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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이웃집 가이드 - 2

ㅁㄴㅇㄹ(210.109) 2014.02.15 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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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복도는 갓 입학식을 마친 신입생 무리로 북적거렸다. 엘사는 신입생들을 한 명 한 명 훑었다. 안나를 찾아 입학을 축하해준 뒤 친해질 요량이었다.


"이따 보자 미친년아!"
안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녀의 절친─라푼젤에게 인사를 한 뒤 큰 동작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복도의 시선이 안나에게로 집중됐고, 그녀는 머쓱해했다. 안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그녀보다도 머리가 훨씬 붉은 소녀의 품속으로 숨었다.

"미친년아, 쪽팔려! 꺼져!"
붉은 머리가 안나의 옆구리를 밀어내며 자지러졌다. 안나의 또 다른 절친 메리다였다. 이런 표현은 좀 실례지만 엘사는 메리다 머리에 불이 붙은 줄만  았다. 두 사람은 '왜 우리 셋 중 라푼젤만 다른 반인가.' 에 대한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자신들이 배정받은 학급을 향해 걸었다.

"성적순으로 반 나눈다던데."
"그럼 이해가 간다. 라푼젤이 좀 특히 바보긴 해."
"솔직히 우리 셋 다 이 학교에서 제일 바보일 듯."
"맞네, 진짜."

 

고등학생 안나는 어릴 때 알던 안나와 달랐다. 여전히 활달하고,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입이... 입이 좀, 걸었다. 엘사는 안나에게 인사하기가 망설여졌다. 안나가 자신의 얌전한 성격과 말투를 따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사는 안나가 필요했다.
엘사는 안나와 자연스럽게 접촉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안나와 친해져야 했다. 엘사는 다짐했다. 안나를 대할 땐 평소보다 좀 더 터프해야겠다고. 그래서 안나가 자신을 재밌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러니까 엘사는, 그런 맥락으로, 제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는 안나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니 머리 무겁다."
머리가 무겁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엘사는 그냥 장난이 치고 싶었다. 안나는 가학적인 유머를 즐기니까. 엘사는 그저 안나와 친해지고 싶었다.

 

 

 

 

 

*
"니 머리 무겁다."
엘사의 냉랭한 목소리가 안나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안나는 민망했다. 저도 모르게 엘사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안나는 재빨리 금발의 품을 떠나 머릴 정리하고 입가를 닦은 뒤, 집까지 얼마나 남았나를 재는 척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잠결에 미처 귀담아듣지 못한 엘사의 말을 되뇌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뭐라고 그랬지. 내 머리 무겁다고... 내 머리가...

 

내 머리가 무겁다고?

안나의 억울한 눈빛으로 이 맛살을 구기며 엘사를 노려봤다. 나는 니가 지분거리는 게 좋아서 가만두는 줄 알아?

 

"머리에 뭐가 많이 든 편은 아니지 않아?"
그러거나 말거나. 엘사는 안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짓궂은 농담을 덧붙인 뒤 차가운 음성으로 키득거렸다. 안나는 상처받았고, 거의 울 뻔했다.
이런 언니가 아니었는데. 안나가 과거를 회상하며 분을 삭였다.

 

어릴 적, 안나와 엘사는 정말 친했다. 둘은 거의 친자매 같았다. 그때의 엘사는 조용하면서도 기발 난 놀이를 생각하는데 탁월했고, 친절했으며, 리더십이 있었다. 그건 안나가 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안나는 엘사를 따랐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각자 갈 길에 집중하다 보니 금세 남처럼 멀어졌다. 둘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점은 사는 아파트가 같다는 것뿐이게 됐고, 그렇게 한동안은 '아파트 이웃'이라는 건조한 관계가 보수됐다. 안나가 엘사네 고등학교로 입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나가 고등학생이 된 뒤부터 엘사는 안나에게 예전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그건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얌전하고, 총명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이웃이 베푸는 친애의 행동들은 안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까지 들게 했다.

 

문제는 엘사의 고약한 말투와 유머였다. 솔직히 스킨십 같은 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까의 깍짓손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축에 속했지만 안나는 신체적인 유대 자체에는 별 반감이 없는 친인간적인 소녀였다. 하지만 영혼을 쥐어뜯는 듯한 짓궂은 농담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오랜만이다, 안나. 우리 학교엔 어떻게 붙었대."
예를 들면 이런 거. 이건 입학식 날 엘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사실 안나도 이 학교에 붙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학군 내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교였으니까. 그런 학교를, 가까운 친구들과 나란히 붙게 돼서 안나 본인도 놀랍기는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엘사의 인사는 환영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안나는 그냥 공부쟁이들 특유의 텃세려니 하고 넘겼다. 그게 문제였다. 그 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엘사는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악독한 유머를 퍼부어댔다. 심한 독감을 앓고 있는 안나에게 안 씻어서 그렇다며 싸늘하게 비웃는다든지. 인터넷에 소개된 맛집으로 가는 길을 헷갈려, 길을 헤맸을 땐 어떻게 길하나 못 찾느냐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타 등등. 안나는 엘사가 그럴 때마다 속상했지만, 그냥 심한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웃어넘겼다. 엘사가 자신'만' 엉망으로 대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어느 날, 엘사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급우에게 약 봉투를 건네는 걸 목격했을 때, 안나는 제 볼을 꼬집어 볼 뻔했다. 저 사람이 정말 감기로 죽어가던 사람에게 독설하던 그 사람이란 말야?

 

엘사는 다른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친절했다!
엘사의 건조한 목소리와 예의 없는 농담은 오직, 오로지, 안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엘사는 안나 자신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안나는 당연히 엘사가 싫어졌다. 신체적인 접촉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악한 엘사에게 저항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부터였고.

 

"너 주근깨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
한 번은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어온 적도 있었다. 안나는 상처받을 뻔했지만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래와 같이 반문했다.
"언니 머리 하얗게 센 건?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
안나는 후회했다. 너무 유치하고 못된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엘사의 백금발은 트집잡히기엔 너무 근사했다.
"이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별로 보기 좋진 않지. 그래도 네 주근깨는 귀엽다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엘사가 이런 식으로 맞받아친 뒤 웃었을 때 안나는 곧장 생각을 바꾸었다. 저따위로 반응할 수 없을 만큼 세게 몰아붙일걸.
엘사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안나는 '언니 금발도 예뻐.'하는 식으로 호호거리며 칭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엘사는 정말 정말 영악했다. 그녀는 안나의 속을 긁어놓고 스리슬쩍 내빼는 데에─속된말로 치고 빠지기에 있어 천재적이었다.

 

'그것도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안나는 문득, 정류장에서 시험을 망쳤느냐고 물어본 엘사를 떠올렸다. 뭔가 또 재수 없는 농담을 하려고 밑밥을 던진 걸 거야. 그렇다면 '완전히 망쳤다.'고 대답한 뒤 대화를 끊어 낸건 훌륭한 처세였다고 볼 수 있었다. 안나는 고소함에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도 금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니지, 혹시 내가 말을 일부러 끊어냈다고 생각하고 보복 삼아 깍짓손을 낀 거 아닐까? 그게 부담스러운 스킨십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날 골탕먹이려고... 아, 또 엘사에게 당했네! 안나는 분통이 터졌다. 정류장에서 나눈 대화의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건 엘사가 안나에게 끔찍하게 구는 건 사실이었다. 안나가 이 지경으로 속을 태울 만큼.

 

그럼에도 엘사를 완전히 미워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마귀처럼 구는 엘사였지만 그녀는 종종 안나에게 잘해줬다. 엘사가 가끔씩 베푸는 친절은 어릴 적 향수를 떠올리게 했고 안나는 그때마다 어쩌면,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나는 엘사가 싫어할만한 점들을 고치려고 애썼다. 그건 얼마 전까지 사귀었던 한스에게도 보여줘 본 적 없는 노력이었다. 잠깐만, 그래서 차였나? 한스를 떠올리자, 안나는 속이 아리기 시작했다. 아, 됐어 이 생각은 말자. 버스에서 내린 안나는 탄식했다.

 

아무튼, 문제의 핵심을 알지 못한 채 쏟아붓는 인내와 노력은 낭비였다. 안나는 지금도, 여전히, 엘사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다니. 안나는 불행에 점령당했고 미약하게 발버둥 쳤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까 버스 요금도 대신 내주고 또, 예전엔...

...모르겠다.

 

안나는 엘사를 해명하는 것에 지쳐버렸다. 이젠 정말 화내야겠다는 생각이 봄날의 새순처럼 파릇파릇 돋아났다. 때문에, 엘사가 또다시 손목을 잡아올 땐, 안나는 정말 오늘이야말로 엘사에게 화내야겠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분명하게 말하는 거야. 언니 정말 싫다고. 그러기로 했잖아. 안나는 고작 버스요금대출에 마음이 약해졌던 자신을 꾸짖으며 분노의 감정을 확고히했다.

 

"뭐 좀 마실래, 우리. 사줄게."
그래서 엘사가 갑작스럽게 건넨 호의에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거절했다. 그녀는 꼭 안나의 속내를 읽고 회유하려는 것 같았다. 넘어갈 줄 알고, 악마 같으니! 평소의 안나였다면 엘사가 보이는 호의에 금세 마음을 풀었을 테지만. 오늘의 안나는 달랐다. 오늘의 안나는 정말 화가 나 있었고, 더워서 무척 짜증 나 있었다. 그러니까 엘사가 이번에 보인 호의는 오히려, 안나를 자극하기만 했다. 속을 다 잡아 뜯어놓고는 그런 적 없다는 듯이 친절을 베푸는 것. 사람 헷갈리게 하고 희망고문 하는 저 미친 행동! 안나는 엘사의 이중적인 태도에 넌더리가 났다.

 

지금 당장 말하는 거야.
때마침 엘사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건 매우 좋은 소스였다. 안나는 이걸 트집 삼아 엘사를 몰아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안나는 호전적인 태도로 고민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엘사에게 던질 말을 다듬으며 타이밍을 쟀다.

 

우리 손 그만 잡으면 안 돼? 이건 '우리'라는 표현이 좀 걸렸다. 우리가 잡은 적은 없다. 엘사 혼자 잡아온 거지. 언니 내 손 좀 그만 잡아? 이건 너무 시비조인 것 같고 싸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싸움이 두려운 건 아니었지만 안나는 엘사와 싸우는 게 피곤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나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싶었고 깔끔히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뭐가 좋지... 나 좀 그만 만져? 이건 더 별로다.

 

"손 그만 잡자."
순간 정말 적당한 말이 안나의 뇌리를 스쳤다. 그건 아무 여과도 거치지 않고 재빠르게 입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래, 이거지. 왜 이 말을 진즉 못했을까! 안나는 속이 후련해졌다. 이건 정말 적절한 말이었다.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면서도, 밀어내는 의도가 분명히 느껴지는 일방적인 통보. 연상인 엘사와 충돌을 조장할 만큼 불손한 뉘앙스도 아니었다.

 

안나는 자신의 탁월한 언어감각에 감탄하며 앞으로 펼쳐질 '엘사가 없는 생활'이 얼마나 쾌적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엘사가 아래와 같이 묻기 전까진.

 

"왜?"

 

─왜냐니?
안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대화가 이어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을 그만 잡자는 건, 당장 손을 그만 잡자는 의미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꺼져버리라는 중의적인 분노의 표현이었다. 대화를 여는 말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뱉는 통보였다. 거기다 대고 왜냐고 묻다니, 저의가 뭐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모종의 개수작인가? 안나는 당황했다.

 

다행스럽게도(?), 안나가 엘사에게 느끼는 이런 종류의 당황은 익숙한 것이었다. 안나는 금발이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이중적으로 굴며 자신을 얼마나 괴롭혀왔는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약간의 죄책감이 가미된 당황감은 깨끗이 사라졌고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맘이 약해질 뻔했다.

 

"기분이 나빠서."
그렇다고는 해도, 안나는 자신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밥맛없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안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엘사의 질문에 대답한 이 시점. 통보는 대화로 변질되어버렸고, 이 대화는 '좋은 대화'의 범주에 속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엘사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있었다.
망했네. 엘사의 표정을 본 안나는 좌절했다. 안나는 아주 순식간에 엘사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속으로 주절주절 변명과 사과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손 잡고 뭐 그러는 거 자체는 괜찮은데, 언니가 말을 너무 재수 없게 하고, 그리고... 또 아냐 아냐, 글렀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람!

안나는 엘사와의 관계가 망가졌단 생각에 숨이 막혔다. 누가 시간 좀 되돌려 줄 수 없나? 안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걸 바랐다. 뭐라고 말을 해, 뭐라고. 안나는 금발과 공유하는 불안정한 정적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손잡기엔 너무... 덥잖아, 날씨가!"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그냥 아무런 변명이나 내질렀다. 그건 정말 너무 어색한 변명이어서, 억지웃음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런 행동은 변명의 어색함을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안나는 그녀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독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인지, 엘사와의 관계를 망칠 뻔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름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엘사가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안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아, 엘사는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더워서 접촉이 기분 나쁘다는' 안나의 말을 받아들였다. 엘사의 얼굴에 번진 편안한 미소가 그 증거였다.

 

둘 사이엔 다시 평화가 왔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예를 들면 엘사와 안나의 관계나 둘 사이의 감정은 제자리에 있었고. 가시 되는 모든 것들─ 거리의 사람들, 도로의 차들과 아지랑이, 더운 바람 같은 것들은 유동했다. 그것들은 안나를 안정시켰다. 물론 여전히 엘사가 여전히 밉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는 이제 정말 화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화낼 기운도 없었다. 안나는 그냥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엘사도 그 옆을 따라 걸었다.
아파트에 도달한 안나는 초연한 기분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마침 1층에 머물러 있던 도르래 상자는 입을 벌렸고 미지근하고 인공적인 공기를 약간 토해낸 뒤 안나와 엘사를 삼켰다.

 

안나는 긍정적이고 기민한 여고생이었다. 말하자면, 안나는 아무리 화가 나고 우울해도 아주 약간의 긍정적인 소재만으로 금세 기분을 푸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니까, 안나는 아파트 복도가 바깥보다 약간 시원하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더위가 약간씩 휘발됐고, 안나는 예정된 행복한 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곧 시험이 끝날 것이고, 친구들과 쇼핑을 갈 것이고... 맞아, 방학도 하겠네!

 

여름방학!


이걸 까먹고 있었다니! 방학이 임박했단 사실은 안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방학 동안은 말 그대로 학업을 잠시 놓을 수 있을 것이고, 방학 동안은 친구들과 피서를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아예 아무 계획 없이 집에서 에어컨을 쐬며 빈둥거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엘사를, 문제의 엘사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안나는 신이 났다. 엔돌핀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나는, 엘사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제자리로 돌려놓은 자신을 마구 칭찬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엘사는 올해로 졸업하는 3학년이었다. 그러니까 1년만 참으면 엘사를 볼 일은 없는 거다. 고작 1년! 그걸 참지 못해 이웃이자 소꿉친구이자 학교선배와 영유하던 평화를 망친다니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게다가 1년 중의 반년은 벌써 어떻게든 견뎌내서 여름방학에 이르렀다. 남은 반년도 대충 이렇게 버티면 또 겨울방학이 올 것이고, 그 뒤에 엘사는 졸업하겠지? 엘사는 머리까지 좋았다. 그러니까 보통 대학이 아닌, 아주 끝내주게 멋진 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다. 그건 이 작은 도시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대도시에 있겠지. 어디로 가려나. 아틀란티스? 코로나? 알게 뭐람! 중요한 건 이제 곧 여름방학이 시작될 거라는 사실과, 엘사는 1년 뒤면 내 인생에서 사라질 거란 사실 아니겠어!

 

'1,년,만,지,나,면,안,녕,이,야!'
행복에 도취한 안나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마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처럼 한 음절씩 끊어 소리쳤다. 물론 그녀의 동행자─엘사를 배려해서, 속으로만 말이다.

 

그러자 도어락이 띠리릭 소릴 내더니 안나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이렇게 응답했다.
"그래도 안나, 난 네가 정말 필요해."

 

...아니, 그건 옆집 엘사의 음성이었다.

 

엘사의 차분한 목소리는 꿈꾸는 안나의 영혼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엘사가 졸업하기 전인, 시험이 끝나기 전인, 방학식이 시작되기 전인, 바로 지금 당장의 현실로. 그건 지루하고 괴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때문에, 엘사가 한 말이 좀 더 다른 내용이었다면 안나는 엘사를 흘겨 봤을지도 모른다. 안나는 그 대신 눈을 크게 뜨고 엘사를 쳐다봤다.

 

내가 정말 필요하다고?

 

이게 무슨 소리래. 안나는 당황했다. 이건 정말, 엘사한테 들은 말 중에서도 최고로 황당한 말이였다. 그리고 최고로─...로맨틱한 말이었다.
엘사가 주는 당혹감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이 간지럽고 오그라드는 느낌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안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또 뭐라고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안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엘사에게 설명을 요구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엘사는 안나의 신호를 알아채기 어려워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를 잃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마치 해선 안 될 말을 한 사람처럼. 엘사는 꼭 숨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안나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엘사의 마비된 얼굴로부터 적어도 한 가지 결론은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진담이구나.

 

엘사의 창백한 표정은 연속되는 적막을 타고 안나에게도 전이됐다. 침묵도 대화의 일부라면, 두 사람은 같은 종류의 감정─당혹감을 느끼며 대화하고 있었다. 이건 학기가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나는 왠지 기뻤다. 그 막연한 기쁨은 안나에게 닥친 당황감, 민망감 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나는 계속해서 엘사를 쳐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안나는 처음으로, 자세히 말하자면 어릴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이웃집 또래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금발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웃은 저 말을 간신히 토해낸 뒤 제 집 속으로 도망쳤다.

 

 

 

 


*
아까 안나가 손을 그만 잡자고 말했을 때, 심각하게 받아들일 뻔했다. 아니, 심각하게 받아들였었다. 엘사는 잠깐이었지만 이웃집 소녀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확신했다. '왜?' 하고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여유가 있었다. 엘사는 그 모든 게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가 '기분이 나쁘다'고 대답했을 땐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왜 기분이 나쁘지? 내가 뭔가 맘에 들지 않게 행동했나? 엘사는 어떤 말로 응수해야 할지 몰라 그냥 정색했다. 안나가 재빨리 더워서 그렇다고 덧붙인 뒤, 농담인데 뭘 그리 정색하냐는 식으로 웃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제야 엘사는, 안나가 가학적인 유머를 즐긴단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안심할 수 있었다.

 

해명되거나 번복되는 농담은 실패한 농담이다.
농담에 실패하는 건 비참하다. 그럼에도 안나는 자신의 농담을 해명한 뒤 망쳤다. 본인 특유의 짓궂은 말투가 엘사에겐 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는 엘사의 내면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안나는 엘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타적인 소녀였다.

 

엘사는 터프한 척해온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따분한 본성을 직시하게 했고, 그 경험은 지루한 성정에 대한 열등감에 구속된 스스로를 해방 시켰다. 엘사는 상쾌해졌다. 그건 안나를 향한 고마움과 막연한 호감 같은 것들로 연결됐다. 때문에 엘사는 죄책감에 빠졌다. 안나는 이토록 이나 자신을 배려해주는데 그녀는 오래간 안나를 속이고,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기적인 행동은 남은 여름과 가을, 겨울에도 계속되겠지. 엘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초능력 파트너 아니, 친애하는 후배가 딱했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 타인과 접촉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더위를 끔찍이 싫어하는 엘사만은 그 사실을 헤아려줘야 했다. 그러니까... 엘사는 안나가, 어느 정도 내막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워서 짜증 나겠지만
'그래도 난 네가 정말 필요해.'

 

엘사는 안나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현관에 주저앉았다. 내막을 알 권리가 있다고! 엘사는 자신이 만든 비겁한 변명에 분노했다. 그건 거짓말이지 엘사, 거짓말이야. 누구도 이 병을 알 권리는 없어. 이건 너조차도 모른 척 넘겨야 하는 거야. 엘사는 머릴 그러쥐며, 잠깐동안 안나를 초능력 파트너 이상으로 여긴 걸 후회했다. 엘사는 안나가 몹시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고 오래간 숨겨온 자신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후련해지고 싶었다. 아니지, 안나와의 유대는 죄가 아니지. 엘사는 타박해야 하는 대상을 다시 조준했다. 문제는 자신의 우발적인 판단과 행동이었다. 특히 만회하고자 덧붙인 말이 최악이었지.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엘사는 안나가 얼마나 창백한 표정으로 자길 쳐다봤는지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남의 치부를 본 것처럼 굴었다. 아 저 말은, 저 말은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다.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고! 안나와 얼마나 친하건, 그녀가 알만한 내막은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웃집 엘사는 정말 따분한 성격이야.' 정도면 충분했는데.

 

그녀가 등을 기대고 있던 현관문이 빙결되어 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안나가 정말로 모든 내막을 알게 되면 어쩌지? 엘사는 초조함에 몰두했다. 머릿속에서, 평생을 바쳐 쌓아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년만 견뎌내면 되는데 그걸 못 참아서 일을 만들어. 엘사는 반성을 거듭하며, 1년이란 시간이 그간 홀로 '투병'해온 시간에 비해 얼마나 짧은지를 생각했다.

 

─잠깐, 1년?

 

엘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1년'만' 견디면 된다니. 이건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야. 누구긴, 내 머리지! 엘사는 자문자답하며 당황했다.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물론 올해를 '병'으로부터 지켜낸 뒤, 목표하는 대학에 무사히 입학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1년, 그다음 1년, 그다음 다음의 1년, 그다음 다음 다음의 1년 그리고 그냥, 그 이후의 모든 평생도 엘사에겐 중요했다.

 

그리고 그 평생간 병이 나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엘사는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켠 뒤 자신의 '병'에 대해 검색했다. 온갖 키워드가 검색창을 어지럽혔다. 얼음, 저주, 마법, 초능력... 이게 무슨 소용이야, 이 짓은 천 번도 넘게 해봤다고! 엘사는 이 방법으론 어떤 답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절망하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침대 위에 무력하게 엎드려 누웠다. 엘사는 울고 싶은 감정을 참아내면서, 이웃집 소녀를 입속으로 불렀다. 안나.

 

안나가 정말 정말 정말, 필요해.

 

엘사는 어떻게 하면 평생을 안나와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리했다.

 

 

 

 

 

 

 

 

 

 

──────────────────────

 

*늦어서 미안. 아프기도 했고,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손이 많이 느리다; 나도 내가 이렇게 손이 느릴 줄 몰랐음

앞으로도 이런 속도로 연재될 것 같아. 혹시 빠른 연재 바라는 갤러 있을까봐 미리 말해둠ㅠㅠ

*내 팬픽 기다려주는 글 종종 봤는데 2화도 다 못쓰고 댓글 달기 민망해서 그냥 뒀다. 기다려준 갤러들 고마워.

*1화 때 센티넬들 국가에서 관리 하느냐고 물어본 갤러에게 답변. 관리 한다!ㅋㅋㅋ 이건 본편 진행하면서 나올 것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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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짤 그려준 갤러야 존니 사랑함;;;; 내가 좀 더 떳떳한 내용의 글을 썼다면 엄마한테 자랑했을 지도 모름. (저격 ㅈㅅ 후빨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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