹... 비담을 마음에 두셨습니까?"

 "!"


 덕만은 겨우 다독여놨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서현의 사병들 틈 사이에서 자신을 구해주던 비담을 본 그 때였을까, 생일이라며 꺾은 꽃다발을 수줍게 내밀던 비담을 본 그때였을까, 유신을 잃을 마음에 슬피 울던 제 어깨를 다독여주던 비담을 본 그때였을가, 무람하게도 공주인 제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으며 침을 놔주겠다던 비담을 본 그때였을까, 아니, 아니다. 그 모든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나브로.


 그래, 차마 알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천천히 비담은 제 마음 속에 들어왔던 것 같다.

 모든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곧 세상이 암흑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 그 사람. 다른 것은 아쉽지 않지만 그 사람의 해맑은 웃음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가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왕이라는 것이, 패도라는 것이 그걸 숨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것이 왕이었고, 그것이 패도였으며, 그것을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본인이었기에, 연모하는 이를 제 검으로 베야 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버텨냈다. 그런데 그것을 건드리는 존경하는 신하의 물음을 듣자, 참았고, 참았으며, 또 참았던 덕만은 결국 눈물 한방울만은 참지 못하고 뺨에 흘려보냈다.


 덕만의 한줄기 눈물을 본 유신은 참으로 잔인한 하늘을 원망하며 시린 눈을 감았다. 유신은 제 생애 가장 무거운 입을 떼며 말했다.


 "이 말씀을 드려야 하나, 깊이 고민했습니다만... 이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듯 싶습니다."


 유신은 참으로 오랜만에 장수로서의 지위와 신라의 지배층으로서의 의무를 벗어던진채 말했다.


 "비담이 말하길, 폐하께서 모든 고통을 참고 왕의 길을 걸을 것을 알기에..."


 아아, 비담 너는 끝까지...


 "폐하께서 황위에서 내려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나만을 바라보는 오리로구나.


 덕만은 눈을 감았다.




 거친 창칼 소리가 덕만의 귀를 어지럽혔다. 막사 바깥으로 나온 덕만은 제 세상을 가득 메운 흐릿한 형체를 보며, 병사들의 갑옷이라고 짐작했다. 덕만의 곁으로 알천이 뛰어왔다.


 "폐하, 위험합니다. 반군들의 습격이옵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시옵소서."

 "비담이... 비담이 왔습니까."

 "...예, 폐하."


 덕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흐릿한 형체들 사이에 있을 그를, 덕만은 떠나지 않고 지켜봤다.


 비담은 제 뒤로 쓰러져가는 보종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비담의 어깨엔 이미 화살이 두엇 박혀있었고, 그 가슴에도, 다리에도, 회복할 수 없는 칼자국들이 무수했다. 미생의 목을 베고 돌아온 유신은 비담을 향해 달려갔다. 마침내 여왕의 십보 앞에서 비담을 막은 유신은, 처참한 벗의 모습에 두 눈을 찡그렸다. 허벅지에는 살점이 떨어질 듯 겨우 매달려 있었고, 칼은 천으로 묶여 겨우 손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말그대로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은 이 나라의 상장군이기에, 여왕에게 걸어가는 역도를 막아세웠다.


 "비담, 그만하게... 더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


 알천 역시 오랜 벗의 몰골에 괴로워하며 그를 지켜봤다. 세 벗들은 어디서부터 그들의 길이 엇갈렸는지 알아채지 못한 채 괴로운 대치를 이어나갔다. 유신은 비담을 막아섰지만, 이미 막을 필요조차 없는 몸이었다. 마침내 비담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무릎이 꺾여나가면서 몸을 고꾸라뜨렸다.


 덕만은 그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자신으로 향하는 비담의 발자국 소리를, 그저 왕의 몸으로 듣고 있었다. 덕만은 유신의 황금빛 갑주에 겹쳐보이는 흐릿한 핏덩이를 보며, 그가 비담임을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엇다. 덕만은 그가 자신에게 오는 모든 시간 동안, 그가 어서 빨리 육신의 고통을 버리고 영혼의 안정을 차리길 원하였으나 덕만의 바람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다.


 '비담이 말하길, 폐하께서 모든 고통을 참고 왕의 길을 걸을 것을 알기에... 폐하께서 황위에서 내려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그래, 비담. 알았다. 내가... 졌다.


 덕만은 못말린다는 듯 웃었다.


 덕만은 지난 이년의 세월동안 무수히 그리워했던 그 사람의 형체에 한발, 한발 다가갔다. 알천이 중간에 아니된다 막아서려 했지만, 덕만이 먼저 손을 들어 저지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덕만이 가까이 다가오자, 유신은 옆으로 비껴섰다. 덕만의 황명이 있기도 했었고 덕만과 비담의 연정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비담의 몸에는 덕만의 숨을 끊을 한줌의 힘조차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비담은 검게 세상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껴가면서도 검을 쥐려 했다. 쓰러져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덕만을 보며, 비담은 희미하게 말했다.


 "미... 아...ㄴ.... 해...."


 네 여린 어깨에 진 천근처럼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자 했는데, 네 세상을 다시 밝혀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자꾸만 몸에서 힘이 빠져.


 덕만은, 더듬 더듬, 비담의 어깨에, 뺨에 손을 올렸다. 덕만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가운데 편안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황위를 내려놓을 거야. 이제, 비담.... 쉬어도 돼."


 덕만의 말이 끝나자, 덕만의 손 끝에서 비담의 뺨이 떨어져나갔다. 비담은 덕만의 말에 안도하거나 기뻐할 틈도 없이 절명했다. 결국 제 대의를 이루고, 잔인한 운명의 끈을 놓아버린 비담의 얼굴을 만지며, 덕만은 제 사랑하는 정인의 숨을 미소로써 보내주었다.





 <15년 후>


 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유신이 홀로 산을 올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지자, 유신은 목적지에 다다름을 알아차렸다. 조금 더 걸은 유신의 시야에 들어온 작은 사찰과 처마 끝을 맞댄 와가 지붕 아래에는 네 댓명의 아이들이 소란을 떨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구김살 없는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흐뭇하게 웃은 유신이 와가 마루에 앉아 한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여인을 발견했다. 여인은, 십오년 전에 비해 다소 주름졌고, 다소 흰머리가 났으나, 여전히 처음 봤던 그때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유신을 발견한 아이 하나가 폴짝 폴짝 뛰며 여인에게 달려갔다.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어요!"


 할머니라 불리며 치마 끝을 잡힌 여인은 환하게 웃으며 문 너머 선 유신을 봤다. 동화속 주인공처럼, 여인이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세상은 여인에게 흐렸다. 그러나 또한 여전히, 여인은 대략적인 형체를 구별할 수 있었다.



 덕만은 아이들에게 콩자루를 쥐여주며 저자에 나가 놀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뒷통수가 사라지고 나서야 조용한 시간을 얻은 유신이 덕만이 가져오는 다과상을 받으며 일어섰다. 덕만은 유신과 마주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제법 많이 컸습니다."

 "송덕이는 벌써 소희의 키를 넘어섰습니다. 어찌나 쑥쑥 크는지."

 "목불도 새로 깎으셨군요."


 유신은 사찰 안 쪽으로 보이는 조악한 목불을 보며 말했다. 목불 앞으로는, 신국 어떤 곳에서도 뫼시지 못할 이의 위패가 모셔져있었다.


 "동석이가 손재주가 좋습니다. 크면 목수에게로 보낼까 합니다."


 유신은 미소를 지으며 찻물을 마셨다. 화려하거나 무겁지 않은, 정직한 찻물이었다. 왕의 자리를 버린 여인과, 신국의 대장군인 사내의 대화였지만 왕이라거나, 전쟁이라거나, 신국이라거나 하는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유신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저 덕만이 내어주는 차 한잔을 마실 뿐이었다. 위패를 보던 유신이 피식 웃었다.


 "그 사람 참, 대단한 이였습니다."

 "?"

 "부인께서 낭도시절, 얼마나 고집이 센 이였습니까. 누구도 못말릴 고집쟁이의 고집을, 꺾어놓은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괜한 말씀을 하십니다."


 덕만은 피식 웃었다. 덕만은 고개를 돌려 위패 쪽을 바라봤다. 역도의 것이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비담의 위패는 죽방이 깎아주었고, 시신 대신 묫자리에 묻은 비문은 알천이 쓴 것이었다. 위패를 모신 절은 유신이 지어준 것이었다. 그 절 옆에 덕만은 작은 와가 한 채를 짓고 전쟁과 가난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봐 키웠다. 알천과 유신이 수시로 곡식을 갖다주었기에 덕만은 아무런 걱정 없이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5년이었다.


 유신은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단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조용히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귀에 담으며, 맑고 담담한 찻물을 마시고, 유신은 언제나 그랬듯이 산을 내려갔고, 덕만은 언제나 그랬듯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본방 때 비담의 난이 오해로 비롯된게 너무 안타까워서? 이런 장면을 넣어보고 싶어서? 써봄


 원래는 처음 전개부터 싹 바꿀 생각이었는데(덕만이 아니라 천명이 버려진 걸로, 그래서 나중에 덕만이 시골이 아니라 천명있는 사막으로 가는 걸로) 근데 양이 너무 많아서 관둠


 이것도 근데 양 겁나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여태까지 올린 상플 중에 양이 제일 많고 시간도 제일 오래 걸렸어


 한번에 다 올라갈까 걱정하면서 올렸는데 역시 안올라가서 펑 하고 나눠서 올림



 아, 참고로 비담이 미실을 부정한 건... 사실 그때까지 미실 말 안듣고 자기 방식대로 연모를 하던 비담이 갑자기 아낌없이 빼앗겠다는 대사를 한게 조금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런거고(솔직히 미실이 무슨 마음으로 대의를 넘겼는지 잘 모르겠음)


 또 비담과 유신을 벗으로 설정한 건... 비담이 너무 차갑게만 나오는게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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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81 남귀꺼 밀리면 여격은 얼마나 밀리는거야 ㅇㅇ(103.50) 23.08.01 1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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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79 증보권 2장으로 오른쪽 11증 다한 ㅇㅇ(167.172) 23.08.01 1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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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21 계귀항아리지운것도도ㅈㄴ기싸움움 ㅇㅏ닌가 ㅇㅇ(200.25) 23.06.22 1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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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18 실장석을 자수라로 치환하고만화는 실장석에 안대씌워주면 ㅇㅇ(79.110) 23.06.22 1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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