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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주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보니 습한 울림이 밀려들어온다. 잠시 숨을 들이키며 축축한 공기를 냉각제 삼는다. 울림을 타고 먹먹한 음악소리도 들려온다. 아마 1,2학년 축제에서 나는 소리일 것이다.

어제 밤에 야자가 끝나가 돌아가는 길에 강당 앞에서 축제 리허설을 하는 후배들을 보았다. 나도 제 작년에는 저랬었지. 저렇게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 아이들이 입은 청바지, 와이셔츠, 뉴에라 모자와 대비되는 내 라크 추리닝과 단색 v넥.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축제가 즐거웠었는데 지금은 별 감흥이 없다. 무감각해진 것 일까? 피곤하다. 저 아래, 시끄럽고 파티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강당 안에는 환호 지르는 아이들이 있고, 이 어둡고 퀘퀘한 1평짜리 방 안에는 무기력한 내가 있다.  급작스레 검은 우울감의 파도가 몰려든다. 방이 어두운지라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녹슨 뇌, 녹슨 폐. 녹을 털어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텀블러를 들고 문고리를 잡는다. 문틈에서 검은 진흙이 새어 나온다. 내 손을 타고 올라와, 팔을 타고 올라와 귀를 부여잡는다. 먹먹하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연다. 창백한 형광등으로 밝혀진 복도가 보인다. 그리고 쭉 이어져있는 닫힌 방들. 각자 방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은 잠시 눌러 둔 체로 정수기를 향한다. 텀블러를 정수기에 대고 누른다.

삑

언제 들어도 뭔가 미묘한 소리. 물이 텀블러로 떨어진다. 투명한 물이 어둡고 텀블러로 주륵 주륵 줄지어 떨어진다.뭔가 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을 마신다. 물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몸에 낀 오물들을 헹궈낸다. 녹을 헹궈낸다. 이제야 정신이 좀 맑아 진 것 같다. 그래도 이 만성적인 피곤함을 덜어지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나에게 붙어있을 것 만 같다.

고개를 돌려 닫힌 방 문들을 본다. 그리고 노크없이 문을 열어도 될 만큼 친한 아이들의 방 문을 연다.  320호, 라푼젤과 에리얼이 누워서 컴퓨터를 하고있다. 노트북 빛으로 얼굴 형태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문을 닫는다. 305호, 화목란은  롤을 하고있군.
역시 마이충.

다른 방에 들어가보려 했으나 모두 다 같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내 방으로 향한다.




고3인데 하라는공부는 안하고 게임함^오^